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프로골퍼 박인비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25 13: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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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신화 깬 ‘메이저 퀸’

[일요시사=사회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박인비는 올 시즌 메이저 챔피언십 3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6번 우승을 해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그녀가 있기에 한국 골프의 날씨는 맑다.




한국 선수 최초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박인비(25·KB 금융그룹).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한국 선수들이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올해의 선수는 아무도 없었기에 더둑 관심을 끌고 있다. 한때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기록을 갈아 치우고 결국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가 됐다.

세계가 인정하는
‘올해의 선수상’

‘침묵의 암살자’란 별명을 갖고 있는 박인비는 지난 18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골프장에서 끝난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4위에 오르며 공동 5위에 자리한 경쟁자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의 추격을 제치고 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CME그룹 타이틀홀더스 결과를 떠나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한국에서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이룬 게 영광이다. 정말 좋다. 사실 올해 목표가 올해의 선수상이었다. 그랜드슬램보다 더 하고 싶었던 타이틀이었기 때문에 더 많이 애정이 간다.”

LPGA투어 사무국이 해마다 주는 5개 상 중에서 가장 가치가 큰 ‘올해의 선수상’. 그리고 시즌 평균 최저타수를 달성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트로피’, 최고 신인에게 돌아가는 루이스 서그스 롤렉스 ‘올해의 신인’, 일종의 모범상 성격의 ‘헤서 파’ ‘윌리엄 앤드 뮤지 파월 상’, LPGA 발전을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은 기업에 주는 ‘커미셔너상’ 등 5개 분야에 걸친 시상을 하고 있다. 그중 ‘올해의 선수’는 그해 선수들의 투어 대회 성적에 포인트를 줘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선수에게 주는 상으로 일종의 시즌 최우수선수(MVP)에 해당된다. 

수상자를 정하는 방식을 보면 각종 대회 1위부터 10위 선수에게 점수를 차등 배점한다. 투어 챔피언은 30점, 준우승한 선수는 12점을 얻는다. 3위는 9점, 4위는 7점을 받는 식으로 순위가 낮을수록 배점도 낮아져 10위는 1점을 챙긴다. 단, 5대 메이저대회 순위별 배점은 일반 투어 대회의 두 배다. 박인비는 올 시즌 메이저대회에서 3승(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을 거둬 180점을 획득한 데 이어 투어 대회 3승(혼다 타일랜드 대회, 노스텍사스 슛아웃,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 대회)으로 90점을 보탰다.


여기에 ‘톱10’ 입상 포인트 27점을 추가하고 총 297점을 쌓았다. 1966년에 제정된 이 상의 역대 최다 수상자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다. 소렌스탐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이 상을 5년 연속 수상하는 등 총 8차례나 수상했다. 그 다음으로는 케이티 휘트워스(미국·7회), 낸시 로페즈(미국),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이상 4회) 순이다. 박인비의 수상으로 아시아 출신은 2010∼2011년 청야니(대만), 1987년 오카모토 아야코(일본)에 이어 네 번째다.

‘한국 군단’은 박세리(36·KDB산은금융그룹)를 시작으로, 박지은(34), 신지애(25·미래에셋), 최나연(26·SK텔레콤) 등이 상금왕, 신인왕, 평균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 등을 수차례 수상한 바 있지만 한 시즌 동안 최고의 활약을 펼친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것은 박인비가 처음이다. 특별하고 의미 있는 위업이다.

한국인 최초 LPGA 올해 선수로 선정
올 시즌 메이저 챔피언십 6번 우승

한국여자골프는 1998년 박세리를 시작으로 15년 넘게 LPGA투어에서 세계무대를 제패했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부족했다. 당대 최고의 골프스타에게만 주어져 ‘상 중의 상’이라 불리는 ‘올해의 선수상’에서는 항상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졌던 올해의 선수상. 지난 18일 박인비는 한국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올해의 선수’를 확정했다.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4위를 차지해, 공동 5위로 대회를 마감한 경쟁자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를 눌렀다.

박세리 뛰어 넘은
한국 골프의 자랑

LPGA투어 25승을 달성해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박세리도 이루지 못한 한국골프의 큰 쾌거다.


