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세월호 개입설' 진상

동네북 된 NIS "헉"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 전면에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등장했다. 세월호 선박 증·개축에 관여했다는 의혹이다.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건이 공개되면서 "세월호 참사 이면에 국정원이 있던 것 아니냐"는 공방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선주인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의 커넥션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참사의 책임이 정부에도 있다는 주장이다. 국정원은 두 차례 해명자료를 낸 후 입을 닫고 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지 '국정원 개입설'의 진상을 추적했다.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건은 A4용지 5장 분량이다. 2013년 2월26일 오전 11시56분께 저장한 것으로 돼 있다. 작성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세월호 참사 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세월호 선주인 청해진해운 소속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지적사항
누가 왜 작성했나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 25일 해당 문건을 공개했다. 대책위는 앞서 세월호에서 인양된 노트북을 복원해 문건을 얻었다. 문건의 정확한 제목은 '선내 여객구역 작업 예정 사항-국정원 지적사항'이다. 항목별로 모두 94가지의 작업 내용이 적혀 있고, 5가지의 불량 항목이 기재돼 있다.

대책위는 문건을 근거로 국정원이 세월호 운영·관리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문서에 기재된 사항이 대체로 국정원의 고유 업무와는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 지적사항 첫째는 '갤러리룸(전시실) 천정 칸막이 및 도색작업'이다. 둘째는 '자판기 로비층 테이블 설치 여부'다. 셋째는 '분리수거함 및 재떨이 위치선정', 넷째는 '오락실 바닥 데코타일 신환 및 천정 도색작업'이다. 국정원이 선박 도색이나 가구 배치, 재떨이 위치까지 관여했다는 것은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이어진 지적사항도 다르지 않다. 레스토랑·편의점 유리 파손면 썬팅보수, 여성샤워실 누수 부분 용접 및 배수구 분리작업, 객실 내·외부 유리창 청소작업, 화장실 거울 전체 교체작업 등이다. 'CCTV 추가 신설'이나 '승객 탈출방향 화살표 제작·부착' 등 일부 연관 있는 항목도 있지만 '직원 휴가계획서 작성·제출' '작업수당 보고서 작성' 등의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유가족 대책위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 공개
6개 기관 합동조사…불법 증개축 사실 몰랐나

무엇보다 문건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국정원이 세월호의 불법 증·개축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청해진해운은 지난 2012년 10월 115억원을 들여 세월호를 구매했다. 이어 전남 한 조선소에서 선박 4층과 5층을 증축했다. 2013년 2월까지 51억원을 들여 선박개조를 했고, 같은 해 3월15일 인천·제주 구간 항로에 취항했다. 문서 작성일이 2월26일인 것을 고려하면 문제의 지적사항은 첫 출항을 앞두고 정리된 셈이다.

대책위는 '신설된 객실(3·4·5층)의 비상탈출 안내 문구 부착' '전시실(5층) 도색작업' 등이 지적됐기 때문에 국정원이 증·개축을 인지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이 만약 사실이라면 정부는 청해진해운과 함께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일부 떠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원 말고
기관 더 있다

해당 문건이 들어 있던 노트북에는 “세월호 승선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파일, 조식 메뉴, 운항시간, 공연시간, 입항시간 등이 적힌 파일이 저장돼 있다. 행사용 음악도 포함돼 있다. 대책위는 "개인용이 아닌 선원이 썼던 업무용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문건의 신빙성은 의심할 나위 없었다.

지난 26일 기자는 한 선원과 만났다. 그는 문건에 적힌 항목을 보고 의아해했다. "국정원이 왜 지적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모두 단순 작업이다. 집으로 비유하면 형광등을 가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 "조타기·전자변 수리, 비상발전기·마그네틱콘텍터 보수, 메인 엔진 베어링 교환 등 점검 사항이 많을 텐데 그런 점검 사항은 전혀 언급이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이 테러를 대비하기 위해 점검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에 실속이 없다"며 "(누군가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을 테니 대충 끄적거린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세월호에서 대체 무슨 일을 꾸민 것일까. 국정원의 첫 해명자료는 25일 저녁에 나왔다. 국정원은 "국토해양부(현 해양수산부)의 요청으로 2013년 3월18일부터 20일까지 세월호에서 '보안측정'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시점이 맞지 않았다. 문건이 작성된 날짜는 2월27일이었다. 국정원은 수정된 해명자료를 이틀 뒤(27일) 배포했다.

2000t급 선박 중 세월호만 
유일하게 국정원 보고 왜?

국정원에 따르면 세월호는 지난 2월 '국가보호장비' 지정을 위한 예비조사(보안측정 등)를 받았다. 국가보호장비는 보안을 목적으로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필요한 시설이나 지역, 선박·항공기 등이 지정돼 있다. 국정원은 관계 법령에 따라 국가보호장비를 지정할 수 있다.

국정원은 "보안측정 당시 모두 4가지 항목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보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CCTV 추가 신설(2건) ▲비상시를 대비한 객실 내 일본어 표기 아크릴판 제거 ▲탈출 방향 화살표 제작·부착이다. 남은 항목(96가지)에 대해선 "국정원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증·개축과도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은 "인천해양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 등과 합동으로 세월호의 미비점을 점검했다"고 덧붙였다. 문건에 적힌 '직원 휴가계획서 작성·제출' 등의 사항은 유관기관에서 지적한 것이라고 책임을 넘겼다.

