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덮칠 '강덕수 살생부' 실체 추적

'벼락부자' 회장님 비밀수첩에 정치인 빼곡

[일요시사=사회팀]  '제2의 김우중'으로 불렸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이명박정부 당시 화려하게 비상했던 강 전 회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사정기관의 '제물'로 전락하며 격세지감을 실감하고 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칼잡이(특수통을 뜻하는 검찰 은어)'의 명예를 걸고 강 전 회장을 겨누고 있다. 수사 대상에는 지난 정권 실세도 조심스레 거론된다. 이제는 줄도 끈도 다 떨어진 강 전 회장. 그가 생애 마지막 승부수로 장막 안에 가려 있던 '살생부'를 꺼내들지 촉각이 곤두선다.

'샐러리맨의 신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고강도 사정작업으로 생애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임관혁 부장검사)는 수천억원대 횡령·배임 의혹 수사와 관련해 강 전 회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샐러리맨 신화
구속영장 청구

지난 4일과 6일 모두 두 차례에 걸쳐 강 전 회장을 소환조사한 검찰은 "사안이 중하고 STX그룹 계열사에 대한 은행자금 투입 규모가 10조원에 이르는 점 등을 볼 때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은 그룹 전 최고재무책임자(CFO) 변모(60)씨, 그룹 경영기획실장 이모(50)씨, STX조선해양 CFO 김모(58)씨 등과 공모해 STX중공업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는 등 회사에 약 300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들은 회사자금 540여억원을 빼돌린 혐의와 회계를 허위 처리하는 수법으로 분식회계를 꾀한 혐의를 함께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 3명에게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선 조사에서 강 전 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한 경영상 판단이었을 뿐 고의로 손실을 끼치거나 법인 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서는 실무를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CFO 김씨가 강 전 회장의 개입 사실을 일부 부인하고 있어 혐의 입증에 난항이 예상된다.


이날 검찰은 "STX조선해양과 STX건설 등이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2조3000억원을 분식회계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부품·자재·원료의 가격을 실제보다 낮춰 장부에 기재한 뒤 대손충당금을 적립하지 않는 수법 등으로 부실을 감췄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강 전 회장이 분식회계를 직접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청구된 구속영장에는 분식회계(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는데 검찰은 강 전 회장 등에 대한 신병을 확보한 후 대질심문 등을 통해 강도 높은 추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강 전 회장의 구속 여부와 맞물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소문만 무성한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이미 검찰은 복수 언론을 통해 강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압박하는 것이 '특수수사'의 관행이라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이번 수사는 기존 대기업 수사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례적 수사
로비 규명 방점

현재 검찰은 소위 '강덕수 리스트'로 불리는 정·관계 로비 의혹 규명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기업 사정작업에서 횡령이나 배임이 아닌 뇌물 제공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정황이 확실하거나 혹은 다른 의도가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어느 쪽이 됐든 강 전 회장과 가까운 관계에 있던 인사들은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지난 6일 검찰은 강 전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와 관련해 강 전 회장이 관리하던 공무원 100여명이 포함된 선물리스트를 확보했다고 알렸다. 같은 날 검찰은 강 전 회장을 불러 선물의 대가성 여부를 집중 추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검찰은 이들 중 일부 공무원이 강 전 회장에게 사업상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선물을 받았는지 등을 파악하고 있다.

검찰 수천억 배임·횡령 구속영장 청구
정관계 로비 의혹…MB정권 실세들 거론

강 전 회장은 그간 각종 기업 인수전에 뛰어들어 몸집을 불린 뒤 회사를 키워 부채를 갚는 경영스타일을 고집했다. 때문에 선물을 받은 공무원 중 일부는 대출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드러난 로비 규모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강 전 회장은 검찰이 STX그룹을 압수수색했을 때 디가우징(Degaussing) 기술로 컴퓨터 파일들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디가우징은 강력한 자력을 이용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실상 전문가를 동원한 고도의 증거인멸인 셈이다. 이는 강 전 회장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을 증폭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때문에 검찰 안팎에선 "강 전 회장이 직접 로비에 개입했거나 가담한 증거를 남겨뒀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강 전 회장이 사정기관의 타깃이 됐다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2년인데 그 사이 (금품로비에 대한) 방어는 다 끝나지 않았겠냐"고 의문을 표했다. 예컨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STX그룹이 세계 유례가 없는 수직성장을 한 배경을 놓고 그간 뒷말이 끊이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복수 언론 관계자는 "STX 관계사 직원으로부터 정·관계 로비 리스트와 관련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중 특혜가 의심되는 거액대출 및 해외건설 수주와 맞물린 의혹은 이명박정권 실세들에 대한 로비설로까지 확대됐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베일에 싸인 '강덕수 리스트', 실체가 있을까.

우선 강 전 회장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월급쟁이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대기업 총수까지 오른 나름 자수성가한 오너다. 널리 알려진 대로 STX그룹은 창립 10년도 안 돼 재계 순위 10위권에 안착했고 같은 기간 매출은 100배 이상 늘었다.

강 전 회장의 트레이드마크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이다. 그는 굵직한 매물을 먹어치우면서 사세를 키웠고, 한때 한국 부자순위 20위권에 들기도 했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존경받는 구루'였던 강 전 회장. 그러나 강 전 회장의 숨길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 바로 '인맥'이었다.

태생적 한계
로비로 극복?

