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허재호 수수께끼' 키맨들

'검은돈 가득' 판도라 상자 열린다

[일요시사=사회팀] 일당 5억원의 사나이.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224억원(최근 허 전 회장은 벌금 50억원을 선납하고, 남은 벌금에 대한 납부계획을 밝혔다)이나 되는 벌금을 납부하지 않고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는 꼴이 꼭 '그분'과 닮았다. 그렇지만 "29만원 밖에 없다"던 할아버지도 끝내는 꼬불친 돈을 토해냈다. 여론의 힘이었다. 이제 관심은 '황제 노역' 대신 추징이 가능한지에 쏠린다. 차명으로 은닉된 재산, 그를 비호한 정관계 스폰서가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통칭 '허재호 의혹'의 핵심 키맨들을 꼽아봤다.

지난 2007년 <일요시사>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두 얼굴을 도려낸 적이 있다. 당시 <일요시사>는 대주그룹의 기형적인 성장사와 족벌경영 폐해, 허 전 회장이 쥐락펴락한 법조계 인맥, 풀리지 않는 뉴질랜드 미스터리 등을 연속 시리즈로 고발했다. 특히 압류 대비용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가 하면 여성편력 등 위험한 사생활도 과감히 파헤쳤다.

실제 허 전 회장은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지난 2010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2011년 대법원은 허 전 회장에 대한 벌금형을 확정하며 그의 죗값을 물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내라는 벌금은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다.

해외 재산도피
도운 인물은?

뉴질랜드에서 허 전 회장은 황제마냥 호화생활을 했다. 초고급호텔로 지인들을 초청해 파티를 여는가 하면 입버릇처럼 "돈이 없다"면서도 카지노는 꼭 들렀다. 카지노 VIP룸에서 베팅을 할 때면 어디서 났는지 없던 돈이 생겼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하루 3000달러 이상을 꾸준히 쓴 것으로 추정된다. 뉴질랜드 현지 언론은 "허 전 회장이 80억원대 저택을 샀다"고도 보도했다. 세계일주를 위한 호화 요트는 덤이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빼돌린 재산이 없다"며 관련한 의혹을 부인했다.

허 전 회장이 '5일 노역'으로 탕감 받은 30억원(체포됐던 1일도 노역에 포함)을 제외하고 남은 벌금은 224억원(최근 허 전 회장은 벌금 50억원을 선납하고, 남은 벌금에 대한 납부계획을 밝혔다)이다. 여기에 국세 136억원, 지방세 24억원도 추징 대상이다. 또 금융권 빚 233억원은 언젠가 갚아야 할 부채다.


허 전 회장의 주요 재산 목록은 다음과 같다. 동양저축은행 땅 100여평, 오포 땅 2만여평, 전남·광주 일대 임야 13곳, 압수한 미술품 및 도자기 141점. 이밖에도 관련 재산을 모두 처분하면 최소한 벌금만큼은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정가는 300억∼500억원이다.

하지만 공매를 했을 때 유찰이 되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밀린 세금을 받으려고 세무당국 등에서 근저당을 설정해 놓은 것도 변수다. 추징 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지난해 있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환수 때처럼 허재호 일가에게도 강도 높은 추징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관건은 허 전 회장이 빼돌린 차명 재산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 자연스레 의혹의 눈초리는 그의 측근들에게 쏠린다.

허재호 차명재산
문어발 관리됐다

지난 3일 검찰은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 의혹과 관련해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알려진 10여명을 소환조사했다고 밝혔다. 사건을 맡은 광주지검 특수부(부장 김종범)는 지난 2002년께부터 허 전 회장의 차명 주식을 보유했던 것으로 전해진 대주그룹 고문변호사 유모씨와 이를 폭로한 하청업체 대표 백모씨 등을 조사했다고 알렸다. 관련자들은 검찰조사에서 "명의를 빌려줬다"며 혐의를 대부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백씨는 허 전 회장을 협박해 5억원을 받아낸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허 전 회장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수십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그동안 백씨는 허 전 회장의 '금고지기'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백씨는 전직 농협 직원으로 1980년대부터 허 전 회장과 친분을 맺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 허 전 회장의 재산형성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백씨는 농협에서 나온 후 대주건설과 관련한 하청업체를 20년 가까이 운영했다.


