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없는 스포츠토토 사태> 등 돌린 담철곤 속사정

정(情) 강조하더니…매정한 회장님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과거 담 회장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한적이 있다. ‘감옥행’을 면하자 눈물로 호소했던 담 회장의 모습은 사라졌다. 다시 자기 주머니 채우기 바빴다. 비리는 담 회장 일가가 저질렀지만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청춘을 바쳐 회사를 키워온 직원들이 벼랑 끝에 내몰린 것이다. 그들의 눈물을 담 회장은 외면했다.

오리온의 알짜 계열사였던 스포츠토토가 사업을 접게 됐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을 비롯한 오리온 경영진의 비리 때문이다. 스포츠토토 임직원들은 거리로 내몰릴 처지에 놓였다. 스포츠토토 직원들의 탄식은 커져갔지만 담 회장은 이렇다 할 대책조차 내놓지 않아 원성을 사고 있다. 스포츠토토 직원들은 담 회장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스포츠토토 직원
거리에 내몰려

스포츠토토는 축구·야구·농구 등 6개 종목을 대상으로 스코어와 승패를 예측해 베팅하면 결과에 따라 배당금을 지급하는 체육복권이다. 2000년 체육진흥투표권 사업 및 관련 부대사업을 목적으로 500억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됐다. 현재 스포츠토토의 최대주주는 오리온(지분 66.64%)이다.

그러나 오리온은 담 회장의 비리와 횡령사건으로 스포츠토토의 사업권을 박탈당했다. 오는 9월부터는 신규 사업자 웹케시가 스포츠토토를 운영한다.

현재 스포츠토토 임직원은 250여명이다. 그런데 웹케시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200명이 안 된다. 게다가 웹케시 자체에도 인력이 충분하다. 이에 따라 기존 스포츠토토 직원은 최대 150명만 고용 승계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100명은 당장 직장을 잃게 된다. 게다가 신규 사업자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위탁수수료율이 턱없이 낮게 책정돼 적자가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150명마저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스포츠토토 직원들은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 10년간 회사를 키워왔지만 담 회장의 비리 때문에 실직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청춘 바쳐 일한 직원들 헌신짝 처지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끝까지 외면

지난달 스포츠토토 노동조합은 스포츠토토 대주주인 오리온을 상대로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담 회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담 회장의 비리로 스포츠토토 사업권을 박탈당하고 입찰참여 기회조차 뺏겼는데도 오리온은 뒷짐만 지고 있어서다. 스포츠토토 노조에 따르면 오리온은 명예퇴직, 직원보상, 생존권 보장 요구를 회피했다.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스포츠토토 노조는 파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스포츠토토 노조 측은 사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사측의 근로조건에 대한 답변을 들을 때까지 시위를 자제할 계획이다. 김인수 스포츠토토 노조위원장은 “고용보장과 직원보상 등에 대해 사측이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며 “그때까지 당분간 시위를 자제할 생각이지만 다음주까지 오리온에서 답변이 없다면 파업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리온 측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오리온 관계자는 “확인해보겠다”라는 답변을 끝으로 연락이 없었다.

담 회장 일가
배만 불렸다

스포츠토토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담 회장의 책임이 크다. 담 회장이 배임과 횡령을 벌이지 않았다면 기존처럼 오리온이 5년 동안 스포츠토토를 맡았을 것이다. 스포츠토토 사업을 통해 이익을 본 사람도 담회장이고, 비리로 인해 사업권을 잃게 한 장본인도 담회장이다.


스포츠토토는 오리온의 돈줄이었다. 연간 수백억원씩 현금이 들어오는 ‘캐시카우’(확실한 수익 창출원) 역할을 했다. 지난 2003년 오리온은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사업을 접은 한국타이거풀스로부터 지분 46.8%를 확보하며 스포츠토토 최대주주로 나섰다. 당시 오리온은 스포츠토토를 단돈 300억원(지분 46.8%)에 인수했다.

오리온은 지속적으로 스포츠토토 지분을 사 모으면서 최대주주(지분 66.64%)에 올랐다. 오리온의 최대주주는 14%의 지분을 가진 담철곤 회장의 부인인 이화경 부회장이다. 2대 주주는 담 회장(지분 12%)이다.

