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정권 2인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8.12 1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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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엔 ‘왕차관’이번엔 ‘왕실장’

[일요시사=사회팀] 박근혜 대통령이 허태열 비서실장을 경질하고 공안검사 출신인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새 실장에 기용했다. 과거 ‘7인회’의 ‘올드보이’가 청와대로 귀환한 것이다. 야당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평이 엇갈려 ‘불통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 인사개편을 전격 단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비서실장의 임명은 여러 비판이 나올 걸 감수하고 박 대통령이 내린 결단”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김 비서실장은 청와대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등과의 인연을 중시하는 인사 스타일을 갖고 있다. 김 실장은 박정희정부 때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과 대통령비서실 법률비서관을 지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높이 평가하는 법조인 출신이기도 하다.

원조 친박의 귀환
내부 결속 다진다

지난 7일 교통방송에 출연한 박찬종 변호사는 김 비서실장을 두고 “아주 상관에 대해서 빈틈없이 깔끔하게 마음에 들도록 일을 대단히 잘 하는 사람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김기춘 실장을 임명해 놓으면 아마 굉장히 안심을 할 사람이다. 그러니까 김기춘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아버지와 자신에 이어서 부녀 2대로 충성하고 그렇게 일을 잘 해 줄 것이다(라고 기대할 것이다.)”고 평가했다.

김 비서실장의 발탁 배경에는 허태열 전임 실장이 ‘비서’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한 반작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은 정무 감각과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며 “대통령의 뜻을 잘 파악하고 일머리를 잘 찾아 성과를 낼 수 있는 조건 두 가지를 모두 총족한다”며 “일을 꼼꼼히 해 주도적으로 챙기는 컨트롤타워 역할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즉 임기 첫해 하반기 수석들을 독려하고 장악해 성과를 낼 군기반장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김 비서실장의 한 지인은 “김 실장이 실력 없는 사람, 얼렁뚱땅 넘어가는 사람을 아주 싫어해 대통령비서실이 ‘악 소리’가 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로켓으로 말하자면(박근혜 정부가) 2단계 추진이 됐는데 그만큼 안정감과 속도감을 내는 강력한 추진로켓이 돼달라”며 환영의 제스처를 취했다. 또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정치권 대선배시고, 많은 훌륭한 경륜을 갖춘 김기춘 실장님이 비서실장 된 것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덕담을 건넸다. 하지만 이번 인선을 두고 새누리당 내에서도 의견이 쟁쟁하다. 새누리당 이상돈 전 비상대책위원은 “썩 좋은 구도는 아니라고 본다”며 “무엇보다도 비서실장이 총리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난 6일 한 언론은 실제로 김기춘 실장와 정홍원 총리간의 지난 수십년 관계는 철저히 ‘수직적’이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철통보안 박근혜식 ‘깜짝인사’단행
총리보다 센 청와대 실세로 자리잡나

김 실장은 검사 재직시절부터 자신보다 다섯살 아래인 정 총리와 친했다. 게다가 두사람은 경남중 동문이다. 정 총리는 경남중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형편이 안 좋아 진주사범학교에 진학했다. 1987년 김 실장이 법무연수원장으로 있을 때 정 총리는 법무연수원 기획과장으로 손발을 맞췄다. 이런 인연이 계기가 돼 김 실장이 정 총리를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추천했고,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기꺼이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에게 정 총리를 현 정부 초대 총리로 추천한 사람도 김 실장이란 소문이다.

이쯤 되면 김 비서실장은 단순한 비서직을 넘어선 ‘2인자’로 군림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 사전에 ‘2인자’란 단어는 없다”는 말로 우려를 일축했다.

철통보안 속에 이뤄진 ‘깜짝인사’에 야당은 아연실색했다. 민주당은 한 목소리로 김 비서실장을 인선한 데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김 비서실장 선임 직후 브리핑을 갖고 “과거에 많은 공작정치를 한 사람으로서 엄중한 정국 상황에서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1972년 검사 시절 유신헌법을 초안한 인물로 국회의원 시절에는 한나라당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고, 92년에는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역감정을 조장했던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도 주도한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내부 효과는 뛰어나겠지만, 외부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소장은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기춘 실장 기용에 대해 “총리 인사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경륜을 갖춘 분이기 때문에 내부를 단속하는 효과는 충분히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미 정계를 은퇴한 지 제법 오래인 분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또 야당에서 굉장히 껄끄럽게 생각하는 몇 가지 부분에 다 연루돼 있는 분이라 외부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촌평했다.

올드보이의 부상
실세로 떠오르나

1939년 경상남도 거제에서 태어난 김 비서실장은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해 60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광주, 부산, 서울지검 등에서 검사로 근무했으며 법무부장관까지 지냈다. 그리고 92년 12월 11일,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지역감정을 조장해 여당 후보를 지원하는 내용을 의논했던 ‘초원복집 사건’으로 기소됐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92년 대선을 앞둔 12월 부산 ‘초원복집’에서 김기춘 당시 전 법무부 장관과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이 모여서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다. 이 내용이 정주영을 후보로 낸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에 의해 도청돼 언론에 폭로됐다. 이 비밀회동에서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와 같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이 나왔다.

정수장학생 출신…박정희부터 대이은 인연
친박 원로그룹 ‘7인회’멤버로 당선 공신

하지만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했고, 주류 언론은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켜 사건의 본질을 호도했다. 이 때문에 통일국민당은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김영삼 후보에 대한 영남 지지층이 결집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여세를 몰아 김영삼 후보는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비서실장은 오히려 이 사건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했다. 이후 김기춘법률사무소를 개소하여 변호사로 활동했다. ‘초원복집 사건’으로 시민단체에 의해 낙선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15대, 16대,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리 3선을 하여 12년간 국회의원직을 수행했다.

