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로 릴레이인터뷰> ②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

"정치권에 대한 실망…책임은 정치인 아닌 국민 몫"

[일요시사=정치팀] 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4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이럴 때 정치원로의 충고 한 마디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의 빛줄기처럼 반갑다. 길을 잃은 정치권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일요시사>에서 준비한 정치원로들과의 릴레이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본지가 이번 호에 만난 정치원로는 한화갑(75)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다.





'리틀DJ(김대중)' '정치9단' 등의 별명을 가진 한화갑 총재는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목표를 이룬 정치인이다. 전라도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차별받는 전라도의 후배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가난과 차별을 없앨까 고민한 끝에 정치에 투신했다는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호남 출신의 좋은 대통령을 만들어 좋은 정치를 펼치면 '가난은 당장에 물리치지 못하더라도 차별은 완화시키지 않겠나'라는 그의 생각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4선 국회의원(14·15·16·17대), 여당 대표 등을 지내며 이제는 정치원로로 불리게 된 한 총재는 남은 일생은 한반도평화재단 일에 몰두하며 남북 교류협력 증진과 통일에 바칠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정치에서 한 발 비켜선 정치9단 한 총재에게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꽉 막힌 정치권이 나아갈 길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월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한반도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한 총재와의 일문일답.

- 총재님 반갑습니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한반도평화재단'을 설립한 지 올해로 11년째인데 그동안 제대로 가꾸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마지막 평생 사업으로 (재단 활동을 통해) 남북 교류협력을 증진시키고, 나아가 민족의 통일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전념하기 위해 준비 중이랍니다.

-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사업이 있으신지요?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지만 간접적 의사소통은 서로 하고 있습니다. 북에서 간접적으로 요청한 것도 있구요.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한국 정부, 미국과도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2월 말께 시작되는 한미 키 리졸브 군사훈련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추진할 사업이 있다는 것 정도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키 리졸브 훈련에 앞서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열자고 제안한 것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북한이 얼마나 성의를 가지고 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기대 반 의심 반 정도인 상황인데, 최근에는 북한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민족의 활로를 찾아보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응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예측하기 힘든 북한이 또 엉뚱한 행동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야권에서는 5·24조치 해제 등 정부의 실질적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만….

▲정부의 입장과 야당의 입장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금강산 관광 도중 사람이 죽었고, 연평도 포격 등의 사건도 있었는데 북한의 사과도 없이 그냥 묻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국가의 위신이 달렸기 때문입니다. 야당은 남북관계를 대하는 기본적 관점에서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지만 북한의 과오에 대한 사과와 책임은 요구하고, 또 받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박근혜정부를 총평하신다면?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그는 야당이나 국민에 대해 "이렇게 밤잠도 못자고 애쓰는데 왜 이런 충정을 몰라주고 흔드나"라는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외교적으로는 분명 성과가 있기도 했습니다. 다만 국내정치가 끊임없는 대립의 연속이었고, 박 대통령이 내세웠던 국정목표는 뚜렷한 형태로 구체화되지 않았습니다. 노력은 한 것 같은데, 아쉬운 대목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박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집권 2년차 구상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요?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표현까지 쓰며 통일문제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은 긍정적이나 구체적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세부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설명을 해야 합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원칙적으로 옳은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구상을 밝혔는데 이제 시작 단계니 연말까지 지켜봐야겠지요.

"노력은 하는데 아쉬운 점 많은 박근혜정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약속은 지켜져야"

-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요?

▲이것은 지난 대선 때 양당 대선후보의 공통 공약이었던 만큼 꼭 지켜져야 합니다. 여당이 최근 내놓고 있는 '위헌' 발언은 지금까지 치른 수많은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견강부회'입니다. 야당 입장에서는 여당이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오는 지방선거에서 이것을 선거에 이용해 정권심판론을 외쳐도 됩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하고 여당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 국정원 개혁에 대해서도 여야의 견해 차이가 큰데요. 

▲국정원의 국내파트를 폐지 및 축소하고 대북·해외 정보수집 등의 기능만 남기려는 야당의 주장이 그대로 수용된다면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고 맙니다. 핵심은 국정원의 고유기능은 인정하면서 다시는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국정원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은 어떻게 마무리 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야당이 특검까지 주장하며 사방에서 돌팔매질을 했지만 박 대통령이 온 몸으로 다 막아냈고, 결국 야당이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간 모양새입니다. 박 대통령이 이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내용적 측면에서 박 대통령은 내실 있는 국정원 개혁방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새정치신당이 구체적 창당 로드맵을 밝혔습니다. '안철수 현상'에 대해 한마디 하신다면?

