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개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노림수

대단한 결단…알고 보면 오너 배불리기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한라그룹 지주회사 체제 전환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주)한라(구 한라건설)리스크로부터 자동차 부품기업 만도를 분리해 대주주 지배체제 강화에 총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의 기업분할을 놓고 만도의 현금으로 또 다시 한라의 부실을 메우기 위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겉으로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명분이지만 사실상 정 회장 일가의 그룹 내 장악력 강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해석이 조심스레 회자된다. 

자동차 부품기업 만도가 분할된다. 오는 10월 만도는 새롭게 출범해 재상장된다. 만도는 지난달 28일 경기 평택 본사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지주회사 한라홀딩스와 사업회사 만도로 분할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라홀딩스 중심
지배구조 개편

이 날 만도 전체 주주의 66%가 참석했다. 안건은 2대 주주인 국민연금(12.95%)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변 없이 통과됐다. 기업분할이 완료되면 한라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남게 된다.

이날 신사현 만도 대표는 주총에서 사업 분할에 대해 “지주회사 체제 도입을 통해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는 등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순환출자 문제도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도의 분할기일은 9월1일이다. 자산분할 비율은 0.48대 0.52로 기업 분할 절차가 완료되면 기존 만도주주들은 한라홀딩스 주식 0.48주, 제조회사인 만도 주식 0.52주씩 각각 보유하게 된다. 새롭게 출범하는 만도는 오는 10월6일 거래소에 재상장된다. 따라서 만도 주식은 오는 28일부터 10월5일까지 거래 정지된다. 이에 따라 한라그룹은 지주사 한라홀딩스를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개편될 전망이다.


만도 분리 등 한라홀딩스 중심 지배구조 정비
부실 메우기 꼼수? 줄줄이 ‘도미노 부실’우려

현재까지는 (주)한라가 만도 지분 17.29%를, 만도가 한라마이스터 지분 100%, 한라마이스터는 (주)한라를 15.86% 보유하고 있다. 즉 한라그룹은 ‘(주)한라→만도→한라마이스터→(주)한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기업은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계열사들끼리 돌려가며 자본을 늘릴 수 있다. 계열사끼리 출자해 자본금과 계열사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재벌들이 계열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동원하는 변칙적인 출자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중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출자한 다른 계열사까지 부실해지는 부실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현행상법과 공정거래법에서는 계열사 간의 출자, 즉 상호 출자를 금지하고 있는데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순환출자 규모나 내용을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라그룹 역시 순환출자를 통해 흑자경영을 해온 만도의 돈으로 한라를 살려내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리스크 때문에 기업 분할을 통해 만도와 (주)한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게 한라그룹의 명분이다.

분할 재상장해
한라 간접지원?

우선 만도차이나홀딩스, 만도브로제, 만도신소재 등은 만도의 자회사로 남는다. 한라마이스터, 만도헬라, 한라스택폴 등은 한라홀딩스 자회사로 재편된다. 지주사 한라홀딩스는 핵심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한라홀딩스가 건설사 (주)한라의 모회사격인 한라마이스터를 지배하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면 만도와 (주)한라의 연결고리는 끊어지게 된다. 이를 통해 만도 독자 경영의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한라그룹의 주장이다.

하지만 만도의 분할은 (주)한라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주)한라는 여전히 실적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주)한라는 428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상환해야 할 단기차입금만 약 3300억원이다.

만도의 주주인 국민연금이 만도 주총에서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만도의 지분 13.41%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은 만도를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와 사업회사인 만도로 분리하는 내용의 기업분할 계획에 대해 반대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는“(한라그룹) 사업 분할 목적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지주회사의 전환이라고 하지만 그간 유상증자로 현금소진이 높은 상황에서 회사채 발행으로 조성한 자금을 사업 분할에 활용하는 것은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만도의 장기 기업 가치와 주주권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아직 공시된 게 없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할 전 157%인 만도의 부채비율은 분할 뒤 250%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금자산은 50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줄고, 1조235억원에 이르는 이익잉여금도 모두 사라질 전망이다. 빚만 늘어나고 통장잔고는 텅텅 비게 되는 셈이다.

반대로 한라홀딩스는 4500억원의 현금자산과 1조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넘겨받았다. 앞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재원을 확보한 것이다. 또 주요 자회사인 만도헬라가 한라홀딩스 소속으로 결정된 것도 만도에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만도 분할을 두고 전문가들의 평가도 부정적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분할을 통해 만들어지는 순수 지주회사는 사업회사보다 기업가치가 작기 때문에 대주주의 지분확보가 쉽고 상속이나 증여 측면에서도 유리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이 변경된 지배구조로 인해 좋은 실적을 거둘 수 있는 사업 부문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제한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순환출자를 끊기 위해선 합병, 주식교환 등을 거쳐야 한다”며 “한라와 한라홀딩스가 합병을 한다 해도 건설부문의 부진을 만도가 계속 메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몽원 회장
그룹 장악력

한라에 대한 지원책이 나올 때마다 재계가 시끄러운 것은 정몽원 회장의 지분 때문이다. 정 회장의 개인 지분이 한라에 몰려 있다. 정 회장의 한라 지분은 23.58%다. 분할 후 만도와 건설사 한라는 분리되지만 지분율은 변동되지 않는다. 만도의 최대주주인 정 회장의 지분비율 7.71%는 한라홀딩스와 만도에서 동일하게 7.71%를 유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정 회장이 한라홀딩스를 통해 만도까지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는 추측이 회자되고 있다. 정 회장이 지주사에 대한 지배력을 더 확보해 한라홀딩스의 보유현금으로 한라 자사주를 매입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한라홀딩스의 영향력은 만도와 한라에 모두 미친다.즉, 분할 이후에도 '한라-한라홀딩스-마이스터-한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는 남게 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사실상 신설법인 만도의 대주주 또한 여전히 한라다.

