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발 '전두환 효과' 막후

  • 박민우 pmw@ilyosisa.co.kr
  • 등록 2013.08.27 10: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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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네 꼴' 당할라…철면피들 '투항'러시?

[일요시사=정치팀] '전두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두환씨에 대한 검찰 압박이 거세지자 그의 친구 노태우씨가 지레 겁먹고 손을 들었다.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철면피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언제 '전두환 꼴'을 당할지 몰라서다. 서서히 그들의 지갑이 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돈 없다고 버텨오던 노태우씨가 결국 추징금을 낸다. 노씨는 미납 추징금 230억원을 조만간 완납할 예정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노씨와 동생 재우씨, 노씨의 전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은 최근 미납 추징금 230억원을 분납해 내기로 최종 합의했다.

재우씨는 미납 추징금 중 150억원을, 신 전 회장은 80억원을 맡아 내기로 했다. 이들은 최종 합의를 위한 문안 작성까지 마쳤고, 서명 절차만 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추징금 납부를 위한 합의가 진행 중이다. 조만간 서명절차를 거쳐 추징금을 완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생과 전 사돈이
분납하기로 합의

노씨는 1997년 대법원에서 군형법상 반란·내란과 뇌물수수죄 등으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확정 받았다. 현재까지 2397억원을 납부했고, 230억원 가량이 미납됐다. 노씨 측은 줄곧 납부 의사를 밝혔다. 단 '재우씨와 신 전 회장에게 맡긴 재산을 환수하면'이란 단서를 달았다. 노씨는 "1990년 신 전 회장에게 관리를 부탁하며 비자금 230억원을 건넸고 동생 재우씨에게도 120억원 상당을 맡겼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2001년 검찰이 제기한 노씨 추심금 청구소송에서 신 전 회장에게 230억원, 재우씨에게 120억원을 각각 납부하도록 판결했다. 검찰은 재우씨로부터 53억원을 회수해 70억원 가량이 남았다. 재우씨는 70억원만 내면 되지만 120억원에 대한 이자를 계산해 150억원을 내기로 결정했다. 검찰이 신 전 회장으로부터 회수한 돈은 5억원 뿐이었다. 신 전 회장은 추심 시효가 지나 납부 의무가 없지만 검찰의 조정 및 3자 논의에 따라 분납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노씨는 그동안 주장했던 '이자'를 포기하기로 했다.



노씨 측의 '만세'는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지난 6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 일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랬다. 전씨의 추징시효가 연장됐고, 가족들을 상대로 추징할 수 있게 됐다. 거액의 추징금을 미납하고 있는 전씨에 대한 환수 시효는 오는 10월에서 2020년 10월까지로 연장됐다.


개정안은 공무원이 불법취득한 재산에 대한 추징 시효를 늘리고 추징 대상을 제3자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또 공무원의 불법재산에 대한 몰수·추징시효를 현행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추징금 집행의 실효성 강화를 위해 검사가 관계인의 출석 요구, 과세정보 제공 요청, 금융거래정보 제공요청 및 압수·수색영장 청구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범인 외 가족을 비롯한 제3자가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불법재산 및 그로부터 유래한 재산도 추징할 수 있도록 추징대상도 확대했다.

'지레 겁먹고…' 노태우 추징금 230억원 완납
호화생활 배짱 미납자들도 자극…납부 릴레이?

무엇보다 최근 전씨에 대한 검찰의 압박이 거세지자 노씨가 지레 겁먹고 손을 들었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검찰의 '파상 공세'가 납부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씨는 물론 그의 가족들과 측근을 향한 '검날'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고 예리하다.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은 최근 전씨의 처남 이창석씨를 구속했다. 차남 재용씨 소유의 경기도 오산 토지와 서울 이태원 빌라, 장남 재국씨의 미술품, 부인 이순자씨 연금보험 등 600억원의 재산도 압류한 상태. 이씨에게 오산 땅을 불법 증여받고 법인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을 받는 재용씨도 구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외의 전씨 일가와 측근들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결국 노씨가 검찰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납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종의 '전두환 효과'가 아니냐는 것이다. 당장 '노태우 히든카드'에 자극을 받을 만한 인물은 다름 아닌 전씨다. 실제 전씨는 노씨의 추징금 완납 소식에 적지 않은 자극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검찰 안팎에선 전씨 일가도 추징금 자진 납부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추징금은 연좌제가 아니다"며 버티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난 모양새다.

전두환 가족들도
강제환수 전 납부?

사정기관 관계자는 "전씨와 그의 아들들은 추징금 전부가 아니더라도 일부 낼 의사를 검찰에 전한 것으로 안다"며 "다만 액수가 문제다. 가족들은 누가 얼마를 낼지를 두고 망설이고 있다고 한다. 합의가 쉽지 않겠지만 강제환수 직전 납부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귀띔했다.


검찰은 전씨 일가의 납부 상의와 상관없이 수사를 계속 진행한다는 방침. 미납금 1673억원 전액 환수를 공언하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전씨의 아들들을 소환할 계획이다. 나아가 전씨를 직접 조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두환 추징법'은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 범죄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물론 검찰의 수사도 피할 수 없게 된다. 법무부는 지난 20일 고액 추징금 미납자들의 재산추적 강화를 골자로 하는 '범죄수익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형사소송법'개정안을 각각 입법예고했다.

