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실화> ‘장기매매’ 공포의 택시괴담 경험담

기사가 건넨 사탕 ‘먹어? 말어?’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한 청년이 부산에서 일정을 마치고 복귀하는 길에 아찔한 경험을 했다. 부산역을 향하던 택시기사가 갑자기 의문의 사탕을 청년에게 건네고는 목적지와 다른 엉뚱한 곳에 차를 세운 것이다. 이후 벌어진 상황은 더욱 미심쩍었다. 마치 인터넷에 떠도는 ‘택시괴담’ 같았다. 장기매매를 위한 포석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이런 오싹한 경험은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장기매매가 의심되는 실제 경험담과 갖가지 괴담, 과연 소문의 진실은 무엇일까.

지난 6월, 업무 차 수일 동안 부산에 머물렀던 A씨는 일을 잘 마무리한 뒤, 미리 예약한 서울행 KTX를 타기 위해 늦은 밤 택시를 잡았다. A씨는 택시기사에게 목적지인 부산역을 말하곤 피곤한 몸을 반쯤 눕혔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5분에서 10분 정도 잤을까. 진작 도착했어야 정상인 거리인데, 택시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어두워서 밖은 잘 보이지 않았다.

기사가 건넨
의문의 사탕
 
A씨가 정신을 차리고 두리번두리번 거리자 택시기사가 알사탕을 건넸다. “많이 피곤하죠? 이거 먹고 정신 차려요. 거의 다 왔어요.” 갑작스러웠지만 택시기사의 호의에 마음이 안정됐다. 그러나 평소 원체 단 음식을 멀리 했던 터라 바로 먹지는 않고 가방 주머니에 넣었다. 그더런 중 시계를 바라보니 택시를 탄 지 벌써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뭔가 수상함을 느끼고 정신을 차린 A씨는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님 도대체 어디로 가시는 거죠?” 택시기사는 덤덤한 말투로 거의 다 왔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부산역은 보이지 않았다. 흔하디 흔한 건물 간판도 없었다. A씨는 확실히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택시기사가 요금을 더 받기 위해 빙빙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어이없는 상황에 화가 난 A씨는 “택시 승차 지점에서 부산역까지 5분에서 10분 거리에 불과한데, 20~30분 걸리는 게 말이 되냐”며 당장 세워달라고 소리쳤다.
 

똥 밟은 셈 치고 다른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순간 택시가 급정차했다. 그리고 택시기사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손님, 차량에 문제가 생겼어요. 요금은 받지 않을 테니 저기 옆에 있는 택시로 갈아타세요.” 이에 A씨는 문제의 원인을 물었지만 뚜렷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사실상 택시 환승은 강요였다.
 
KTX열차 시간이 다가와 점점 초조해진 A씨는 시간이 지체돼 불쾌했지만, 택시기사의 점잖은 태도에 크게 화를 낼 순 없었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인근 도로가에 정차돼 있는 택시로 군말 없이 옮겨 탔다. 이때까지 A씨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차된 택시로 갈아탄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갈아탄 택시를 탄 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택시기사가 길이 막힌다며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 A씨는 전 택시에서 건네받은 사탕과 유사한 사탕을 환승한 택시에서도 받았지만, 먹지 않고 손에 쥐었다. 불안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던 ‘택시괴담’이 떠올랐다.
 
괴담의 주 내용은 택시 납치 후 장기매매까지 이어진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머리 속에는 이미 수많은 시나리오가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이미지트레이닝으로 최악의 상황을 면하고자 했던 것. 게다가 A씨는 태권도4단에 합기도1단, 육상과 수영으로 다져진 만능 체육인이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해도 잘 대처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수상한 움직임
의문의 수신호
 
이때 A씨는 자신의 처한 실제 상황을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실시간으로 기록했다. “나 부산역 갈려고 택시 탔는데, 택시 기사가 사탕을 줬어. 그러고는 옆 택시로 갈아타래. 갈아탔더니 똑같은 사탕을 또 받았어. 그러더니 자꾸 엉뚱한 곳으로 돌아간다. 나 장기 팔리는 건가?” A씨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작성한 글이었지만, 친구들은 이 글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반응 대부분은 ‘장기 탈탈 털려라’ ‘심판의 날이구나’ ‘네가 싱싱해 보였나봐’ ‘꼭 살아 돌아와라’ 등이었다. 물론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빨리 내려’ ‘사탕 절대 먹지마라’ ‘경찰에 신고해’ ‘무사히 돌아와’ 등 실시간 댓글이 달렸다. A씨는 이를 통해 그나마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을 다스리던 중, 갑자기 택시기사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은 택시 기사는 “어” “아니” “그러니까” “맞아” “빨리” 등 단답형의 대답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뭔가 다급해보였다. A씨는 앞서 받은 사탕과 지금 쥐고 있는 사탕이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먹으면 잠드는, 미끼라고 판단했다. 택시기사끼리 통화를 주고받은 것 자체가 ‘플랜B’를 가동했다고 본 것.
 