오리온은 스포츠토토를 품으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10년간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체육기금을 조성할 정도로 엄청난 성장세를 이어왔다.

사행산업통합위원회에 따르면 스포츠토토 매출액은 오리온이 최대주주로 나선 2003년 283억원에서 2013년 4조5000억원 규모로 늘어났다. 10년간 150배나 기업 매출이 커진 것이다.

이익도 가파르게 늘었다. 스포츠토토는 2004년까지 당기순손실이 130억원이었지만 2005년부터 흑자로 전환해 그해 당기순이익 110억원을 올렸다. 이후 정부가 스포츠토토 발행횟수를 계속 늘려주면서 순이익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듬해인 2006년 당기순이익이 495억원으로 전년대비 4배이상 급증했다. 2007년에는 770억원으로 사상 최고 순이익을 올렸다.

이익률도 좋았다. 스포츠토토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2012년에도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5%에 달했다. 최근 5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20%에 육박해 제조업체에서는 보기 힘든 수익성을 보였다. 오리온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식품업계 최고인 8.1%를 보인 것도 스포츠토토가 든든한 후원자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성장세 타고
주머니 채우기

스포츠토토가 가파르게 성장하자 담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시작했다. 우선 짭짤한 배당금을 챙겼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오리온은 최대주주 자격으로 스포츠토토를 통해 115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게다가 조경민 전 오리온 전략담당 사장은 스포츠토토 계열사 임직원의 급여를 실제보다 많이 지급한 것처럼 꾸며 차액을 빼돌렸다. 검찰에 따르면 조 전 사장은 스포츠토토 사업자금을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100억원대의 배임·횡령을 저질렀다. 자신의 형이 운영하는 인쇄업체에 스포츠토토 용지를 발주하고 대금을 과다 책정해 스포츠토토에 수십억원의 손해를 입혔다.

스포츠토토 최대주주인 오리온의 실세가 저지른 이 비리는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의 회삿돈 횡령·배임과 맞물리며 사회 문제로 비화됐다.

지난해에는 담 회장이 보수 총액으로 53억9100만원을 챙겼다. 담 회장의 부인 이화경 부회장은 43억79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로써 담 회장 부부는 식품업계 연봉 1위를 기록했다.

 

오리온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88% 감소했음에도 등기이사들의 평균 보수는 54.88% 증가했다. 담 회장 부부와 자녀 2명은 오리온 배당금 44억9269만원을 더 챙겼다.

게다가 담 회장이 자회사 아이팩으로부터 고액의 배당금을 챙겨온 것이 알려지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지난3월 금감원에 접수된 아이팩 감사보고서에 의하면 담 회장은 지난해 150억8800만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영업이익 8억원, 당기순이익 25억원에 불과한 회사가 순이익의 6배에 달하는 금액을 담 회장에게 배당한 것이다.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 났음에도 거액을 배당했다. 아이팩은 과자 봉지와 박스 등을 만들어 납품하는 회사다. 지난해 매출 403억원 중 80%인 324억원을 오리온에 납품해 올렸다.


아이팩은 2010년 강남구 논현동 91-6필지의 토지와 지상 10층 건물을 처분해 현금화했다. 매입자는 스포츠토토로 알려졌다. 건물 매매 과정에서 담 회장이 아이팩을 인수하기 직전 이 건물을 스포츠토토에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시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매각대금이 그의 배당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비리 저지르고
발 빼기

이러한 비자금 조성 및 횡령 등 부도덕한 경영으로 담 회장은 업계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이후 오리온에게 스포츠토토 사업을 맡길 수 없다는 여론이 뜨거워졌다.

결국 오리온은 스포츠토토 선정 입찰 자격에서 박탈당했다. 특히 스포츠토토 사업 제안요청서 사전규격에 따르면 주식 총수의 5% 이상을 갖고 있는 대주주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차기 입찰 자격을 잃게 된다. 2000년, 2002년 스포츠토토 관련 수탁사업자 선정 공고 시 제안요청서 상에 명시하도록 문체부와 기획재정부가 협의한 내용이다. 즉 3년 이내 금고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담 회장은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담 회장은 고가 미술품을 법인자금으로 매입해 자택에 장식품으로 설치했다. 람보르기니, 포르쉐 등 초호화 외제 승용차를 계열사 자금으로 빌려 사용하는 등 226억원을 횡령하고 74억원을 유용했다.