한라그룹은 한라홀딩스와 한라 합병 가능성에 대해 “우려에 불과하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번 분할로 지주회사를 통해 과거처럼 만도의 돈이 한라에게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시각에 한라그룹 관계자는 “만도나 한라홀딩스를 통해 한라를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우려일 뿐, 실제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라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으로 부실계열사인 (주)한라에 대한 추가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이번 분할로 순환출자 구조는 끊어지게 된다”며 “만도 부채비율이나 현금자산의 경우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하게 얼마나 어떻게 나올지는 공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합병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라 대주주인 정몽원 회장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주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분할 재상장이 만도 경쟁력 강화가 아닌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쓰일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소액주주들은 지분율이 희석되고 분할 재상장 이후 분리된 두 기업의 주가가 동반상승하지 못하면 기존 주주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주주가치 훼손
투자자들 우려

소액주주들의 원성은 지난4월부터 이어졌다. 정몽원 회장이 만도의 지주회사 전환체제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만도는 꾸준히 성장해 재작년부터 매출 3조원을 넘는 등 흑자경영을 해온 업체다. 반면 한라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몇 년째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한라그룹은 지배구조 핵심인 (주)한라가 유동성 위기를 겪자 만도와 자회사 한라마이스터를 이용해 두 차례에 걸쳐 자금을 지원했다. 건설경기 불황으로 적자의 늪에 허덕이는 한라를 지원하기 위해 만도가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한라마이스터를 통해 한라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우회 지원한 것이다. 
 

한라는 2012년 1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730억원 규모의 주식을 발행했다. 이 중 200억원어치를 만도의 자회사 한라마이스터에 팔았다. 이어 지난해 4월에도 3385억원 규모의 주식을 발행해 한라마이스터에 팔았다. 만도가 한라마이스터의 유상증자에 돈을 대고, 이 자금을 다시 한라건설의 증자에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동안 만도의 돈이 꾸준히 한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만도 자회사를 통해 만도의 돈으로 한라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상법 제549조의 9에 따르면 상장회사는 주요주주 및 그의 특수관계인, 이사 및 업무관여자, 감사를 상대방으로 하거나 그를 위해 신용을 공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만도의 최대주주는 17.29%의 지분을 보유한 한라다. 이에 경제분야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정 회장을 비롯해 경영진을 상법의 신용공여 금지위반으로 고발한 바 있다.

겉으론 순환출자 고리 정리 내세워
실제론 오너일가 장악력 강화 분석

주주총회 다음날 증시에서 만도 주가는 뚝 떨어졌다. 만도의 주가가 폭락한 것은 분할 후 만도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이투자증권 한 연구원은 "대주주 한라 리스크 등 잇단 악재로 만도 주주들은 매우 지쳐있는 상태"라며 "회사에 대한 신뢰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당일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최고조로 치솟았다. 만도 투자자는 “정몽원 회장이 만도의 돈을 한라건설로 빼돌리기 위해 서둘러 지주회사로 전환한 모습”이라며 “정 회장은 만도를 챙기고 한라를 버려야지 덩치만 키우려고 내실과 주주이익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분할 후 만도가 한라의 건설 실적 부진을 커버하는 지원이 다른 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현재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분할 전 보유한 만도주식을 팔겠다는 분위기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한라홀딩스 가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만도 소액주주는 “만도가 재상장하게 되면 만도 주식은 오를지 모르겠지만 한라홀딩스는 하락할 것”이라며 “만도만 보유하고 싶은데 분할 후 재상장으로 한라홀딩스까지 떠안게 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분할의 혜택이 소액주주가 아닌 대주주 한라에만 있을 수 있다는 부연이다.

하지만 한라그룹은 만도의 가치는 현재보다 더 올라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곳 관계자는 (한라홀딩스와 만도는) 주식 수로 보면 48대 52로 나뉘는데 분할되는 회사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가치로 따지면 현재보다 올라가게 될 것”이라며 “하나는 오르고 하나는 적게 떨어지더라도 전체적 가치는 더 커질 전망”이라고 제시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대백화점, 위니아만도 인수
삼촌기업 조카가 품는다

현대백화점이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만도를 인수한다. 최근 동양매직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현대백화점은 위니아만도 인수로 그동안 추진해 왔던 가전제조업 진출의 꿈을 이뤘다. 

현대백화점은 지난7일 글로벌 사모펀드 시티벤처캐피털파트너스(이하 CVC파트너스)와 위니아만도 지분 100%를 매입하는 내용의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계약 금액 등 세부 조건에 대한 합의를 마무리하고 조만간 실사를 거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TV홈쇼핑 업체 현대홈쇼핑과 식품유통전문업체 현대그린푸드를 거느리고 있다. 위니아만도 인수를 통해 판매와 제조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위니아 만도는 한라그룹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만도(옛 만도기계) 가전부문에서 출발한 회사다. 1995년 선보인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해졌다. 한라그룹은 고(故) 정주영 회장 첫째 동생인 고 정인영 회장이 창업한 회사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고 정주영 회장의 3남인 정몽근 명예회장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현재는 정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지선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삼촌이 매각했던 기업을 조카가 인수하게 된 것이다.

위니아만도는 김치냉장고 외에도 에어컨과 제습기 등 가정용 공조기기를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 4127억원, 영업이익 168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은 현대홈쇼핑, 현대그린푸드, 현대리바트 등 그동안 유통업을 위주로 사업을 펼쳤으나 이번 위니아만도 인수를 계기로 제조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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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