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세월호 개입설' 진상

동네북 된 NIS "헉"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 전면에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등장했다. 세월호 선박 증·개축에 관여했다는 의혹이다.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건이 공개되면서 "세월호 참사 이면에 국정원이 있던 것 아니냐"는 공방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선주인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의 커넥션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참사의 책임이 정부에도 있다는 주장이다. 국정원은 두 차례 해명자료를 낸 후 입을 닫고 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지 '국정원 개입설'의 진상을 추적했다.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건은 A4용지 5장 분량이다. 2013년 2월26일 오전 11시56분께 저장한 것으로 돼 있다. 작성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세월호 참사 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세월호 선주인 청해진해운 소속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지적사항
누가 왜 작성했나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 25일 해당 문건을 공개했다. 대책위는 앞서 세월호에서 인양된 노트북을 복원해 문건을 얻었다. 문건의 정확한 제목은 '선내 여객구역 작업 예정 사항-국정원 지적사항'이다. 항목별로 모두 94가지의 작업 내용이 적혀 있고, 5가지의 불량 항목이 기재돼 있다.

대책위는 문건을 근거로 국정원이 세월호 운영·관리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문서에 기재된 사항이 대체로 국정원의 고유 업무와는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 지적사항 첫째는 '갤러리룸(전시실) 천정 칸막이 및 도색작업'이다. 둘째는 '자판기 로비층 테이블 설치 여부'다. 셋째는 '분리수거함 및 재떨이 위치선정', 넷째는 '오락실 바닥 데코타일 신환 및 천정 도색작업'이다. 국정원이 선박 도색이나 가구 배치, 재떨이 위치까지 관여했다는 것은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이어진 지적사항도 다르지 않다. 레스토랑·편의점 유리 파손면 썬팅보수, 여성샤워실 누수 부분 용접 및 배수구 분리작업, 객실 내·외부 유리창 청소작업, 화장실 거울 전체 교체작업 등이다. 'CCTV 추가 신설'이나 '승객 탈출방향 화살표 제작·부착' 등 일부 연관 있는 항목도 있지만 '직원 휴가계획서 작성·제출' '작업수당 보고서 작성' 등의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유가족 대책위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 공개
6개 기관 합동조사…불법 증개축 사실 몰랐나

무엇보다 문건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국정원이 세월호의 불법 증·개축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청해진해운은 지난 2012년 10월 115억원을 들여 세월호를 구매했다. 이어 전남 한 조선소에서 선박 4층과 5층을 증축했다. 2013년 2월까지 51억원을 들여 선박개조를 했고, 같은 해 3월15일 인천·제주 구간 항로에 취항했다. 문서 작성일이 2월26일인 것을 고려하면 문제의 지적사항은 첫 출항을 앞두고 정리된 셈이다.

대책위는 '신설된 객실(3·4·5층)의 비상탈출 안내 문구 부착' '전시실(5층) 도색작업' 등이 지적됐기 때문에 국정원이 증·개축을 인지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이 만약 사실이라면 정부는 청해진해운과 함께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일부 떠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원 말고
기관 더 있다

해당 문건이 들어 있던 노트북에는 “세월호 승선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파일, 조식 메뉴, 운항시간, 공연시간, 입항시간 등이 적힌 파일이 저장돼 있다. 행사용 음악도 포함돼 있다. 대책위는 "개인용이 아닌 선원이 썼던 업무용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문건의 신빙성은 의심할 나위 없었다.

지난 26일 기자는 한 선원과 만났다. 그는 문건에 적힌 항목을 보고 의아해했다. "국정원이 왜 지적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모두 단순 작업이다. 집으로 비유하면 형광등을 가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 "조타기·전자변 수리, 비상발전기·마그네틱콘텍터 보수, 메인 엔진 베어링 교환 등 점검 사항이 많을 텐데 그런 점검 사항은 전혀 언급이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이 테러를 대비하기 위해 점검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에 실속이 없다"며 "(누군가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을 테니 대충 끄적거린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세월호에서 대체 무슨 일을 꾸민 것일까. 국정원의 첫 해명자료는 25일 저녁에 나왔다. 국정원은 "국토해양부(현 해양수산부)의 요청으로 2013년 3월18일부터 20일까지 세월호에서 '보안측정'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시점이 맞지 않았다. 문건이 작성된 날짜는 2월27일이었다. 국정원은 수정된 해명자료를 이틀 뒤(27일) 배포했다.

2000t급 선박 중 세월호만 
유일하게 국정원 보고 왜?

국정원에 따르면 세월호는 지난 2월 '국가보호장비' 지정을 위한 예비조사(보안측정 등)를 받았다. 국가보호장비는 보안을 목적으로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필요한 시설이나 지역, 선박·항공기 등이 지정돼 있다. 국정원은 관계 법령에 따라 국가보호장비를 지정할 수 있다.

국정원은 "보안측정 당시 모두 4가지 항목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보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CCTV 추가 신설(2건) ▲비상시를 대비한 객실 내 일본어 표기 아크릴판 제거 ▲탈출 방향 화살표 제작·부착이다. 남은 항목(96가지)에 대해선 "국정원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증·개축과도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은 "인천해양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 등과 합동으로 세월호의 미비점을 점검했다"고 덧붙였다. 문건에 적힌 '직원 휴가계획서 작성·제출' 등의 사항은 유관기관에서 지적한 것이라고 책임을 넘겼다.

