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사설탐정 24시' 비하인드 스토리

"500만원만 주면 뭐든지 합니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담배 파이프를 문 날렵한 사내가 살인자를 뒤쫓는다. 유달리 명석한 이 탐정은 채집한 증거들을 모아 탁월한 추리로 범죄자의 숨통을 조인다. 영국을 대표하는 명탐정 셜록홈즈는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이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한 사립탐정은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설탐정 제도가 활성화된 영·미권 국가와 달리 한국은 탐정을 공인하지 않고 있다. 주변엔 셜록홈즈 운운하며 사고만 치는 흥신소 직원이 더 많이 보인다. 이제 갓 양성화 단계에 있는 사립탐정, 그 어두운 이면을 조명했다.

차가운 바람이 여민 코트 사이를 파고들었다. 넥타이를 맨 사람들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서류가방을 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서울 모처에 있는 한 대형빌딩, A씨는 이곳 지하 1층에서 의뢰인과 만나기로 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릴 터였다.

셜록홈즈 상상
"소설일 뿐"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건물 로비를 메웠다. 로비를 가로지른 그들은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하이힐 소리는 잦아들었다. 탑승객도 눈에 띄게 줄었다. 출근 시간은 거의 끝난 듯했다. 기다리던 전화벨이 울렸다.

A씨는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그의 눈앞에 5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의뢰인이었다. 테이블에 앉은 그들은 서로를 탐색했다. 용무를 나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뢰인의 입에서 "무역회사에 있는 유승준(가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봐 달라"는 말이 나왔다. 의뢰인은 유승준이 낮 시간에 누구와 만나는지도 알아봐 달라 했다.

A씨는 의뢰인으로부터 유승준이 다니는 무역회사의 이름을 들었다. 작업에 착수한 A씨는 법인 등기부등본을 열람하여 유승준이 다니는 회사와 주소지, 운행하는 차량을 확인했다. 이후 A씨는 자신의 조력자들과 함께 유승준의 차량이 주차돼 있는 서울 한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조력자는 사람들이 오는지를 살폈고 또 다른 조력자는 GPS 위치추적장치를 차량에 부착했다. 이들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A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유승준의 차량을 미행하면서 카메라 셔터를 연이어 눌렀다. 촬영된 사진은 의뢰인에게 전송됐다. 사진 한 장 가격은 100만원을 상회했다. 의뢰인은 계속 유승준을 감시해달라고 했다. A씨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었다.


위치추적 기본
대부분 불륜

사무실로 돌아온 A씨는 또 다른 의뢰인으로부터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익명의 의뢰인은 "김동규(가명)가 외근을 핑계로 서울 외곽에 있는 오피스텔을 찾고 있다"며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A씨는 낮은 수임료 등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의뢰인의 요청을 묵살했다. 당분간 A씨는 유승준을 미행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현행법상 특정인의 소재나 연락처를 알아내거나 금융거래 등 상거래관계 외에 사생활을 조사하는 일은 불법이다. 그럼에도 A씨는 그간 민간조사업자로 소개됐다. '셜록홈즈'란 이름도 사용됐다. 그렇지만 실상은 탐정을 빙자한 심부름센터 직원이었다.

수탁 받은 사건도 그렇고 근사한 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A씨가 받은 의뢰는 며칠 전 아내가 집을 나갔으니 찾아달라는 의뢰, 아내에게 애인이 생긴 것 같으니 뒤를 밟아달라는 의뢰, 특정 주소지에 내연녀가 아직 살고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의뢰, 자신의 동거남이 실제로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 등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A씨는 같은 기간 한 여성 의뢰인으로부터 "남편이 강원도에 있는 한 리조트로 세미나를 갔다고 하는데 정말로 세미나를 간 게 맞는지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A씨가 한 일이라고는 리조트로 차를 끌고 가서 세미나가 열렸는지를 보고 오는 게 끝이었다. 산업 스파이를 추적하고 지명 수배자를 뒤쫓는 일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부산을 거점으로 암약한 한 사립탐정은 '불륜 원스톱 서비스'로 유명했다. 그는 남편이나 아내의 외도 증거를 잡아달라는 청탁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며 수익을 올렸다.

업무 특성상 미행을 하게 된 경우가 많았는데 배우자의 차종을 물어본 뒤 대형차는 500만원, 중형차는 300만원 하는 식으로 가격을 붙였다고 했다.


사립탐정 공인 초읽기…이르면 내년 통과
"아직 멀었다?" 흥신소 직원들이 물 흐려

또 불륜 포착 과정에는 위치추적기를 필두로 키홀더형 카메라, 볼펜형 녹음기 등이 동원됐다. 당사자 몰래 채증을 했음은 물론이다.

한 유명 연예인은 흥신소(심부름센터) 직원을 붙여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도 했다. 해당 흥신소는 아내의 과거 행적과 관련한 뒷조사도 병행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한 중견기업 오너는 아내로부터 집안내력 등과 관련한 뒷조사를 당했다고 한다. 대학교 학적부를 들추고 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뒤지는 식이다.

