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말한 대구 여대생 의문사 전말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1.14 10: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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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놓친 DNA는 범인을 기억했다

[일요시사=사회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15년 전 대구 여대생 의문사 사건인 ‘정은희 사건’을 언급했다. 이번 기자회견으로 인해 의문사로 오랫동안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던 이 사건이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민원을 보낸 유족의 한을 풀어줬다고 강조했다. 15년 동안 풀지 못했던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오전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 중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을 언급해 세간에 화제가 됐다. 박 대통령은 “전국 각지에서 청와대에 민원이 많이 오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중 기억나는 얘기를 하나 해 드리면 15년 전 사망한 여대생의 아버지가 죽은 딸이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됐는데 억울함을 호소했고, 이를 해결한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역대 정권 때마다 이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그냥 형식적인 답변만 오고 해결이 되지 않았다”면서 “아버지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겠나. 다시 조사를 했더니 15년 만에 범인이 잡혀서 유가족이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지시로
재수사한 사건

청와대에 답지하는 민원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언급한 박 대통령. 15년 전 대구 여대생 의문사 사건은 단순 교통사고로 묻힐 뻔했다. 하지만 최근에 성폭행범이 붙잡히면서 15년 동안 마음 고생한 유족의 한이 풀렸다.

박 대통령은 대구 여대생 사망사건을 국민과의 소통 사례로 언급하면서 이 사건을 재부각시켰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민원을 통해 국민의 고충이 해결된 사건을 ‘소통의 사례’로 꼽으면서 15년 전 발생했던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을 언급했다.


이 사건은 1990년대의 대표적 의문사 중 하나로 오랫동안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1998년 10월16일 대학교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 충격으로 구마고속도로를 헤매던 도중 23톤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정은희(당시 18세)양의 이야기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대구 달서경찰서는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정양의 속옷에서 남성의 정액이 검출됐음에도 성범죄 가능성을 조사하지 않은 것이다.

신년 기자회견서 정은희 사망사건 언급
15년 전 경·검 단순 교통사고로 마무리

미심쩍은 마음에 정양의 아버지 정현조(68)씨는 생계 수단이던 채소 장사를 접고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지난해까지 무려 15년 동안 수차례 수사 경찰관을 고소하거나 재수사를 요구하는 민원을 냈다. 정씨는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풀숲에서 딸의 속옷을 찾아 증거자료로 제출했지만, 경찰은 “지나가던 아줌마들이 벗은 것을 가져다 자기 딸 것처럼 주장한다”고 말하며 증거물을 인정하지 않았다. 분하고 답답한 마음에 정씨는 지난해 4, 5월 청와대에 세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또한 정씨는 죽은 딸을 위해 법학을 독학한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는 정씨의 민원 내용을 대구지검에 내려보냈고 대구지검 형사1부(부장 이형택)가 재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3개월여간 수사 끝에 정양의 속옷에서 발견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돼 있던 정액 DNA와 2011년 다른 성범죄에 연루돼 채취한 스리랑카 국적의 산업연수생 K(47)씨의 DNA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K씨를 체포했다.

대구 여대생 사건
진실 알고 보니…

성폭행(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구속 기소된 스리랑카인 K씨는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피고인은 DNA 재감정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 지난 10월11일 대구지법 제12형사부(최월영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이날 첫 공판에서 피고인 K씨는 “15년 전 피해자 정양을 만난 적도 없고 당연히 성폭행을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K씨는 “구미고속도로 근처 성폭행 현장에 가지도 않았으며 검찰이 공범으로 지목한 다른 스리랑카인 2명이 실제 그런 일을 벌였는지도 나로서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K씨는 또 서울대 법의학 교실을 비롯한 복수의 전문기관을 통해 유전자 재감정을 실시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변호인은 “STR 기법으로 유전자 일치 여부를 검사하려면 최소 16∼17개의 시료가 필요한데 검찰이 과연 이런 요건을 충족시켰는지 의문스럽다”며 “무엇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유전자 검사를 했는지 검찰이 관련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수사 결과 산업연수생이던 K씨는 사건 당일 같은 국적의 공범 2명과 정양을 구마고속도로 아래 굴다리 근처로 끌고 간 뒤 차례로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친 날마다 재수사 민원
얼렁뚱땅 묻힐 뻔한 참사
범인 붙잡히면서 한 풀어

당시 유족들은 청와대와 법무부, 인권위 등 무려 60여차례에 걸쳐 탄원서와 진정서를 냈지만 경찰의 재수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유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유족들이 인터넷에 정양의 추모홈페이지를 개설해 이 사건이 주목받았고 지난해 5월 대구지검이 수사에 나서 성폭행범을 검거했다.

