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만 남긴’ 남양유업 사태 총정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7.29 13: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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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지만…‘악덕’ 주홍글씨 낙인

[일요시사=경제1팀] 올 상반기 재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남양유업 사태가 일단락 됐다. 영업직원이 대리점장에게 내뱉은 욕설 녹취록이 인터넷에 공개된 지 두 달 반 만이다. 지난 75일은 남양유업 49년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온 국민의 손가락질 속에 범국민적으로 이렇게 욕을 먹은 기업이 또 있을까 싶다.



이른바 ‘갑(甲)의 횡포’ 문제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남양유업 사태가 사측과 대리점협의회간 합의로 마무리됐다. 이번 사태는 유통업계에 만연했던 ‘밀어내기’ 관행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남양유업은 그간 받아온 악덕 기업 이미지와 불매운동으로 이어진 매출감소, 무너진 시장 점유율을 회복해야 하는 커다란 숙제를 안게 됐다.

무너진 대외신뢰
점유율 회복 숙제

지난 18일 서울 중구 중림동 LW컨벤션 기자회견장. 지난 5월 9일 김웅 남양유업 대표가 임직원과 함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머리를 숙였던 장소다. 남양유업은 영업사원의 폭언과 제품 떠넘기기 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이 SNS를 통해 확산된 지 6일 만에 대국민 사과를 열었다.

그리고 두 달여 뒤. 이날 김 대표 옆에는 이창섭 대리점협의회 회장이 섰다. 두 사람이 나란히 기자회견장에 나타나기까지는 곡절이 많았다. 최초로 ‘남양유업의 횡포’ 문제를 제기했던 전직 대리점주들과의 협상은 10여차례나 결렬되는 난항을 거듭했다.


지난달 현직 대리점의 98%인 1100여개 대리점주들이 모인 대리점협회와 협상을 타결한 뒤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남양유업 본사와 대리점협의회는 이날 새벽까지 이어진 협상을 통해 불공정행위 근절, 밀어내기 피해보상, 대리점계약 존속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상생협약안을 체결했다. 양측 협상이 결렬 위기를 맞을 때마다 중재 역할을 해 온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을(乙)을 지키는 길)’ 의원들도 참석했다.

양측은 우선 ‘밀어내기’ 등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고 이를 뒷받침할 발주시스템을 개선키로 했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요구한 시정명령에도 포함된 내용으로, 회사가 대리점주들의 발주 내용을 삭제하고 임의 조작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PAMS21 시스템을 투명하게 변경하기로 했다.

불공정거래 근절·상생위원회 설치 등 최종 합의
임직원 고소·고발 취하…피해액 산정·보상키로

이와 함께 대리점주의 영업권을 회복시키고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들이 합의안에 포함됐다. 대리점주는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 3년 내에서 계약기간을 보장받고, 중대한 결격사유가 없는 이상 3년의 추가 계약이 보장된다.

대리점주들의 영업환경 보호, 고충 처리 등을 협의할 ‘상생위원회’도 발족한다. 상생위원회는 회사 지명 3인, 대리점협의회 지명 3인 등 총 6명으로 구성되고 매분기 1회 이상 본사 사무실에서 정기회의를 개최하게 된다.

협상안 타결
어떤 내용?


‘밀어내기’ 피해를 입은 대리점에 대한 보상 부분은 아직 조율이 남아 있는 부분이다. 피해보상을 논의하는 ‘배상중재기구’를 구성해 늦어도 향후 2개월 안에 구체적인 보상액을 산정하기로 했다. 피해발생 여부에 대한 입증이 어려운 경우 해당 대리점의 평균 매입물량, 영업기간 등을 고려해 산정하기로 했다.

사측은 배상기금과 별도로 대리점별로 생계지원금 500만원을 즉각 지급하기로 하고, 보복성 징계로 계약이 해지된 대리점 8곳의 영업권도 다시 회복하기로 했다.



양측은 이날 남양유업 정상화를 위한 공동선언문도 채택했다. 공동선언문에는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사죄드리고 ▲남양유업이 앞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생의 모델로 거듭날 것이며 ▲이제는 국민들께서 남양유업을 용서하시고 제품을 구매해 주심으로써 대리점과 회사를 살려주실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서 울려주신 경종을 잊지 않고 낡은 관행을 뿌리 뽑아 업계를 통틀어 가장 좋은 대리점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며, 진정한 상생과 협력의 상징이 되는 모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협의회 측도 “이 자리가 고통 받는 국민의 눈물을 멎게 하는 첫 걸음이 되도록 해달라”며 “이제 남양유업에 대한 분노를 거두고 응원해 주시기를 국민들께 부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사회에서 갑의 횡포, 을의 눈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노력해야 되는데 한 발짝 진전이라 생각한다”며 “을지로위원회의 의원들께서 여기에 작은 도움이 돼서 당으로서는 보람을 느끼고 협약이 지켜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이날 협상 타결을 계기로 사측에 대한 모든 고소, 고발을 취하하기로 했다. 다만 불공정거래에 관한 부분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들어온 만큼 검찰 수사가 이어졌다.