제법 이름 있는 흥신소의 경우는 자신들의 정보원을 가동해 특정인물의 개인정보 조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기자가 공식적으로 접촉한 한 흥신소 직원은 부산으로 출장 중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로부터 의뢰를 받았으며 어떤 사건을 수임했는지 밝히기를 꺼려했다.

만나기 어려우면 전화라도 하자고 했다. 그러자 이 직원은 "전화는 아니다"라며 "예의는 갖다 버렸냐"고 훈계했다. 앞뒤 안 가리고 여기저기 다 물어보는 것이 특기인 이 조사관은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전국 곳곳을 헤집고 있다.

또 다른 흥신소 직원은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소위 말해 경찰과 끈이 닿는 능력자다.

자칭 조폭 출신 자산가 등과도 친하다. 잠시 흥신소 업계를 떠났던 그는 얼마 전 현업에 복귀했다. 그와 의뢰인으로 만나 호형호제하게 된 한 사업가는 "해결사라기보다는 브로커에 가까웠다"며 "경찰을 소개시켜주고 이득을 챙겼는데 나중에 내가 직접 경찰을 뚫으니 만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업가처럼 누구나 경찰과 끈이 닿을 수는 없는 일. 때로는 "공권력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범죄자가 '사립탐정'을 찾기도 한다.

해결사 자처
"도장 찍으시오"

탐정 B씨는 지방에 있는 한 교도소를 찾았다. 강간치상죄로 수감 중인 고영진(가명)을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영진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한 직원과 만난 뒤 사건을 수임하기로 하고 면회 절차를 밟았다.


면회실 유리벽 틈으로 고영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사 관계자와 미리 입을 맞춘 B씨는 "재판에 필요한 단서를 찾고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B씨는 "(당신의 무죄를 입증할) 유리한 증인을 찾아 녹음해 증거로 제출하겠다"며 "경비는 나중에 받을 테니 계약서에 도장부터 찍어 달라"고 했다.

B씨의 행동은 변호사가 아니면서도 송사에 관여해 법률사무를 취급한 범죄행위였다. 그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동행한 직원으로부터 계약비 명목으로 30만원을 받았다. 이어 그는 녹취록 작성비, 교통비, 식비 등의 실비 명목으로 모두 1300만원을 받았다.

앞서 B씨는 "내가 몇몇 사건의 목격자나 증인을 찾아 판결을 뒤집었다"며 "검사의 잘못을 밝히는 능력이 있으니 조사과정의 잘못을 짚어 (의뢰인의) 무죄를 받아주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믿은 고영진은 500만원씩 두 차례에 나눠 B씨가 지목한 녹취전문 흥신소로 현금을 송금했다. 그러나 1000만원을 입금 받은 흥신소는 B씨의 가족이 운영하는 흥신소였다.

연예인에 회장님·사모님도 '기웃기웃'
"뒷조사 해달라" 심부름센터에 사건 의뢰

더구나 B씨의 일처리는 미덥지 못했는데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의 대화를 무차별 녹음하는가 하면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녹취록을 작성하는 등 의뢰인의 기대를 저버렸다. 결과적으로 B씨는 의뢰인에 의해 본인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굴욕을 맛봤다.

그나마 B씨는 셜록홈즈처럼 사건을 조사하는 흉내라도 냈지만 남의 사생활을 캐던 A씨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유승준을 쫓던 A씨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A씨는 유승준 미행을 위해 운전업무 종사자를 한 명을 섭외했다. 그는 A씨의 지시를 받아 유승준의 차량이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과 연결된 지하주차장으로 유승준의 차량이 들어갔고, A씨의 차량이 뒤를 따랐다.

그런데 백미러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유승준이었다. 유승준은 주차를 중단하고 A씨의 차량에 따라 붙었다. 당시 유승준은 뒤편의 차가 자신을 따라오는 이유를 물어보려 했다. 미행이 발각된 것이다.

긴급 상황에 운전자는 당황했다. 유승준은 차문을 열고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운전자는 가속 페달을 밟아 현장을 벗어나려 했다. A씨의 차량이 급발진하자 유승준은 이를 피하다가 주차장 벽기둥에 부딪혔다. 이 사고로 유승준은 허리 부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주차장을 빠져 나가던 A씨의 차량은 당시 정차 중이던 또 다른 차량을 들이박았다. 해당 차량의 운전자도 부상을 당했다. 이 장면은 주차장 CCTV 및 피해자 차량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그러나 운전자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했다. A씨 일당은 모조리 경찰에 붙잡혔다.

범죄자도 의뢰
유명인도 의뢰

조사 결과 A씨에게 미행을 사주한 의뢰인은 한 법인기업의 회장이었다. 그는 기업 대표이사로 있는 자신의 아들과 유승준의 딸이 교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유승준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회장님은 셜록홈즈를 고용해야 했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본인 역시 '범털' 신세를 면치 못했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