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산업개발 '수상한 투서' 내막

관피아 천국은 지금 '이전투구'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한전산업개발 현직 임원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한전산업개발은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자회사로 연매출 3000억원에 육박하는 알짜 회사다. 문제의 파일 안에는 임원이 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범죄 경력에 대한 확인서가 담겨 있었다. 그간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한전산업개발은 잇따른 법정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시작은 한국자유총연맹이 한전산업개발을 인수하면서부터다. 노조는 "첫 단추를 잘못 낀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덧 '관피아 천국'으로 전락한 한전산업개발. 자구책은 없어 보인다.

한전산업개발 전·현직 임원들이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들은 부실 경영으로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의혹을 받고 있다.

갈등 점입가경

지난 5일 한전산업개발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김영한 전 대표이사를 비롯해 원성수 전 감사, 최준규 전 관리전무, 신동혁 현 관리본부장 등 10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배임) 및 상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노조가 고발한 전·현직 임원 가운데는 자회사 한산산업개발 홍기표 대표이사, 김신종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전산업개발은 지난 1990년 한전이 100% 출자한 공기업으로 출발했다. 한전으로부터 일감을 받았기 때문에 수익 구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한전은 2002년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방침을 밝히자 한전산업개발 지분 51%를 시장에 내놨다. 이를 전량 인수한 곳이 한국자유총연맹(이하 자총)이다. 자총은 전국 150만여명의 회원이 등록된 국내 최대 관변단체로 알려져 있다.

당시 자총은 한전산업개발의 지분을 707억원에 매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재원을 금융권 대출로 마련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지난 7월 노조는 기자회견에서 "자총이 한전산업개발을 인수할 당시 마련한 돈은 6억6000만원에 불과했다"고 알렸다.


그런데 자총은 한전산업개발 대주주가 된 후 이른바 '잭팟'을 터뜨렸다. 지난 10여년간 주주배당·사옥매각·주식판매 등으로 모두 1000억여원의 이득을 챙겼다. 노조는 "자총이 (투자 대비) 150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같은 기간 자총이 기업 인사에 개입해 낙하산을 내려 보냈다는 점이다. 노조는 "감사나 관리본부장 등 핵심 요직은 사실상 정권이 내려 보낸 낙하산이 차지했다"며 "낙하산의 배후가 다르다보니 경영진 간 대결구도까지 형성됐다"고 말했다. 현재 한전산업개발에는 이른바 '홍 라인'과 '서 라인'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현직 임원 배임 등 혐의로 검찰 고발
자유총연맹 낙하산 인사 파벌싸움 진통

노조의 고발장과 이사회 문건, 사측이 회계법인에 자체 의뢰한 경영진단보고서 등을 종합하면 한전산업개발은 신규 사업에서 일부 투자 손실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노조는 "한전산업개발이 출자회사 형태로 신규 사업에 371억원을 투자했고, 출자회사의 금융기관 차입금 중 271억원에 대해 연대보증을 서 최대 642억원의 손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윤기영 현 감사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그는 지난 4월 열린 '제2차 이사회'에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대한광물, 양주CC골프클럽, 원일산업개발(이하 원일), 한산산업개발(이하 한산) 등에 약 60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하여 결손을 낸 사건"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지분법 손실 및 투자주식 손상차손 165억원 ▲대손상각비 75억원 ▲투자사 대한광물에 대한 지급보증 손실 37억원 등 모두 277억원의 투자손실이 계상됐다고 설명했다.

또 노조는 "원일·한산의 경우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있었다"고 밝혔다. 노조 측의 주장은 이렇다. 홍 이사는 2013년 2월 한전산업개발로부터 한산 주식 80만주(100%)를 10원에 사들였다. 이는 한산이 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은 자본 잠식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산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원일도 매각 대상으로 묶였다. 가계약에서 한전산업개발은 원일·한산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계약금을 제외한 잔금 38억9000만원을 본계약 전 완납받기로 했다.


그렇지만 한전산업개발은 잔금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홍 이사와 본계약을 맺고 모든 권한을 넘겼다. 이후 홍 이사는 한산의 자산 등을 매각해 수십억원의 이득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미납 잔금은 납부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이 커지자 한전산업개발은 홍 이사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잘못된 계약을 한 회사가 면피용으로 한 것"이라며 의심했다. 홍 이사 역시 "본 계약서에 기입된 일부 조항이 잘못됐다"며 한전산업개발을 상대로 '우발 채무 정산금 지급'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홍 이사는 최근 한산 소유의 땅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이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측이 지난해 10월 홍 이사의 매각대금 지급기일을 올 10월로 연기해주면서 개인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이다. 홍 이사는 자총 전 회장인 박창달씨의 대학 동창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노조는 "홍 이사가 계약 당시 한전산업개발과 특수 관계였다"며 "상법상 주식을 취득할 수 없는데도 80만주를 건넨 책임을 경영진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부적격업체 수의계약 의혹, 대한광물 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해서도 명백히 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잇따른 의혹들

기자가 입수한 '한전산업 기타비상무이사 및 고문 현황'을 보면 김명환 자총 총재(비상무이사)는 2013년 10월부터 월 1000만원의 활동비를 받았다. 자총 총재는 한전산업개발의 대주주로 비상무이사를 겸한다. 전문 경영인이 아님을 고려하면 과도한 보수다.

또 전임 총재였던 박씨는 퇴임 후 한전산업개발 고문료로 월 650만원을 챙겼다. 원 감사는 퇴직 과정에서 공증까지 받으며 고문직을 약속받았다. 그 대가로 월 470만원의 고문료를 받고 있다. 이들에게는 각각 1년에서 3년까지 급여가 보장됐다. 노조는 "이게 바로 관피아의 전형"이라며 씁쓸해 했다.

한전산업개발은 최근 고액 보수 논란이 불거지자 이들의 보수를 일부 삭감했다. 그렇지만 회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관피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들의 '이전투구'는 계속될 전망이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전산업개발 입장은?

한전산업개발이 노조의 고발건과 관련해 보도자료로 입장을 표명했다. 이들은 '642억원의 손실'에 대해 "보고서에서 투자손실을 언급한 바 없으며 투자금 중 상당 부분은 회수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또 홍 이사의 이른바 '먹튀' 논란과 관련해서도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취해놓은 상황"이라며 "관련 담당자 인사조치 등 법적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활동비 및 고문료와 관련해서는 "총재의 활동료를 300만원으로 하향했고, 박씨에게 지급했던 고문료는 지난 5월 지급 중단했다"고 알렸다. 한전산업개발은 "회사가 내부 갈등 양상에 있다"고 언급한 뒤 "현재 진행 중인 진정, 고소·고발 건이 4건에 달하는데 불합리한 요구를 해오는 경우에는 원칙대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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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