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돈되는' 금융상품의 비밀-간병보험

'100세 시대' 노후생활 지켜줄까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노년은 어둡고 슬프고 아프다. 방치된 노후생활은 고스란히 금전 부담으로 직결된다.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간병보험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마다 보장기간, 보장금액 등 차이가 있어 가입 전 상품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 같은 회사의 상품이라도 가입자의 나이, 성별, 가입유형, 직업 등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내달부터는 간병보험의 보상 기준이 되는 장기요양등급 기준이 바뀌면서 보험사마다 약정과 보장내역이 조금씩 변경될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국민의 노후보장 여건을 조성하겠다며 추진하고 있는 ‘노후보장 특화보험’ 정책에 따라 보험사들이 간병보험을 내놓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따라 간병보험은 보험업계의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등급 확인부터

간병보험은 보험기간 중에 치매 등 상해, 질병으로 다른 사람의 간병이 필요한 경우 간병자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이 보험은 치매나 중풍과 같은 노인성 질환으로 장기요양이 필요할 때 간병비와 간병연금 등을 보장해준다. 일반 상해나 질병으로 사망시 일시지급 보험금 외에 5년간 매월 유족연금을, 50% 또는 80% 이상 후유 장해 시 5년간 매월 후유장해 연금을 지급한다는 점이 주요 특징이다.

다만 간병보험은 고령이나 치매로 인한 생활 불편을 지원하는 정부 요양보험과 운영 기준이 다르다. 중증치매나 활동불능 상태 등 특정사유가 발생해야 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간병보험을 따로 들기 부담될 경우 연금보험을 가입할 때 장기간병 연금보험을 선택하거나 연금보험 안에서 관련 특약을 넣을 수 있다.

2000년 초기 도입당시만 해도 간병보험은 소비자들에게서 외면을 받았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당연시됐던 당시 분위기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 이후 건강보험공단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요양등급을 기준으로 삼은 상품들이 출시되면서 현재는 손해보험사들의 주력종목이 됐다.

간병보험이 성장세를 거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 철회와 관련이 있다. 대선후보 당시 박 대통령은 건강보험 내 간병비 추가 항목을 공약에서 제외했다.


이후 민영 간병보험의 시장성이 확보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고령층에 특화된 다양한 상품을 주문했다. 손보업계는 즉시 관련 상품 출시와 판매에 박차를 가했다. 치매 진단시 보험금을 지급하거나 장기요양등급 판정시 장기요양자금이나 간병비를 보상하는 상품이 주류다.

최근 들어 간병보험은 고령화시대와 맞물려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LIG손해보험, 현대해상, 동부화재, 메리츠화재, 롯데손해보험, MG손해보험 등 6개사가 판매한 간병보험 신계약건수는 46만건으로 전년(17만건)보다 크게 증가했다. 작년에는 4개사(메리츠화재, 한화손보, 흥국화재, 롯데손보)가 상품을 새로 출시해 취급하는 손보사도 8개로 늘었다.

신계약건수로 보면 지난해에 15만건을 넘게 판 LIG손보가 가장 돋보였다. 2012년 9월에 ‘100세LTC간병보험’을 내놨던 LIG손보는 지난해 만기를 110세로 연장했다. 보장 나이를 늘리면서 LIG손보의 간병보험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출시 이후 총 판매건수는 20만건이 넘는다.

동부화재는 2012년 8월 ‘가족사랑간병보험’을 출시해 지난해 말까지 14만9139건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기세를 멈추지 않고 지난 한 해 동안만 13만4007건의 판매실적으로 상승세를 탔다.

대부분의 간병보험은 치매나 활동불능 진단을 받아도 90일이 지나야 보험금이 지급된다. 보험계약을 체결한지 치매는 2년, 활동불능 상태는 90일이 지나야 보장이 시작된다.

그러나 보험사마다 보장개시일이나 지급사유 등이 달라 꼼꼼히 살펴보고 비교해보고 가입해야 한다. 간병보험은 갱신형과 비갱신형으로 나뉘는 만큼 보험료를 손해 보지 않으려면 각각의 보험회사 공시자료를 직접 찾아보고 가입하는 것이 좋다.

사고의 발생 원인에 따라 보험료가 지급되는 보장 개시일도 보험사마다 다르다. 치매 등의 진단을 받은 뒤에도 일정 기간이 지나야 보험금이 지급된다. 중증치매나 활동불능상태로 진단받아야만 보험금을 주는 경우도 있고 보장기간이 종신, 100세, 110세로 상품마다 차이가 있다.


각 손보사 주력 상품…보장 비교 필수
같은 회사 상품도 개별에 따라 달라져

특히 다음 달부터는 간병보험의 보상 기준이 되는 장기요양등급이 바뀐다. 내달부터 장기요양등급체계가 기존 3등급에서 5등급으로 변경된다. 기존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치매 등 환자의 상태를 장기요양인정 점수로 환산해 1∼3등급까지 분류하고 판정해왔다.

1등급은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으로 95점 이상인 경우다. 2등급은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75∼95점 이하), 3등급은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장기요양 인정 점수가 51∼75점 이하로 판정됐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등급별 수급자간 기능 차이가 큰데 따른 불필요한 비용 증가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구간 폭이 넓은 3등급을 두개의 구간으로 분할하기로 했다. 즉 기존 3등급을 3∼4등급으로 세분화해 장기요양인정점수를 3등급은 60∼75점 이하로, 4등급은 51∼60점 이하로 새로 설정했다. 신설된 5등급은 45∼51점 이하다.

대부분의 손보사들은 내달부터 보장범위를 4등급 까지 확대할 전망이다. 다만 5등급 이하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LIG손해보험 관계자는 “그동안 3등급까지만 간병보험이 적용됐지만, 등급 기준이 바뀌면서 4등급까지 보장 범위를 확대할지 검토하고 있다”며 “약정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7월 1일자부터 바뀔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바뀌는 보장내역에 대해 “보험사 마다 다르겠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보장내역에 대해서 조율 중”이라며 “새로 생긴 4등급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살펴보겠지만, 5등급 이하는 우리 뿐 아니라 대부분의 손보사들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한편, 정부는 공공 간병보험 신설 공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사회보험 방식의 공공 간병보험을 국민건강보험 내에 추가로 신설하는 내용을 담았다. 간병을 개인의 책임에서 국가가 함께 부담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에서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공공 간병보험이 도입되면 건강보험 가입자는 매월 5220원만 납부하면 된다. 가족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병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2017년 도입할 계획이다.

묻고 따져야

공공 간병보험 공약이 실현된다면 그동안 간병보험으로 재미를 봤던 손보사들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표정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들의 간병보험은 고객이 평소 생활해왔던 경제수준까지 맞춰 보상금을 주지만 정부에서 지원하게 될 간병보험 보장 범위가 보험사 수준까지 맞출 수 있을지 미지수”이라며 “공공 영역에서 지원하게 될 간병보험금은 사람이 최소한 살 수 있는 의식주 정도만 보장해주는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장기요양등급 악용 주의보


장기요양등급이 변경되면서 일부 보험설계사들이 이를 악용해 가입자들을 끌어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판매는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장기요양등급이 바뀐다면서 간병 진단금이 줄어들거나,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로 보험가입자 유치에 나서는 사례가 있었다”며 “이러한 보험영업조직의 판매를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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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