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UFC 스턴건’ 김동현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14 12:53:15
  • 댓글 0개

“스쳐도 한방” 다음 목표는 챔피언 벨트

[일요시사=사회팀] 종합격투기 선수 김동현이 아시아인 최초로 UFC 9승을 달성하면서 챔피언벨트에 한 발짝 다가섰다. 지난 10일 브라질 홈무대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핵펀치’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인 최초의 UFC파이터 김동현(32·부산팀매드)은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상파울루 ‘바루에리 호세 코레아 아레나’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UFN) 29’ 웰터급 매치에서 브라질의 신흥 강자 에릭 실바를 2라운드 3분 만에 왼손 펀치에 의한 KO로 제압하면서 UFC 내 입지를 굳히는 모양새다. 김동현의 별명 ‘스턴건(전기충격기)’은 결코 장난으로 지은 것이 아니었다.

브라질 강자
KO로 제압

아시아인 최초로 UFC에서 통산 9승을 맞은 김동현. 한때 경기 내용이 지루하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다시 ‘스턴건’의 위엄을 나타냈다. 이번에 화끈한 KO승을 거두면서 타격과 그라운드를 고루 갖춘 올라운드형 파이터로 다시 한 번 진화했음을 증명했다.

이제 김동현은 명실상부한 한국 종합격투기의 에이스다. 특히 유도 기술을 섞은 테이크다운 능력과 끈질긴 레슬링 압박은 UFC 내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과거 UFC에서 발표하는 웰터급 TOP10 랭킹에 김동현 선수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김동현은 뛰어난 전적에도 불구하고 상위랭커로 뛰어 오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번번히 놓쳤기 때문이다.


T.J. 그랜트, 맷 브라운, 네이트 디아즈 등을 연파한 김동현은 6연승의 길목에서 ‘내추럴 본 킬러’ 카를로스 콘딧에게 기습적인 플라잉 니킥을 맞고 생애 첫 KO패를 당했다. 콘딧에게 덜미를 잡힌 김동현은 다시 넘버링 대회 언더카드 선수로 전락했고 콘딧은 승승장구하며 웰터급 잠정 챔피언까지 올랐다.

콘딧전에서 당한 부상을 이겨내고 UFC 141에서 션 피어슨을 꺾으며 건재를 과시한 김동현은 작년 7월 UFC 148대회에서 ‘주짓수 마스터’ 데미안 마이아를 만났다. 이는 마이아의 웰터급 데뷔전이기도 했다.

마이아는 미들급에서 한계를 느끼고 체급을 옮긴 선수지만 한때 서브미션으로만 5연승을 달리며 미들급 타이틀전까지 치렀던 강자다. 그런 마이아를 꺾는다면 단숨에 UFC 내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김동현은 마이아전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근육 경련이 일어나면서 경기 시작 47초 만에 TKO로 패하고 만다. 김동현을 꺾은 마이아는 웰터급 데뷔 후 파죽의 3연승을 달리며 웰터급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에릭실바 실신 KO…아시아 최초 9승 달성
브라질 무대서 아시아 선수 승리도 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현은 좌절하지 않았다. 김동현은 UFC 마카오 대회와 일본 대회에서 파울로 티아구(브라질)와 시야르 바하두르자다(아프가니스탄)를 나란히 판정으로 물리치고 재기에 성공, UFN29대회의 준메인  이벤터 자리에 올랐다.

이번 김동현의 상대였던 에릭 실바는 변칙적인 타격과 뛰어난 서브미션 결정력, 여기에 잘생긴 얼굴과 화려한 쇼맨십까지 갖춘 브라질의 신흥 강자였다. 물러서지 않고 전진하는 화끈한 경기 스타일 때문에 옥타곤 3승2패의 평범한 전적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기 당일 김동현은 브라질 관중들의 일방적인 야유에도 여유 있는 표정을 잃지 않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옥타곤에 입장했다. 실바 또한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포효를 하며 뛰어서 입장했다.

경기는 그라운드로 끌고 가려는 김동현과 스탠딩 타격으로 승부를 보려는 실바의 상반된 모습 속에 치열하게 진행됐다. 김동현은 1라운드 2분 경 기습적인 펀치에 이어진 테이크다운으로 상위포지션을 차지하며 1라운드를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2라운드에는 실바의 초반러시에 다소 고전하는 듯 했지만 라운드 중반 실바의 안면에 기습적인 왼손펀치를 작렬하며 실바를 그대로 KO시켰다. 김동현은 파운딩을 날리기 위해 몸을 날렸지만 쓰러진 실바는 이미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동안 중요한 고비를 넘기지 못했던 김동현이기에, 이번 승리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존 피치, 오카미 유신 등 김동현과 비슷한 유형의 그래플러형 파이터들이 퇴출된 마당에서 화끈한 KO로 승리를 따냈기에 UFC 내에서 김동현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질 전망이다.

