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퍼블릭 골프장’ 이용료 비싼 진짜이유

말만 대중화…혜택은 고스란히 사업자에게

“그린피(입장료), 캐디피, 카트피 등 순수비용만 1인당 30만원 넘게 드는데 퍼블릭(대중) 골프장이라고 할 수 있나요? 정부는 골프대중화에 힘쓴다고 하지만 여전히 서민·중산층에겐 문턱이 높은 게 현실이죠.” 정부가 골프 대중화를 위해 퍼블릭 골프장에 각종 세제혜택을 주지만 정작 혜택은 국민이 아닌 사업자에게만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퍼블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비싼 이용료 때문이다.

경상 이익률 12.6% 급락, 캐디선택제 확산
각종 세제혜택에도 비용은 회원제와 비슷
1만원 매출에 4570원 남아…황금알 수익
회원제보다 비싼 퍼블릭 “호시절 다 갔다”

경기침체와 공급과잉에 따른 골프시장 불황 속에서도 퍼블릭 골프장이 20~40% 넘는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경기 파주시에 소재한 퍼블릭 골프장인 파주컨트리클럽은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22억원, 56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무려 45.7%에 달했다. 1만원의 매출을 올리면 4570원이 남은 셈이다. 순이익은 40억원으로 매출대비 32.9%를 기록했다.

시장 불황 속 나 홀로 성장

경기 포천시에 위치한 베어크리크도 매출 205억원에 영업이익 91억원을 기록, 44.4%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올렸다. 매출대비 순이익률은 34.7%(순이익 71억원)로 파주컨트리클럽보다 높았다.
대영힐스&베이스(충북 충주), 진양밸리(충북 음성), 아리지(경기 여주) 등도 영업이익률이 36~43%를 넘었다. 수도권 골퍼들이 자주 찾는 스카이72(인천 중구)와 레이크사이드(경기 용인)도 각각 20%, 34%가량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퍼블릭 골프장들이 높은 영업이익률을 올리는 것은 각종 세제혜택에도 비싼 이용료를 유지하면서 가동률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정부는 2000년 골프대중화를 위해 퍼블릭 골프장의 개별소비세(2만1120원)를 면제한 것은 물론 재산세, 토지세 등 각종 세금도 감면해줬다.
세제혜택에도 퍼블릭 골프장의 이용료는 회원제와 큰 차이가 없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퍼블릭 골프장의 1인당 평균 그린피(18홀 기준)는 주중 11만8000원, 주말 16만8000원이다. 이는 회원제(비회원 기준, 주중 16만3000원, 주말 21만원)에 비해 4만2000~4만5000원가량 낮은 수준에 그친다. 캐디피나 카트피 차이는 거의 없다.


골프업계 한 관계자는 “비회원 골퍼들이 그나마 조금 저렴한 퍼블릭 골프장을 주로 찾다보니 회원제는 실적이 급격히 악화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2년 퍼블릭 골프장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3.7%에 달했지만 회원제는 3.4%로 10분의1에 불과했다. 회원제 골프장은 절반가량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린피가 오히려 회원제보다 비싼 퍼블릭 골프장도 많다. 사우스케이프오너스(경남 남해)는 그린피가 주중 21만원, 주말 37만원에 달한다. 스카이72도 주중 19만9000원, 주말 25만9000원으로 회원제의 평균을 크게 웃돈다. 레이크사이드와 베어즈베스트청라(인천 서구), 소노펠리체(강원 홍천), 블루마운틴(강원 홍천) 등도 마찬가지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퍼블릭 골프장이 세제혜택에도 회원제보다 높은 그린피를 받는 것은 정부의 골프 대중화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퍼블릭 골프장도 공급과잉으로 더 이상 고마진 수익구조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골프장은 퍼블릭보다 회원제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19개가 새롭게 생겨나면서 퍼블릭 231개, 회원제 230개로 역전됐다. 올해도 신설될 예정인 50개 골프장 중 49개가 퍼블릭이다.
서 소장은 “이미 퍼블릭 골프장의 실적은 하향세에 접어들었다”며 “최근엔 경영난에 빠진 회원제 골프장들까지 속속 퍼블릭으로 전환, 실적 둔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공급과잉 등에 따른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감소추세인 골프인구를 다시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며 “퍼블릭 골프장은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가격인하와 골프장 시민개방 등 대중화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퍼블릭 골프장들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지방 퍼블릭을 중심으로 먼저 캐디와 카트선택제 확산, 식음료 가격 인하 등을 서두르고 있다. 거품을 제거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시도다. 골프장 급증에 불황까지 겹쳐 지난해에는 회원제에 이어 대중제 역시 영업이익률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대중제의 경우 18홀 그린피는 10만원 안팎이다. 캐디팁은 그러나 팀당 10만원~12만원, 카트비는 8만원~10만원이다.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국내 골프장 캐디팁은 지난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인상바람이 불어 지금은 대부분 12만원을 받고 있다. 입장객 수가 줄면서 감소한 캐디 수입을 보전하기 위한 방편에서 출발했다. 골프장 측에서도 캐디의 이직을 막기 위해 눈감아 주는 분위기다. 골퍼들은 그러나 “비용 증가로 대중화를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아예 노캐디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회원제→퍼블릭 실적 둔화 예상

실제 일부 골프장에서는 ‘캐디선택제’로 호응을 얻고 있는 곳도 있다. 전북 군산이 대표적이다. 동절기 시험 운영한 결과 지난 2월 캐디 없이 라운드한 골퍼가 46%에 육박했다. 1인용 전동카트를 끌고 플레이하는 시스템이다. 골프장 측은 “카트가 부족해 예약을 받을 정도”라고 했다. 3월부터는 아예 전용코스를 운영하는 등 영역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대중제 전체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9홀 이하 112곳 가운데 캐디 없이 운영하는 골프장은 20.5%인 23개소, 캐디선택제를 도입한 골프장도 3곳으로 늘어나는 추이다.
회원제에 비해 1회 라운드 비용에서 캐디팁과 카트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중제에서는 캐디선택제가 일단 경영난을 돌파할 신개념 마케팅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중제의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집계한 지난해 대중제 경영실적 분석에 따르면 83개소의 영업이익률은 28.3%, 2012년(33.5%)에 비해 5.2% 포인트나 하락했다. 수익성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경상이익률은 2012년 14.4%에서 무려 12.6% 포인트나 급락해 1.8%다. 회원제의 대중제 전환까지 가세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회원제의 캐디선택제 도입은 반면 아직 미미하다. 대부분 산악지형에 조성돼 경기진행과 코스 컨디션 유지, 카트 안전사고 예방 등 ‘캐디 효과’가 크다. 골퍼들에게 거리와 골프채 선택, 퍼팅라인 등 플레이에 대한 도움과 공을 찾아주는 등 많은 수고를 덜어주는 부수적인 역할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슬로플레이, 벙커 정리조차 하지 않는 일부 골퍼들의 부족한 자질도 문제다.

운영형태에 따라 캐디선택제 합리적


결과적으로 코스에 따라, 회원제와 대중제 등 운영형태에 따라, 또 시간대에 따라 캐디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합리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황현철 일본 PGM(퍼시픽골프매니지먼트)한국 대표 역시 “모든 골프장이 반드시 캐디선택제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며 “각 골프장의 콘셉트나 마켓, 고객 컬러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해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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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