갑자기 정차한 택시, 기사의 수상한 움직임
불길한 직감에 기겁하며 살기위해 전력질주
 
택시의 움직임을 의심하던 A씨는 이들의 꾀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택시 탈출을 결심했다. 그러나 달리고 있는 택시에서 내릴 순 없었다. 그래서 차가 서서히 서행할 때 문을 열고자 했다. ‘덜컥’ 문이 잠겨 있었다. 이내 옆으로는 여러 대의 택시가 따라 붙으면서 택시를 감쌌다. 그리고 기사들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이 와중에도 택시기사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계속 주변을 빙빙 돌기만 했다. 
 
A씨는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이대로 있다간 서울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얼굴은 창백해졌다. A씨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아저씨 내려주세요!” 택시기사는 말이 없었다. A씨는 언성을 높이며 급히 세워달라고 외쳤지만, 택시기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엑셀을 더 세게 밟았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A씨는 순간 이성을 잃고 택시 내부에서 온 힘을 다해 문을 걷어찼다. 저항이 거셌던 탓일까. 택시기사는 급정거했고, 이내 A씨는 택시에서 급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고, 택시를 등진 채 앞으로 전력 질주했다. 1분 정도 달렸을까. 따라붙던 택시들은 시야에서 멀어졌고 A씨는 금세 지쳐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머리 속이 하얘지며 흥분이 가셨고 가로등 불빛 아래 덩그러니 남게 됐다. 신고할 틈도 없이 ‘택시괴담’을 온몸으로 느낀 채 뒤늦게 부산역에 도착했다. 
 
A씨는 이 같은 일을 겪기 전 SNS를 통해 ‘택시괴담’을 접했었다. 택시에 타면 특정 화약물질의 냄새에 취해 기절하게 되고, 가짜 택시기사가 장기를 적출해가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근거 없는 괴담이지만, 이 내용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불안 심리를 부추겼다. 

장기 건강한
청년들이 표적
 
그런데 A씨의 경우와 비슷한 사례는 또 있었다. 서울에 거주 중이던 B씨는 천안에 볼 일이 있어 새벽에 일어나 신림역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B씨의 옆구리를 쿡 쿡 찔렀다. 옆을 돌아보니 키 작은 아저씨가 휴대폰을 쥐고 찌른 것이었다. 아저씨는 뜬금없이 자신이 경찰이라고 밝혔고, 수사 때문에 급하니 전화를 받고 현재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아침이슬이 마르지 않은 새벽에, 경찰이 혼자 와서 위치를 물어본다는 자체가 의아하긴 했지만,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의 말에 따라 전화를 받아 신림역 7번 출구에서 오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돌려주니 아저씨는 횡설수설했다. “이렇게 알려줘도 길을 못 찾으니, 같이 좀 가서 그 사람한테 길을 알려줍시다.” 황당했다.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길을 알려주고 말고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B씨는 아저씨가 경찰이라고 주장하는 게 의심됐다. 불편한 직감이 들어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먼저 오는 버스를 급하게 탔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가 버스를 따라 탄 것. 그러더니 아저씨는 B씨를 향해 소리쳤다. “이 사람 안 되겠네 이거. 나 경찰인데 급하다니까 같이 가서 위치 좀 알려달라고.” 범죄자 같은 행색으로 새벽에 동행하자는 아저씨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B씨는 확실히 하기 위해 아저씨에게 경찰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당황하며 “나 경찰인데 못 믿나? 허 참‥” 혀끝을 찼다. 그러더니 태도가 바뀌어 “내가 사실은 경찰이 아니고 지금 전화 받고 있는 사람이 경찰이야. 이런 거까지 말해야 하나. 이 경찰한테 위치 말하면 아마 나 잡으라고 할 텐데‥” 조용히 공포 분위기를 잡은 것이다.
 
