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월호 참사에 묻힌' 새누리당 '차떼기 경선' 내막

"서초구 경선에 당원들 실어 날랐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새누리당 서초구 지역경선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확인 결과 경선에 참여한 한 후보자를 상대로 모두 3건의 고발이 이뤄진 걸 알 수 있었다. 고발 내용은 동일했다. '차떼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여러 의혹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졌다. 비록 정식으로 고발되진 않았지만 지난 정권 핵심실세의 딸의 이름이 사건에 등장했다.

꽃다운 아이들이 차디찬 물속에 가라앉았다. 지난 4월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온 나라가 비통함에 잠겼다. 그러나 이 시각에도 "나를 뽑아 달라"며 선거 운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방선거 공천
당내경선 과열

세월호 참사 다음날인 17일 새누리당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시·구의원 후보자 선정을 위한 당내 경선 투표를 서초구에서 진행했다. 이날 서초구청 2층 대강당에 마련된 투표장에는 이른 시각부터 투표를 하기 위해 당원들이 모여들었다.

이번 당내 경선은 새누리당이 공천 방법을 '상향식'으로 조정하면서 처음 치러지는 선거였다고 한다. 시의원 후보는 제1선거구부터 제4선거구까지 모두 12명이 경쟁을 벌였고, 구의원 후보는 가선거구부터 마선거구까지 모두 22명이 공천을 받기 위해 경합했다.

기자가 입수한 '경선 후보자별 득표율 현황'을 보면 당시 선거인수는 7000명(구의원 투표 기준), 투표자수는 1512명이었다. 새누리당 측은 해당 선거의 공정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투·개표 작업을 서초구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서초구선관위)에 위임했다. 서초구선관위는 "당내 선거 전반을 관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 투·개표만 위탁받아 진행했다"고 밝혔다.


서초구선관위의 개표 결과 지방선거에 나갈 후보군의 윤곽이 드러났다. 각 선거구 최다 득표자는 새누리당이 자체 선임한 공천심사위원들에게 우선 추천됐다. 공천심사위원들은 별다른 이의 없이 최다 득표자(구의원의 경우 차순위까지)를 공천하기로 합의했다.

예상된 인물이 하나둘 공천자 명단에 올랐다. 정치 신인들 대부분은 당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별 무리 없이 마무리된 선거였다. 그러나 다수 당원은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증언했다.

먼저 익명을 요구한 한 당원은 "새누리당 당직을 갖고 있는 공천심사위원이 선거가 끝난 후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고 말했다. 17일부터 1박2일로 당원들을 인솔해 갔다는 것이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적절한 처사란 지적도 나왔다.

그런데 또 다른 당원은 "경선이라도 공정하게 했으면 이런 말이 왜 나왔겠느냐"고 했다. 무슨 뜻일까. 이 당원은 경선 당일(17일) 이른바 '차떼기'가 있었으며, 지역 유력 인사 간의 '담합'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폭로했다. 좀 더 정확한 내막을 따져 물었다.

'묻지마 투표'
선거과정 혼탁

지역 다수 관계자의 정황 설명 및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실 등으로 보내진 투서를 종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초을 구의원선거구(라) 출마자인 김수한 후보(현 서초구의원 및 서초구의회 운영위원장)는 지역 부녀회장 등을 동원해 투표 당일 수차례에 걸쳐 투표권이 있는 당원들을 실어 날랐다. 김 후보의 측근으로 전해진 강모씨 등은 2층 투표장 입구까지 사람들을 직접 안내했는데 이는 사전 합의된 경선룰상 금지된 행위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다수 관계자는 "강씨 등 4명이 미리 4개조를 편성해 승용차 2대, 봉고차 2대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실어 날랐다"고 말했다. 이들이 각각 '행동대원'으로 지목한 4인 중에서는 김 후보의 부인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차떼기'의 타깃은 주로 노인과 장애인이었다. 투표가 시작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강씨 등은 수차례에 걸쳐 서초구청을 들락거리며 사람들을 동원해 투표시켰다고 했다. 한 당원은 "강씨가 왔다 갔다 하는 걸 수상히 여겨 녹화·녹음한 자료가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의회 운영위원장 선거법위반 혐의 고발
"승용·봉고차 4대로 선거인 실어 날라" 주장

