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군대 안 간 고위공직자와 자녀들

뭣이라, 군대 갔다 와야 성공한다고?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윤 일병 사망사건의 여파로 군 복무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 입대할 나이의 아들을 둔 부모들은 입영을 거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채택해 '국민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누구나 똑같이 병역을 이행하도록 해왔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른바 '사회고위층'이라고 불리는 집단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병역을 기피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요시사>는 최근 잇따른 군 관련 사망사건들을 계기로 고위공직자들의 병역사항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이 오직 '백성'에게만 병역을 강요해 온 역사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힘이 없어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는, 그래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절규가 이어졌다. 병무청 게시판에는 "우리 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글이 가득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군대는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었다. "군대를 갔다 와야 성공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힘 있는 사람들에게 군대는 피해야 하고, 또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일요시사>는 최근 잇따른 군 관련 사망사건들을 계기로 고위공직자들의 병역이행 실태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먼저 박근혜정부 들어 임명된 17개 부처 전·현직 장관 및 그 아들(직계비속)들의 병역 사항은 다음과 같다.

아픈 아버지
미국인 아들

지난 6월 사퇴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1974년 11월 육군에 입대해 1976년 1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인사청문회(이하 청문회) 과정에서 현 전 장관은 "당시 결핵성 골수염을 앓아 보충역 판정을 받고 방위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현 전 장관의 장남 현모씨는 1984년 미국에서 출생했다. 이중국적자(미국·한국)였던 그는 2004년 10월 육군으로 입대해 2006년 12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현씨는 산업기능요원 보충역으로 복무했다. 소집해제 후 현씨는 당시 국적법에 따라 2008년 12월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서류상으로 미국인이었던 현씨는 2012년 1월이 돼서야 한국 국적 재취득을 신청했다.


현 전 장관의 후임으로 지명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1979년 3월 육군으로 입대해 1980년 4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당시 최 부총리는 한국은행 외환관리부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 부총리의 아들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지난 2005년 병역을 면제(5급)받은 것으로 기록돼있다. 이와 관련 최 부총리는 청문회 과정에서 자신 및 아들의 병역과 관련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최 부총리의 아들은 삼성그룹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은 1975년 3월 공군에 입대해 1976년 3월 복무만료(일병) 됐다. 서 전 장관은 1972년과 1973년 모두 2차례에 걸쳐 징병검사를 연기했다. 이후 그는 색맹과 턱관절 장애를 이유로 1974년 보충역 대상인 3을종(현재 4급) 판정을 받았다.

보충역을 마친 그는 1979년 교육부 사무관으로 임용됐다. 그런데 당시 신체검사에서 시력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징병검사 기록(양쪽 0.5)과 공무원 인사기록(양쪽 1.2이상)에 담긴 시력은 서로 달랐다. 청문회 과정에서 서 전 장관은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서 전 장관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눈이 피곤하면 시력이 급격히 저하된다"고 답했다.

지난 8일 취임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971년 3월 해군에 입대해 1974년 1월 만기제대(대위) 했다. 황 장관은 당시 군법무관으로 병역을 이행했다. 그러나 황 장관의 아들은 2009년 척추질환으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청문회 과정에서 특혜 복무 등 관련한 의혹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황 장관은 의혹을 일축했다. 황 장관은 "아들이 미국 영주권자라서 병역의무가 면제인데 아버지를 생각해 입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15개 부처에서도 병역이행과 관련한 개운치 않은 전·현직 장관이 눈에 띄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1979년 4월 육군에 입대해 1980년 5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윤 장관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징병검사에서 현역 입영대상인 1을종(현재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외무고시 합격 후 허리디스크를 이유로 3을종 판정을 받았다.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병역 의무가 면제됐다. 그는 1976년 징병검사에서 근육위축, 하지단축 등의 진단을 받았다. 1989년생인 장남은 지난 2008년 징병검사에서 1급 판정을 받고 현역 입영대상으로 분류됐다. 앞서 그는 학업을 이유로 입영을 한 차례 연기했다.


배운 사람들
특례도 다양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폐결핵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는 1975년 징병검사를 연기한 뒤 1977년 최초 징병검사에서 무종(폐결핵 증상) 판정을 받았다. 1978년과 1979년 이어진 재검(재신체검사)에서도 같은 판정이 나왔다. 이 장관은 1980년 병역이 면제됐다.

