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람들 릴레이인터뷰 2>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DJ는 국민 속 영원한 지도자…역사가 평가할 것”



대학 시절 차별 없애기 위해 ‘김대중’에 평생 각오
DJ공적은 ‘화해와 용서’, 복지·문화에 대한 기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동교동계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랜 시간 김 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삶을 생생히 목도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보다 더 따뜻했던, 눈물 많고 정 많은 김 전 대통령을 보았고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한 인동초 삶의 곁에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유훈도 이들에게는 평소 들어오던 말일 뿐이다.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면들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되새겨봤다.

‘새파랗다’고 할 만큼 젊은 나이에 ‘김대중’에 평생을 바치자고 각오했고 아내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더 좋다고 외친 이가 있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다.
김 전 대통령과 인생의 굴곡을 함께하면서 좋은 일보다는 궂은 일이 더 많았을 터이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을 모신 것이 내 인생의 가장 성공적인 일”이라며 “평생 존경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물고기가 바다를 떠나 존재할 수 없듯 김 전 대통령은 그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한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

- DJ와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언제인가.
▲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는 고향이 같다. 전라남도 신안이다. 대학 재학시절 고향 선배가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가는데 같이 가서 인사를 하자고 해서 찾아가게 된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 대학 재학시절부터면 상당히 오래된 인연이다. 그러나 DJ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나는 가정교사 등을 하며 고학했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중 경상도 분이 나는 전라도 사람이라 안 된다고 했다. 출신 지역 때문에 차별을 당한 것이다. 이러한 차별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봤다. 차별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차별철폐’는 내 평생 과업이 됐다.
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전라도 출신의 좋은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좋은 정치를 하고 국민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지역적 차별은 자연스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더니 김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내 평생을 바치자’고 각오했다.

- 이후 계속 DJ 곁에 있었던 것인가.
▲ 1963년 김 전 대통령이 6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 선거 운동원으로 뛰었다. 1967년 6·8 선거 때도 선거운동을 하러 내려갔었다.
1971년 대선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후보로 세우기 위해 도별 조직책이 마련됐다. 각 도마다 담당자를 둬서 민심을 모으는 것이었는데 당시 나는 경상남도와 부산에서 지지자를 끌어 모았다. 중앙 정치인이 지방 정당 당원들을 포섭한 것은 정당 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이 1970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김영삼 후보를 이겼다.

- 이후 DJ는 박정희 정권의 정적으로 지목되면서 모진 고생을 하게 되지 않나.
▲ 1972년 유신 후 1987년 복권될 때까지 16년 동안 함께 고생했다. 감옥에 갇히고 미행당하고 연금되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감시당했다.


- DJ의 대권 도전을 위해 경상남도, 부산에서 활동했다고 했는데 당시 지역감정을 생각하면 힘든 시도였을 것 같다.
▲ 김 전 대통령은 신안군, 목포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각 도에 사람이 배치돼야 하는데) 경상도 사람이 없었다. 내가 경상남도에 갔다. “전라도 사람이라 못 믿겠다”던 사람들이 “한 동지는 경상도 사람 같다”고 할 정도가 됐다. 그때 맺은 인연이 상당하다. 경남이나 부산에 가면 광주에 가는 것보다 더 알아줄 정도다.

-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청와대나 내각에서 일할 기회가 많았을 것 같은데 국회에만 있었다는 점도 의외다.
▲ 1992년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그리고 1997년 대선이 치러졌다. 당시 동교동계 7인이 성명을 발표했다. 청와대에 들어가거나 장관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성명을 발표한 이들 중 남궁진 전 의원이 청와대 정무수석을 하고 문화부장관을 한 것 외에는 다른 이들은 약속을 지켰다.
1998년 원내총무가 됐고 2000년 사무총장, 2002년 최고위원선거에서 1등을 했다. 국회, 당을 지키겠다고 다짐했고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
 
- 개인적으로 본 DJ는 어떤 사람이었나.
▲ ‘보통 사람’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희로애락을 다 가지고 있었다. 손자 손녀들과 놀 때는 평소의 근엄함은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웃고 안아주고 장난치는 모습이 천진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눈물이 많고 정에 약했다. 동정심이 많았다.

-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준비된’ 이미지였는데.
▲ 공적인 면에서는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페이스대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매사를 철저히 준비했고 그날 일은 그날 해야 했다. 검토해야 하는 서류가 쌓여있으면 새벽 2시가 되었든 3시가 되었든 다 처리를 했을 정도다.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았다.

- 한 전 대표에게 DJ는 어떤 의미인가.
▲ 김 전 대통령과는 1967년 이래 43년의 인연이다. 살아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생활과 생각, 사고의 전부를 함께하게 됐다. 심지어 아내가 ‘김 전 대통령을 택하겠소, 나를 택하겠소‘ 했을 때도 김 전 대통령을 선택했을 정도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고기가 바다를 떠나 존재할 수 없듯 그는 내 생활의 전부였고 우리(동교동계 인사들)의 모든 것이었다.

- DJ에 관한 일화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1980년 신군부는 내란음모죄로 김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광주민주화운동도 김 전 대통령이 사주했다고 했다.
당시 신군부는 김 전 대통령에게 타협을 하자고 했다. “대통령이 되는 거 빼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겠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하도 고통스러워서 ‘외국에서 여생을 보낼까’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군부가 읽어보라며 준 신문 한 부가 김 전 대통령을 결심하게 했다. 그 신문에는 광주사태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는데 김 전 대통령은 ‘광주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희생을 당했다.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나도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죽기로 작정했다. 교수형을 당할 때 어떨까 해서 감방에서 목도 만져봤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대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내걸었고 타협해 본 적도 없다.