김동현은 2008년 UFC 데뷔 후 처음으로 펀치 KO승을 거두며 한국인 UFC 최다승 기록(9승2패)을 이어갔다. 또한 ‘녹아웃 오브 더 나이트’에 선정돼 상금 5만달러(약 5400만원)도 받았다.

경기 후 브라질 한인회, 해병대 전우회와 식사를 함께한 김동현은 교민 지미 리가 제작한 영상인터뷰에서 “1라운드 끝나고 (그라운드로 가볼까 했지만)그라운드는 아니다 생각해서 원래 작전대로 타격으로 맞불을 놓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지루했는데…위기 속 빛난 ‘강펀치’
타격·그라운드 고루 갖춘 올라운드 파이터

이번 경기결과를 두고 해외 언론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 <폭스TV> 해설진은 “그라운드 플레이에 능한 김동현과 녹아웃 카운터를 노린 실바가 1라운드에서 자신들의 기존 플레이 스타일을 펼쳤지만, 2라운드에선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동안 판정승이 많았던 김동현의 플레이스타일을 꼬집은 얘기이기도 하다.

또한 <폭스스포츠>는 “김동현이 잔혹하게(devastating) 실바를 무너뜨렸다”면서 “3연승을 올린 김동현은 2008년 데뷔 이후 처음 거둔 KO 승리로 그가 헤엄치는 파이터들의 상어 탱크(shark tank of fighters) 속에서 더욱 존재감을 갖게 됐다”고 극찬했다.

아시아 최강
UFC‘스턴건’

브라질 <수페르 루타스>에 따르면 김동현은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이번 경기를 위해 열심히 훈련했다. 에릭 실바를 이기기 위해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김동현에게 이번 대회는 중요했다. 웰터급 톱10에 진입하고 UFC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바를 꺾어야 했다.

이어 김동현은 “그렇지만 3번째 라운드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면서도 실바를 KO로 눕힌 카운터 펀치에 대해서는 “순간적으로 기회가 보였고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번 KO승으로 9승에 성공한 김동현은 일본의 오카미 유신이 갖고 있는 UFC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13승)에도 한 발 더 다가섰다. 특히 오카미가 최근 UFC 무대에서 퇴출됐기 때문에 김동현이 승승장구를 이어간다면 오카미의 기록을 충분히 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옥타곤 데뷔 후 두 자리 승수까지 1승만을 남겨두게 된 스턴건 김동현, 그가 9승을 거두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꾸준한 승리로
존재감 입증

김동현은 시합이 결정되면 오전 훈련 후 식사와 휴식, 오후 훈련 후 식사와 휴식, 저녁 운동 후 식사와 휴식 등 온종일 훈련에만 매진한다. 늘 반복되는 사이클이지만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이기에 지루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시합을 앞두고 집중해서 운동할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고. 오히려 경기가 끝나고 쉬는 기간이 더 힘들다고 한다.

시합을 앞두고 감량하는 기간에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즐기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가 제일 힘들어 하는 건 식단 조절이다. 하루가 1년 같이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한다. 가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자동차를 보며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차를 좋아하는 그는, 사고 싶은 차로 바꾸기 위해서는 성공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시합이 끝나면 햄버거나 피자, 삼겹살 등 가리지 않고 먹는다. 미국과 일본 등 격투기 선진국의 명문 체육관 선수들의 식단을 따라해봤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한식이 제일 잘 맞는다고 한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생각으로
명실상부 한국 종합격투기 에이스

김동현은 중학교 때 유도를 시작해 용인대학교 유도학과에 입학했다. 그 후 종합격투기에 입문해 ‘스피릿 MC’에서 두 번의 프로경기를 승리했지만, 2004년 경제적인 문제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2006년, 일본의 종합격투기 단체인 ‘DEEP’ 무대로 복귀했고, 8번의 경기에서 7승 1무를 기록했다. 그 중에는 웰터급 챔피언인 하세가와 히데히코와의 경기도 있었는데, 그와의 첫 경기에서 승리한 뒤 다음 대회에서 타이틀 경기를 가졌지만 무승부 판정이 나 타이틀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이후 김동현은 미국의 종합격투기 단체인 ‘UFC’와 네 경기를 계약했다. 2008년에 열린 UFC 84 대회에서 잉글랜드의 제이슨 탄과 데뷔전을 가져 3라운드 팔꿈치 공격에 의한 TKO 승을 거두었다.

9월 7일 UFC 88에서 TUF 출신의 맷 브라운과의 경기에서 2-1 판정승을 했다. 그리고 세 번째 경기인 UFC 94에서는 웰터급의 정상급 파이터인 카로 파리시안과 붙어서 원래는 2-1 판정패였으나 카로 파리시안이 경기에 금지된 진통제인 하이드로콘 및 다른 기타 물질을 섭취한 사실이 검사 결과에 의해 밝혀지면서 3월17일에  9개월간 출전 정지 조치가 취해졌고, 이 경기는 무효가 됐다.

