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보건복지부의 이상한 행보가 빈축을 사고 있다. 세월호 침몰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진 상황을 틈타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슬쩍 내놨다. 보도자료의 내용은 직장인들의 건강보험료를 올린다는 내용이다. 직장인들은 올해도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게 됐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복지부가 세월호 참사를 유리하게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인천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는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에서 매월 건강보험료만 7만원이 나왔는데 이번 달에는 더 떼이게 생겼다”며 “이런 시점에 건보료 인상 소식을 슬쩍 뿌리는 복지부의 꼼수에 화가 난다”고 비판했다.
혹시 일부러?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건강보험료를 정산한 결과 전체 직장가입자 1229만명 중 1000만명에 대해 1조5894억원의 정산보험료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직장인 1229만명 중 761만명은 임금상승으로 1조9226억원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소득이 줄어든 238만명은 1인당 평균 7만원으로 3332억원을 돌려받게 된다. 1인당 평균 정산금액은 12만9000원으로 사용자와 가입자가 각각 6만4500원씩 나누어 내야 한다. 예컨대 지난해 연간 소득금액이 500만원이 증가되면 14만7250원의 정산보험료를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정산보험료는 4월분 보험료와 함께 이달 25일에 고지되고, 5월10일까지 납부해야 한다. 건보료 정산액이 이처럼 커진 것은 임금 인상과 함께 연말에 받은 성과급에 대한 건보료를 뒤늦게 징수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연말정산에 따라 실제 건보료 인상률은 4%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보험료 정산액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임금변동 시 사용자가 변동된 임금을 즉시 건강보험공단에 신고해 보험료에 반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사후정산은 2000년 7월1일 건보공단이 출범하면서 시행되고 있다. 연도별로 직장가입자의 추가 징수한 보험료는 2009년 1조1164억원, 2010년 8043억원, 2011년 1조4533억원, 2012년 1조6235억원, 2013년 1조5876억원, 올해는 1조9226억원이다.
이렇게 추가 징수된 건보료는 5월부터 건강보험 재정의 흑자로 쌓이게 된다. 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료 재정 잔고는 지난해 말 현재 8조2203억원이고, 정산액 1조원이 추가돼 올해도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정적인 건강보험 재정 확보를 위해 직장인의 임금이 오르거나 내린 만큼 보험료를 정산하는 것은 필요한 절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험료 사후정산이 직장가입자에 한정되다보니, 지역가입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건보료 사후정산 미지급액을 직장가입자가 채워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복지부 예정 없던 건보료 인상안 발표
세월호 침몰에 침체된 분위기 틈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복지부가 보도자료를 배포한 시점이다. 복지부는 지난 18일 이 자료를 발표했다. 18일은 주말 연휴를 앞둔 금요일로 세월호 사고 수습이 한창이던 때다. 전 국민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린 상황이었다.
출입기자들은 복지부에 발표 시기를 조율해 다음 주에 보도자료를 정식 배포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료 사후 정산은 중요한 자료인 만큼 현재 보도가 나가면 주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자료배포를 강행했다.
복지부의 전략은 성공했다. 관련기사는 세월호 침몰 관련 기사에 묻혀 눈에 띄지 않았다. 경제지에서도 ‘단신 기사’로 처리됐다. 복지부는 담당자 부재를 이유로 답변을 회피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답변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짧게 답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료 사후 정산을 발표할 때마다 직장인들로부터 ‘건보료 폭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건보료 인상’ 보도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부담되는 일이지만 민감한 사항인 만큼 크게 보도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복지부가 일주일 전에 예고하는 보도자료를 사전에 공지하지 않고 갑자기 발표한 것.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의 정신이 침체된 상황을 틈타 올해 정산액을 기습 발표한 셈이다.
3년 전에도 복지부는 건보료 인상안을 이런 식으로 발표했다. 지난 2011년에도 복지부는 보궐선거(4월27일)를 앞두고 건보료 정산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건보료 정산액이 1조6227억원에 달하자, 복지부는 매년 월급날인 25일 전에 발표하던 직장인 건보료 정산 결과를 특별한 이유 없이 26일로 연기했다.
3년 전에도…
복지부는 같은 내용의 자료를 ‘정산 작업이 늦어졌다’는 핑계로 직장인의 월급날(25일)보다 사흘이나 늦춰 28일 자료를 배포했다. 당시에도 선거를 앞두고 건보료가 급증하면 민심이 여당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설 수 있어 기간을 늦췄다는 의혹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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