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해병대캠프 참사 뒷이야기

유족들 두번 울린 “별지 이면합의 있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된 안타까운 소식이 연일 전해지면서 국민들의 슬픔이 가시지 않고 있다. 비통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바다에 갇힌 아이들이 떠올라 죄책감마저 든다. 전형적인 ‘인재’인 이번 사고는 지난해 발생한 사설 해병대캠프 실종 사고와 어느 정도 닮아 있다. 사고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가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 문제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뒷짐 지고 물러나 있다는 점이다. 해병대캠프 실종 사고로 인한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해 윗사람이 잘해야 아랫사람도 잘한다는 것. 이번 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는 국가운영의 총체적 난국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발생한 사설 해병대캠프 실종 사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해병대캠프 실종 사고는 세월호 사고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사고 중심에 있으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와 닮은
해병대캠프 사고
 
해병대캠프 사고는 지난해 7월18일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열린 사설 해병대캠프에 참가했던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벗고 바다로 들어가라는 교관의 지시를 따르다가 깊은 갯골에 빠진 뒤 그중 5명의 학생들이 파도에 휩쓸려가 실종·사망한 사건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한 선원들의 선내방송과 오버랩된다. 당시 갯골에 빠져 허우적대던 학생들은 교관들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쳐 애원했지만 교관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호각만 불 뿐이었다.
 

바다에 빠진 학생들이 믿은 건 친구뿐이었다. 학생들은 서로의 손을 연결해 갯골에 빠진 친구들을 구조해냈지만 끝내 5명은 물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교관들은 5명이 실종됐다는 학생들의 말을 무시한 채 “숙소에 있을 거다”라며 숙소를 찾아보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처신을 보이면서 구조할 시간을 허비했다. 그제서야 사고 30분 뒤 해경에 신고했다. 그리고  다음날 동틀 무렵, 첫 아이의 시신을 시작으로 마지막 아이까지 모두 바닷속에서 인양됐다. 아이들은 바다로 끌려들어간 지 하루 만에 원혼으로 육지로 돌아왔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고 책임자인 훈련교 김모(38)씨와 이모(31)씨, 그리고 교육훈련 본부장인 이모(44)씨 등 세 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금고 2년~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이 사고로 교육부는 사설 해병대캠프에 학생들의 참가를 금지하기로 결정했고, 해병대사령부 측도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며 해병대캠프 상표등록을 신청했다. 난무하는 사설 해병대캠프를 없애기 위한 취지였다.
 
당시 공주사대부고 이상규 교장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혔으나, 유족들은 사퇴가 아닌 파면을 원했다. 결국 이상규 교장은 서만철 전 공주대 총장(현 충남교육감 예비후보)에 의해 파면됐다. 그러나 사고 이후 희생자 유족들은 책임자 엄벌과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 마련을 다짐한 정부의 약속 중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고 호소하며 130여일 넘게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와중에 지난 2월17일 경주 마리나 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지며 부산외대 학생 등 10명이 목숨을 잃었고, 지난달 16일에는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며, 안산 단원고 학생 수백명이 사망·실종됐다. 이처럼 ‘학생활동’이 ‘죽음’으로 변모한 이유는 어른들의 무책임 때문이었다.
 
해병대캠프 사고 유족들은 “작년 7월 강압적인 훈련 속에서 구명조끼 없이 바다로 들어갔다가 5명의 학생들이 희생된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는 이러한 잘못된 군사교육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학생들이 희생된 지 300일이 돼 가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에 대해 전면 재수사를 실시하고 현장검증을 통해 사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며 관련 책임자들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들은 정부가 여전히 군사훈련과 안보교육을 장려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소식에 동병상련의 눈물을 흘리면서 진도체육관을 방문해 세월호에서 실종된 단원고 학생 가족들을 위로했다. 또한 해병대캠프 참사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어린 원혼 만든

무책임한 어른들
 
애초에 해병대캠프 참가 학생들이 머물렀던 H유스호스텔은 돈을 벌고자 인근 앞바다를 이용해 이전부터 해병대체험을 실시해오던 해당 유스호스텔 건물을 인수했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걸림돌이 생겼다. 바다를 사용해 돈을 벌기 위해선 공유수면점사용허가를 받은 후 해경에 수상레저사업등록을 해야 하는데, 허가기관의 이용협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사익 추구를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H유스호스텔은 국립공원 경계를 조금 벗어난 곳에 다시 허가를 신청했고, 결국 ‘공유수면점사용허가’를 받아냈다. 그리고 해경은 H유스호스텔 앞바다 사용권(수상레저사업등록)을 허락했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를 통해 법적 문제없이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해병대체험 프로그램’이 그것. 문제는 학생들을 교육할 교관 채용이었는데 베테랑이 아닌, 갓 전역한 해병대 청년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면서 문제를 만들었다.
 
