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도주로 본' 해외도피 기업인 블랙리스트

돈 들고 튄 회장들 “잘 먹고 잘 산다”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행방이 묘연하다. 유 전 회장뿐만이 아니다. 이전부터 회장들의 도피사례는 파다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등 외국으로 도주한 이들은 빼돌린 돈으로 사업을 벌이며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다. 세금탈루,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해외로 도망친 회장들은 ‘죄 짓고는 못산다’는 옛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보란 듯이 잘살고 있다.

도대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어디 숨어 있을까. 검찰이 현상금까지 내걸며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유병언 전 회장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유 전 회장 일가는 검찰보다 한 발 빠르게 해외로 도피하기 위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 퍼져있는 유씨 일가는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있고, 유씨의 은신처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검찰보다 한발
빠른 도피준비

우선 유병언 전 회장의 경우 아직까지 국내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금수원 신도들의 보호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

유 전 회장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곳은 금수원 내부 혹은 주변 아파트단지다. 금수원은 여의도 절반 크기로 유씨가 내부에 숨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하벙커가 있으면 건물 위주 수색으로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금수원 주변 아파트 단지는 1700여 세대 중 150여 세대를 유씨 일가가 차명으로 소유해 구원파 신도 등에게 임대를 준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금수원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구원파 촌이라 불릴 정도로 신도들이 모여 살고 있어 유씨를 보호하기에 적합하다.

구원파의 신도 집에 은신했을 가능성도 크다. 건물이 많은 서울에서는 위치 추적 반경 안에 건물이 많아 실제 은신처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남 여수와 보성 일대에서 유씨를 봤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보성에는 유씨 일가 소유의 대규모 녹차밭인 ‘몽중산다원’이 있다.


또 구원파 소유의 전남 신안 염전 지역도 주목되고 있다. 섬 지역이라 구원파 신도가 보호한다면 눈에 띄지 않고 오랫동안 은신할 수 있다. 신안은 유씨의 최측근인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의 고향이다.

검찰의 국내 수색이 실패로 이어지자 해외로 밀항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씨는 해운사를 운영해 밀항 루트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유병언도 그들처럼?…어디서 뭐하나
구원파 보호 받고 있을 가능성 높아

유씨 일가족은 검찰이 검거하기 전 모두 해외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매번 검찰보다 한 박자 빨랐다.

유씨의 장남 대균씨는 세월호 사고 사흘만인 지난 4월 인천지검의 수사 착수 하루 전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다. 그러다 출국금지 된 사실을 알고 공항에 고급 승용차까지 버려둔 채 도주했다.이에 따라 유씨 일가가 검경국가정보원의 인맥과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씨의 장녀 섬나씨가 프랑스에서 체포됐다. 섬나씨가 체포되면서 유씨를 비롯해 대균씨, 차남 혁기씨 등에도 심리적 압박이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유씨 부자에 대해 전국 A급 지명 수배와 함께 현상 수배를 하고 있다. 현상 수배 이후 제보가 급증함에 따라 경찰은 현상금 10배 상향으로 시민들의 제보가 더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씨의 현상금은 5억원, 대균씨 현상금은 1억원이 걸려있다.


황제노역 허재호
뉴질랜드 백만장자

‘황제노역’으로 지난 3월 공분을 산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뉴질랜드로 도피해 카지노 VIP를 드나들며 호화생활을 누린 것으로 드러났다. 허재호 전 회장은 뉴질랜드 최대도시인 오클랜드에서 최고급 아파트로 유명한 메트로폴리스의 팬트하우스를 소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 시가로 46억원이 넘는 초호화 아파트다.

MBC <PD수첩>에 따르면, 허 전 회장이 살았던 아파트는 공시지가만 약 14억(153불)에 달했다. 허씨는 호화 요트를 타고 낚시를 즐기고, 카지노에는 수년간 VIP 회원으로 출입했다. 허씨는 뉴질랜드에서 고층 아파트 건설 사업을 활발하게 운영해 상당한 부동산 소유자로 현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현지 신문에서는 허씨가 ‘백만장자’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오클랜드에서 가장 부촌인 타카푸나에서도 손꼽히는 호화 저택과 오클랜드의 ‘노른자’ 땅도 일부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 일가와 관련된 부동산 시세는 약 700여억원으로 추정된다.

