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조폭과의 전쟁' 관전포인트 넷

나라에 도움 안되는 건달들 씨 말린다

[일요시사=사회팀] 밤거리를 활보하던 조폭이 음지로 스며들었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은 점차 지능화되고 기업화됐다. 큰 조직들은 부동산 시장으로 뛰어들어 건설 이권에 개입했고, 작은 조직들은 사채를 운영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업가들을 쥐어짰다. 더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뛰어들어 적잖은 성공을 맛봤다. 지난 21일 '조폭의 저승사자'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24년 만에 다시 '조폭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놓쳐선 안 될 '新 조폭과의 전쟁' 관전포인트를 소개한다.

 

 

검찰이 지난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 이후 24년 만에 다시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21일 대검찰청 강력부(부장 윤갑근 검사장)는 '전국 조폭전담 부장검사·검사·수사관 전체회의'를 열고 조폭이 장악하고 있는 지하경제와 관련해 '총단속'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진태 검찰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조직폭력 범죄는 국민생활에 가장 직접적이고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범죄로 이를 척결하는 데 한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며 "조폭이 거대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을 기필코 막아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최근 조폭은 합법적인 사업가처럼 활동하면서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거대한 지하경제를 형성하고 있다"며 "총력을 기울여 단속함으로써 활동 기반을 와해하고 범죄수익을 환수해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지난 범죄와의 전쟁으로 많은 폭력조직이 와해됐지만 당시 수감된 상당수의 폭력배가 출소하면서 조직을 재건했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1세대 '갈취형'과 2세대 '혼합형'을 벗어난 3세대 조폭은 합법을 가장한 '기업형'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3세대 조폭은 무려 120조원에 달하는 지하경제시장에 진출, 온라인 도박과 사금융 상권 등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유흥업과 건설업은 지난 2세대 때부터 조폭의 주된 자금줄로 자리 잡아 규모가 확대됐다는 해석이다.


조폭과 연관된 사업장 383개를 검찰이 분석한 결과 유흥업소는 173개(45.2%)로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일반음식점은 62개(16.2%)로 뒤를 이었으며, 건설·제조·부동산 업체는 55개(14.4%)로 파악됐다. 또 공산품 및 농수산물 유통업체는 34개(8.9%), 놀이시설 및 서비스업소는 33개(8.6%)로 집계됐다.

아울러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하경제시장은 불법사행산업(도박 등)이 전체의 78%인 95조6000억원 규모로 조사됐다. 사금융은 16조5000억원(14%), 성매매는 6조6000억원(5%), 가짜석유는 3조2000억원(3%) 등으로 나타났다.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검찰은 기존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 '투트랙'으로 전면전을 벌일 계획이다. 먼저 120조원 규모의 불법 지하경제에 대한 범죄수익 환수를 핵심 목표로 하고, 사업가로 위장한 조폭들의 대대적인 탈세나 횡령·배임 등에 대한 집중 수사를 병행해 '실리와 명분' 모두를 챙긴다는 방침이다.

전체회의에는 대검 강력부장·조직범죄과장·피해자인권과장을 비롯해 서울중앙·인천·수원·부산·대구·광주 6대 지검 강력부장, 18대 지검 조폭 전담 검사 및 정보 전담 수사관 50명이 배석했다. 검찰이 이처럼 전국의 조폭 전담 검사는 물론 수사관까지 모두 소집해 회의를 연 건 66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조폭을 상대로 급작스럽게 선전포고를 한 것일까. 그리고 조폭과의 전쟁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먼저 이번 발표의 배경부터 간략히 살펴보자.

[포인트 1]
지하경제와의 전쟁

박근혜정부의 핵심공약 중 하나는 '지하경제 양성화'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리 척결이 올 상반기 중점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수 확보와도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4일 법무부는 '2014년도 법무부 업무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 대한 비리 수사에 검찰 수사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VIP(대통령)가 강조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에 따른 것이란 해석이다.

업무 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 부채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위 대표적인 기관부터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부채규모가 큰 기관부터 손을 보면서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뿌리뽑는다" 검 1990년 이후 24년 만에 선포
출소한 두목들 활개…지하경제 양성화 배경

이번 조폭과의 전쟁은 넓은 의미로 보면 사실상 ‘지하경제와의 전쟁’이다. 박근혜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표방하고 있는데 재정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승부수로 지하경제에 매스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음지에서 돈을 불린 조폭은 박근혜정부의 주된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현 정부의 명운과도 직결된 '조폭과의 전쟁'은 지난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에 비견할 만한 강도 높은 수사가 예상되는 것이다.


[포인트 2]
첫 타깃은 누구?