또 다른 당원은 "김 후보 측이 '시의원은 A후보(현 서울시의원)를 찍고, 구의원은 나(김수한)를 찍어달라'고 선거기간 동안 말했다는 소문이 지역 내에 파다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이 당원은 "봉고차로 실어 나르는 순간에도 '시의원은 A, 구의원은 김수한'을 주지시키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해당 선거구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김 후보 측이 본인과 A후보의 지지를 말하고 다닌 적이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람들 입이 무거운데 사실대로 말하겠느냐"고 우려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김 후보 측은 왜 본인도 아닌 A후보를 지지한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구 관계자는 "김 후보가 평소 A후보와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가 견제하는 사이였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경선이 임박하자 갑자기 러닝메이트가 됐다는 것이다.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들은 "두 사람이 모종의 거래를 한 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 후보의 경우는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했다. 그는 "A후보가 처음에는 나에게 접근하더니 나중에는 김 후보와 붙었고, 어떤 날은 김 후보가 나를 만나자고 하더니 '당신은 안 될 거니까 사퇴하는 게 좋을 거다'라고 하는 등 선거가 혼탁했다"고 말했다.

경선 후보자별 득표수를 보면 이들의 주장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A후보는 제3선거구(구의원 라선거구 포함)에서 3명의 후보 중 모두 222표(총 투표수 367표)를 득표했다. A후보와 선거구(양재동·내곡동)를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김 후보는 라선거구에서 276표(총 투표수 388표)를 득표했다. 200표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된 후보는 이들이 '유이'하다.

다른 선거구는 대략 100표 안팎에서 당락이 확정됐다. A후보가 당선된 선거구와 비슷한 투표율을 보인 제2선거구(총 투표수 394표)의 경우 최다득표자는 이모씨로 105명의 선택을 받았다. 또 김 후보가 당선된 선거구와 비슷한 투표율을 보인 나선거구(총 투표수 384표)는 137명이 최모씨를 찍었다. 그러나 투표 결과만 갖고 담합을 예단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와 맞물려 '부정경선'에 관심을 보였던 일부 언론이 등을 돌린 터였다.

선거법 위반했다
당에 수차례 투서

앞서 사퇴압박을 받았다고 말한 구의원 후보 B씨는 이번 사건을 직접 검찰에 고발했다. B씨는 지난 4월 김 후보 등을 선거법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새누리당중앙당에도 같은 내용의 투서를 넣었다. 피고발자는 김 후보였다. A후보는 피고발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로 사건을 배당한 뒤 서초경찰서로 수사지휘를 내렸다. 서초경찰서가 하명수사에 들어간 시점은 지난 4월24일께로 파악된다.


경찰은 이미 B씨를 불러 사전조사를 진행했고, 김 후보와 강씨 등을 차례로 소환해 사실여부를 캐물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경찰은 서초구청 내에 있는 CCTV 기록 등을 입수해 고발의 진위여부를 가리고 있다.

수사팀 한 관계자는 지난 2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수사진행 상황은 말할 수 없고, 절차대로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며 현재 법리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수사 진행이 더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천천히 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성급하게 할 이유도 없고 평소처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규명의 키를 쥐고 있는 CCTV 기록이 증거물로 쓰이게 될지는 미지수다. 서초구청은 모두 2차례에 걸쳐 CCTV 기록을 관련기관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날 서초구청 홍보정책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초 신고를 접수한 서초구선관위가 CCTV 기록을 USB 형태로 가져갔지만 보안이 걸려 있었고, 그래서 다시 CCTV 기록을 넘겼지만 카메라 방향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선관위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신고를 듣고 현장에 가보니 주차장과 연결된 서초구청 정·후문, 2층 대강당에 설치된 CCTV가 중요할 것으로 보여 관련 자료를 확보토록 했고 검찰로 송부했다"며 "말끔한 화질이 아니었다는 통화를 수사당국과 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B씨는 답답한 눈치다. 그는 다른 곳은 몰라도 새누리당이 신고를 묵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B씨는 "수차례에 걸쳐 인터넷 게시물과 팩스, 이메일 등으로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이를 기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경찰조사를 받고 나온 이들로부터 수차례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내부 고발자의 비밀보장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B씨는 자신의 신원을 공개한 이를 특정하기도 했다.