국정원 출신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30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정원의 미진한 해명을 보강했다. 이 의원은 "2013년 2월26∼27일 인천해양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인천해경·기무사·국정원 등 6개 기관이 합동으로 인천항에 정박 중이던 세월호를 점검한 사실이 있다"고 알렸다. 이는 실제 보안측정이 있었던 3월18∼20일에 앞서 시행된 것으로 사전조사의 성격을 띠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점검에 참여한 인천해양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이 문건에 명시된 ▲여객구역 비상탈출로 부착(23번) ▲여객구역 안내 문구 부착(24번) ▲구명동의 착용법 안내 문구 부착물 확인(25번) ▲안내방송 멘트 준비(26번) ▲해양안전수칙 CD 준비(27번) ▲해양안전수칙 ALL 채널 준비(28번) 등을 지적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항만청을 포함한 6개 기관의 합동 지적사항"이라는 주장이다.

입 닫은 직원들
진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의문은 남아 있다. 왜 하필 문서 제목을 '국정원' 지적사항이라고 했을까. 국정원 간부는 지난달 31일 국회 정보위원회(이하 정보위) 결산보고 회의에 참석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직원이 죽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서가 어떤 경위로 작성됐고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된 셈이다.

기자는 문건에 등장하는 몇몇 회사와 접촉했다. 가장 많은 작업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G사는 소재를 찾기 쉽지 않았다. 인천에 소재한 동명의 건설회사는 "우리는 해운 쪽과 아무 관련 없는 회사"라고 말했다. S사도 마찬가지였다. S사 관계자는 "안 그래도 비슷한 내용의 문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런 작업을 할 수도 없고 한 적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회사 모두 세월호와는 무관해보였다.

P사는 달랐다. 화장실 거울 교체작업 등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P사는 평택지방항만청이 공고한 다른 용역 계약에도 입찰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P사는 "당시 작업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선박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건 맞는데 그 작업을 누가 지시한 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G사와 함께 대부분의 작업을 한 '더난터'는 청해진해운 계열사다. 지난 2012년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자신의 친척 이름으로 세운 회사다.  대개의 선박수리회사가 항구 주변에 있는 것과 달리 더난터는 산기슭에 사무실이 있다. 금수원과 가까운 경기 안성 보개면이 주소지다. 더난터의 임원들은 유병언 일가가 소유한 아이원아이홀딩스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검찰은 앞서 세월호 참사 원인(화물 과적) 규명 과정에서 더난터를 압수수색한 바 있다.

검찰에서는 더난터와 관련한 공식 브리핑이 없다. 국정원의 세월호 증·개축 개입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국정원 직원이 탑승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세월호 탑승자 명단을 확보하고 있는 인천지검은 해당 의혹을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위)' 소속 한 관계자는 "그런 말들이 있었지만 확인 결과 청해진해운에서 고용한 선원으로 밝혀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더난터 관계자는 국정원의 작업 지시 범위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검찰이 관련 부분까지 수사할지는 미지수다. 기자는 문건에 등장하는 '차장님' 임모씨와 통화했다. 임씨는 청해진해운 소속 직원이었으며 '국정원 지적사항'을 직접 이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임씨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임씨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문건 등장하는 회사·직원 침묵
국정원 "개입사실 없다" 주장

대책위는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 선박은 보안경비 부담 주체가 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인데 세월호만 유일하게 선사(청해진해운)가 비용을 부담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선박 관리에 개입했기 때문에 보안경비를 부담토록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또 "국정원의 공식 보안측정은 3월18일 이뤄졌는데 세월호 취항일은 3월15일이었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풀리지 않은 의혹이 더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직후 국정원이 최우선 보고를 받은 것도 의문이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를 보면 세월호는 사고 직후 국정원 제주지부와 인천지부, 해운조합에 보고하도록 명시돼 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은 '국정원 지적사항'이 작성되기 하루 전날인 2013년 2월25일 작성됐다.


지난달 10일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국내 1000t급 이상 내항 여객선의 운항관리규정'을 모두 분석한 결과 해양사고 시 국정원에 별도의 보고체계를 갖췄던 여객선은 세월호가 유일했다"고 확인한 바 있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씨스타크루즈'도 국정원보고 체계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왜 세월호만
보고 했을까

이에 대해 국정원은 "청해진해운이 정한 것이지 국정원이 문서 작성에 관여한 바 없다"고 못박았다. 국정원은 "2000t급 이상의 선박·항공기는 전쟁·테러 등 비상상황 시 적의 공격으로부터 우선 보호를 위해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국정원은 세월호 운항관리규정과 관련해 "국정원이 대테러 주무기관이어서 선박 테러·피랍사건에 대비해 청해진해운이 연락처를 기재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월호 특위는 "세월호를 제외하고 2000t급 이상의 선박 중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 여객선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세월호 특위 한 관계자는 "국정원은 문서화된 사실이 드러나도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 적이 없다"며 "누가 의혹을 키우고 있는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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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