공안정치 신호탄
과거로 회귀하나

이에 앞서 김 비서실장은 72년,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실무적으로 참여해 유신헌법 해설서 집필에도 참여했다. 초안에는 비상조치권 등이 포함됐고 이는 유신헌법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한 핵심 조항인 긴급조치권으로 현실화됐다. 지난 3월 유신헌법에 기반한 긴급조치 1, 2, 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진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적극 관여했다는 점도 야권이 반발하는 대목이다. 김 비서실장은 2004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시절 노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의결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이러한 김 비서실장의 과거 행적을 두고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초원복집 사건이라는 것은 지역감정 조장이라는 측면도 있고 또 부적절한 논의가 오고간 것은 사실인데 아시다시피 불법도청이 됐다”며 “그런데 그게 밝혀지고 나서 실제로 뭘 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유 대변인은 “그런데 그 이후로 이분이 국회의원에 세 번 당선되고 그래서 어떤 정치적인 책임은 같이 졌다고 본다”며 “그때 그런 기조를 가지고 정치나 정책을 하지 않겠냐고 보는 것은 기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비서실장과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안검사로서 박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냈다. 김 비서실장은 박정희정권 말기에 청와대 비서관도 지냈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김 비서실장을 씽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으로, 2007년에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캠프의 법률지원단장으로 각각 중용했다.

사실 박 대통령과 김 비서실장 사이에는 ‘정수장학회’라는 연결고리가 있다. 1962년 설립된 정수장학회에는 ‘정수 가족’으로 묶이는 두 개의 조직이 있다. 하나는 현재 장학금을 받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임인 ‘청오회’고, 다른 하나는 졸업생들의 모임인 ‘상청회’다. 청오회 회원이 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상청회 회원이 된다. 김 비서실장은 이 상청회 회장을 지냈다. 그리고 지난 6월 중순부터는 재단법인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왔다.


지역감정 부추긴 ‘초원복집사건’당사자
야당 “공작정치 주도한 시대착오적 인사”

또한 친박 원로그룹 ‘7인회’의 멤버로 박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 7인회에는 강창희 국회의장,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등이 있다. 이번 김 비서실장의 등장으로 7인회는 막후 실력자에서 명실상부한 현 정부 최고의 실세로 전면에 나서게 됐다. 정치 2선으로 물러났던 7인회 멤버들이 새 정부 출범을 전후로 다시 부활해 정치 전면에 재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인사개편에 몇몇 시민단체들은 “잘못된 인사”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는 ‘초원복집 사건 김기춘씨의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을 취소하라’는 성명을 내고 청와대를 질타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김기춘 실장에 대해 “1974년부터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며 민주주의를 파괴한 1972년 유신헌법 초안 마련을 주도한 인물”이라며 “청산해야 할 과거의 주역을 되살리는 이번 인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논평을 통해 “이런 인사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이번 청와대 수석비서진 부분교체는 취임 후 줄곧 지적되어 왔던 인사실패를 자인한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실패가 취임 후 6개월의 국정운영 실패로 귀결되면서 박 대통령이 현재 시스템으로 국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 이번 인사”라고 주장했다.


김 비서실장은 과거 발언으로도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04년 경북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김 비서실장은 성매매 특별법 시행에 대한 질의도중 “몸을 파는 여성은 생존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들을 구제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단속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허언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03년 국회의원 시절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그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국회 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노무현정부를 ‘친북·좌파 정권’으로 규정하며 노골적으로 색깔론을 펼쳤다. 김 비서실장은 “노 정권은 공산당이 합법화돼야 민주주의가 완성된다고 하고, 이적단체 한총련을 격려하고, 인공기 훼손했다고 북측에 사죄하고, 소위 인민민주주의 친북 활동한 자들을 민주 인사로 둔갑시키려고 한다. 친북적이고 좌파적인 정권”이라며 “노 대통령은 구차하게 재신임에 매달리지 말고 즉각 하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김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 혐오증’을 드러내왔다. 06년에는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노 전 대통령을 ‘사이코’로 규정했다. 노 전 대통령이 고건 전 국무총리 인사 기용 실패와 예비역 장성들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시민사회도 가세해
“잘못된 인사” 비판

김 비서실장의 인권 의식에도 문제가 제기됐다. 검찰총장 시절인 1989년, 김 비서실장은 당시 한 기자간담회에서 “더 많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 등 피의자의 변호인 접견권에 대해 일시적 제한·금지가 필요하며 이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법원과 변호사들은 검찰의 발상을 “시대착오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구속된 피의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으로서 어떤 이유로도 이를 제한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고 항의하는 공한을 김 실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김기춘 비서실장은?

▲경남 거제(74세)

▲경남고, 서울대 법대 졸업

▲대구고검장

▲법무연수원장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15·16·17대 국회의원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기사 속 기사>

김기춘 발탁에…
100조 한일해저터널 주목 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박근혜정부의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며 100조원에 달하는 한일해저터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 신임 비서실장은 오래전부터 한일터널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찬성론자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최근 중국의 해저터널 추진 등을 고려할 때 한일해저터널이 국책사업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09년부터 한일터널포럼의 한국 대표를 맡아 한일터널의 필요성을 국내외에 알려왔다. 한일터널포럼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지지하는 한국과 일본의 인사들로 구성된 단체다. 2009년 결성 이후 양국의 경제협력과 평화를 위해 부산과 일본의 대마도, 후쿠오카를 잇는 300㎞ 규모의 해저터널을 건설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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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