▲안철수신당이 뜰 기회는 순전히 민주당이 만들어 줬습니다. 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고,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연장선에서 민주당이 너무 못해 '안철수'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지요. 이제 시작단계에 들어선 만큼 신당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민주당에 이기면 좋고, 아니어도 지방선거 광역단체장에 한 자리라도 차지하면 성공한 것이지요. 느긋하게 준비해 나간다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 '선택과 집중'의 연장선에서 현재는 당사자들이 야권연대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특정 지역에 한정된 선택적 연대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연대 자체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 야4당이 난립하던 시절에도 연대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일부 지역에 후보를 안 냈으면 안 냈지 각자의 길을 갔고 나름의 성과를 얻었었지요. 물론 독재에 대한 저항은 함께 했지만 민주 경쟁은 독자적인 길을 갔습니다. 김대중은 호남, 김영삼은 영남, 김종필은 충청 등 확실한 지역이 있어 싸울 필요도 없었지만 이들이 모두 맞붙었던 수도권 등에서도 연대는 없었지 않습니까. 안철수 의원이 포커스를 전라도, 부산, 수도권 등에 맞추고 집중한다면 독자적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새정치신당이 어느 지역에 주력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호남입니다. 호남 민심은 민주당의 무능에 지쳤고, 대안으로 안철수의 새정치신당이 뜬 만큼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일부에선 지역정당이라는 혹평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봅니다. 그만큼 지역기반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지요. 국회의원도 결국은 지역을 기반으로 합니다. 과거 김대중·김영삼이 어떻게 정치를 해 왔는지를 안 의원이 공부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 국민들이 오는 지방선거에서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무엇일까요?

▲고착화된 투표 성향, 선거 관행이 안철수 의원 등장으로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입니다. 특히 호남에서는 이제 민주당이니깐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충청도는 역대 선거에서 왔다 갔다 했는데 이곳도 안 의원이 들어갈 틈이 있다고 봅니다. 새정치신당의 전라도, 충청권, 수도권 도전이 어떻게 될지가 주목됩니다.

- 7·30재·보궐선거가 10곳 이상의 미니 총선급으로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재보선 결과가 달라질 것입니다. 선거에서 여당은 언제나 수세적입니다. 반면 야권은 이번에 민주당과 안철수가 사활을 걸고 맞붙을 텐데,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하지만 결국 지방선거의 연장선에서 재보선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와 관련해 오늘 첫 변론이 시작됐습니다. 정부의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에 대한 견해를 밝히신다면?

▲민주국가에서 위헌 소지가 있는 정당을 법에 의해 판단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낼 때까지 지켜봐야겠지요. 

- 야권에서는 이석기 의원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부가 나선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옵니다만….

▲모순입니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민주당이 동의했기에 그가 체포된 것입니다. 체포동의안에 동의해준 순간 민주당도 이 의원의 혐의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표한 것이지요. 그래놓고 이제 와서 섣부르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입니다.

-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고언을 한 말씀 해주시지요.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한다는 명분은 좋습니다. 그러나 5000만명의 국민을 상대하는 것보다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여야 협상과 타결이지요. 민주당 의원 126명 가운데 100명 정도만 설득하면 됩니다. 그리고 정치적 내각이 되도록 각료들이 움직여 줘야 합니다. 내각은 있는데 장관, 국무위원이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역할이 없고, 소신도 없습니다. 

- 개각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개각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원칙 있는 새로운 출발이 됐으면 좋겠다"고 건의를 했었는데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판단은 대통령의 몫이고 책임도 대통령의 몫입니다.

- 정치선배이자 원로로서 여야 정치권에도 한 말씀 해주시지요.

"안철수 새정치신당 뜰 기회는 민주당이 만들어…"
"'투표혁명'으로 국민들이 정치 바로 잡아야"

▲여당이 제 목소리를 못 낸다는 비판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청와대가 아니라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다만 옳은 일이라면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한 용기를 가지고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야당은 여당 이상의 활동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야당이 연립정권이란 생각을 갖고 민생과 관련한 법안을 챙긴다면 지지율은 자연스레 오를 것입니다. 다만 야당은 부자들을 적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직장인들의 돈을 벌게 해주는 만큼 무조건적 비판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 총재님 본인의 정치인생을 어떻게 자평하시는지요?

▲전라도 사람으로 태어나 가난하고 차별받는 전라도의 후배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가난과 차별을 없앨까 고민했고, 그것이 일생의 목표였습니다. 호남 출신의 좋은 대통령을 만들어 좋은 정치를 하면 가난은 당장에 물리치지 못하겠지만 차별은 완화시키지 않겠나 생각했었지요. 그때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고, 이 분을 위해 일생을 바치자고 했는데, 목표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최근 여유를 가지고 그 과정을 되돌아보니 여당 대표까지 했지만 김 대통령의 1등 참모 노릇도, 1등의 충성스러운 역할도 못한 것 같더군요. 내용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점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시다면?

▲국민들이 정치에, 정치인에 실망하고 비판하는데 결국 책임은 국민 몫입니다. 결코 정치인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이유는 그런 정치인을 투표로 뽑은 것이 바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투표혁명이 필요합니다. 당을 보고 뽑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투표혁명을 통해 국민들이 정치를 바로 이끌어야 합니다.

 

대담=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한화갑 총재 프로필>

▲현 한반도평화재단 총재
▲평화민주당 대표
▲민주당 대표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국민회의 원내총무
▲제 14~17대 국회의원(4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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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