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간첩사건' 목 걸린 사람들

증거조작 후폭풍…단두대 누가 오를까

[일요시사=사회팀] 공안몰이 덕을 톡톡히 봤던 박근혜정부가 중대 기로에 섰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까닭이다.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벌써부터 남재준 국정원장, 황교안 법무 부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우에 따라 김진태 검찰총장의 거취마저 불투명해질 수 있는 매머드급 사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여파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대선 개입, 민간인 불법 사찰,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등으로 정국을 마비시켰던 국정원은 이번 증거조작 사건의 중심에서 또 다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국정원 정조준
원세훈도 도마

지난 12일 <동아일보>는 간첩 사건과 관련한 증거 위조를 주도한 인물이 국정원 대공수사국 A팀장(3급)으로 특정됐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검찰청 강력부장)은 국정원 조선족 협력자 김모(61)씨가 위조해 온 문서 2건을 가짜 '영사확인서'로 만드는 과정에서 A팀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영사확인서를 만든 건 이인철 주선양 총영사관 영사(4급)지만 그 윗선에선 A팀장이 증거 조작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중순 대공수사팀 김모 과장(4급)이 조선족 김씨를 만나 "유우성씨 변호인 측의 출입경 기록을 반박할 자료를 구해달라"고 한 것도 A팀장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와 이 영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위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 김 과장에 대해서도 소환 조사를 저울하고 있다.

그간 검찰은 문서 위조를 자백한 김씨의 진술을 근거로 이 영사와 김 과장의 연결고리인 '제3의 인물'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A팀장이 증거 조작에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검찰은 유씨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유씨에게 씌워진 간첩 혐의가 무죄로 선고되자 A팀장이 나서 위조를 지시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또 이 영사로부터 사전에 위조 사실을 보고받고도 이를 묵인한 것은 아닌지 등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수사 진행 상황을 보면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증거 확보 작업을 컨트롤한 A팀장에게 검찰의 화력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A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보다 더 윗선의 존재가 드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복수 관계자는 "국정원 조직 특성상 실무진이나 현장요원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증거 조작을 도모하긴 힘들다"고 증언하고 있다.

A팀장의 윗선인 대공수사국장(1급, 정부 부처 차관보나 실장급), 대공수사라인의 총지휘자인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이 조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또 국정원의 최종 결정권자인 남재준 국정원장도 파고 들어오는 칼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국정원 내부의 치열한 실적 경쟁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의 증거 조작 의혹이 면책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위법 행위에 대한 사법 처벌과는 별도로 문책성 인사가 단행될 것이란 전망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진퇴양난 남재준
전방위 사퇴 압박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의 원흉으로 남 원장을 융단폭격하고 있다. 남 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그간 야권이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번 증거 조작 사건을 기점으로 일부 여권 인사가 남 원장과 선을 그으면서 '남재준 해임론'은 탄력을 받고 있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양날의 검'으로 보고 있다. 북한과 관련한 공안사건이 적시에 터질 경우 득을 보는 건 아무래도 여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섣불리 이번 사건을 덮으려 할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 등을 돌리는 의원은 속출하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 중진 연석회의에서는 이 같은 여권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한 장본인은 (스스로) 그만둬야 한다"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김용태·조해진·심재철 등 이른바 친이계 의원들은 이 의원의 사퇴 요구에 동조했다.

친박계 일각에서도 '남재준 책임론'이 고개를 들었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국정원 수뇌부의 쇄신 등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은 "책임질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 안팎으로 '남재준 해임론'의 명분이 쌓이고 있는 중이다.

검찰·국정원에 화력 집중 "윗선 쳐낸다"
서천호 등 대공라인 대대적 메스질 불가피

때를 맞춰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남 원장에 대한 공세 수위를 한껏 높였다. 지난 13일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조치가 없을 경우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촉구 결의안'을 제출토록 하는 등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남 원장을 해임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암덩어리로 전락한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은 이번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이례적인 유감 표명을 했다. 지난 10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증거자료의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실체적 진실을 정확하게 밝혀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수사 전권을 위임받은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이로부터 6시간 만에 검찰은 국정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앞서 지난해 4월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로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던 검찰은 불과 10개월 만에 다시 최고 정보기관의 심장을 겨누게 됐다.

남 원장은 국정원장에 취임한 지 1년 만에 2번이나 조직의 안방을 내주는 굴욕을 당하면서 전방위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남 원장은 요지부동이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9일 남 원장은 예상 밖의 타이밍에 보도자료를 뿌려 빈축을 샀다. 관련 내용을 보면 '우리도 당했다'는 식의 해명인데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수사 결과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국정원을 향한 십자포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남 원장은 뒷짐을 진 채 방관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험대 선 김진태
도마 오른 황교안

정치권 한 관계자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이번 증거 조작 사건은 결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전자가 원세훈 국정원장 때 벌어진 일이라면 후자는 남 원장 취임 후 생긴 일이라 책임 소재가 다르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남 원장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동반돼야 한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은 지난 이명박정부 때부터 준비됐으며, 때문에 남 원장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기 애매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유력 매체는 전직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 "'간첩사건'은 원 전 원장 재임 때 시작된 일이고, 올해 대공수사국 중점 과제는 'RO 사건'이었기 때문에 상부의 관심이 떨어져 단장급 이상은 보고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보통 3급 팀장이 4∼5개의 사건을 함께 관장하는데 국장급(1급)까지 보고가 올라가는 건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향후 조사 과정에서 A 팀장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윗선을 밝히는 작업은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키는 검찰이 쥐고 있다. 성실한 수사와 끈질긴 추궁은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그러나 유씨에 대한 공소유지를 하고 있는 검찰 입장에서 이번 수사는 신중을 가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의 증거 조작 의혹을 규명한다면 유씨에 대한 2심 재판은 힘이 빠지게 된다. 검찰 스스로 기소의 부당함을 인정하는 격이라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유씨에 대한 결심 예정일은 28일, 그 전까지 검찰은 증거 조작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윗선을 캐내기 위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검찰 안팎에 끊이지 않고 있다.