재산은닉 의혹 눈덩이…핵심 주변인 누구?
금고지기 백씨 구속 차명재산 윤곽 드러나

둘의 관계는 200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악화됐다고 한다. 허 전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던 2010∼2011년 사이 백씨는 허 전 회장 측을 협박해 모두 5억원을 갈취한 혐의로 지난달 구속됐다. 당시 허 전 회장은 백씨로부터 "국외 재산 반출과 차명 주식거래 등에 관한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백씨는 "과거 대주그룹 계열사였던 대한화재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제3자 명의로 맡겨 뒀던 회사 주식을 허 전 회장이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과거 허 전 회장은 2곳의 계열사와 함께 대한화재 주식 56%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 전 회장은 경영난이 오자 해당 주식 전량을 3500억원을 받고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만약 백씨의 주장대로 허 전 회장이 빼돌린 주식을 거래에 이용했다면 그에겐 횡령 혐의가 씌워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백씨가 허 전 회장의 재산관리인 자격으로 재산 은닉에 깊숙이 관여한 만큼 불법적인 외환거래나 부동산 매입이 있었는지 등을 따지고 있다. 또 검찰은 허 전 회장 부부와 대주그룹 계열사들이 뉴질랜드 현지 법인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250만달러(한화 약 26억원)를 비밀리에 주고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허 전 회장과 관련한 자금 흐름을 추적하던 금감원은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하고 증빙 자료를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에 KNC건설 등 10여개 법인을 설립하면서 관계 당국에 알리지 않는 등 관련법을 위반했다. 이들 회사는 대부분 허재호 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거나 출자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허재호 일가가 아닌데도 등기이사를 꿰찬 이모씨다.

이씨는 뉴질랜드 교민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다. 민주평통 뉴질랜드 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KNC건설의 새로운 CEO로 자리했다. KNC는 대주그룹의 후신이며 주력회사 KNC건설의 경우 허 전 회장의 아들로 알려진 '스캇허'씨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허 전 회장이 이씨에게 부탁해 일가의 재산관리를 맡겼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비슷한 시기 KNC건설이 뉴질랜드에서 대규모 아파트 사업을 벌였다는 사실은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또 이씨는 KNC글로벌매니지먼트 이사를 겸임했는데 같은 회사 대주주(지분 85%)는 스캇허씨로 확인된다.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따라서 스캇허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허 전 회장과 '조력자' 이씨의 특별한 관계는 허 전 회장의 호화 도피생활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씨는 자신이 등기이사로 있던 KNC엔터테인먼트 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 의혹이 불거진 직후다. 이밖에도 허 전 회장 측근들이 다수 이사로 포진한 '페이퍼컴퍼니'는 결국 허 전 회장의 자금 세탁을 위한 창구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허재호 친인척
뭉칫돈 주고받고

정황상 백씨와 이씨는 숨겨진 키맨이다. 배후에 있던 이들과 달리 허 전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황모씨는 핵심 키맨으로 부각되며 사정당국의 타깃이 되고 있다. 황씨는 허 전 회장의 차명 재산으로 강하게 의심받는 담양다이너스티(골프장)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골프장을 소유한 법인 HH레저는 황씨가 대주주다. 그는 HH레저 지분 50%를 갖고 있다.

앞선 검찰 조사에서 황씨는 "담양 골프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팔아서라도 벌금을 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HH레저의 총자산은 800여억원으로 파악된다. 이중 400억원 가량이 골프장 회원권 입회 보증금이다. 보증금과 같은 유형자산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겠다는 건 위험성이 높아 은행 입장에서 대출을 거부할 확률이 높다. 골프장 매각 역시 단 시간 내에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런데 허 전 회장은 해당 골프장 입회 보증금 명목으로 40여억원 규모의 채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 매체는 보도했다. 또 HH레저에 무이자로 빌려준 단기채권이 100억여원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즉 허 전 회장이 갖고 있는 140억원 상당의 채권을 현금화하는 게 순서임에도 담보대출이나 매각을 운운하는 건 눈속임이란 지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씨가 뉴질랜드에 소유한 30억원대 아파트가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이란 정황도 드러났다. 이 아파트는 거래 과정에서 허 전 회장이 세운 회사(페이퍼컴퍼니)가 최초 매입하고, 회사 이름을 바꾼 뒤, 다시 회사를 황씨에게 넘기는 복잡한 수법이 가동됐다. 다시 말해 허 전 회장이 빼돌린 돈이 뉴질랜드로 들어왔고, 아파트를 통해. 다시 황씨에게 전달된 것이다. 징세 회피나 세금 탈루 등 악의적인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황씨는 묵묵부답이다.