정씨는 지난 6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청와대가 (민원을) 받아줘서 사건이 해결된 건 맞다”면서도 “경찰이 성폭행 증거에도 불구하고 수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피해자 가족의 알 권리를 위한 법이 제정돼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대표적인
민원 해결 사례

결과적으로 범인은 잡았지만, 경찰은 사건 당시 성폭행 정황을 확인했으면서도 수사를 덮어버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박 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이성한 경찰청장은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억울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라며 “경찰이 더욱 철저하게 수사에 임해 잘못된 부분을 밝혀내도록 마음가짐을 다져야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대구 여대생 사건으로 대구 검·경찰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민원에 따른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진행할 증거가 부족해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2010년 7월 말부터 흉악범에 대해 DNA를 채취하는 법안이 시행됐고 스리랑카인 K씨의 DNA는 2011년 11월에 K씨가 미성년자를 성매매 하려다 검찰에 적발돼 채취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 시행 직후에는 사실 검찰과 경찰의 DNA 정보 공유가 거의 되지 않았고, 추후에 이 부분이 지적됨에 따라 2012년쯤부터 정보 공유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당시 여대생의 속옷에 묻어 있던 정액 DNA가 K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나왔다”며 “지난해 5월쯤 여대생의 아버지가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청와대에도 청원을 했고 대검을 거쳐 다시 지법으로 해당 사항이 내려와 재수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수사를 진행할 여건이 마련돼 시작한 것이었지 민원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대학축제 마치고 귀가 중 트럭에 치여
외국노동자 집단 성폭행이 부른 사고

대구 여대생 사망사건은 지난 10월28일 열린 대구지방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질타를 받았다.


대구지방경찰청 대강당에서 열린 국감에서 국회 안정행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박남춘(인천 남동갑) 의원은 “15년 전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던 여대생 정양의 의문사 사건이 검찰의 재수사로 외국인 집단 성폭행이 가져온 참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경찰의 수사를 지적했다.

박 의원은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은 유족이 현장 주변에서 발견한 속옷 등 증거를 토대로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지만 오히려 핀잔을 주며 묵살했다”며 “국가기관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질타했다.

경찰 수사 태도
도마에 올라…

민주당 유대운(서울 강북을) 의원은 “지난 5월 대구에서 발생한 여대생 살인 사건 당시 경찰의 초동수사가 미흡했다”며 “15년 전 정양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꼬집었다.

유 의원은 “당시 경찰이 숨진 여대생의 친구들에게 술집에서 접근한 남성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음에도 수사에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며 “피해자의 휴대폰이 범인의 주거지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꺼졌고 범인이 성범죄자로 등록이 돼 있었음에도 용의선상에 전혀 올려놓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이재오(서울 은평을) 의원은 “지난해 경찰 조직문화수준 진단조사 결과 대구 경찰이 10개 분야에서 모두 꼴찌였다”며 “대구 경찰의 비창의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가 조직발전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013년판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

택시기사 잡고 보니…부킹남 공익요원이 범인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다. 지난 5월25일 오전 5시10분께 대구시 북구 산격동에서 여대생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뒤 마구 폭행해 살해하고 이튿날인 16일 오전 2시30분께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의 한 저수기에 시신을 유기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여대생이 귀가하기 위해 택시를 타자, 다른 택시를 잡아 뒤따라간 범인은 신호 대기 중이던 택시를 발견하고 자신이 남자친구라며 합승한 뒤 산격동으로 방향을 돌려 자신의 원룸으로 끌고 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100여명의 형사가 밤잠을 설쳐가며 일주일 동안 수사한 끝에 범인을 검거했지만 초동수사에 미진한 부분이 있어 많은 질타를 받았다. 

이 사건을 일으킨 조모(27)씨는 성범죄 전과(2011년)자로 성범죄자 알림e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됐던 인물이었다. 조씨는 대구 지하철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중이었으며 거주하던 대학가 원룸 근처의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했다. 범인은 지난 5월25일 피해자와 대구 중구 소재의 한 클럽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이?날 새벽 4시께 피해자는 범인과 헤어져 대구 중부소방서 앞에서 택시를 잡았고 이때 외국인 한 명이 택시비 2만원을 내줬다는 진술이 있었다. 만취 상태였던 피해자를 태운 택시가 신호 대기 상태일 때, 범인은 자신을 피해자의 남자친구라고 둘러대며 택시에 합승해 목적지를 북구로 변경했다.

범인은 클럽에서부터 피해자를 계속 뒤쫓아가며 기회를 노린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범인은 정신을 잃은 피해자를 데리고 모텔로 향했으나 빈 방이 없어 결국 자신의 원룸으로 이동해 성폭행 후 살해했다. 그리고 시신을 경북 경주의 한 저수지에 유기했다.

피해자의 가족은 사건 당일 오후 5시께 딸이 ‘아는 언니와 술을 마시고 들어가겠다’는 문자를 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며 실종신고를 했다. 다음 날, 경주의 저수지에서 여성의 변사체를 발견했다는 낚시꾼의 신고로 살인 사건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사건을 접수 받은 경찰은 당일 피해자를 태웠던 택시기사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고 택시기사 A씨를 긴급체포했다. 택시기사 A씨는 혐의를 부인했고, 이후 A씨가 범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택시에 동승했던 조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 체포했다. 경찰은 피의자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그리고 지난 10월25일 대구지검 형사3부는 조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실제로 피의자 조씨는 범행 직후 자신의 여자친구와 장난스러운 메시지를 주고받는가 하면 피해자와 처음으로 만났던 클럽에도 태연하게 드나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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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