기자가 입수한 '새누리당 서초구(을) 당원협의회 경선 설명자료'를 살펴보면 금지된 선거운동 예시에 차량기부행위가 추가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B씨는 "강석훈 의원실 주관으로 4월2일 열렸던 설명회에 참석해 이 같은 경선룰을 모든 후보자와 공유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 착수
서초서 "절차대로 조사"
새누리당 진상규명 쉬쉬 왜?
포상금 노린 허위신고 가능성?

또 "연락처가 담긴 선거인명부는 5일 전 교부받기로 했는데 막상 전화를 돌려보니 죽은 사람도 있고 이사 간 사람도 많았다"며 "1200명 중 500명만 번호가 살아있는 엉터리 당원명부였다"고 분노했다. 기자가 자문을 구한 선관위 관계자 역시 이 같은 주장에 수긍하면서 "지구당을 없앤 뒤 당원관리가 잘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녹음된 당원 간의 녹취파일을 들어보면 한 자원봉사자는 '차떼기'로 추정되는 위법행위를 인정하면서 "(관내) 노인들을 모셔다드린 거죠"라고 했다. 또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다 해요"라면서 "한 사람 앞에 (배당된 인원이) 수백명씩, 기본이 200∼300명이에요"라고 통화했다.

공천 노림수?
포상 노림수?

B씨 등 다수 당원은 김 후보의 위법행위를 확신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신중한 입장을 피력하면서 "(만약 혐의가 사실이라면) 그분이 왜 무리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관내 인지도나 현직이라는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굳이 차량을 동원하지 않았어도 당선 확률이 높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이런 리스크를 자초했냐는 것이다.

앞서 서울 모처에서 기자와 만난 또 다른 신고자는 '포상금을 노린 신고가 아니냐'는 질문에 "숲을 보라는데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며 불쾌해했다. 이어 그는 "핵심은 선거법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라며 "공모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쪽에선 그냥 유야무야 덮이길 바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의혹을 사고 있는 당사자들의 해명을 듣기 전 강석훈 의원실과 접촉했다. ▲서초구(을) 공천심사위원의 제주여행에 대한 입장과 ▲경선 과정에서 후보 B씨가 제기한 의혹들을 외면한 이유 ▲김 후보 등의 득표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의원실 측은 "여행은 정말 처음 듣는 얘기고,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은 자세히 모른다"며 "김 후보와 A후보는 워낙 일을 열심히 하셨던 분들이라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아니겠냐"고 답했다. 기자가 B씨에게 확인을 요청하자 B씨는 "강석훈 의원실 측 사람이 당협(당원협의회)을 겸해 선거 교육을 했고, 고발 후에도 카카오톡 메시지로 상황을 전달했는데 어떻게 사건을 모른다고 할 수 있냐"고 답답해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김 후보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22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조사를 받으면서 그놈들의 '목을 따다가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진술했는데 반드시 (기사에도) 똑같이 적어 달라"며 "내 아내는 운전도 못하는데 어떻게 사람을 실어 나를 수 있겠나. 저들이 집단으로 짜서 나를 음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후보는 "내가 우리 지역에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구민들이 다 알 것"이라며 B씨와 고소인들에 대한 인신모욕을 퍼부었다.

이에 기자가 '왜 시의원은 A, 구의원은 김수한이라고 말하고 다녔느냐'고 묻자 김 후보는 어림잡아 30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자가 거듭 묻자 "증거가 있으면 가져와 보라. 지금 당장 현장으로 가자. 정보관들이 (나를 음해하려고) 역정보를 흘리는 거다. 그런 일 없다"고 해명했다.

A후보는 지난 23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A후보는 "얼핏 그분(김 후보)과 관련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내가 그런 일을 부탁하거나 요구한 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후보는 "아마 그분이 자의적으로 선거운동과정에서 제 이름을 얘기하고 다녔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 얘기를 지금껏 몰랐고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또 "어차피 (내가 현직의원이니까) 당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뭣 하러 그런 일을 하겠나. 안 그래도 내가 선거할 때 '아버님이나 어머님들 모시고 오면 안 될까'라고 김 후보한테 물은 적이 있는데 '선거법에 걸려서 안 된다'고 했던 분이 김 후보다. 나중에 김 후보가 고발당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 말고는 모른다. 어디에서 연락 받은 적도 없다. 김 후보와 통화한 적도 없다. 믿어 달라"고 했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