오너비리로 사업권 박탈
입찰참여 기회조차 없어


돈줄이었던 스포츠토토를 가질 수 없게 되자 오리온은 다급해졌다. 지난 1월 오리온은 사업 유지를 핑계로 오리온의 입찰 자격에 문제가 없다고 우겼다. 사실상 이때까지만 해도 스포츠토토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오리온을 도왔다. 언론보도에서도 “문제없다”며 짐짓 괜찮은 척했다. 담 회장의 비리 때문에 일어난 일이였기에 괘씸했지만 고용 안전을 위해 참았다.

그러나 공단이 본격적으로 다른 사업자를 찾아 나서자 오리온은 슬쩍 발을 뺐다. 담 회장은 지난해11월 등기임원에서 물러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스포츠토토 직원들은 좌절했다. 이후 직원들은 담 회장을 향해 사태를 해결하라며 시위에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보통 기업 회장들은 횡령과 같은 비리에 연루되면 눈치를 봐서라도 자신의 보수를 기업에 환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해도 욕을 먹는 마당에 오리온 담 회장의 경우는 비리를 저질러 놓고도 자기 보수와 배당금만 챙기고 회사 일은 모르는 척 은근슬쩍 넘어가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어 원성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신 못차린' 동양 부부
재산 지키기 노후대비?

사기성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생 등으로 4만명이 넘는 피해자를 발생시킨 ‘동양 사태’의 책임자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그의 부인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이 도 넘은 ‘재산 지키기’로 빈축을 사고 있다.

이들 부부는 동양그룹 계열사 주식을 처분하지 말라며 옥중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이 부회장은 가압류 직전의 미술품을 빼돌려 매각한 혐의로 소환조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이선봉)는 지난 2일 강제집형 면탈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고 3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최근 법원의 가압류 절차 직전 자신이 소유한 고가의 미술품을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를 통해 매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 회장 등 동양그룹의 주가조작 혐의를 조사하던 검찰은 이 부회장과 홍 대표 사이의 자금 흐름을 포착하고 지난 달 이 부회장의 미술품 보관 창고와 갤러리 서미를 압수수색해 그림과 조각품 등 미술품 수십점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법원의 재산처분을 피해 미술품을 미리 빼돌린 것으로 보고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현 회장 “주식처분 말라” 옥중소송
이혜경 부회장 가압류 직전 미술품 급매

 

앞서 지난달 10일에는 현 회장과 이 부회장이 낸 가처분 신청이 각하됐다. 현 회장 부부는 지난 5월2일 동양파이낸셜 보유의 티와이머니 주식을 처분해서는 안 된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동양파이낸셜과 티와이머니는 기존 동양그룹 출자 구조에서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핵심 계열사다.

지난해 2월 이들 부부는 티와이머니 주식 16만주(지분율 80%)를 담보로 동양파이낸셜로부터 각자 명의로 38억8000만원과 39억원 등 총 78억8000만원을 대출했다. 하지만 정해진 기간에 차입금을 갚지 못했고 동양파이낸셜은 이들이 담보로 잡힌 티와이머니 주식을 전량 인수했다. 티와이머니 지분을 10%에서 90%로 늘린 동양파이낸셜은 주식 처분에 나섰다.

현 회장 측이 주장한 티와이머니 주식 가액은 200억원. 200억원을 눈 뜨고 날리게 된 이들 부부는 담보제공 자체가 무효라며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동양파이낸셜대부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내린 40억원대의 담보제공명령을 현 회장 측이 이행하지 않았다며 쟁점 판단 없이 신청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현 회장 부부에게 공탁금 4억원과 보증보험 36억원 등 40억원의 담보를 제공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하지만 현 회장 측은 일단 재산은 지키게 됐다. 채권자 농협은행이 “티와이머니 주식을 처분하지 말라”며 동양파이낸셜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재판부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현 회장은 동양그룹 경영권 유지를 위해 부실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판매해 개인투자자 4만여명에게 1조3000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지난 1월 구속기소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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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