청문회에서 이 장관은 병역기피 의혹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이 장관은 "대학을 졸업하고 (치료를 위해)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갔었는데 집안일을 거들어 완치가 안 됐었다"고 해명했다.

박근혜정부 초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진영 새누리당 의원은 1977년 12월 육군에 입대해 1980년 9월 만기제대(대위)했다. 그의 장남 역시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만기제대(병장) 했다.

반면 후임인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1981년 11월 육군에 입대해 1982년 12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문 장관이 보충역 판정을 받은 이유는 근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1976년 5월 공군에 입대해 1977년 6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이 장관의 아들은 2003년 11월 1급 판정을 받고 현역 입영대상으로 분류됐다. 그렇지만 입영을 다섯 차례 연기한 끝에 2012년 2월 법무사관후보생으로 편입됐다. 법무사관후보생은 사법연수원·로스쿨 등에서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사람을 병적에 편입해 판사 등의 자격을 취득할 때까지 입대를 유예해주는 제도다.

사회고위층 모든 수단 동원해 병역 기피
17개 부처장관 중 면제 3명·보충역 5명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은 1976년 3월 육군에 입대, 1981년 3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당시 한국과학원(카이스트의 전신) 학생이었던 최 전 장관은 '병역의무의특례규제에관한법률'에 따라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대체했다.

최 전 장관은 1974년 서울대 응용수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산업공학과에서 1976년까지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대학원을 졸업한 최 전 장관은 같은 해 한국과학원에서 동일전공으로 또 다시 석사에 도전했다.

이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노웅래 의원은 청문회 과정에서 "같은 학위를 두 번이나 취득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며 "(한국과학원 학생에게 주어지는) 병역특례를 받기 위한 편법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후임인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장관도 병역특례를 받았다. 그는 1977년 3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군 복무를 시작해 1984년 12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같은 기간 최 장관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국립정보통신대학교에서 전산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유학기간은 1979년 9월부터 1984년 6월까지로 특례 기간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 셈이다.

그의 아들 역시 2009년 7월 입대해 2012년 7월 복무만료(이병) 됐는데 아버지와 비슷한 특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특례나 질병 없이 건강한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장관들은 없을까.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1977년 육군으로 입대해 1980년 만기제대(병장) 했다. 윤 장관의 아들도 육군병장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최근 신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지명된 김종덕 후보자는 1977년 11월 육군으로 입대해 1980년 8월 만기제대(병장) 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1980년 6월 해군으로 입대해 1983년 6월 전역(중위)했다.

방하남 전 고용노동부장관 경우, 육군하사로 만기 전역했다. 이기권 현 고용노동부장관은 육군 중위로 3년간의 군 생활을 했다.

지금은 인천시장이 된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장관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다. 전역 계급은 육군중위다. 후임인 정종섭 현 안전행정부장관은 육군대위로 전역했다. 입대일은 1985년 4월, 전역일은 1989년 1월이다.

류길재 통일부장관도 육군병장으로 1982년 12월 만기제대 했다. 국방부는 육군대장 출신인 한민구 전 합참의장이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얼마 전 취임한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의 경우는 여성으로 병역의무 대상자가 아니다.

윤성규 환경부장관은 1979년 8월 공군으로 입대해 1983년 3월 전역(중위)했다. 본인의 군 복무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청문회 과정에서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장남 윤모씨는 지난 2005년 징병검사에서 2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윤씨는 학업 및 자격시험 응시 등을 이유로 입영을 수차례 연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치르기로 한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1977년 예정된 징병검사를 연기했고 1980년 7월 '만성담마진'이라는 피부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만성담마진은 두드러기가 지속되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청문회에서 황 장관은 "경위야 어찌됐든 병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마음의 빚으로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만성두드러기 환자의 절반은 1년 내 증상이 호전되고, 5년 내에는 90% 가까이 치료돼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정부 17개 부처 장관 가운데 여성 장관을 제외하고 황 장관처럼 병역이 면제된 장관은 모두 3명(18.75%)이다. 보충역 등 대체복무한 장관은 5명(31.25%)이다. 2000년 이후 징병검사를 받은 일반인을 기준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비율은 약 5∼7%로 알려져 있다.