지난해 한 재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나 "강 전 회장 주변에 유명한 인사가 그리 많지 않다"며 "지연, 학연, 친인척 등 어디를 둘러봐도 내세울 만한 큰 인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상고 출신에 순수 국내파인 강 전 회장은 주류 재벌가와 동떨어진 성장환경 탓에 재계 내부 입지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명박정부 들어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3대 경제단체에 입성한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이어 한국무역협회와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재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어릴 때부터 자라온 환경이 한 울타리에 있는 재벌가 사람들은 '끼리끼리' 명문 유치원에 다닌 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안면을 익힌다.


또 해외유학 등 '스페셜 코스'를 밟으면서 본인들만의 탄탄한 인맥을 형성한다. 하지만 강 전 회장은 이른바 'SKY' 출신도 아닌데다 말단부터 시작해 속된 말로 '밑천'이 없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룹의 자금난이 심해지자 강 전 회장은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경제단체 임원직에서도 물러났다. 서로가 경영권을 챙겨주는 재벌가 풍속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 STX그룹 한 관계자는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강 전 회장이 줄을 댄 것으로 보이는 이명박정권 실세들과 STX그룹 간의 묘한 관계다. 표면상 강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차례 수행하는 등 정권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12년 STX그룹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단기차입금 2300억원을 융통했고 산업운용자금 1800억원도 긴급 확보했다. 다른 민간 은행들은 앞다퉈 대출금을 줄이는 추세였는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유독 '퍼주기'로 STX그룹을 도왔다. 지난 정권 비호설이 나온 주된 배경이다.

공무원 대거 포함된 '선물 리스트'
2년 전부터 내사…정치권 좌불안석

그간 산업은행은 각 정권마다 최측근이 수장자리를 꿰찼다. 이명박정부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은 "계열사들이 모두 나서서라도 (STX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이 강 전 회장의 독자적인 판단인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어찌됐든 강 전 회장은 지난 정권으로부터 마지막 호의를 받았으나 끝내 정치권은 그를 버렸다. 생각만큼 돈독한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 전 회장의 공식적인 입장은 "난 로비를 하지 않았다"이다. 그는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기자들이 정·관계 로비 의혹을 묻자 "해외 출장이 많아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강 전 회장이 아닌 누군가가 대신 로비를 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그 누군가로 의심 받는 사람이 바로 이희범 전 산업부장관이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이 이 전 장관을 영입한 이유를 수상히 여기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STX에너지·중공업 총괄회장을 지냈다. 이 전 장관은 참여정부 인사이면서 2010년 9월부터 지난 2월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해 이명박정부와도 인연이 깊다.

검찰은 당시 그룹 안팎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강 전 회장이 이 전 장관을 로비창구로 영입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는 이 전 장관을 통해 '검은돈'이 정치권에 살포됐다면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참고인 신분이지만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이 전 장관의 신분이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도 점쳐진다. 강 전 회장과 등을 돌린 뒤 LG상사로 둥지를 틀었던 이 전 장관 입장에선 이만한 악연이 없는 셈이다.

키맨 이희범
윗선은 박영준?

강 전 회장에 대한 사정작업과 맞물려 또다시 등장하는 인물은 '왕차관' 혹은 '미스터 아프리카'로 알려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다. 앞서 STX그룹은 아프리카 가나의 국민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맛봤다.

'가나 하우징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사업은 정권 실세인 박 전 차관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현지 기공식에 참석한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은 이 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측근 중 1명이다. 여러 정황상 정권 차원의 '밀어주기'가 의심됐다. 이명박정부가 주도했던 자원외교의 한 축이 STX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강 전 회장 측은 '박 전 차관이 프로젝트를 주선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발한 바 있다.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실제로 "수사기관이 내사에 들어갔지만 아무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채 손을 털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박근혜정부는 정국의 고비 때마다 이명박정부에 대한 사정작업으로 난맥상을 돌파했다. CJ와 효성 등 지난 정권과 연분이 깊었던 기업들은 예외 없이 '칼잡이'의 제물이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기업과 정치권을 동시에 친 특수수사는 없었다. 이번 수사 결과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수사의 남은 성패는 강 전 회장이 쥐고 있다. 정·관계 로비 의혹을 명백히 밝힐 사람은 권력에 남은 빚이 없는 강 전 회장뿐이다. 재기가 어려워진 강 전 회장 입장에서 '플리바게닝'은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다. 줄도 끈도 다 떨어진 그가 내밀 '마지막 카드'에 관심이 집중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진태호' 첫 대기업 수사
강덕수 수사는 물타기?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에 대한 사정작업은 김진태 검찰총장이 취임한 후 처음으로 개시되는 대기업 수사다. 그러나 이번 수사를 바라보는 검찰 안팎의 시선은 기대만큼 곱지 않다. 이유가 있다.

강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해부터 예고됐다. 각종 사업과 관련한 투서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문제는 조용하던 검찰이 뜻밖의 시점에 칼을 빼들었다는 점이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수사 의뢰 7일 만에 압수수색을 하는 등 초고속으로 수사가 진행되는 것만 봐도 그렇고, 일부러 피의 사실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공표하는 것도 그렇고, 살아있는 오너가 아닌 죽은 오너를 겨냥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국면전환용 '물타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으로 메가톤급 역풍을 맞았던 검찰이 정·관계 로비 수사를 발판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때문에 검찰이 '실체 없는 로비 의혹으로 변죽만 울리다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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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