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YS정권 데자뷰 '기막힌 이야기'

재난 트라우마…집권 2년차 벌써 레임덕?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또 사람들이 죽었다. 눈만 뜨고 일어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사고 소식이 전해진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이 잇따른 인명사고로 패닉에 빠졌다. 지난주 여기저기서 불이 나고 사람들이 죽었다. 뉴스 시청이 두려울 정도다. 뜻하지 않은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박근혜정부의 레임덕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의도 안팎에선 현 정국을 김영삼정부 3년차와 비교하고 있다. 정권 초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로 높은 국정지지율을 보였던 김영삼정부는 연이은 대형 참사로 집권 3년 만에 중대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김영삼정부를 무력화시킨 '인재'란 먹구름은 19년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드리우고 있다.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세월호 참사 후 재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 연이은 안전사고로 패닉에 빠졌다. 지난주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를 시작으로 잇따른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했고, 하루를 간격으로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가 이어지면서 국민적 불안감은 점차 가중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사고로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한창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터지는 안전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사고 수습을 위해 내정된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가 '전관예우' 논란을 버티지 못하고 사퇴하면서 정국은 또 한 차례 격랑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의도 안팎에서는 "이대로 가다간 김영삼정부 3년차의 전철을 밟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전후로 레임덕 조짐을 보였던 김영삼정부처럼 박근혜정부도 이른 시기에 레임덕이 현실화되지 않겠냐는 우려다.

끝나지 않은
세월호 트라우마

사실 박근혜정부와 김영삼정부는 출범 과정에서 인사파동 등 여러모로 비슷한 논란을 겪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검찰수사 등 사회고위층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으로 인기를 모았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러나 각 정부의 수장인 두 대통령은 각기 다른 인생역정을 밟았다. 이들은 모두 새누리당(구 민자당·한나라당)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서로 지지기반이 달랐고 정치스타일 역시 극과 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은 이들의 껄끄러운 관계를 잘 보여준다.

지난 2012년 7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가올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박 대통령에게 '칠푼이'라며 혹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예방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박 대통령(당시 후보)을 사자, 본인을 토끼에 비유하자 "(박근혜는) 사자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박근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후 화재 등 대형사고 잇달아 
YS정부 3년차 닮은꼴…잘 나가다 '와르르'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장남 현철씨는 대선을 며칠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에게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현철씨는 자신의 SNS에 "혹독한 유신시절 박정희와 박근혜는 아버지와 딸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이 나라를 얼음제국으로 만들었다"며 "아버지(YS)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 역사에 욕되지 않기 위해 이번 선거는 민주세력이 이겨야 한다"고 적었다. 현철씨는 "(지지의사 표명 전) YS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후의 승자는 박 대통령이었다. 집권 후 박 대통령은 몇 차례 부침이 있었지만 대체로 50%가 넘는 국정지지율을 굳건히 지켰다. 특히 '윤창중 성추문 사태'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 등 온갖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지지율만큼은 철통같이 방어했다.

세월호 참사 직전까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70%대(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 기준)였다. 심지어 사고 첫 주에는 소폭 상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종자 수색작전이 지연되고 정부의 무능한 재난위기관리대응시스템이 노출되면서 지지율은 다시 50%대로 가라앉았다.

닮은 듯 다른 듯
박근혜와 김영삼


그런데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참사로 지난 4월부터 맞닥뜨린 난맥상이 김영삼정부가 삼풍백화점 붕괴를 전후로 부딪친 난국과 유사하다는 데 있다. 먼저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억될 김영삼정부 3년차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살펴보자.

때는 1995년 2월.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이하 안기부)의 '6·27 지방선거 연기 문건'을 폭로함으로써 정국을 강타했다. 민주당은 앞서 안기부가 1994년 11월 작성한 '단체장 선거 연기 검토'라는 제하의 문건을 입수하고 "안기부가 지방선거 연기를 위해 관계 법령 개정을 추진하려 했으며, 정치·경제·언론 등 각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동향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폭로했다.
 

'6·27 지방선거 연기 문건' 사건은 박근혜정부 2년차에 있었던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같이 국가권력기관의 정치개입 시비가 쟁점화된 사건이었다. 당시 야권은 정권퇴진운동과 함께 대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는데 김영삼정부는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김덕 통일부총리의 옷을 벗겼다.

그럼에도 등 돌린 민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후 있었던 6·27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었던 민자당은 참패했다. 그런데 당시 여당이 받아든 참담한 성적표는 안기부의 정치개입 파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계가 주목한 패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집권 내각인 김영삼정부의 재난관리대응 실패다.

