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새누리당의 반격이 시작됐다. 국정원에 이어 국군사이버사령부, 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그동안 방어에만 치중하던 새누리당이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교조 등의 야당 편향 선거개입을 문제 삼으며 맞불을 놨다. 대선이 끝난 지 10개월이 넘었지만 정치권에서 18대 대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민주당이 제기하고 나선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방어에만 치중하던 새누리당이 대반격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앞으로 정부는 모든 선거에서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공무원단체나 개별 공무원이 혹시라도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지 않도록 엄중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런 일련의 의혹을 반면교사 삼아 대한민국 선거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여야 난타전
국정원에 이어 국군사이버사령부, 보훈처 등의 국가기관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당연한 언급이었지만 공무원단체나 개별 공무원까지 언급한 내용은 다소 생뚱맞은 것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날 박 대통령의 언급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대반격 신호탄이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같은날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전국공무원노조(이하 전공노) 홈페이지에 올라온 '투표 기호2번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자, 이명박 집권 재앙의 5년을 또다시 되풀이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공개하면서 공무원단체의 대선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아주 극렬한 성향을 가진 집단행동을 하는 단체에서 조직적으로 투표 방침으로 기호2번 표를 몰아주자라고 한 것"이라며 전공노의 법적 처벌을 주문했다. 같은 당 이완영 의원도 "대선과정에서 민주당은 전공노와 정책협약을 하고 공무원으로 하여금 정치활동을 하게끔 했다. 이에 따라 전공노 공무원들은 댓글을 달고 대선개입 활동을 한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당 지도부 차원에서도 검찰이 전공노를 즉각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앞서 자유청년연합과 종북척결기사단 등 우파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29일, 지난 대선기간 전공노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글들을 증거로 제시하며 전공노가 18대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해 특정후보를 지지했다고 검찰에 이미 고발한 상태다.
그러자 민주당은 전형적인 '물타기'라며 맞서고 있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게시판 제목이 뭐냐, 자유게시판이다. 첫 번째 맨 위에 전공노에서 일반인도 게시 가능하다고 했다. 밑에 선거법 위반 내용은 사전에 예고 없이 삭제할 수 있다고 돼있다"며 반박했다.
전공노, 공식 SNS 통해 박근혜 비방하고 문재인 지지
달아오른 부정선거 공방, 의미 없는 정쟁에 국민 눈총
정의당 서기호 의원도 "전공노의 선거법 위반과 국정원 선거법 위반은 차원이 다르다. 개인 선거법 위반과 막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을 같은 비중으로 볼 수 있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와 홍문종 사무총장도 전공노의 대선개입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면서 이 문제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설령 공무원 개인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공무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을 하지 못하게 하는 공무원법을 어긴 것이니만큼 철저하게 수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의원은 지난달 23일 성명을 통해 '미리 알았든 몰랐든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라며 수혜를 입었다면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본인도 알았든 몰랐든 불법선거운동의 수혜를 입었다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되물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문제 삼고 있는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 역시 지난 대선에서 전공노 등을 동원해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전공노 외에도 국방연구원 책임연구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이 새누리당을 일방적으로 비하하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글 등을 수차례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트위터 등에 올린 글을 살펴보면 박 대통령을 '간악한 독재자의 딸'이라고 지칭하거나 '닭그네' '늙은 친일 잔당 허수아비' 등으로 비하하는 내용, 문재인 후보를 당선시켜 새시대 새정치를 힘차게 열어가야 한다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새누리당에 따르면 전공노는 대선기간 공식 페이스북에 "충격, 이 와중에 이명박, 박근혜 정권 민영화 추진! 정권교체! 투표하자!"라는 게시물을, 공식 트위터에는 "박근혜 후보 단 한 가지도 100만 공무원을 위해 약속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 100% 수용했다"라는 등의 글을 게재하고 노조 소속 공무원들에게 관련 '인증샷'을 올리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또 전공노 소속 공무원들은 각자의 트위터를 통해 문 후보를 지지하고 박 후보를 비방했다고 새누리당은 밝혔다.
승자 없는 싸움?
한편 새누리당은 이 같은 공무원 대선개입 공세와 함께 검찰이 제시한 댓글수사팀의 증거물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방식으로 야당의 공세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댓글수사팀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면 야당의 주장 전체에 힘이 빠질 것이란 계산이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며 제시한 5만5천여 트위터 글 가운데 1만5천여 건이 국정원 직원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의 글로 확인됐다"면서 "신원 불상의 사람을 국정원 직원으로 지목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한 것은 참으로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윤 부대표는 "더욱이 대선 직전 7일간 쓴 것은 13건에 불과하고, 그 글 자체도 선거와 관련 없다"면서 "일방적인 주장을 뒤집는 반대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민주당이 국가정보원 직원이 썼다고 주장하는 트윗 중 상당수는 일반 네티즌들이 쓴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나섰다. 하 의원은 "민주당에서 밝힌 심리전단 직원들이 직접 썼다는 113건의 글 중 대다수인 76건은 이미 다른 네티즌이 써놓은 글을 복사해서 옮긴 수준"이라며 "사실상 리트윗 수준의 글은 민주당 주장과 달리 270건 중 233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방어에만 치중하던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에서의 민주당의 부정을 적극적으로 파헤치고 나서면서 여야는 대선부정 난타전 체제로 돌입한 모양새다.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어차피 양쪽 다 결정적인 증거는 찾기가 힘들다. 결국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는 의미 없는 정쟁만 지속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