조직의 명운을 짊어진 김진태 검찰총장은 국정원을 감싸는 듯한 인상을 주며 우려를 사고 있다. 뒷북수사와 때늦은 압수수색으로 의혹의 당사자인 국정원에 시간을 벌어 준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실제로 복수 관계자는 "(국정원과) 수사 가이드라인을 사전에 조율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던지고 있다. 때문에 김 총장 역시 수사 결과에 따라 거센 역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대두된다. 김 총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국정원뿐만 아니라 검찰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국정원이 전한 증거물을 검증 없이 재판부에 제출한 것도 문제지만 검찰 측에서 사전에 증거 조작 여부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탄로 날 경우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김 총장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현철 부장검사)에 대한 문책이 검토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책 수위는 진상 조사 결과에 따르겠지만 국정원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검찰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1심 때부터 공조체제를 구축한 검찰이 국정원의 조작 움직임을 몰랐다는 사실은 의심의 대상이다. 또 무리한 수사로 국정원의 반발을 살 경우 자칫 '채동욱 사태' 때처럼 국정원이 반격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전에 알았나 몰랐나
황교안·남재준 해임론

현직 특수부 시절 김 총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등의 입을 열어 여야 정치거물인 홍인길 전 총무수석과 권노갑 민주당 고문 등을 구속한 전력이 있다. 그만큼 권력 눈치 안 보고 수사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박 대통령의 복심이나 다름없는 남 원장과 맞서게 돼 그 셈법에 관심이 쏠린다. 무엇보다 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심판이 청구되는 등 정권에서 요구하는 국정원의 역할이 막대한 가운데 남 원장을 정면으로 조준하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해석도 있다. 청와대 출신 한 관계자는 "결국 청와대의 입을 쳐다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소신 있는 수사에 한계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거취 문제다. 앞서 공식 외교라인을 통해 증거를 입수했다고 말했던 황 장관은 며칠 뒤 국정원으로부터 문서를 입수했다고 말을 바꾸며 논란을 확산시켰다. 그간 원세훈·김용판 수사 축소 의혹 등으로 홍역을 앓았던 황 장관은 국회 본회의에 해임안이 상정될 정도로 미운털이 박힌 상황이다. 과거 '안기부 X파일' 수사 당시 국정원을 사상 첫 압수수색했던 황 장관은 얄궂게도 국정원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하지만 국정원을 넘어뜨려도 황 장관이 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검찰 라인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김 총장보다는 황 장관 쪽에 무게가 쏠리는 분위기다. 법조계 풀이 두터운 박근혜정부 특성상 황 장관의 공백을 매우는 쪽이 더 쉽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향후 출구전략을 놓고 청와대가 어떤 결정을 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원세훈카드 만지작
외교라인도 손보나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원 전 원장에 대한 '책임 전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는 것이다. 유씨가 체포된 지난해 1월은 원 전 원장의 재직 시절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한창 이슈화되던 때다.

<일요시사> 보도 등에 따르면 유씨의 여동생 유가려씨가 국정원 심문을 받던 시점은 이보다도 훨씬 전이다. 즉 국정원이 서울시 공무원 유씨를 표적으로 한 건 애초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기획수사였고, 이 사건의 책임자가 원 전 원장인 만큼 지난 정권에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이번 사건은 정치권과 권력기관, 행정기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참사다. 더불어 신뢰를 잃은 대중 외교라인과 중국 정부가 취한 강경한 태도는 또 하나의 변수로 우리 외교당국에 부담이 되고 있다.

각 주재국 영사관 등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은 일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선 벌써부터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다. 그간 영사 신분으로 파견된 국정원 직원은 외교부 통제 밖에서 활동해왔지만 이번 사태로 해외공작 파트의 위상과 독립성은 뿌리째 흔들리는 중 이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는 취임 1년간 국정원과 검찰의 힘을 톡톡히 봤지만 이번 증거조작 파문으로 국정 운영의 일대 분수령을 맞았다. 전두환·이석기 쌍끌이 수사로 지지율을 끌어올린 현 정부는 공안몰이에 성공했지만 지난 정부에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또 다시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위기를 맞은 청와대의 결단은 무엇일지. 시한폭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너 몰린 남재준 선택은?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전방위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그의 진퇴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남 원장은 육군참모총장 재임 시절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확산되자 사상 초유의 전역지원서 제출로 결백을 주장한 바 있다.

지난 2004년 있었던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남 원장은 육군 장성 진급비리 괴문서 사건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나가자 전역지원서 제출로 맞섰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남 원장의 사표를 반려했다.

 남 원장의 청렴성과 도덕성은 자타공인 의심하는 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원칙주의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 소문이 적지 않다.

특히 노 대통령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 군 수뇌부들을 초청한 골프대회에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또 남 원장은 육군 간부회의 석상에서 참여정부의 국방부 문민화와 군 검찰 독립 등의 사안을 성토하며 이른바 '정중부의 난'을 언급했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육군 장성 진급비리 의혹이 군 검찰 수사 결과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지자 남 원장은 책임을 지고 군을 떠났다. 그는 퇴역을 앞두고 "이번 사태는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괴심을 갖는다"고 변을 밝혔다.

이후 10년 만에 또 다시 진퇴의 갈림길에 놓인 남 원장. 그가 이번에도 깜짝 사퇴로 시국을 돌파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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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