또 직계비속과 관련한 병역기록을 제출한 장관은 12명이다. 이 중 6명은 만기제대 했고, 3명은 입대를 연기했으며, 2명은 공익근무 등 대체복무, 1명은 면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다른 고위공직자 및 직계비속의 병역이행 실태는 어떨까. 장관이 병역을 면제받은 법무부부터 살펴봤다. 김현웅 법무부차관은 육군중위로 군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아들은 지난 2009년 질병을 이유로 면제됐다.

현역 찾기가
이렇게 힘드네

김진태 검찰총장은 1975년 5월 육군으로 입대해 1977년 6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김 총장은 당시 시력 등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의 장남은 지난 2005년 3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2009년 '사구체신염'이란 질병을 이유로 면제됐다. 청문회에서 김 총장은 "아들이 카투사에 지원하는 등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었다"고 해명했다.

또 검찰 내부 서열 2위로 알려진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1982년 병역이 면제됐다. 면제 사유는 근시였다. 최근 경찰청장에 내정된 강신명 후보자는 육군병장으로 1988년 만기제대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2013년 5월 징병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 소집대상으로 확정됐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은 어떨까. 이병기 국정원장은 1975년 5월 육군에 입대해 같은 해 12월 전역(이병)했다. 전역 사유는 가사사정이었다. 6개월 방위로 복무했던 이 원장은 2대 독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기범 국정원 1차장과 김규석 3차장은 각각 아들이 현역으로 복무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차장의 장남은 2011년 9월 육군으로 입대해 2013년 8월 소집해제(이병) 됐다. 김 차장의 장남은 2012년 9월부터 최근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했다.

사정기관의 한 축인 감사원도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다. 황찬현 감사원장은 1975년 4월 징병검사에서 현역 입영대상인 2을종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1977년 8월 재검을 통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면제 사유는 근시였다.

5대 권력기관장 도마에
정권 실세들도 유야무야

오는 18일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임환수 국세청장 후보자는 1986년 7월부터 1989년 3월까지 공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군무이탈 의혹을 제기했다.

정치권도 병역과 관련해서는 떳떳하지 않았다. 당 최고지도부인 당대표와 원내대표만 임의로 확인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974년 4월 육군으로 입대해 1975년 6월 소집해제(이병) 됐다. 김 대표의 병역 이행과 관련해서는 여러 경로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976년 5월 육군으로 입대해 1977년 4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단기 사병으로 복무한 셈이다. 이 대표의 차남은 2000년 징병검사에서 3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2006년 불안정성 무릎관절을 이유로 면제 조치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현재 당 대표가 공석이며, 박영선 원내대표의 경우 여성으로 병역이행 대상자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 사람들의 병역이행 실태를 살펴봤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육군병장으로 제대했다. 하지만 장남 정모씨는 허리디스크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정씨는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재직 중이다.

군대 안 가고
사회서 승승장구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해군대위로 전역했다. 그렇지만 그의 장남은 1997년 수핵탈출증 수술을 이유로 면제됐다. 박흥렬 경호실장의 경우는 차남이 면제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당시 아들의 병세가 위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9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수석비서관 중에서는 5명의 병역기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윤두현 홍보수석, 김영한 민정수석, 송광용 교육문화수석은 확인할 수 없었다. 여성인 조윤선 정무수석은 제외했다.

남은 5명 가운데 2명의 군 면제자가 확인됐다. 윤창번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은 1974년 근시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최원영 고용복지수석도 1978년 척추회백질염을 이유로 면제됐다.

보충역은 1명이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1981년 6월 육군으로 입대해 1982년 6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의 장남 유모씨는 2003년 국적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지난해 병역기피 의혹이 일기도 했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의 병역기록도 살폈다. 이 중 안 비서관은 1986년 8월 해군에 입대해 1988년 12월 만기제대(병장) 했다. 남은 둘은 병장으로 제대하지 못했다. 이 비서관은 1992년 5월 육군으로 입대해 1999년 2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정 비서관은 1991년 4월 육군으로 입대해 1992년 10월 소집해제(상병) 됐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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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