황재노역 허재호·한보사태 정태수
해외 도망가 떵떵…초호화 갑부생활

대주그룹은 호남지역에선 유일하게 재계순위 60위까지 올랐던 대기업이다. 1981년 대주종합건설로 시작하여 이후엔 조선, 미디어, 레저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3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다.

그러나 2007년 대주그룹의 총수 허 전 회장 500억 원대 법인세 포탈과 100억 원대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지난 2010년 허씨는 항소심 선고 직후 지불해야 할 벌금과 세금을 내지 않고 해외로 도주했다. 당시 허씨는 벌금 254억원 및 국세 134억원, 지방세 24억원 등 400억원 이상을 체납하고 있는 상태였다.

검찰의 지시에 따라 허씨는 귀국 후 지난 3월부터 노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노역 일당 때문에 허씨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판결’은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기소 당시만 해도 허씨에게 벌금 1000억원을 구형했던 검찰이 이례적으로 선고유예를 구형했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된 2심에서는 허씨의 벌금이 다시 반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하루 노역일당은 5억원으로 두 배 올랐다. 일반인이 벌금을 납부하지 않았을 경우 하루 노역 일당은 5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허씨는 일반인과 똑같은 일을 해도 만 배 높은 일당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황제 노역’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항소심에서 책정한 1일 노역비 5억원으로 환산하면 허씨는 49일 동안 구치소의 일반 작업장에서 청소 등의 잡일만 하면 된다.

한보사태 정태수
풍족한 생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건국 이후 최악의 금융 부정 사건으로 꼽히는 한보사태의 주인공이다. 정태수 전 회장은 1997년 한보비리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은 뒤, 2005년 사학 재단의 교비 수십억원을 빼돌린 혐의로도 기소됐다. 2225억여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정 전 회장은 역대 최고액 탈세자로 불린다. 정씨는 2007년 은마아파트 상가와 관련된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암 치료를 핑계로 해외로 도주했다. 일본을 거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숨어들었다.

재판 중에도 정씨가 일본으로 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법원의 방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형사 재판 중에는 여권의 효력이 정지되기 때문에 해외로 나갈 수 없다. 그런데 정씨의 경우 법원의 출국 허가를 받고 일본으로 출국했다. 어떻게 법원이 이렇게 쉽게 출국 허가를 내줬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정씨는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또다시 기업을 경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법무부가 뒤늦게 그의 움직임을 포착하면서 카자흐스탄에 범죄인 신병인도를 요구했지만, 2008년 정씨는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겼다.

키르기스스탄은 우리나라와 범죄인 인도조약이 맺어져 있지 않은 나라다. 덕분에 정 회장은 7년 넘게 한국의 눈을 피해 도피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 카자흐스탄과는 2003년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한 반면 키르기스스탄과 협정하지 않은 것을 교묘히 이용한 셈이다.

정씨는 카자흐스탄 이웃나라인 키르기스스탄의 서북부 탈라스로 은신처를 옮긴 뒤,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정씨는 아들과 며느리가 빼돌린 사학재단 교비를 해외 도피자금으로 썼다고 한다.

장진호, 나라 옮기며 사업가 변신
전윤수, 직원들 월급 떼먹고 잠적


또 한보 그룹 부도 전 사들인 러시아 가스전 지분을 이용해 개인 간호사를 고용할 정도로 풍족하게 살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정씨는 옛 소련국가 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을 옮겨다니며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횡령 혐의로 검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은 2005년 2월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장진호 전 회장은 54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5개월여 재판 끝에 1심에서 징역 5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난 장 전 회장은 4개월 뒤 가족을 데리고 캄보디아로 도망쳤다.

캄보디아에서 장씨는 은행, 기업형 룸살롱, 개 경주 도박장, TV프로그램 제작사, 부동산 개발 회사 등 다양한 사업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현지에서 탈세 문제가 불거지자 중국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겨서 다시 게임 산업 관련 사업을 했다.

탈세자 장진호
현지이름 취득

이러한 소문을 정리해 보면, 장씨는 이전부터 도주를 준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출국 전부터 도피를 준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장씨는 지난 2002년 찬삼락이라는 현지이름까지 취득해 이미 여권까지 만들었다.