협상 타결 4일 뒤,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곽규택 부장검사)는 김 대표와 영업총괄본부장, 영업2부문장, 영업관리팀장, 판매기획2팀장, 서부지점 치즈담당 등 임직원 6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또 남양유업 4개 지점의 전·현직 지점장, 지점 파트장, 지점 영업담당 등 22명은 형법상 업무방해 및 공갈죄를 적용해 300만원∼10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남양유업 법인도 벌금 2억원에 약식 기소했다. 다만 홍원식 회장은 밀어내기에 가담한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욕우유’에
소비자들 뿔나

남양유업 사태는 지난 5월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남양유업 싸가지 없는 직원’이라는 제목으로 30대 영업직원과 50대 대리점주가 나눈 대화녹취 파일이 올라오면서 불거졌다. 3년 전 녹음된 2분45초 분량의 파일에는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예정됐던 물량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떠맡기는 내용이 담겨있다.

음성 파일 속 영업직원은 “죽기 싫으면 받으라고요. 끊어 빨리. 받아. 물건 못 받겠다는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고”라거나 “(물건을 받을 상황이 안 된다면) 버리든가 그럼. 버려”라고 몰아붙였고, 대리점주는 “지난달에도 목표치 넘게 물건을 받았다”며 이번에는 물건 보관할 창고도 없으니 더 이상 받을 수 없겠다“고 읍소했다.


그러자 영업 소장은 “차라리 망해라”, “죽여 버리겠다”, “제품 못 받겠으면 버려라”, “개 XX야”, “씨XX아”, “맞짱 뜨자”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이 음성파일은 삽시간에 인터넷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유명 커뮤니티마다 음성 파일이 오르내렸고 네티즌들은 끔찍한 폭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남양유업 영업직원에 대해 발끈했다. 곧이어 남양유업 홈피와 블로그, 트위터에는 비난이 폭주했다.

‘막말 파문’으로 촉발
‘갑의 횡포’에 불지펴

앞서 4월에는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이 남양유업이 2012년 5월부터 최근까지 전산 프로그램을 조작해 대리점 발주 물량을 부풀리고 명절 떡값 등을 갈취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대리점주 측은 고발장에서 남양유업이 주문관리 시스템을 조작해 대리점에서 낸 주문보다 2∼3배 많은 양의 제품을 대리점에 보낸다고 주장했다. 대리점의 필요가 아니라 본사의 판매 목표에 맞춰 제품을 ‘밀어내기’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양보다 많이 받은 유제품은 유통기한이 짧은 탓에 두고 팔수가 없어 대부분 버려졌다고 주장했다.



또 남양유업이 떡값 및 임직원 퇴직위로금과 대형마트 판매 직원의 급여도 대리점에서 내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명절이 되면 떡값이라는 명목의 돈을 각 대리점마다 10만∼30만원 씩 현금으로 착취하고, 유통업체 파견직 사원의 임금을 20∼30%만 지급한 채 나머지 70∼80%의 임금은 납품 대리점에게 부담하게 했다는 것이다.


대리점주 측은 이를 거부하면 남양유업 측에서 계약 해지, 보복적 밀어내기, 투자비용의 매몰가능성 등을 이용해 협박과 압력을 가한다고도 주장했다. 또 남양유업이 증거를 은폐하고 교묘하게 데이터를 조작해 이와 같은 불법 착취 흔적이 남지 않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에 남양유업 측은 당초 “불만을 가진 일부 대리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관련의혹을 일축했으나, ‘폭언 음성파일’ 파문으로 남양유업 횡포에 대한 국민 공분이 커지자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이를 일부 시인했다. 

남양 후폭풍
너도 나도 을?

공식 사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이는 곧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남양유업은 ‘악덕 기업’, ‘횡포 기업’ 이라는 이미지 타격과 함께 매출감소 직격탄을 맞았다.

남양유업 매출이 대형마트 등에서 30% 이상 떨어졌고 주가도 급락해 사태가 시작된 지 5거래일 동안 시가 총액 1224억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주당 100만원 이상인 종목을 뜻하는 ‘황제주’ 자리도 내줘야 했다.

남양유업 사태는 ‘갑의 횡포와 을의 눈물’을 사회 전반에 화두로 던졌다. 식품업계는 물론이고, 주류, 편의점, 화장품, 베이커리 등 유통업계 전반과 자동차 협력업체에서도 갑의 횡포를 고발하고, 바로 잡으려는 을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사회제도와 관련해서도 업계에 남긴 후폭풍은 간단치 않다. 국회에서는 남양유업 방지법(대리점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과 집단소송제 등이 논의되는 등 경제민주화를 위한 불공정거래 근절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남양유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12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서울우유ㆍ한국야쿠르트ㆍ국순당 등 다른 업계로 조사를 확대했다.

무엇보다 유통업계는 앞 다퉈 대리점ㆍ가맹점들과 ‘상생협약식’을 체결하는 등 윤리경영을 강조하며 내부단속에 나섰다. 빙그레는 이건영 대표이사가 협력업체와 대리점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비롯해 재판매와 가격 유지 행위에 지위고하를 막론한 일벌백계 방침을 새로 세웠고, 현대백화점은 전 협력사와의 모든 거래 계약서에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러나 “사회 전반으로 갑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으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옳다”면서도 “‘무늬만 을’들이 너나없이 본사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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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