국정원 출신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30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정원의 미진한 해명을 보강했다. 이 의원은 "2013년 2월26∼27일 인천해양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인천해경·기무사·국정원 등 6개 기관이 합동으로 인천항에 정박 중이던 세월호를 점검한 사실이 있다"고 알렸다. 이는 실제 보안측정이 있었던 3월18∼20일에 앞서 시행된 것으로 사전조사의 성격을 띠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점검에 참여한 인천해양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이 문건에 명시된 ▲여객구역 비상탈출로 부착(23번) ▲여객구역 안내 문구 부착(24번) ▲구명동의 착용법 안내 문구 부착물 확인(25번) ▲안내방송 멘트 준비(26번) ▲해양안전수칙 CD 준비(27번) ▲해양안전수칙 ALL 채널 준비(28번) 등을 지적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항만청을 포함한 6개 기관의 합동 지적사항"이라는 주장이다.

입 닫은 직원들
진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의문은 남아 있다. 왜 하필 문서 제목을 '국정원' 지적사항이라고 했을까. 국정원 간부는 지난달 31일 국회 정보위원회(이하 정보위) 결산보고 회의에 참석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직원이 죽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서가 어떤 경위로 작성됐고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된 셈이다.

기자는 문건에 등장하는 몇몇 회사와 접촉했다. 가장 많은 작업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G사는 소재를 찾기 쉽지 않았다. 인천에 소재한 동명의 건설회사는 "우리는 해운 쪽과 아무 관련 없는 회사"라고 말했다. S사도 마찬가지였다. S사 관계자는 "안 그래도 비슷한 내용의 문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런 작업을 할 수도 없고 한 적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회사 모두 세월호와는 무관해보였다.

P사는 달랐다. 화장실 거울 교체작업 등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P사는 평택지방항만청이 공고한 다른 용역 계약에도 입찰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P사는 "당시 작업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선박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건 맞는데 그 작업을 누가 지시한 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G사와 함께 대부분의 작업을 한 '더난터'는 청해진해운 계열사다. 지난 2012년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자신의 친척 이름으로 세운 회사다.  대개의 선박수리회사가 항구 주변에 있는 것과 달리 더난터는 산기슭에 사무실이 있다. 금수원과 가까운 경기 안성 보개면이 주소지다. 더난터의 임원들은 유병언 일가가 소유한 아이원아이홀딩스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검찰은 앞서 세월호 참사 원인(화물 과적) 규명 과정에서 더난터를 압수수색한 바 있다.

검찰에서는 더난터와 관련한 공식 브리핑이 없다. 국정원의 세월호 증·개축 개입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국정원 직원이 탑승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세월호 탑승자 명단을 확보하고 있는 인천지검은 해당 의혹을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위)' 소속 한 관계자는 "그런 말들이 있었지만 확인 결과 청해진해운에서 고용한 선원으로 밝혀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더난터 관계자는 국정원의 작업 지시 범위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검찰이 관련 부분까지 수사할지는 미지수다. 기자는 문건에 등장하는 '차장님' 임모씨와 통화했다. 임씨는 청해진해운 소속 직원이었으며 '국정원 지적사항'을 직접 이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임씨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임씨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문건 등장하는 회사·직원 침묵
국정원 "개입사실 없다" 주장

대책위는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 선박은 보안경비 부담 주체가 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인데 세월호만 유일하게 선사(청해진해운)가 비용을 부담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선박 관리에 개입했기 때문에 보안경비를 부담토록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또 "국정원의 공식 보안측정은 3월18일 이뤄졌는데 세월호 취항일은 3월15일이었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풀리지 않은 의혹이 더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직후 국정원이 최우선 보고를 받은 것도 의문이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를 보면 세월호는 사고 직후 국정원 제주지부와 인천지부, 해운조합에 보고하도록 명시돼 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은 '국정원 지적사항'이 작성되기 하루 전날인 2013년 2월25일 작성됐다.


지난달 10일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국내 1000t급 이상 내항 여객선의 운항관리규정'을 모두 분석한 결과 해양사고 시 국정원에 별도의 보고체계를 갖췄던 여객선은 세월호가 유일했다"고 확인한 바 있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씨스타크루즈'도 국정원보고 체계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왜 세월호만
보고 했을까

이에 대해 국정원은 "청해진해운이 정한 것이지 국정원이 문서 작성에 관여한 바 없다"고 못박았다. 국정원은 "2000t급 이상의 선박·항공기는 전쟁·테러 등 비상상황 시 적의 공격으로부터 우선 보호를 위해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국정원은 세월호 운항관리규정과 관련해 "국정원이 대테러 주무기관이어서 선박 테러·피랍사건에 대비해 청해진해운이 연락처를 기재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월호 특위는 "세월호를 제외하고 2000t급 이상의 선박 중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 여객선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세월호 특위 한 관계자는 "국정원은 문서화된 사실이 드러나도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 적이 없다"며 "누가 의혹을 키우고 있는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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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