결국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라”고 말했지만, 사정당국의 수사는 미적지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해경 합동수사본부는 사고 발생 보름여 만에 서둘러 수사를 마무리했다. 사고 직후 지역 언론을 통해 ‘A사가 H유스호스텔의 실소유주다’는 정황이 알려졌지만 검·경 모두 A사에 대한 수사를 접은 채 사안을 매듭지었다.
 
검찰은 해병대캠프 진행 관계자 5명만 업무과실상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정작 H유스호스텔 측은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다. 때문에 각종 의혹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고 책임자들은 부당을 주장하며 항소했고, 현재 대전고법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세월호 닮은꼴’ 사고 10개월째 갈등 여전
자식 잃은 슬픔과 합의 문제로 고통 나날
 
지난해 12월31일 발표된 금융감독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H유스호스텔은 A사의 종속기업이다. H유스호스텔은 청소년수련시설로 허가받은 4개동, 숙박용 2개동, 근린생활시설 6개동 등 모두 12개동의 건물로 이뤄졌다. 이 가운데 H유스호스텔 등이 소유한 건물은 단 3개동에 그쳤다. 지난해 7월 해병대캠프 사고 직후 A사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살펴본 금감원은 A사가 H유스호스텔의 실소유주라고 설명했다. 사고 발생 4개월여 후인 지난해 11월, 정부는 A사 측에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병대캠프 사고는 잊혀지는 듯 했지만 사고로 인한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지난해 공주대 측은 유족들에게 ‘이면합의’를 했다고 전해진다.

끊이지 않는 잡음
비리의 온상
 

지난해 7월24일 새벽, 서만철 전 총장, 교육부 사무관, 공주대부고동창회 관계자와 유가족 대표가 보상 등에 대해 구두 합의를 한 후 별지를 작성하여 서명을 했다는 것이다. 그 별지에는 국가보상금 외에 특별위로금 지급, 장학재단 설립, 의사자 지정, 공주대부고 명예졸업장 수여, 추모비 건립 등이 기재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보상 등과 관련해 약속 위반사항이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이에 유족 측은 크게 분노하면서 인권 침해 진정과 함께 거센 항의를 하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내 합의해주는가 싶더니 결국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지만 합의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유족들의 합의 과정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원만한 합의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현재 유족들을 자식을 잃은 슬픔과 더불어 합의 문제로 2차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 문제의 전적인 책임이 공주대 측에 있는 건 아니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서만철 충남교육감 예비후보 측은 이면합의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부처 간 떠넘기기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가운데 이면합의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진 서 후보 관련 논란도 적지 않다. 서 후보의 두 자녀가 외국인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서 후보의 두 자녀는 대전외국인학교(TCIS)를 졸업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이 지난 3월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전국제학교 학비는 1인당 연 5032만원으로 전국의 외국인학교 중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이 학교는 2012년 국정감사에서 부유층 자녀가 다니는 학교라는 지적을 받았다. 공주대 총장을 역임하고 충남교육감 후보로 나선 서 후보가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보냈는데 어떻게 공교육의 수장을 맡겠냐는 비판이 나온다.
 
