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파일> 금단의 구역 GOP에선 지금…

휴전선 지키는 병사들이 위험하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 21일 오후 강원 고성군 동부전선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모두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상을 입었다. 한 여름 22사단 GOP 초소에서 일어난 대형 인명사고. 30년 전 같은 부대에서 똑같은 사건으로 모두 15명이 사망했던 22사단은 이번 총기사건으로 병력 관리의 허점을 드러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툭하면 인명사고가 일어나는 GOP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일요시사>가 관련 부대 전역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문제점들을 짚어봤다.

국군 강릉병원으로 한 대의 버스가 도착했다. 치료 목적으로 병원을 찾은 병사들이었다. 병사들의 어깨 밑 상박에 달린 마크는 이들의 소속을 나타냈다. 대개는 8군단 아니면 22사단이었다. 더러는 23사단, 102기갑여단 소속도 보였다.

병원을 찾은 병사들은 군 생활 이후 시작된 크고 작은 병마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치통이나 요통, 일부는 무릎에 물이 차는 증세가 있다고도 했다. 입대 전 현역 판정을 받은 신체 건강한 청년들이 환자가 돼버린 이상한 상황. 특히 무릎에 물이 찼다는 말은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병사는 군 복무를 다 마치지 못하고 의병 제대했다.

멀쩡한 청년들
환자로 나온다

또 다른 병사는 "거듭된 경계 근무로 가슴이 답답하고 허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이 병사는 하루 4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씩 경계 근무를 섰다고 했다. 평생 운동을 해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말한 이 병사. 결국 그는 군의관의 권고로 민간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이 병사는 치료 목적인 병가를 내면서도 선임병들의 눈치를 살폈다. 해당 병사가 소속된 부대의 근무 계획표를 짰던 행정병은 "네가 부대를 비우면 인원이 모자라니까 내가 근무를 서야 한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행정병은 자신과 친한 고참병들의 근무 편의를 봐주는 대신 계급이 낮거나 소위 만만한 병사들을 혹사시켰다. 상대적으로 기피하는 시간대인 오전 12시~2시 근무를 서게 하고, 오전 6시~8시 근무를 밀어 넣는 식이었다. 후임병은 근무 복귀 후 간부들이 지시한 제초작업에 투입됐고, 오후가 되면 부은 다리를 이끌고 다시 초소에 나갔다.

해가 기울면 쉴 틈 없이 야간 근무를 준비해야 했다. 아픈 병사 입장에서 잠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사수(선임병)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중압감은 항상 후임병을 짓눌렀다. 이마저도 사수가 기분이 나쁘면 근무시간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사는 아프다고 말할 틈조차 없었다. 착하면 손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심지어 몇몇 선임병들은 이 병사가 꾀병을 부리는 것으로 오해했다. 네가 아프건 말건 간에 눈앞에 닥친 근무를 나가지 않으면 누가 대신 근무를 나가냐는 해괴한 논리였다. 만약 부대가 충분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근무 일정을 짜는데 지장이 없었다면 그들은 후임병의 편의를 봐줬을까.

병력은 없고
근무는 많고

헛된 기대였다. 첫째로 당시 육군은 전입보다 전출이 많은 병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둘째로 이들의 상급부대인 8군단은 작전지역에 비해 배정 병력이 턱없이 부족한 부대였다. 셋째로 갓 입대한 신병들을 자대에 배치할 시 투입이 우선적으로 검토되는 근무지는 각 군단 및 사단본부였다. 군 인사담당자는 "지휘관의 계급이 낮을수록 병력을 충원받기 어려운 구조"라고 털어놨다.

먼저 사병의 머릿수를 놓고 윗선에서는 군단장끼리 알력 다툼을 벌인다. 그 다음에는 사단장부터 소대장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짬순'별로 병력이 충원된다. 거느린 병사가 자존심인 군대에서 쉽게 인력 할당(T/O)을 바꾸거나 조정할 수 없는 이유다.

또 군 간부들 입장에서 경계병은 부족해도 되지만 참모병(당번병)이 없는 건 업무에 큰 차질을 빚기 때문에 자신들을 보좌할 병사를 미리 찾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담당자는 말했다. 그리고 이 같은 구조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근무지가 바로 GOP를 비롯한 전방이라고 담당자는 덧붙였다.