그녀의 피나는 노력이 보상해준 결과지만 그 이면에는 남다른 가족사랑이 있었다. 올해 2월 태국에서 열린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에서 시즌 첫 우승을 신고한 박인비는 “할아버지 앞에서 우승해 매우 쁘다”는 말로 운을 뗐다.

할아버지 박경준(81는 박인비에게 골프를 처음 권했고 여전히 최고의 후원자다. 노령의 할아버지에게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기회에서 박인비는 우승을 일궈냈고 “할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4월 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생애 두 번째 메이저대회 정상에 오른 순간에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박인비는 2007년 LPGA 무대에 뛰어든 후 이듬해인 2008년에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기록을 썼다.

하지만 이후에 찾아온 시련은 매서웠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50개가 넘는 대회에 출전했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고 골프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중압감을 누르고 얻어낸 메이저 2승의 순간, 박인비는 부모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꼭 우승하고 싶은 대회였다. 오늘이 부모님 결혼 25주년 되는 날이라 더욱 기쁘다.”

중요한 사람이 더 있다. 2011년 8월 약혼식을 올린 프로골퍼 출신 남기협 씨. 박인비는 자신을 ‘짐꾼’이라 표현하지만 막강한 지원군이라며 “약혼자는 긴 슬럼프에서 탈출하게 한 일등공신이다. 내 편이 있다는 게 든든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둘은 내년 10∼11월 사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그녀는 “골프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과 같은 특별한 웨딩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2011년 프로골퍼 남기협 씨와 약혼했다. 둘은 투어 생활을 함께 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 박인비가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함께 연못에 빠지는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남씨와 약혼 이후로는 스윙 자세도 약혼자와 함께 상의하며 만들어 가고 있다. 약혼자 역시 프로골퍼 출신으로 박인비와 잘 맞는다고 전해진다. 특히 골프에 대해 즐겁게 대화하고 풀어갈 수 있다는 건 선수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인 선수
최초 타이틀

박인비의 스윙은 독특하다. 정통, 교과서적인 스윙과는 거리가 멀다. 천천히 클럽을 들어올렸다가 짧게 내리치는 스윙을 한다. 스윙이 예쁘거나 좋지 않지만 박인비에게는 딱 맞는 스윙이다.

그녀의 스승인 백종석(52) 코치는 박인비의 스윙을 한 마디로 ‘프리 암’(Free Arm)’ 스윙이라고 정의했다. 백 코치는 “박인비의 스윙은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스윙이다. 일반적으로는 몸을 위주로 하는 바디 턴 또는 팔을 위주로 하는 암 스윙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박인비는 두 가지 장점을 하나로 섞은 스윙이다”라고 말했다. 팔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건 향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팔을 잘 던진다. 특히 어프로치 할 때 더 효과가 좋다. 팔의 감각을 이용해 공을 자유롭게 보내다 보니 훨씬 더 정교하다. 테크니션보다 감각을 앞세운 ‘필’(feel) 스윙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비결은 ‘숙성된 스윙’이다.“박인비의 스윙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미국에 와서 데이비드 레드베터, 부치 하먼 등 많은 스윙코치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를 줬다. 또 나와 함께 한 5년 동안도 그 과정 중 하나였다. 그런 과정 속에 자기 나름의 노하우, 그리고 투어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스윙이 완성됐다. 음식처럼 지금 박인비의 스윙은 완성을 넘어 숙성의 단계에 이르렀다. 가장 맛있는 단계다.”

2년 연속 상금왕까지 도전
내년도 눈부신 활약 기대

박인비는 초등학교 시절 수의사가 꿈이었다. 동물을 워낙 좋아했다. 그러던 그녀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박세리 덕분이었다. 1998년 박세리가 한국 선수 최초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장면을 본 후 골프에 빠져들었다.골프광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올해 81세인 할아버지 박경준 씨는 3대가 함께 골프하기를 원했다. 이런 이유로 박인비 아버지 박건규(51)씨도 스무 살 때부터 골프를 쳤다.


