'일파만파'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음란행위 파문

공들인 대형수사…바바리 지검장이 망쳤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현직 검사장이 야외에서 음란행위를 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실이 밝혀졌다. 문제의 주인공은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검경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인물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초유의 사건으로 검찰 위상에 변화가 감지된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성추문'으로 검찰의 도덕성은 나락에 떨어졌다. 한 순간, 나라님에서 잡범으로 전락한 김 전 지검장. 김수창발 '성풍(性風)'이 검찰을 흔들고 있다.

지난 21일 바리케이드가 쳐진 국회 안으로 검찰 수사관들이 몰려들었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 5명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였다. 검찰이 의원 5명을 체포하려고 국회 의원회관에 진입한 건 초유의 일이다.

하루건너
초유의 사건

다음날 검찰은 헌정사상 다시 없을 망신을 당했다.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노상 음란행위 사건 수사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검찰 역사에 오욕을 새긴 김 전 지검장의 혐의 사실은 그가 폄하했던 경찰의 입으로 발표됐다.

서울 출신인 김 전 지검장은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고, 1990년 사법연수원 19기를 수료했다. 1993년부터 검사로 재직한 그는 창원지검과 법무부 검찰국을 거쳐 헌법재판소 파견근무를 했다. 이후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장을 역임한 김 전 지검장은 요직인 대검 감찰1과장에 이어 검사장으로 승진, 같은 해 '검찰의 별'인 지검장(제주)에까지 임명됐다.

당시 검찰은 김 전 지검장에 대해 "매사에 진지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검찰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검사 생활 동안 큰 실수 없이 맡은 일을 처리해 평판이 좋았던 것으로 안다"며 "술도 잘 못하는 데다 낯을 많이 가려 향응을 제공받는 등의 비리와도 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김 전 지검장이 노상에서 음란행위를 한 현행범으로 체포되자 검찰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언론은 '물 만난 고기'처럼 김 전 지검장을 물고 뜯었다. 그럴수록 검찰의 위신은 추락했다.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지검장이 소지품으로 갖고 있던 '베이비로션'이 화제가 되는 등 세간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검찰이다.

툭하면 터지는
검찰발 성추문

김 전 지검장은 지난 13일 오전 12시8분께 제주시 중앙로에 있는 한 분식점 앞을 지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한 여고생은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바지 지퍼를 내리는 등 음란행위를 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문제의 '티셔츠남'은 현장 주변에 있던 김 전 지검장으로 특정됐다.

경찰 조사에서 김 전 지검장은 공연음란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동생의 이름을 댔다가 지문조회 결과 불일치 판정이 나오자, 그제야 본명을 말해 의심을 샀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한 17일 김 전 지검장은 서울고검 기자실을 찾아 "황당한 봉변을 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울러 "경찰이 말도 안 되는 범죄사실로 검찰을 조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며 "진실을 밝혀 달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다음날 김 전 지검장은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사표가 접수되면 감찰 및 징계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법무부는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 청와대는 반려 없이 재가해 논란을 키웠다. 검찰 내부에서조자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야외서 지퍼 열고 툭툭…현행범 체포
검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수뇌부 사건


지난 20일 임은정 창원지검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사표 수리에 대한 해명을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임 검사는 "공연음란은 원칙적으로 기소를 하게 되는 사건인데 (중략) 법무부는 공연음란이 경징계 사안이라거나 업무상 비위가 아니어서 사표를 수리했다는 입장인 것 같아 참혹하기까지 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또 임 검사는 검찰공무원이 성(性)풍속 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해임 또는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받도록 한 '검찰공무원의 범죄 및 비위처리 지침'을 근거로 "당당한 검찰입니까. 뻔뻔한 검찰입니까. (중략) 검찰 구성원들이 더 무참해지지 않도록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대검은 사건이 불거진 직후 감찰팀을 제주도로 급파했다가 하루 만에 철수시켰다. 경찰 수사에 따라 감찰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가 이를 뒤집으면서 김 전 지검장이 변호사로 활동하는 데는 제약이 없게 됐다. 한때 그의 직속상관이었던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의 경우와 유사하다.

김 전 지검장은 지난 2010년 인천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인천지검장은 '별장 성접대' 사건으로 낙마한 김 전 차관이었다. 김 전 지검장은 같은 해 유명 걸그룹 멤버가 연루된 마약 밀수사건을 지휘했다. 당시 해당 연예인은 국내 반입이 금지된 암페타민을 밀수입하다 적발됐지만 인천지검은 이례적으로 입건유예라는 가벼운 처분을 내렸다. 이를 두고 <세계일보>는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문제의 사건을 전결 처리한 검사가 바로 김 전 지검장이다. 여기서 전결 처리란 지검장의 결재 권한을 담당 검사가 대신 행사함을 뜻한다. 이후 김 전 차관은 희대의 성접대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차관 내정 열흘도 못가 옷을 벗었다. 최근 김 전 차관은 피해여성으로부터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공모해 성접대 동영상을 촬영한 혐의 등으로 피소됐다. 그리고 김 전 지검장은 엽기적인 음란행위가 적발돼 선배의 전철을 밟고 있다.