법무부는 "대기업 총수 등 사회 지도층이 다수 포함된 고액 추징금 미납자들은 '버티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납부를 하지 않고 재산을 은닉한 채 호화생활을 즐기는 경우가 많아 일반 서민에게 박탈감을 주고 있다"며 "추징금 미납자에 대한 재산추적을 강화하고 면탈행위에 엄정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두환 추징법'범위가 공무원에서 일반인으로 확대되면 ‘큰일’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하나같이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철면피들이다. 그렇다면 '전두환 추징법'에 걸릴 만한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추징금 약 25조4000억원 중 미납액은 25조3800억원. 전현직 대기업 총수와 사회 지도층 등 대부분 유명인사들이 내지 않고 있다. 우선 정치권에선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이 가장 걱정할 만하다.

권 고문은 100억원대의 추징금을 미납한 상태다. 권 고문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추징금 15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지금까지 고작 300만원만 납부했다. 본인의 재산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권 고문의 재산을 뒤졌으나 집이 부인의 이름으로 돼 있는 등 권 고문 명의의 재산이 없어 추징을 하지 못했다.

미납 추징금이 가장 많은 사람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선고받은 18조원에 가까운 추징금을 내지 않은 채 배짱을 부리고 있다. 여기에 대우그룹 전직 임원들의 추징금까지 합치면 23조원이 넘는다.

‘빈털터리’김 전 회장과 달리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는 아트선재센터 관장을 맡아 여전히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과시하고 있다. 아들 선엽씨는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CC 대주주다. 딸 선정씨는 시세로 200억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미화 2억6000만달러를 밀반출하고 계열사에 1조2000억원을 불법대출한 혐의로 구속돼 추징금 1962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추징금을 최 전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한 김종은 전 신아원 사장과 함께 내도록 했지만, 지금까지 최 전 회장과 김씨에게 추징한 금액은 고작 2억원에 불과하다.

최 전 회장은 "돈이 없어 추징금을 내지 못한다. 회사를 되찾으면 반드시 내겠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최 전 회장은 공식적으로 가진 것이 없지만, 그의 부인 이형자씨는 부자다. 이씨는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고급 빌라를 소유하고 있다. 최 전 회장은 부인의 호화 주택에서 넉넉하게 살고 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비리 혐의로 철창을 들락날락 거렸다.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많이 법원을 드나든 불명예를 안고 있다. 정 전 회장이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수서 비리, 대통령 비자금 사건, 한보사태, 대학 교비 횡령 등 모두 7번. 이중 5번이나 실형을 받았다. 그러면서 추징금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정씨는 지금까지도 '비리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해외로 잠적한 상태. 6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정씨는 자신이 설립한 강릉영동대학에서 72억원을 횡령한 뒤 이중 27억원을 세탁해 은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항소, 재판을 받던 중 2007년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출국한 뒤 행방이 묘연하다. 대법원은 2009년 정씨가 없는 상태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추징법 공무원서 일반인으로 확대 급물살
거액 체납 정재계 유명인사들 '조마조마'


정 전 회장은 '땡전 한 푼 없는' 무일푼 신세. 그러나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유자적한 초호화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며느리, 아들, 측근들은 정 전 회장의 해외 도피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검찰과 국세청은 정 전 회장의 행방을 쫓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정씨의 신병 확보를 위해 범죄인 인도 청구 등 국제 사법 공조까지 구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정 전 회장은 재산 은닉 의혹도 받고 있다. 증여세 등 6개 세목에 걸쳐 2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내지 않아 2004년 이후 10년째 국내 고액·상습 체납자 1위에 올라있다. 체납순위 상위권에 있는 두 아들 보근(645억원)씨와 한근(294억원)씨의 체납액을 합하면 정씨 일가의 체납액은 모두 3000억원이 넘는다.

이외에도 거액의 추징금을 미납한 사람들은 많다. ▲특가법상 관세법을 위반한 정모씨(1280억원)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김모씨(965억원) ▲사기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875억원) ▲금괴를 밀수하다 적발된 박모씨(757억원) ▲외국환 거래법을 위반한 김모씨(519억원) 등이 버티고 있다.

재산추적 강화…
면탈행위 엄정대처

이들 중 상당수가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 문제는 딱히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 재산을 가족이나 타인 등 차명으로 보유하거나 해외로 빼돌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행법상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 3년만 버티면 안내도 된다. 추징금 미납자들이 호의호식하면서 끝까지 버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검찰 관계자는 "추징금 징수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은 벌금과 달리 강제성이 없고 재산을 은닉한 경우 집행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며 "미납자들이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법조계 한 인사는 "'전두환 추징법'과 같이 그 대상을 일반인으로 확대해 시효를 현행보다 연장할 필요가 있다"며 "미납자 가족들의 재산도 압류와 경매 등을 통해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민우 기자 <pmw@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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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