결국 B씨는 불안한 마음에 두어 정거장 가서 내리고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에 섰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또 따라 내려 B씨를 쫒아왔다. 그러던 중, 불 꺼진 택시 한 대가 섰다. 조수석에는 이미 손님이 타 있었지만 택시기사는 “이 손님 저 앞에서 내릴 거니까 타요”라며 B씨를 택시에 태웠다. B씨는 상황 자체가 수상함을 느꼈지만, 경찰을 사칭하던 아저씨를 떼어 냈기 때문에 안심했다. 이 아저씨는 택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길 좀 알려주세요” 안내해주니
골목길에 불쑥 칼든 괴한 나타나 
 
그런데 택시 문을 닫으려는 순간, 꺼져있는 미터기를 발견했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문득 ‘택시괴담’이 떠올랐다. B씨는 닫혀가던 뒷좌석 문을 걷어차고 빠르게 내렸다. “저 택시 안타니까 그냥 가세요.” 그러자 택시기사는 왜 내리냐면서 B씨를 붙잡았다.
 

이 와중에 경찰을 사칭하던 아저씨가 다가왔다. B씨는 흥분하며 본능적으로 반대편으로 재빨리 뛰었다. 그리고 인적이 많은 도로에서 다른 택시를 잡고 서울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B씨에게는 1년 같은 1시간이었다. 근처에 경찰서가 있었지만 신고할 정신이 없었다. B씨는 자신이 겪은 일이 하마터면 장기매매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남부럽지 않은 건장한 몸을 갖고 있었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던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C씨는 예비군을 마친 뒤 술을 한 잔 걸치고 구파발역에서 내리고 담배를 피면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체구가 왜소한 아버지뻘 되는 한 남성이 다가와 담배 한 대를 부탁했다. C씨는 거리낌 없이 담배와 함께 불을 붙여줬다. 같이 담배를 피다가 슬슬 가려던 찰나, 이 남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C씨에게 토로했다.
 
“아들과 단둘이 사는데, 아들이 술만 먹으면 집안을 다 부수고 나를 때리려고 해서 도망 나왔어.” 이 남성은 군복을 입은 C씨가 듬직하다고 했다. 같이 좀 가줄 수 있냐는 부탁이 이어졌다. 그래서 C씨는 이 남성과 함께 어두운 골목길을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앞길에 남자 2명이 걸어왔다. 그러더니 담배를 빌리던 남성이 갑자기 C씨의 입에 천 조각을 쑤셔 넣고 칼을 들이댔다. “너 그거 뱉으면 배에 구멍 난다?”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이들은 C씨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것이 장기매매인가’ 이대로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온 몸에 힘을 줬다. 그리고는 휴대폰으로 이들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어수선해진 사이 C씨는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달렸다. 이들은 계속 C씨를 쫒아왔지만, 대로변의 한 편의점으로 들어가면서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다행히 편의점에는 남자 손님 1명과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C씨는 거친 숨을 내쉬고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자신을 위협했던 남자들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운명의 밧줄로
가까스로 모면
 
장기 이식을 위해 금전 수수를 수반하고, 인간의 장기를 알선해 제공하는 행위를 장기매매라 부른다. 아직 정확한 실체는 밝혀진 바 없지만, 세계 곳곳에서 장기 브로커를 통해 비밀리에 또는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고 알려진다.
 
2012년, 경기도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사체를 280여 조각으로 나눈 오원춘이 붙잡히면서 장기매매 의혹이 증폭됐다. 당시 유가족은 “오원춘 범행동기는 인육제품 생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인터넷에는 ‘오원춘 인육 살인설’이 떠돌아다녔다. 이후 장기매매와 관련된 괴담이 난무했다. 그중에는 거짓된 루머도 포함됐다.
 
캐스 선스타인의 <루머>에서는 루머의 발생요인을 ‘사회적 폭포효과’와 ‘집단 극단화’로 소개한다. 폭포효과란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의미하고, 집단 극단화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러한 요인으로 발생하는 루머의 진실여부를 결정하는 핵심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이다.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따라 루머 수용정도가 다른 것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불신, 불안, 불만과 같은 부정적인 심리상태가 괴담의 확산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괴담이 성행하는 이유를, 각종 사회적 위험, 미래의 잠재위협에 비춰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우선과제는 ‘신뢰 회복’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매매 장기 얼마? 시세 보니…위 57만원…신장 3억원
 
장기매매 범죄가 증가하는 가운데 신체부위별 거래가격도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학전문사이트 <메디컬트랜스크립션> 자료에 따르면 장기매매 부위별 가격은 신장(2억9560만원), 간(1억7000만원), 심장(1억3420만원), 소장(280만원), 심장동맥(170만원), 쓸개(137만원), 두피(68만원), 위(57만원), 어깨(56만원), 손과 팔(43만원), 혈액 0.473ℓ(38만원), 피부 평방인치당(1만1000원)으로 거래된다. 국내에서는 국제 가격 기준보다 2∼3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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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