경찰과 갈등
정치권 싸늘

성추문은 검찰의 약한 고리로 지목된다. 지난 2010년 이른바 '스폰서 사건'으로 검사가 연루된 성추문이 고개를 든 후 매년 한 건씩 낯부끄러운 '일탈'이 반복되고 있다.

2011년에는 한 여검사가 변호사인 내연남에게 벤츠 승용차와 샤넬 핸드백을 선물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유명한 '벤츠 여검사 사건'이다.

2012년에는 로스쿨 출신인 전모 검사가 사건 피의자인 여성과 육체관계를 맺고, 집무실 등에서 유사 성행위를 한 사실이 발각됐다. 이는 '검사 성추문 사건'으로 기록됐다.

2013년에는 '별장 성접대 사건'의 여파가 정국을 강타했다. 여기에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까지 불거지며 검찰은 가장 시끄러운 한 해를 보냈다. 채 전 총장은 법무부 감찰을 앞두고 쫓기듯 청사를 떠났다.

올해에는 소위 '해결사 검사 사건'으로 성추문이 재현됐다. 전모 당시 검사는 마약 사건 피의자로 만난 연예인 에이미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다가 결국 법정에 섰다. 법무부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전 전 검사의 해임을 결정했다.

여기에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음란행위 사건이 겹치며, 검찰은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 특히 조직 내부의 사기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제주지검 한 관계자는 김 전 지검장의 사표수리 직후 "김 (전) 지검장의 음란행위 의혹과 면직 처분으로 내부 분위기가 안 좋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은 경찰의 입을 통해 혐의사실이 생중계되는 굴욕을 맛봤다.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김 전 지검장과 경찰의 오랜 악연이다.

김 전 지검장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던 시기 금품수뢰 의혹이 불거진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부장검사)를 구속했다.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은 '10억 수뢰검사' 사건의 특임검사로 김 전 지검장을 지명했는데 특임검사제는 '스폰서 검사' 사건을 계기로 검사 비리를 검찰이 자체 수사하도록 고안된 제도였다.

문제는 관련한 수사를 경찰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것에 있었다. 앞서 몇몇 검사의 비위 첩보를 입수했던 경찰은 '검찰이 제 식구를 챙기려고 수사를 빼앗아갔다'며 반발했다. 때문에 경찰은 검찰보다 먼저 김 부장검사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구속영장 청구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지휘권을 가진 검찰이 선수를 치면서 분을 삼켜야 했다.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지검장은 경찰을 깎아내리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그는 검찰을 의사, 경찰을 간호사에 빗대 "수술을 간호사에게 맡기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또 "검사가 경찰보다 수사를 더 잘하고 법률적 판단이 낫기 때문에 수사지휘를 하는 것"이라고 뭉갰다. 이에 경찰은 물론이고 간호사 협회까지 김 전 지검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소란이 일었다.

잇단 성추문 망신 불신·분노 자초
"니들이나 잘하세요…뭘해도 욕먹을 판"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만약 경찰과 사이가 좋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제주지검장 부임 후에도 현지 경찰과 관계가 소원해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을 지낸 때에도 모 검사가 경찰관에게 직권남용 등으로 고소당하자 사건을 지휘하면서 일선 경찰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김 전 지검장의 음란행위 사건은 검·경 수사권 조정의 불씨가 될 조짐이다.

경찰대 2기인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임기 내에 수사권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강 청장은 "(외국의 경우처럼)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수사권 조정에 의지를 드러냈다. 여야는 청문회 직후 이례적으로 '합의'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비슷한 시각 검찰은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체포 작전'에 돌입했다.

이날 여야 의원 5명은 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결과는 3명 구속, 2명 기각. 영장이 청구된 여당의원 2명은 모두 구속됐고, 야당의원 중에선 단 1명만 혐의가 일부 인정됐다.

철도부품 업체 AVT사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과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의 입법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김재윤 의원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은 같은 날 밤 11시5분께 발부됐다.

이들에 대한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윤강열 부장판사는 "소명되는 범죄혐의가 중대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또 해운업체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영장이 발부된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은 구속 후 인천구치소에 수감됐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신학용 의원에 대해선 청구된 영장이 기각됐다. 윤 부장판사는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현재까지의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여부 및 법리다툼의 여지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무리한 수사
방패가 없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정치권을 상대로 한 로비 수사에서 2명이나 영장이 기각돼 체면을 구겼다. 검찰 안팎에서는 "여야 동수로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려다보니 무리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위 5명과 함께 AVT사로부터 5500만원의 대가성 금품을 수수한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일단 집으로 돌아간 두 신 의원에 대해서도 영장 재청구를 검토할 계획이다. 하지만 김 전 지검장 사건으로 쏠린 탐탁찮은 시선이 부담이다. 정치권을 건드려 '출구전략'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증폭되는 중이다.

관가 안팎의 시선도 싸늘하다. 그간 검찰은 전방위 '관피아 수사'로 각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의 원성을 샀다. '공공의 적'이 돼버린 그들을 비호할 세력이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김수창발 '성풍'까지 더해져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검찰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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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