검찰이 기획 수사를 공식화한 만큼 '어떤 분야'의 '누가' '무슨 혐의로' 쇠고랑을 찰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검찰은 신중한 모습. 수사를 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1∼2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에 대한 대규모 수사나 체계적인 정보 수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최근까지 특별 관리해 온 조폭 리스트를 토대로 첩보 수집을 강화하여, 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조폭 지형도'를 그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경찰이 공식 집계한 전국 모든 조직 수는 217개였다. 시도별로는 경기도가 조직 29개·조직원 91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서울(22개·484명) ▲전북(16개·410명) ▲경남(18명·400명) ▲경북(12개·391명) ▲부산(23개·381명) ▲광주(8개·322명) ▲대구(11개·310명) ▲인천(13개·297명) ▲강원(17개·264명) ▲충남(16개·252명) ▲충북(6개·252명) ▲전남(8개·233명) ▲울산(6개·197명) ▲대전(9개·144명) ▲제주(3개·137명) 순이었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경찰이 간부급 조폭을 위주로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조직원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일 조폭의 조직원 수로는 충북 파라다이스파가 7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구 향촌동파(75명), 부산 칠성파(71명), 인천 부평신촌파·광주 국제PJ파(65명), 충북 화성파(64명)가 눈길을 끌었다.

다만 '전국 3대 패밀리'로 악명을 떨쳤던 조양은의 양은이파와 김태촌의 범서방파는 현재 관리대상 조직원이 각각 26명과 11명에 불과해 이번 수사의 타깃이 될지는 미지수다. 또 광주의 OB파는 49명이 관리대상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만 이들 중 다수는 현역을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화력이 집중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3세대 조폭은 간부급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소규모로 조직원을 분산 배치하고, 필요시에 긴급 동원하는 체제로 조직을 정비했다. 그간 수사시관이 조폭 단속에 애를 먹은 건 이처럼 조폭이 점조직화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들은 타조직원의 경조사에 참여하며, 따로 회합을 갖는 등 폭력조직으로서의 유대는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파라다이스파·향촌동파·칠성파 눈길
지방선거 앞두고 정재계 유착범죄 도마

회칼이 난무하던 세력다툼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이들은 이권이 있는 곳이면 타 조직과의 연합도 서슴지 않는다. 축적된 자금을 바탕으로 인근 군소조직들을 흡수하거나 통합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회장님'으로 신분을 감춘 거물급 조폭은 쇠파이프 대신 전화 몇 통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조폭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여러 명이 떼로 다니거나 폭력으로 세를 과시하면 죽는 걸 알기 때문에 요즘 조폭은 성가신 일이 있으면 '외주'를 준다"고 했다.

가령 '총회꾼'으로 불리는 A회장은 채권추심, 도산·파산 정리, 주주총회 등을 방해해달라는 부탁을 모 기업인으로부터 받는다. 그럼 A회장은 자신의 직속부하가 아닌 믿을 만한 조직원 B에게 '실력행사'를 지시한다. 지시를 받은 B는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세력이 크지 않은 조직을 섭외해 '폭력'을 사주한다. 폭력을 실제로 행사한 조폭 C는 A회장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더구나 C는 검거 후에도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윗선인 B를 불지 못한다. 만에 하나 B의 존재를 수사기관이 인지한다 하더라도 B는 A회장의 직속부하가 아니기 때문에 A회장은 자연스레 법망을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번 조폭과의 전쟁은 A회장과 같은 '몸통'을 검거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자금줄을 쥐고 있는 A회장을 잡지 못하면 검찰이 공언한 범죄수익 환수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 초기 단계부터 거물급 조폭을 곧장 노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 안팎으로는 가짜석유(유사 휘발유) 제조, 교통사고 위장 보험범죄, 지방 대학가 총학생회 교비횡령 등에 대한 수사가 먼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가짜석유 제조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에 대한 사정작업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전과 울산을 기반으로 한 조폭이 이미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소문도 들린다.

[포인트 3]
거물급부터 손본다

앞서 밝혔듯 조폭과의 전쟁은 범죄수익 환수가 핵심 목표다. 따라서 조직 간의 폭력행위보다는 횡령이나 탈세와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지난 범죄와의 전쟁 이후 이름난 간부급 조폭은 각 산업군에 대거 유입된 뒤 돈으로 조직을 유지했다.

규모가 큰 조직들은 건설 이권에 개입했다. 작은 조직들은 사채를 운영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업가들을 쥐어짰다. 일부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어 재미를 봤다. 더러는 전공을 살려 사설 경호업체를 개설했다. 불법적인 인터넷 도박장 운영은 물론이고 동남아 부동산 투자와 같은 합법적인 영역도 조폭의 손아귀에 놓였다.