'지방선거 끝나고' 무너진 삼풍백
'지방선거 앞두고' 침몰한 세월호

역대 대한민국정부를 통틀어 문민정부는 가장 많은 대형사고가 있었던 정권으로 꼽힌다. 시국을 뒤흔든 안전사고가 많아 김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대국민사과를 그야말로 '밥 먹듯이'했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이 이끄는 내각은 실질적인 사후조처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였다. 민심은 정부 책임론 쪽으로 기울었고, 반사이익을 본 곳이 민주당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정권이 출범한 1993년부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명사고가 있었던 것일까. 당시 언론보도와 국가기록원 자료, 관련 서적 등을 종합한 연혁은 다음과 같다.

먼저 YS가 당선된 지 1달도 지나지 않아 충북 청주에 있는 우암상가아파트가 붕괴됐다. 1993년 1월 있었던 이 사고로 모두 27명이 사망했으며 48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그리고 YS가 청와대로 들어간 지 1달여 만에 또 다른 대형사고 발생했다. 부산 구포역을 달리던 무궁화호 열차가 전복된 것이다. 같은 해 3월 있었던 이 사고로 모두 78명이 숨졌으며 198명이 부상을 입었다.

4월에는 충남 논산에 있는 서울신경정신과의원에서 입원 중인 환자 등 34명이 숨졌다. 대형화재가 부른 인명참사였다. 이로부터 2개월 뒤 경기 연천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현역 장병과 예비군 등 모두 20명이 사망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7월에는 아시아나항공 733편의 추락으로 승객 등 68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아시아나항공에서는 2건의 추락사고가 추가로 발생해 '7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10월 온 국민을 경악시킨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 300여명을 싣고 서해 앞바다를 항해 중이던 서해훼리호는 과적 등을 원인으로 침몰했다. 사망자는 292명. 생존자는 70명에 불과했다.

집권 2년차인 1994년에도 안전사고는 계속됐다. 상반기에는 조금 잠잠한가 싶더니 하반기 들어 집중적으로 사고가 이어졌다. 같은 해 8월 서울 팔레스 룸싸롱에서 난 불은 1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두 달 뒤인 10월에는 서울 한복판에 있던 대교가 무너졌다. 그 유명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다. 이 사고로 여고생 8명을 포함한 32명이 숨졌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김 전 대통령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렇지만 대국민사과 후 또 다른 대형사고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다. 충주호에 있는 유람선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로 모두 25명이 숨졌는데 사고 당시 뜨거운 불길을 견디다 못해 호수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줄을 잇기도 했다.


같은 해 연말에는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가 있었다. 계량기 점검 중 방출된 가스가 현장에 있던 모닥불에 옮아 붙으면서 폭발한 사고다. 이 사고로 12명이 사망했고 101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송년모임의 화두는 "내년에 살아서 만나자"였다고 한다.

해가 바뀐 후에도 대형사고는 멈출 줄 몰랐다. 1995년 2월에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컨테이너 운반선 화재로 19명이 희생됐다. 또 같은 해 4월에는 대구지하철공사장이 폭발하면서 사망자 102명을 포함, 사상자 229명의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

그런데 YS는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지방선거를 의식해 사건의 여파를 최소화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이 축소·은폐됐다는 등의 의혹으로 일부 유족이 분노했다. 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대여공세를 높였다.그리고 예상대로 집권당은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레임덕의 서막을 올린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로 집권 2년차를 맞은 박근혜정부의 운명은 어찌 될까. 과거에 해답이 있다. 김영삼정부가 즐겨 썼던 국정운영방식은 박근혜정부에 대거 이식됐다. 놀랍게도 박 대통령은 YS의 통치수법을 상당 부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박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YS처럼 예상치 못한 인명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괜히 'YS의 데자뷰'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땅에서 바다에서
사람이 죽어났다

두 대통령은 1기 내각을 꾸리는 과정에서 정부 핵심관료를 PK(부산·경남)출신으로 채웠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TK(대구·경북)에 정치적 기반이 있었음에도 PK 인사를 중용했다. 이들은 정권출범 후 나란히 인사실패로 파문을 일으켰는데 보안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인사스타일 역시 닮았다는 평이다.


하나회 숙청으로 인기를 끌었던 YS처럼 박 대통령은 전두환 일가 추징금 환수 작업으로 신군부와 민심을 동시에 '공략'했다. 집권 초 조선총독부 철거를 지시하며 친일파와 선을 그었던 YS처럼 박 대통령은 일본 아베 총리를 상대로 국제무대에서 각을 세우며 강경한 대일기조를 부각하고 있다.