실제로 GOP는 근무 강도에 비해 늘 부족한 인력으로 아우성이다. GOP 사정에 정통한 전역자가 기억하는 그곳은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전방 GOP의 일반적 근무 여건은 어떨까. 베일을 하나씩 벗겨보자.

GOP는 남한과 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군사분계선과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는 경계초소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최전방에 위치한 GOP는 서쪽으로는 한강 북단, 동쪽으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요충지마다 수없이 설치돼 있다. 길이는 약 250km 이르며 장병들은 각 초소마다 2명씩 근무함을 원칙으로 한다.

22사단 철책관리 허점
작전지역 부족한 병력

남한의 비공식 국경과 근접한 곳이다보니 주 업무는 언제 있을지 모르는 북한군의 도발이나 침투를 상부에 보고하고, 1차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우리 초소 1∼2km 건너편에는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생각만큼 북한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크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 21일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도 GOP 내 병사들 간의 갈등이 총기사건으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병사들이 소속된 22사단은 동부지역 사단 가운데 유일하게 내륙과 해안 경계를 함께 담당하고 있다. 병력 규모는 다른 사단과 비슷하지만 맡아야 할 경계선 길이는 세배 이상 긴 것으로 전해진다. 또 초소가 작전지역에 일정하게 붙어 있는 것이 아닌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어 경계병들이 이동하는 거리가 타 부대에 비해 두배 이상 긴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지난 2012년 있었던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 때 이런 문제점들이 지적되면서 1개 사단을 충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군은 자신들이 설정한 적군(북한군)의 주요 침투 경로가 아니라는 이유로 검토의견을 묵살했다. 22사단의 상급부대인 8군단은 다른 군단과 달리 2개 사단만을 휘하에 두고 있다. 일반적인 군단은 3개 사단을 거느리고 있다. 지금도 22사단 예하 3개 연대는 모두 경계 작전에 투입되고 있다.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22사단의 GOP를 기준으로 이들의 작전지역은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다. 철모와 탄띠 등 군장을 하고 무거운 개인화기를 비스듬히 맨 채 철책이 연결된 가파른 순찰로를 따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게 초병의 임무다.

초소에 들어가면 하염없이 전방을 바라보다가 누군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암구호로 아군임을 확인하고 초소에서 나와 다음 초소로 이동하는 병사들. 이들은 정해진 순찰로를 따라 철책망에 묶여 있는 순찰패를 흰색에서 빨간색으로 뒤집으며 시커먼 어둠과 싸운다.

새벽까지 이런 단순 밀어내기 근무를 반복하다가 막사(소초)로 들어가면 곯아떨어지는 게 초병이다. 특히 GOP 투입 후 야간 근무조가 되면 밤샘 경계근무 후 동이 트는 새벽이 돼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 낮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마저도 군 고위 간부가 시찰을 온다고 하면 일어나서 막사 청소를 해야 하는 게 초병이다. 병사들의 수면보다 윗선이 받는 의전이 더 중요한 게 우리 군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GOP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예비역들이 말하는 어려움은 무엇일까. 첫째는 체력적인 부담이다. 워낙 산세가 험한 곳을 오르락내리락하다보니 발목 염좌는 통과의례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입식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병사들이 요통을 호소한다. 멍하니 서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부족한 인력으로 수면시간마저 충분히 보장되지 않아 잠을 쪼개자는 건 다반사며 피로가 누적되기 십상이다. 이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근무 투입 시 긴장감이 떨어져 '크레모아'와 같은 대형 살상병기를 실수로 작동시키는 사례가 더러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 예비역은 체력적인 문제는 주변에서 도와주면 그나마 버틸 수 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심리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GOP는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외부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곳이다. 당국 고위 간부들도 덜컥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바깥 세계와 철저히 유리된 채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이 때론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했다.

GOP에 투입되기 전 병사들은 사전 교육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GOP 투입 결격 사유가 발견되면 소대장은 상부에 보고해 해당 병사를 전보 조치한다. 그러나 한 번 GOP로 들어가면 병사들은 자신들만의 소초에서 생활하게 된다. 10명 남짓한 병사들은 GOP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한 예비역은 "솔직히 막사 안에서 사제 게임기를 갖다 놓고 게임을 하던 외부로부터 반입한 음란서적을 보든 터치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군 내규와 상충하는 일탈도 눈감아줬다는 진술이다.