기자가 접한 한 조폭은 주가 조작과 같은 금융범죄, 슈퍼카 임대사업과 같은 신종 범죄에 눈떠 돈을 긁었다. 또 이들 대부분은 사업 파트너를 갖고 있는데 소문난 '전주'가 투자금을 대면 조폭이 돈을 굴려 이득을 배분하는 식이다. 때문에 향후 수사 과정에서 몇몇 '자산가'의 정체가 조폭으로 탄로 날지 관심의 대상이다.

서울에서 투자기관을 운영 중인 D는 호남 출신 조폭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시장에서 D는 자금력이 좋아 알 만한 사람들은 거의 아는 인물로 소개된다. 특히 D는 모 기업 총수의 비자금과도 연관된 인물로 업계 관계자는 귀띔했다. 소위 말하는 거물급 조폭인 셈.

부산을 중심으로 물류 유통을 장악한 E에 대한 소문도 있다. 칠성파 출신으로 유흥업소를 관리했던 E는 후배들에게 유흥업소를 물려주고, 물류 사업에 뛰어든 뒤 막대한 부를 챙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이젠 유흥업소 관리나 운영은 조직 차원에서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조직 차원에서 돈 되는 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제주를 중심으로 발호하는 조폭들에 대한 경계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조폭들이 제주로 눈을 돌리면서 마약 유통은 물론이고 불법 성형과 같은 의료 분야에 손을 뻗친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제주지방경찰청이 검거한 조폭은 전년 대비 37%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흑사회 등과 공조 관계에 있는 조폭은 골프장 건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사금융, 섹스관광 등을 수입원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또 중국 현지와 연계한 신종 금융사기 역시 중량감 있는 조폭이 선호하는 모델로 전해진다. 국내 수사기관의 적발이 쉽지 않을 뿐더러 사업 과정에서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기 용이한 까닭이다.

지리적 여건상 제주를 오고 가기 쉬운 칠성파 출신 중견급 보스들은 이미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제주까지 넓혔다고 한다. 부산 지역 최대 조직인 칠성파는 '온천장 칠성', '기장 칠성', '서면 칠성' 등으로 이미 분파됐으며 전국 단위로 진출, 각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검찰의 마지막 칼날은 칠성파로 향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3대 패밀리'가 와해된 현 시점에서 전국구로 부를 수 있는 조직은 칠성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양은이파와 범서방파에 쏠린 시선 덕분에 지난 20여년간 수사기관의 집중 단속을 피했던 칠성파가 이번에야말로 뿌리 뽑힐지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포인트4]
정치인이 위험하다

검찰 입장에서 칠성파를 잡는다면 그 이름값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면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의 주문은 단순히 조폭만 때려잡는 것에 있지 않다. 정·재계와 연루된 조직범죄 수사는 이번 조폭과의 전쟁의 꽃이다.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에서는 권력에 기생하여 한몫 챙기려는 조폭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천은 조폭과 정치인의 유착이 의심된 곳 중 하나다.

최근 인천지방경찰청은 조폭이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첩보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조폭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고 판단, 대대적인 내사에 착수했다.

실제로 지난 19대 총선에 후보로 출마한 F씨는 조폭을 동원한 불법 선거운동을 벌이다가 구속 기소됐다. F씨는 자신과 친한 조폭에게 선거 운동을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신용카드를 건넸고, 조폭은 F씨가 건넨 돈과 자신의 인맥을 결합하여 불법 선거운동을 벌였다.

조폭과 아삼륙인 정치인은 주로 서울보다 인천이나 호남 등 지역 경제 기반이 약한 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또 후원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부 정치인들은 상대가 조폭인 줄 알면서도 정치 후원금을 받고 당선 후 사례를 약속하는 일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야권 성향의 정치인이라 정권 입장에서도 사건이 외부로 드러났을 때 부담이 적다.

비리혐의로 입건되는 단체장 대부분은 구청장이나 군수, 시장 등 행정가다. 무엇보다 인구가 적은 지방은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압력을 행사하기 좋은 구조를 갖고 있다.

지역의 토호 조폭은 이런 행정가의 약한 고리를 건드린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대부분 상권이 밀집한 곳이 조폭의 활동지가 된다.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상인과 조폭이 동일인인 일도 부지기수다. 아예 4~6개의 조폭이 지역 상권을 나눠먹는 있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 입장에선 조폭에게 반기를 들 수 없는 것.

하지만 정부와 수사기관이 조폭의 선거 개입을 엄단하기로 한 만큼 지역에 뿌리내린 정치인과 조폭의 공생을 끊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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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