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교과서 '짜깁기 교재' 유통 고발

"국민 세금이 학원으로 새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수년간 국가저작물을 이용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린 스타강사와 출판업체가 있다. 국정교과서 등을 인용, 짜깁기 출판을 한 뒤 학생들에게 팔고, 이윤을 남기는 식이다. 그런데 이게 관행이라고 한다. 눈 먼 국가저작물이 아무 제제 없이 사교육시장을 살찌웠던 셈이다. 지금도 학원가를 가보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저작권' 사용이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 '짜깁기 교재' 유통, 해법은 있을까.

지난달 감사원 앞으로 한 통의 민원이 접수됐다. 접수번호 '2014'로 시작한 민원은 감사원 측에서 민원인에게 확인 전화를 할 정도로 신빙성을 갖춘 제보였다. 민원인은 "감사원뿐만 아니라 교육부 쪽에도 관련한 내용을 질의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제보자를 직접 만났다.

국가 저작권 침해

전직 출판사 고위 임원 A씨는 "국가 세금으로 만든 교육물이 그동안 특정 저자와 출판업자의 영리를 위해 쓰였다"고 고발했다. 이어 그는 "한 개인이 수십억원의 돈을 챙겨갔는데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조금 더 자세한 내막을 물었다.

A씨가 밝힌 쟁점은 크게 세 가지. 첫째, 초등학교 지도서가 학원가 등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한 출판물로 둔갑했다는 것. 둘째, 특정 저자나 출판업체가 지도서를 짜깁기 한 책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는 것, 셋째, 지도서 저작권을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이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관련한 사실을 하나하나 맞춰보자.

먼저 일반인에게 '초등학교 지도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에게 문의한 결과 "초등학교 지도서는 현장 교사가 아이(초등학생)들을 지도할 때 참고하는 책"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대다수 학교는 현장 교사들에게 지도서를 일괄 제공하고 있다.


때때로 교사 개인이 필요에 의해 지도서를 시중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정식 출고가는 0원이지만 인터넷 서점 등에서는 4000∼1만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현직 교사가 지도서를 찾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수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어·수학·사회·과학 등 모든 기초과목 지도서 저자는 교육부(교육인적자원부·교육과학기술부)다. 듣기말하기쓰기, 실험관찰, 즐거운생활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초등학교 교과서 대부분 역시 교육부가 집필하고 있다(단 예외적으로 예체능과 관련한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아닌 검정교과서로 운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편찬한 출판물의 저작권은 어디에 있을까. 얼핏 봐서는 교육부에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저작권은 원저자에게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다.

초등학교 지도서가 출판물로 둔갑
특정 저자·출판사 수십억원 챙겨
정부는 사실상 방치…알고도 뒷짐

교육부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과서에 실린 콘텐츠는 원저자와 협의해 교육을 목적으로 허가를 받은 것이지 교과서에 실린 글·삽화·사진의 저작권이 국가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과서나 지도서는 (초등)학교 수업에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기타 영리를 목적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그런데 A씨는 답답해했다. 그는 "학원가에서 지도서나 교과서가 통째로 인용돼 정식 출판물로 유통되고 있는데도 정부가 단속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어느 정도를 베꼈다는 말일까.

몇 년 전 초등학교 임용시험을 준비했다가 현재는 교편을 잡은 한 교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했다. 이 교사는 "시험을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임용교재는 지도서와 교과서를 짜깁기한 형태로 나왔다"고 회상했다. 또 그는 "만약 저작권을 문제 삼는다면 전국에 있는 모든 학원 강사가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방에서 근무 중인 한 교사도 관련한 증언을 뒷받침했다. 그는 "우리 때는 초등임용시장에 강사 '탑3'가 있었는데 지금은 판도가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예나 지금이나 지도서를 인용하지 않고는 내용을 채우기 어렵고, '탑3' 역시 그렇게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출판사 전 사장 B씨도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과거 탑3 중 1명인 C씨와 계약을 맺고 초등임용교재를 출판했던 인물이다. 각 출판물마다 계약 조건은 달랐지만 수익의 약 10% 정도가 C씨에게 지급됐다고 한다. 가령 2만원짜리 책을 1권 팔면 2000원이 저자에게 지급되는 식이다. 이는 업계 관행상 상당히 좋은 조건이라고 한다.

B씨는 'C씨가 저자로 등재된 출판물을 아느냐'고 묻자 "인쇄나 유통 등 실무를 처리했을 뿐 저작권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B씨는 "법적으로 다툴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내가 사업을 접었을 때(2008년)만 해도 교과서 인용은 별 문제가 아니었고, 이제와 따지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자문을 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저작권침해의 경우 친고죄인데 국가나 원저자가 문제 삼지 않으면 사실상 (제3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렇지만 그는 "국가저작물은 보호대상인데 (동의 없이) 누군가가 영리를 목적으로 이용했다면 (관련기관이) 저작권료를 징수할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는 정부 입장은 어떨까.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한 관계자와 통화했다. 그는 "업계 관행이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운을 떼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일"이라며 말을 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에 따르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책을 만들려는 저자나 출판사가 원저자나 교과부의 승인을 맡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과부 입장에서 아무 개인에게나 허락을 내줄 리 없다는 게 해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출판사 측에선 원저자와 직접 협상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 만나고 다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그들이(C씨 등 유명저자)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제본 값만 받고 나눠줬다면 내가 왜 민원을 넣었겠냐"면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교재값으로 수만원씩 내야 하고 국가저작물을 제 마음대로 쓴 사람들은 수십억원씩 버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냐"고 되물었다.

기자는 학원가가 밀집한 서울 노량진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한 임용고시 준비생은 "교재 없이 독학은 말이 안 된다"면서 "샘(강사)이 추천해주는 교재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좋든 싫든 강사가 찝어준 책을 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와 관련해 한 학원 관계자는 "열이면 열, 교재 선정은 선생님이 한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서점. 기자는 전산을 이용해 C씨의 이름으로 된 책을 검색해봤다. 확인된 책 수는 정확히 120건.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나온 책들이다. 가격은 1만원대부터 3만원대까지 다양했다. 이중 2007년 이전에 나온 책들은 일부 절판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절판된 책들을 빼고 남은 책들이 전부 판매금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3월에 나온 3만원대의 책을 찾아봤으나 없었고, C씨의 책은 서점에 단 1권도 남아있지 않았다. C씨가 저자로 등재된 120권의 책(공저 포함) 대부분은 임용과 관련된 책으로 파악됐다.

징수 가능할까

지난 3일 기자는 C씨에게 전화를 걸어 '책을 살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C씨는 "온라인으로 책을 살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C씨는 저작권 얘기를 꺼내자 "말할 게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어 그는 기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수업도 해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하고, 바쁜 일이 많은데 어떻게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교육계에 정통한 한 언론관계자는 “많은 선생들이 교재로 돈을 번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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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