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로 릴레이인터뷰> ③박찬종 변호사

"안철수 새정치 도전…성공한다면 기적"

[일요시사=정치팀]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4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이럴 때 정치계 원로의 충고 한마디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의 한줄기 빛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이정표를 잃어버린 정치권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일요시사>에서 준비한 정계원로들과의 릴레이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일요시사>가 이번 호에 만난 정계원로는 5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찬종(74) 변호사다.




박찬종 변호사의 정치 역정에 대해선 두 가지 극단적 평가가 교차한다. 첫 번째는 권위주의 정치, 3김 정치(김영삼·김대중·김종필)에 도전했으나 끝내 실패한 시대를 앞선 정치인이라는 평가다. 두 번째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지 못했던 독불장군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세간의 평가를 모두 부인하며 "나의 도전은 실패하지 않았다. 새정치의 뿌리를 내렸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박 변호사는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에 저항한 학생들을 가장 많이 변호한 인권변호사로, 또 정치인으로 시대의 불의에 끊임없이 저항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신정치개혁당을 창당해 현재의 '안철수 새정치 바람'과 유사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부산 서구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낙선하며 정치권을 떠난 그는 이후 변호사로 돌아와 석궁 테러사건의 수학자 김명호, BBK사건의 김경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사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등의 변론을 맡아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시대의 불의에 맞서 끊임없이 도전했고, 지금은 현실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법률구조사업에 전념하고 있는 박 변호사에게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꽉 막힌 대한민국 정치권이 나아갈 길을 물어봤다.

다음은 박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 변호사님 반갑습니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정치권 밖에서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정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끔은 방송 토론회에 나가 입장을 밝히기도 하구요. 또 변호사로서 에너지가 닿는 범위 내에서 법률구조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지난 대선 때 지지했던 후보가 있으십니까?

▲당시 박근혜·문재인 대선후보 양측에서 도와달라는 강력한 요구가 있었으나 모두 거절했습니다. 정당 대결 논리, 당 내에선 힘의 논리에 의해 뽑힌 후보 중에서 고르려니 적임자가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정당을 떠나 가장 우수한 정책을 가진 사람,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을 가려 뽑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 가운데서는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앞으로 차기 대선이 다가오면 눈에 띄는 사람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 수사와 관련해 축소·은폐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최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와 관련, 여야가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며 다투고 있는데 변호사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된 선진경제국가입니다. 하지만 김용판 전 청장의 1심 판결을 두고 여야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다투는 것을 보면 아직 진짜 선진국 수준에는 오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른 OECD에 소속된 국가들은 이 사안으로 다투는 우리를 우습게 여길 것입니다. 

- 판결 자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법조인 입장에서 보면 이번 판결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번 재판은 '사실이냐 아니냐' 증거를 따지는 것인데, 1심 판사는 김 전 청장의 혐의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이념에 대한 사안이 아닌 사실관계에 대한 판결을 두고 논란이 이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법관·검찰에 대한 불신이 깊기 때문인데, 국민들은 유권무죄(권세가 있으면 무죄), 유전무죄(돈이 있으면 무죄)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민생 건성건성 챙기는 정치인은 '건달'과 같아"

"윤진숙은 임명 자체가 실수…바꿀 사람 더 있다"

 

-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잦은 부적절한 언행으로 결국 경질됐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윤진숙 전 장관은 원래 연구자입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서 연구원으로는 우수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수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한 부처를 총괄하고 국가의 전체 정책방향에 해수부 정책을 접합시켜 나가는 총괄능력을 갖춰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는 이런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쉽게 말해 기본이 안 된 사람이 장관이 됐기에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마이너스가 됐고, 본인도 불명예 퇴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 임명 자체가 실수였다는 말씀이신지요?