뉴질랜드 실세 주목 '조력자' 의심
친인척 총동원된 자금 세탁 의혹도

황씨의 곁에는 그의 형부(황씨 언니 A씨의 남편) 차모씨가 있다. 담양다이너스티 대표이사로 활동한 그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명품가구 전문점 '뮤제오'를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문을 연 뮤제오는 유럽에서 수입한 고급 가구만을 취급했다고 한다. 당시 임대계약자는 차씨, 하지만 여러 정황상 황씨가 이 회사 실소유주란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허 전 회장 측은 "뮤제오와 황씨는 관련이 없다"며 날을 세웠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뮤제오 지분은 HH레저 관련사인 HH개발이 100% 보유하고 있다. 뮤제오의 대표이사는 허모씨, 등기이사는 황씨다. 허씨는 허 전 회장과 황씨 사이에 태어난 맏이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허씨는 앞서 밝힌 스캇허씨와 다른 인물로 현재 스캇허씨는 대학생이라고 전해진다.

허 전 회장의 조카인 허숙 전 대주건설 상무는 황씨와 공동 명의로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주차장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가 270억원으로 추정되는 이 땅은 2008년 허 전 회장이 90억원을 들여 매입한 땅이다. 허 전 상무는 최근 빅토리아타워개발로 이름을 바꾼 대주하우징의 이사로 선임됐고, KNC엔터테인먼트 이사에선 '조력자' 이씨와 함께 동반 사퇴했다.


대주하우징은 뉴질랜드 현지 분양 등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로 광범위한 '허재호 해외 은닉 부동산'의 뿌리로 의심받고 있다. 대주하우징은 법인 유토피아타워가 대주주(지분 76%)인데 유토피아타워는 허재호 부부가 10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즉 허 전 상무는 허재호 부부의 대리인으로 부동산을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대주건설에서 일했던 황씨의 언니 A씨도 P건설을 운영하며 자금 세탁에 관여했는지 관심이다. P건설은 광주 금남로에 있는 건물관리업체로 황씨 자매가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는 HH개발과 관계회사임에도 감사보고서상 이를 명시하지 않아 의문을 자아낸다.

허 전 회장 측은 주로 HH개발을 통해 개인자금을 다른 곳으로 분산했다. 일각에선 HH개발을 허 전 회장의 개인금고로 보고 있다. 그만한 이유도 있다.

HH개발의 자금 흐름을 살펴보면 허 전 회장은 2007년 138억원을 HH개발에 빌려주고, 34억원을 상환 받았다. 2008년에는 회사에 맡긴 채권 466억원 중 263억원을 한꺼번에 돌려받았다. HH개발의 총 자산규모가 403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한 눈에 봐도 이상한 거래다. 이후에도 허 전 회장은 HH개발에서 수십억원의 현금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HH개발로 흘러간 돈이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으로 둔갑해 빠져 나간 셈이다. 

쏟아지는 의혹
숨겼나 막았나

허 전 회장의 동생 B씨는 지난 2월 근로기준법 위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항소 중이다. B씨는 기아자동차 직원으로 취업시켜 줄 것처럼 속여 2명으로부터 3200만원을 절취한 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간 B씨는 법조계에 쌓아 놓은 인맥이 비교적 탄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는 2000년대 중반 법조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법구회'의 스폰서로 소개된 바 있다. B씨는 법구회에서 수년간 총무역할을 하며 판사들의 차명 골프예약을 하고 식사비 등을 내주며 친목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당발로 알려진 B씨는 대주그룹 성장과정에서 대외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06년 허재호 일가의 횡령·탈세 및 분양 비리 의혹과 관련한 투서가 접수됐을 때 B씨가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미리 수사기관과 각본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아직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정관계 로비가 있었다면 키맨은 B씨가 될 것이란 게 주된 예측이다. 다만 검찰 입장에서 허 전 회장의 탈세 및 배임 등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미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을 다시 파고드는 것도 부담이지만 자신들의 허물을 들춰야 하기 때문에 '환부'만 도려내는 수준에서 수사가 마무리 될 것이란 전망이다. 검찰 수뇌부 역시 "이번 수사는 조속한 벌금 집행을 위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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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