아울러 YS가 중견 정치인 등 고위공직자를 상대로 사정을 벌인 것처럼 박 대통령은 대기업과 공기업을 겨냥한 릴레이 수사로 대항세력을 옭아 메는 중이다. 또 YS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명목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고 한다면 박 대통령은 같은 명목으로 검찰과 국세청 등 모든 기관을 동원해 세수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닮지 말아야 할 것을 닮아 버린 박근혜정부다. 비록 김영삼정부 때만큼은 아니지만 연이은 안전사고는 국민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조짐은 지난 2월부터 있었다.

경북 경주에 있는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붕괴됐다. 이 사고로 건물 안에 있던 대학생 9명과 이벤트업체 직원 1명 등 모두 10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이들 유족의 눈물샘이 마르기 전 서해훼리호의 악몽이 재현됐다. 지난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사망자 288명, 실종자 16명으로 사상 최악의 해양사고로 기록됐다. 그리고 세월호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육지에서는 서울지하철 2호선 전동열차 2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안대희 내정자도 자진사퇴
YS식 개혁드라이브 만지작?

그리고 한 달도 못가 고양종합버스터미널 공사현장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모두 66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선 방화벽이나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물론 대피안내방송도 일부 층에서만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7일에는 경기 시화공단 내에서 스파크가 튀며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28일 자정에는 전남 장성 삼계면에 있는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21명이 사망했다. 이날 오전부터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홈플러스 주차장 내 폭발화재, SK그룹 본사 지하주차장 화재, 서울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에 이르기까지 무려 3건의 사고가 연달아 일어났다.

다음날 오후에는 울산 송정동과 서울 중앙대에서 각각 큰 불이 났다. 며칠 간격으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자 많은 시민들은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라며 인터넷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연달아 대형사고
국민들은 '멘붕'

박근혜정부 2년차가 김영삼정부 3년차와 다른 점은 아직 지방선거를 치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YS의 경우는 지방선거 참패 후 삼풍백화점까지 붕괴되면서 레임덕이 본격화됐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형 참사로 YS정권은 식물정권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YS는 전두환·노태우 구속수사라는 일생의 승부수로 분위기를 일순했다. 이후 YS는 1996년 말 있었던 '노동법 파문' 전까지 권력 누수를 잘 막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결국 박근혜정부 입장에서도 이번 6·4 지방선거 성적표는 매우 중요하게 됐다. 사실상 중간평가 성격인 이번 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우려하던 레임덕이 가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박근혜정부가 전직 대통령 구속수사와 같은 초강수로 난국을 타개할지 관심이다. 어찌됐던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믿음직한 정부가 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20년 전 '정치 9단' YS의 깜짝쇼에 넘어갔던 그때의 국민들은 이제 없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실패로 끝난 총리 지명 사례

지난주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가 사퇴한 가운데 박근혜정부와 김영삼정부의 엇갈린 운명이 화제다. 박근혜정부는 대법관 출신인 안 내정자를 앞세워 난국을 타개하려 했다. 이는 지난 1993년 서해훼리호 참사로 궁지에 몰렸던 YS가 당시 감사원장이었던 이회창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로 임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사정당국의 총책임자였던 이 전 대법관은 율곡비리 등 굵직한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며 대통령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 전 대법관이 사정작업의 수위를 높일수록 YS의 지지율도 덩달아 올랐다. 그런데 서해훼리호 참사로 위기를 맞은 YS는 난맥상을 해소할 적임자로 이 전 대법관을 골랐다. 안팎의 반향은 뜨거웠다. 그런데 이들의 허니문은 얼마 못가 끝났다.

김영삼은 이회창
박근혜는 안대희

이 전 대법관은 총리가 되자마자 정권 2인자였던 최형우 내무장관을 면전에서 호통 치는 등 YS의 심기를 거슬렀다. 또 '얼굴마담'이 아닌 '책임총리'를 주창하면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려 했다. 이를 월권으로 본 YS가 분노했다. 그러나 거칠 것 없던 이 전 대법관은 YS를 들이받았다. 파워게임의 승자는 YS였고, 이 전 대법관은 4개월 만에 경질됐다.

하지만 이 전 대법관의 소신을 높이 산 국민들은 그에게 지지를 보냈다. 결국 이 전 대법관은 그때의 '사표'로 대선 후보까지 올랐다.

이를 반면교사 삼은 박근혜정부는 안 내정자를 통해 '이회창의 단꿈'을 재현하려 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안 내정자를 앞세워 어수선한 국면을 반전시킬 수 있고, 안 내정자 입장에서는 단번에 대선후보군이 되는 윈윈 전략이었다. 그러나 안 내정자가 칼도 뽑기 전에 자진사퇴하면서 박근혜정부는 되레 쓴맛만 다시게 됐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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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