‘3대 골프’를 원하던 박씨는 박세리의 US오픈 우승 직후 딸 손을 잡고 골프연습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박인비는 어릴 적부터 재능을 보였다. 남들보다 늦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채를 잡았지만 2년 만에 국가대표 주니어 상비군에 뽑혔다. 박건규 씨는 “한국 부모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골프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며 2001년 죽전중 1학년 때 딸을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보냈다. 데이비드 레드베터에게 레슨을 받았지만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들자 박인비는 중학교 졸업 후에 라스베이거스로 옮겨 부치 하먼으로 코치를 바꾸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골프에 재능을 보인 박인비는 14세인 2002년 US여자주니어 골프선수권 우승을 비롯해 미국 아마추어 대회에서 9차례나 우승하는 등 아마추어 무대에서 적수가 없었다. 세계 골프계는 “골프 천재가 탄생했다”며 박인비를 주시했다. 박인비는 2007년 LPGA투어 생활을 시작해 투어 2년차인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쓰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순탄할 것 같았던 프로 생활은 곧 기나긴 슬럼프로 이어졌다. 

‘세리 키즈’ 선봉에 설 듯했던 박인비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총 57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우승은 한 차례도 없었다. 박인비로선 끝도 없는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필드의 초록색만 봐도 겁에 질렸다. 당시 대회에 나가는 것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급기야 2009년 겨울 박인비는 아버지에게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돌파구는 일본에서 찾았다. 일본 진출 첫 해인 2010년 우승 두 번, 준우승 여섯 번을 했다. 2011년에도 2승을 거뒀다. ‘일본만 가면 잘되고 미국만 오면 왜 안 되냐’는 생각을 할 때인 2012년 7월, 박인비는 마침내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시련의 터널을 지난 박인비는 강해져 있었고 옆에는 가장 강력한 ‘비밀 병기’가 함께 있었다. 바로 ‘약혼자’다. 박인비는 2011년 8월 KPGA투어 프로 출신인 남기협 씨와 약혼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인비는 “오빠가 골프선수 출신이라 내가 언제 기분이 안 좋고 좋은지 다 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늘 즐겁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 그녀의 부활을 만든 독특한 템포의 스윙도 남씨와 함께 완성한 것이다. “지금까지 유명하다는 코치한테 다 레슨을 받아봤다. 그런데 공감이 잘 안 되더라”고 말한 박인비는 “그런데 오빠하고는 잘 맞았다. 올해는 바뀐 스윙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설명했다. 박인비는 지난해 2승에 상금왕과 최저타수상을 수상하며 부활을 알렸고, 2013년 메이저 3연속 우승과 함께 시즌 6승을 기록하며 새로운 골프 여제 탄생을 알렸다. ‘올해의 선수’. 명실상부한 ‘세계최강의 자리’는 한국 골프 팬들과 관계자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박인비 역시 “한국 선수 중에 올해의 선수가 없다는 점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강’,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 가운데 ‘올해의 선수’가 없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때문에 박인비는 이 상을 수상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한국의 자존심을 더욱 드높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골프계의 슈퍼스타다.
“슈퍼스타의 인생을 살기에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 사실 골프만 열심히 치다 보니 이런 자리에 온 것이지 않나. 내가 잘 하는 거라곤 골프 치는 것밖에 없고, 다른 분야에 대해선 아직도 배울 게 많다. 이런 상황에서 골프도 계속 잘 쳐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다. 내년에는 조금 더 성숙해져서 더 좋은 모습 보여주겠다.”

2016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2013 올해의 선수상’ 확정 후 “한국인 가운데 ‘처음’이였기에 이 상에 대한 욕심이 컸다”고 말한 그녀는 “한국 골프사에 의미있는 일을 하게 된 것 같아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많은 걸 느꼈고 많은 걸 배웠다. 이제 나의 새 목표는 커리어 그랜드슬램(한 시즌 메이저 대회에서 4승을 거두는 것) 달성”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과제는 그랜드슬램 달성과 올림픽 출전이라는 새로운 목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박인비 선수는?]

▲2002년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우승
▲2006년 프로 전향
▲2008년 LPGA투어 US여자오픈골프대회 우승(메이저)
▲2012년 LPGA투어 사임다비 말레이시아 우승, 에비앙 마스터스 우승
<2013년>
▲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 우승
▲LPGA투어 나비스코챔피언십 우승
▲LPGA투어 노스텍사스 슛아웃 우승
▲LPGA투어 웨그먼스 LPGA챔피언십 우승
▲LPGA투어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 우승
▲LPGA투어 US 여자오픈 우승
-메이저 3연승
(통산 LPGA투어 9승, 메이저 4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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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