UFC 100에서 TJ 그랜트에게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승리한 다음, 2009년 11월14일에 열릴 UFC 105에서 댄 하디와 대결하기로 결정되었으나, 나카무라 카즈히로와의 훈련 도중 입은 부상을 입어 취소됐다.

2010년 5월29일에 열린 UFC 114에서 얼티밋 파이터 시즌 7 우승자인 아미르 사돌라와 맞붙어 압도적인 레슬링 실력으로 30-27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이후 UFC 120에서 존 해서웨이와의 경기가 예상되었으나, 또다시 부상으로 취소됐다.

그리고 2011년 1월2일, UFC 125에서 얼티밋 파이터 시즌 5 우승 출신의 강자, 네이트 디아즈를 맞아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이후 UFC와 4경기를 더 계약하였고, 2011년 7월 2일에 열렸던 UFC 132에서 WEC 챔피언 출신의 카를로스 콘딧과의 경기에서 1라운드 2분58초 만에 TKO패해 동양인 최초 6연승 달성에 실패했다. 카를로스 콘딧에게 맞아 오른쪽 안와골절을 당했다.

2011년 12월30일 UFC 141에서 캐나다의 션 피어슨을 꺾고, UFC 6승을 달성했지만, 2012년 7월7일 브라질의 데미안 마이아와의 UFC 148 경기에서 불의의 갈비뼈 부상으로 1년 만에 또 다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UFC에서 2패를 당한 김동현은 처음으로 UFC의 넘버링 PPV대회가 아닌 한 단계 아래급인 UFC on Fuel TV 대회로 밀려난다. 그러나 2012년 11월10일 UFC on Fuel TV 6에서 브라질의 파울로 티아고를, 2013년 3월3일 UFC on Fuel TV 8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시야르 바하두르자다를 모두 심판전원일치 판정승으로 꺾으며 연승행진을 이어간다. 두 경기 모두 상대를 넘어뜨린 뒤 일어나지 못하도록 묶어 놓는 압박전술로 승리를 거두어 매미라는 별명이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2013년 9월28일 UFC 아시아인 최다승자이자 김동현과 같은 그래플러스타일의 파이터인 일본의 오카미 유신이 퇴출되자 UFC에서 살아남으려면 김동현도 매미로 상징되는 지루한 경기스타일을 바꿔야 되지 않냐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김동현 역시 위기감을 느낀다는 심정을 밝혔다.

다시 한 번
챔피언 도전

지난 10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UFC Fight Night 29에 출전한 김동현은 브라질의 에릭 실바를 맞아 스탠딩 자세에서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부치는 종전과는 다른 전술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결국 2라운드 3분1초를 남기고, 왼손 카운터 펀치를 작렬하며 KO승을 거뒀다. 이에 경기를 중계하던 성승헌 캐스터는 “5년 묵은 스턴건이 터졌다”며 감탄했고, UFC의 대표인 데이나 화이트마저도 트위터에 “Wow! What a fucking fight!”라고 칭송을 보내 그간 다소 입지가 불안했던 김동현으로서는 격투기 인생에 다시 청신호가 켜지게 됐다. 김동현이 앞으로 원하는 경기는 웰터급 챔피언인 조르주 생 피에르와의 경기다. 같은 선수로서 배울 점이 정말 많은 선수이자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김동현 전적]

▲2013.10 승 UFC 파이트 나이트29(에릭 실바)
▲2013.3 승 UFC on Fuel TV8(시야르 바하두르자다)
▲2012.11 승 UFC MACAO(티아고)
▲2012.7 패 UFC 148(데미안 마이아)
▲2011.12 승 UFC 141(션 피어슨)
▲2011.7 패 UFC 132(카를로스 콘딧)
▲2011.1 승 UFC 125(네이트 디아즈)
▲2010.5 승 UFC 114(아미르 사돌라)
▲2009.7 승 UFC 100(TJ 그랜트)
▲2009.1 무 UFC 94(카로 파리시안)
▲2008.9 승 UFC 88 BREAKTHROUGH(맷 브라운)
▲2008.5 승 UFC 84 ILL WILL 다크매치(제이슨 탄)
▲2007.10 무 딥 32-32 임팩트(하세가와 히데히코)
▲2007.8 승 딥 31 임팩트(하세가와 히데히코)
▲2007.7 승 딥 CMA 페스티벌2(마에지마 유키하루)
▲2007.2 승 딥 28 임팩트(코히케 히데노부)
▲2006.12 승 딥 27 임팩트(안도 준)
▲2006.10 승 딥 26 임팩트(쿠보타 코우세이)
▲2006.08 승 딥 25 임팩트(이와미야 토모요시)
▲2006.05 승 딥 CMA 페스티벌(타니무라 미츠노리)
▲2004.09 승 스피릿MC 그랑프리 미들급(김형광)
▲2004.04 승 스피릿MC 3(노영암)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