▲결론적으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가 아는 김영삼 전 대통령 외 문민시대 대통령들은 장관을 임명할 때 직접 면접을 한 후 임명을 했습니다. 대통령의 장관 후보자 면접은 함께 일할 부처의 장을 뽑는 것이기에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윤 전 장관을 기용할 때 면접을 안 본 것 같습니다. 면접을 했다면 조직을 맡기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윤 전 장관 해임을 계기로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개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개각론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치체계를 가진 미국의 경우를 보면 대통령과 장관은 임기가 거의 같이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질·능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자꾸 나오다 보니 개각 목소리가 벌써부터 불거지는 것이지요. 기본적으로는 미국처럼 가는 것이 맞다고 보지만 특별한 재주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말실수도 잇따라 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경제팀은 한 번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람이 있을까?'(웃음)하는 생각도 듭니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첫 선고가 2월17일 있을 예정입니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RO라는 조직의 실체가 있는지, 비밀회합에서 오고간 말을 내란 선동으로 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증거 유무가 핵심입니다. 담당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에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통진당의 성격이 '대한민국은 기분 나쁜 나라다'라는 생각을 가진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과격하게는 '박정희·전두환정권의 후예인 박근혜정권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정권'이라는 생각을 가진 듯합니다. 그러나 생각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판결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통진당은 정부에 의해 해산심판도 청구되는 등 사실상 정부가 '종북정당'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불행하게도 종북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상당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왜 종북이 생겨났는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종북이 싹틀 여지가 있었는데, 특히 전두환정권인 5공 시대에 종북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많았습니다. 전두환씨의 불법적인 정권 탈취와 반민주적 국가 운용에 대한 반발 심리로 "차라리 김일성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북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일부가 남았고, 이것이 통진당 사태라 봅니다.

- 종북의 싹이 5공 때부터 생겨났다는 말씀이신가요?

▲종북의 토양은 전두환씨가 만들었습니다. 80년대에 반정부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학생들 변론을 가장 많이 했던 변호사가 바로 저입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양심을 지키기 위해 정권에 저항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생적으로 종북주의화 했지만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며 대부분은 여기서 벗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분열의 씨앗을 처음 퍼트린 전씨는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군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수사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국방부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처음부터 외부기관, 예를 들면 특검을 통해서 조사를 했어야 합니다. 군 검찰이 상당히 수사를 잘 한 것 같은데 국방부 울타리 안에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다 보니 결과를 신뢰받지 못하고,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군 사이버사 요원들의 활동을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군 검찰과 군 법원 양쪽의 지휘관이기 때문에 비판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 지방선거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 창당 준비 과정과 전망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새정치를 열망하는 국민들은 지방선거에서의 전면적 정당 공천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야가 논의 중인 기초단체뿐 아니라 광역 시·도의 장에 대한 정당 공천도 폐지해야 합니다. 나아가 광역 단체를 제외한 시·군·구 의회도 폐지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이 새정치의 방향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 의원은 새정치라는 이름을 내걸고 정당을 창당해 이 판에 뛰어든다고 선언했습니다. 새정치도 구호 외에는 모호한데 이런 사람이 성공한다면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새정치연합에 대한 희망은 없습니다.

 

"모호한 새정치…새정치신당 희망 없다"

"지난 1년 정치권, 정당 놀이판 전락"

 

- 정치 선배이자 원로로서 여야 정치권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지난 1년 정치는 정당의 놀이판이었습니다. 민생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났고 여야 의원들은 정쟁만 했습니다. 아마도 지방선거까지도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으로 보입니다. 말로만 민생을 찾고 실제로는 호주머니 채울 궁리만 하고 있는 작금의 정치인은 완전히 '건달'이 됐습니다. 민생을 건성건성 여기는 정치인들 반성해야 합니다.

- 오는 25일이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년이 됩니다. 박근혜정부의 지난 1년을 총평 하신다면?

▲인사, 공약 실천 여부, 소통 3가지로 나눠 봤을 때 모두 A학점을 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D나 F학점을 주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는 주요 인사를 앞두고 대통령이 면접을 직접 진행하는 등 신중을 기하고 공약은 이행 여부를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얘기해야 합니다. 예컨대 65세 이상 전원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등의 공약을 못 지키게 됐으면 '보류'라는 말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파기'라고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서 소통에 나서야 합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변호사님 본인의 정치인생에 대해 자평하신다면?

▲저는 1992년 14대 선거 때 신정치개혁당을 만든 사람입이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이미 신정치에 개혁까지 붙여서 시도했었습니다. 영·호남과 충청의 탄탄한 지역구도 위에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가 대장 노릇을 할 때 덤벼들어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정치의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박찬종 변호사는?

▲법무법인 다올 고문변호사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

▲아시아경제연구원 이사장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5선 국회의원(9·10·12·13·1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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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