아들의 병역문제도 제기됐다. 서 후보의 아들은 2003년 미국국적을 선택하면서 병역 의무를 벗었다. 관련법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 18세 전 국적포기 신고를 해야 병역이 면제된다. 서 후보의 아들은 2012년 6월, 대전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 후보의 장녀는 미국 국적을 유지하다가 2011년 한국 국적을 재취득했다. 미국에서 결혼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서 후보는 자신의 자서전인 <교육솔루션>을 통해 “(미국 유학시절에 자녀들이 태어나) 미국에서 출생신고를 하는 바람에 두 아이 모두 이중국적 상태였다”며 “한국으로 돌아와 미련 없이 두 아이의 미국 국적 포기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국 국적이 말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국제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이들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다고 해 존중해줬다”며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한국 교육제도와 미국교육제도를 비교 연구하고 나만의 교육 철학을 가다듬는 데에도 많은 보탬에 됐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 후보가 공주대 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교수 채용 비리가 연속적으로 발생하기도 했다. 2012년 음악교육과 교수 채용 비리로 전·현직 교수 4명이 구속 기소됐다. 같은 해 체육학과 교수 채용 심사 오류로 합격자 번복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에는 공주대 산업과학대학 원예학과 교수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일어 교수들이 공주지청에 진정서를, 총장에게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서 후보는 독단적인 학교운영 등으로 학내 교수회의 불신임을 받기도 했다. 2012년 4월 공주대 교수회에서 총장불신임 투표를 진행하여 참여교수 65.5%가 찬성할 정도였다. 공주대 한 교수는 “서만철 전 총장과 관련된 비리가 수십 가지”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공주대 교수들 대부분이 서 후보가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한다는 것.
 
비리로 얼룩진 공주대…구조적인 문제 부각
서만철 충남교육감 후보 둘러싼 의혹들 부상
 
비교적 최근에 논란이 된 ‘공주대 성추행 교수 사건’은 2012년 12월 미술교육과 재학생 26명이 2명의 교수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며 학교 상담실에 피해를 호소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피해 학생 중 4명이 고소하면서 가해 교수들은 2013년 4월 각각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그해 2학기, 수업을 그대로 진행하면서 공주대는 학생들의 수업 배제 요구를 묵살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은 이어졌다. 2014년 1학기 수업도 개설될 정도였다. 이때부터 언론이 관심을 가졌고 결국 가해 교수들은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게 됐다. 일각에서는 서 후보가 당시 교수들을 비호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 후보가 총장직에 사퇴한 뒤에야 여론 악화를 이유로 징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주대 운영 
무능력 도마
 
공주대 산학협력단을 둘러싼 의혹도 제기됐다. 현 충남교육감 김종성은 장학사 비리사건으로 구속된 상태다. 그는 1심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과 위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징역 8년형, 2심에서는 위계 공무집행 방해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받아 징역 3년형을 받았다. 특정 교사를 장학사로 뽑도록 지시한 혐의다. 
 
이 산학협력단은 서 후보가 총장 재직시절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산학협력단에 낙하산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2011년, 민주당 김유정 의원은 이러한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교과부 국정감사에서 “휴직 중 국립대 산학협력단에 억대 연봉으로 취업해 사업비 수주 로비활동을 벌이거나 유관 연구소에 취업해 자문 역할을 하면서 억대 연봉을 챙겨온 교과부 공무원들이 수두룩하다”고 밝혔다.
 
당시 김 의원이 공개한 사례를 보면 먼저 한 국장은 휴직 전 연봉(8170만원)보다 46.9%(3830만원) 많은 1억2000만원에 1년간 공주대 산학협력단 연구협력본부장으로 취업했다. 그가 공주대 산학협력단과 맺은 고용계약서에 따르면 주당 2∼3일 근무에 월 10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김 의원은 “연구협력본부장이란 직함이 국가 R&D사업을 따오는 영업이사로 취업한 것을 자인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공주대 산학협력단을 둘러싼 비리가 나오는 이유는 충남교육청의 각종 용역을 이 산학협력단이 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학협력단을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도 나오고 있다. 앞서의 공주대 한 교수는 “서만철 비리와 관련해 검찰이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해 선거를 앞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군사훈련식 병영체험, 무엇이 문제인가?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도의 병영체험 참가 학생 수는 11만1300여명에 이른다. 윤명화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 시내에서만 병영체험에 참가한 학생 수는 3만5500여명에 이른다. 또한 지난 3년간 국가보훈처를 통해 체험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약 3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이러한 훈련 속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불합리한 제도와 반인권적 처우에 정당한 이의를 제기하는 법이 아니라 순응하는 법만을 배우게 된다”며 “사회의 부조리에도 ‘침묵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관리자들의 무책임한 선내 방송에 순응하다 희생당한 학생들은 전체주의적인 규율문화에는 익숙했지만, 재난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구체적인 방법 그리고 상황에 대처할 비판적 사고와 자율적 결정 능력 발휘와 관련해서는 국가로부터 제대로 교육받은 적도 훈련한 적도 없는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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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