해외에서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회사가 부도나기 전부터 캄보디아에 투자한 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법정관리가 들어가기 전부터 해외 도주를 미리 계획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장씨는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0년 임금체불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전윤수 전 성원건설 회장도 검찰 수사를 받던 중 해외로 도주했다. 전윤수 전 회장은 돌연 해외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아 수원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던 전 전 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취소됐다.

성원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상떼빌’로 유명하다. 1977년 용산구 이태원에서 설립된 태우종합개발(주)을 모회사로 한다. 현재 성원건설은 부도로 인해 업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전씨는 미국으로 도피해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방송된 MBC <PD수첩>에 따르면 전씨는 미국 뉴저지주 허드슨강이 보이는 부촌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 방 3개짜리 집을 임대해 사용했다. 딸의 명의로 고급 승용차 BMW를 구매하기도 했다. 2011년 6월 한 달간 사용한 직불카드 사용 금액은 1만5000달러(한화 1760만원)에 달할 정도였다.

임금체불 전윤수
골프장 단골고객

전씨는 미국 생활 도중 불법 체류 혐의로 현지에서 검거됐던 적도 있다. 재미 블로거 안치용씨에 따르면 전씨는 골프장을 자주 찾았으며 나이아가라 폭포 등에도 유람을 다녔다고 한다.

현지 이민 사기브로커에게 합법적 체류신분(영주권)을 조건으로 수억원대의 돈을 뜯겼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러한 경제사범 중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한때 경영인들의 영웅이었던 김우중 전 회장은 해외로 도주해 여기저기서 도망자로 살았다. 김 전 회장도 베트남 등지에서 호화생활을 누린 바 있다. 

김씨는 전 대우그룹 계열사에 20조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이를 통해 9조8000억원을 대출받고 회사자금 32억달러(약 4조원)를 국외로 빼돌린 혐의 등으로 2001년 지명수배 됐다. 이후 해외에 머물다 4년만에 귀국해 사법처리됐다. 2006년 검찰은 김씨에게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했지만 그는 887억원만 납부했다. 추징금의 0.5%에 불과한 액수다.

이러한 부도덕한 재벌 총수들로 인해 반기업 정서가 심화되고 있다. 사고가 터지면 회장들이 해외로 도피하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기업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박효선 기자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체포된 유병언 장녀 운명은?
프랑스서 버티기 작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 섬나씨가 지난달 27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인근 아파트에서 체포됐다. 체포 또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유 전 회장 일가 중 처음으로 장녀의 신병이 확보된 것이다.

섬나씨는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인근 세리졸에 위치한 월세 1000만원대 초호화 아파트에 거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언제쯤 섬나씨가 국내로 송환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섬나씨의 한국 강제송환은 프랑스 법무부 장관이 결정할 수 있지만, 섬나씨가 이의를 제기하면 재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체포 후 섬나씨는 구금 결정 시한 전 파리 항소법원에 보석 신청을 했다. 그러나 파리 항소법원은 섬나씨의 보석신청을 기각했다.

파리 법원은 한국 정부가 492억원의 횡령과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섬나씨의 인도 요청을 했으므로 섬나씨를 계속 구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섬나씨 측은 법원의 보석신청 기각에 즉각 반발해 파리의 거물 변호사를 선임했다. 섬나씨의 변호를 맡은 메종뇌브 변호사는 다른 변호사들이 기피하는 사건이나 언론을 통해 유명해진 사건을 주로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환 1년 이상 걸릴 수도
월 1000만원 아파트 거주

따라서 섬나씨의 한국 송환을 위한 재판이 마무리되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섬나씨는 구속된 상태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는다.

섬나씨는 디자인업체 모래알디자인을 운영하면서 유 전 회장 측 계열사로부터 컨설팅 비용 명목 등으로 80억 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배임 및 횡령)를 받고 있다. 모래알디자인은 세월호 증축 공사에서 유 전 회장의 전시실과 선주실의 인테리어를 맡았다.

앞서 유 전 회장의 차남 혁기씨와 차녀 상나씨는 미국 뉴욕 중심가의 최고급 아파트에서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귀국 통보에 이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이들 남매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태다. 멕시코 등 제3국으로 도주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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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