또 다른 예비역은 "근무지에서의 겨울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영하의 날씨에 경계근무를 서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보여주기식' 근무가 아니냐"는 지적도 덧붙였다. 영관급은 늘 따뜻한 공관에서 자고 '아랫것'들만 국방의 의무라는 핑계로 부려먹는다는 불평이 쏟아졌다.

낮밤 바뀐 밀어내기 근무 반복
험준한 산악지대 오르락내리락
발목염좌 기본…만성수면 부족


실제로 GOP의 겨울은 상상을 초월한다. 식사 후 식판을 닦으려고 물을 묻히면 30초도 안 돼 물방울이 꽁꽁 얼어버리는 날씨다. 매해 10월부터 눈이 내려 4월까지 오는데 허리까지 쌓인 순찰로의 눈을 치우다보면 말 그대로 녹초가 된다고 했다.

이 예비역은 "보급품 지원이 잘 되는 것은 좋았지만 나머지는 다 최악이었다. 그나마 함께 근무 선 또래들과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때워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료 전우가 심리적인 지지대가 돼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예비역과 달리 주변 관계가 원만치 않을 경우 GOP 병사들은 내부의 적과 맞서야 한다. GOP 병사들에게는 실탄과 수류탄 등 살상무기가 지급되기 때문에 언제든 대형 인명참사의 소지가 있다. 그래서 당국은 병사들에게 실탄을 제공하면서도 함부로 삽탄(탄창을 총에 끼는 행위)하거나 장전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때문에 빈 탄창을 끼고 서는 경계근무가 무슨 의미냐는 탄식도 들린다.

이번 총기난사 사건에서도 막사 안에 있던 병사들은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부상을 입었다. 그렇다고 해서 GOP 내부의 훈련량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사격훈련은 주기적으로 꼬박꼬박 하고, 북한군이 넘어올 것을 상정해서 하는 가상훈련(FTX)도 실시한다.

물론 훈련 일정이 잡히면 병사들의 휴식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훈련은 이해라도 되는데 원치 않는 작업을 할 때 가장 힘들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윗선이 한 번 들러서 이곳저곳을 들쑤시면 멀쩡하던 소초가 바뀐다고 했다. 풀을 벨 때도 각을 맞춰 베야 한다는 지시에 눈살을 찌푸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최근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는 "새로운 초소를 만드는 데 1억원 가량을 쏟았지만 실제로는 1천만원만 줘도 훨씬 좋은 초소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즉 GOP에서 새는 국방비에 관한 진술이었다. 한 GOP 관계자도 이를 긍정하며 "군 시설 환경이 조악하다. 가끔 민간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는데 투명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추위와 싸우고
졸음과 싸우고

더구나 GOP를 직접 관리하는 간부들의 계급이 낮은 것도 상기한 문제점들을 증폭시킨다는 분석이다. GOP 소초장의 계급은 대개 소위에서 중위정도며, 부소초장도 하사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나이가 2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임을 감안하면 현역병들과 비슷한 또래인 셈이다. 영이 서기 힘든 구조다.

그리고 이들을 정점으로 10∼30여명의 병사가 모여 일어나면 얼굴을 보고 함께 밥을 먹고 모든 책임을 공유한다. 대략 반년 정도는 외박을 나갈 수 없고 단절 없는 내무생활이 계속된다. 요즘 같은 때는 비가 많이 와서 보급로 정비를 해야 하고, 태풍이 찾아오면 보수작업에 여름을 다 보낸다. 강원 산간은 매년 태풍 피해가 극심한 지역이다. 오직 '애국'만을 강조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 직면한 군인들이다.

이들에게 야간 근무 때 주어지는 열상감시장비(TOD)나 야간투시경 등은 이미 노후한 장비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결론적으로 오늘도 몇몇 초소 안에서는 계급 높은 사수가 잠을 자고, 짬 안 되는 부사수가 후방을 살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들이 감시하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르는 북한군이 아닌 병사들의 군생활을 쥐락펴락 하는 간부이기 때문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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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