- 사석에서 동교동계 분들과는 어떻게 지냈나.
▲ 허물이 없었다. ‘동지’라고 불렀다. 김 전 대통령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총재님’이라고 호칭했다. ‘선생님’은 정계를 떠났다는 의미인 반면 ‘총재’는 현역 정치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992년 김 전 대통령이 정계은퇴를 선언할 때도 나는 믿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실 분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이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할 일이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그 할 일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정계은퇴 선언에 다들 눈물을 흘릴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왜 울어’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정치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DJ의 공과를 꼽는다면.
▲ 이희호 여사가 김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서울 시청광장에 들러 한 연설이 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다.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다’라는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평생 ‘용서와 화해’, 남북의 평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노력했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려고 했다. 납치를 당하고 사형 선고를 당하는 등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보복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가 용서해야 진정한 화해가 이뤄지는 것인데 김 전 대통령은 피해자이면서 전부 용서하고 화해했다. 인간 김대중의 모습이다.

- 인간 ‘김대중’이 쌓은 공적도 있지만 그가 국가발전에 기여한 바도 크다.
▲ 대표적인 것은 노벨평화상,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간 교류와 협력에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또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IT사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난 복지와 문화에 대한 부분을 빼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다. 국민을 편안하게 하려면 부자에게는 간섭하지 않아야 하고 가난한 이들은 부자가 될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때문에 정치의 대상은 가난한 사람, 약자들인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최저가족생계를 보장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을 정착시켜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최근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이 칼럼에서 미국의 복지 대통령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한국의 복지 대통령으로는 김 전 대통령을 꼽았다. 외환위기 속에서도 국민연금 적용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한 것,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확대, 장애수당과 저소득층 보육비 지원 및 경로연금의 증액, 사회복지 전문요원 증원 등 사회안전망을 본격적으로 구축했기 때문이다.

- DJ는 문화를 가까이한 대통령이기도 했는데.
▲ 김 전 대통령은 전체 국가예산에서 문화예산을 1% 확보했다. 파주에 출판단지를 조성해 400억 기금을 조성, 문화 창달에 기여했고 돈이 없어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금을 빌려줬다.
한류의 기틀을 세운 것도 김 전 대통령이다. 당시 문화를 개방하면 일본 문화에 잠식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도리어 한류가 일본에 전해지는 계기가 됐다.
역사가 갈수록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은 두드러질 것이다. 지금은 내가 표를 줬느냐 안줬느냐, 내 지역의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제대로 된 평가를 할 것이다.


- DJ 유지를 계승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바가 있는가.
▲ 김대중 도서관과 김대중 평화센터가 있다. 이미 김 전 대통령의 유산은 이곳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념사업은 기금을 모으면 그만큼 정부에서 보조를 해준다. 목포시, 전라남도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사상과 철학은 온 국민이 이어갈 일이다. 김 전 대통령은 국민 속에 영원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 한두 명이 김 전 대통령을 계승하겠다는 건 욕심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DJ의 유언 중 하나가 민주개혁진영의 통합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민주당에서 구민주계의 복당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나.
▲ 당 지도부와 복당에 대한 합의를 봤다. 절차상 문제만 남았다. 당에 들어가면 백의종군하겠다. 당에 협력할 것이다. 다만 민주당은 민주당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민주당에 바라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 동교동계가 계속해서 모임을 가질 것인지 궁금하다.
▲ 동교동계는 정치조직이 아니다. 친목을 위해 모일지는 몰라도 정치조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 49제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 주최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만찬 회동을 준비돼 있는 걸로 안다. DJ와 YS의 화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 어른이 밥 한 끼 사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화해는 피해자가 용서해야 진정한 화해다. 가해자가 화해를 했다고 해서 화해가 된 것은 아니다. YS는 그동안 김 전 대통령을 많이 공격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친 적이 없다.
때문에 “화해를 했다”는 YS의 말을 ‘앞으로는 김 전 대통령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김 전 대통령을 모신 것은 일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일이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국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조의를 표명하고 조문사절이 찾아왔다. 이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외국 원수들을 만났을 때 어떤 원수든 존경으로 대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대한민국이 큰 나라이고 두려운 나라여서가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이 살아온 정신, 민주주의 인권 평화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에 존경의 염으로 대한 것이다. 이는 국위선양이며 대외적으로 큰 공적을 남긴 것이라 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세기적 인물이다. 그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분을 모신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존경의 염으로 모시며 평생 살아갈 것이다.

▲1939년 전남 신안 출생
▲1959년 목포고등학교 졸업
▲1963년 서울대학교 외교학 학사
▲1992년 제14대 국민회의 국회의원
▲1996년 제15대 국민회의 국회의원
▲1998년 국민회의 원내 총무
▲2000년 제16대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2001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한국기원 총재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6·13지방선거대책위원장
▲2003년 재단법인 동서협력재단 이사장
▲2004년 새천년민주당 대표,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
▲2004년 제17대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2005년~2006년 민주당 대표
▲2006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2009년 현 동서협력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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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