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남양유업 사태 총정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5.13 14: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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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만 안든 강도”…단두대 오른 ‘조폭우유’

[일요시사=경제1팀] 흔히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갑과 을’로 규정한다. 둘은 분명히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대등관계지만, 현실은 갑이 을보다 훨씬 우월한 특권을 누린다.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남양유업 사태’를 보면 갑과 을이 어떤 관계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물건을 못 받겠으면 받아서) 버리라고요. 버려. 그럼 망해. 망하라고요. 이 ㅆㅂㄴ아. 당신 얼굴 보면 죽여 버릴 거 같으니까. 이 ㄱㅅㄲ야. 자신 있으면 ㅆㅂ (여기로) 들어오든가. 이 ㄱㅅㄲ야. 맞짱 뜨기면. ㅂㅅ 같은 ㅅㄲ야. 받으라고 ㅆㅂㄴ아.”

직원 폭언 파일
인터넷 ‘발칵’

30대 남양유업 직원이 아버지뻘인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붓는 음성 파일이 논란이다. 이는 아이디 ‘김OO’씨가 지난 4일 오전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남양유업 싸가지 없는 직원’이라는 제목의 음성 파일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2분45초 분량의 파일에는 30대 남양유업 영업관리소장이 하청 대리점주와 전화 통화하는 음성이 담겨 있다.

김씨는 설명글에서 “전화에서 욕을 하는 사람은 34살 남양유업 팀장”이라며 “하청 대리점주는 아버지뻘이다. (남양유업 팀장은) 인간이 돼라. 정말이지”라고 적었다.

음성 파일을 들어보면 남양유업 영업소장은 예정됐던 물량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대리점주에게 떠맡기며 물건을 받을 것을 강요한다.


영업 소장은 “죽기 싫으면 받으라고요. 끊어 빨리. 받아. 물건 못 받겠다는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고”라거나 “(물건을 받을 상황이 안 된다면) 버리든가 그럼. 버려”라고 몰아붙인다.

대리점주는 “지난달에도 목표치 넘게 물건을 받았다”며 이번에는 물건 보관할 창고도 없으니 더 이상 받을 수 없겠다“고 읍소했다.

그러자 영업 소장은 “차라리 망해라”, “죽여 버리겠다”, “제품 못 받겠으면 버려라”, “개 XX야”, “씨XX아”, “맞짱 뜨자”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음성파일은 삽시간에 인터넷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유명 커뮤니티마다 음성 파일이 오르내렸고 네티즌들은 끔찍한 폭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남양유업 영업소장에 대해 발끈했다. 곧이어 남양유업 홈피와 블로그, 트위터에는 비난이 폭주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남양유업은 하루만에 공식 사과문을 냈다.

‘강매에 떡값까지’본사-대리점 고소·고발전
영업사원 점주에 욕설파일 공개돼 파문 확산

남양유업은 대표이사 명의로 “문제의 음성파일은 조사 결과 2010년 초 당사 지점 영업사원과 가맹 대리점주의 통화내용이 맞다”며 “물의를 일으킨 직원은 사표를 제출했고 당사는 사태의 엄중함을 감안해 이를 즉각 수리했다”고 밝혔다.

또 철저한 진상조사, 회사차원의 해당 대리점주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 인성교육시스템 재편을 통한 대리점과 영업환경 전반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약속했다.


제품 밀어내기
금품요구까지

남양유업의 이 같은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남양유업 대리점 업주들은 지난달 초 서울중앙지검에 남양유업이 2012년 5월부터 최근까지 전산 프로그램을 조작해 대리점 발주 물량을 부풀리고 명절 떡값 등을 갈취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남양유업 대리점주 A씨 등은 남양유업이 주문관리 시스템을 조작해 대리점에서 낸 주문보다 2∼3배 많은 양의 제품을 대리점에 보낸다고 주장했다. 대리점의 필요가 아니라 본사의 판매 목표에 맞춰 제품을 ‘밀어내기’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양보다 많이 받은 유제품은 유통기한이 짧은 탓에 두고 팔수가 없어 대부분 버려졌다고 했다.

A씨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남양유업 본사에서 이메일(전화, 문자도 종종 사용)로 매일 전국 남양유업지점으로 구체적 품목, 수량 등을 지시하고, 떠불(떠먹는 불가리스), 엣홈주스 등의 품목은 월간, 연간 목표에 따라 상시적으로 지시를 받는다”며 “여기에 남양유업 물류센터에 재고 품목이 급증할 때 물류센터의 요청으로도 밀어내기 품목과 수량이 할당된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보통 유제품유통업체에서는 상품 유통기간이 70%가 되면 상품 자체를 출고하지 않고, 본사 폐기하지만 남양은 이러한 상품을 대리점에게 밀어내기로 강제발주 해 폐기상품 처리비용을 대리점에게 떠 넘긴다”며 “폐기 상품을 대리점에게 정상주문 상품으로 강매해 이익을 취하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대리점에게 전가시킨다”고 덧붙였다.



A씨 등은 또 남양유업이 떡값 및 임직원 퇴직위로금과 대형마트 판매 직원의 급여도 대리점에서 내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명절이 되면 떡값이라는 명목의 돈을 각 대리점마다 10만∼30만원 씩 현금으로 착취하고, 유통업체 파견직 사원의 임금을 20∼30%만 지급한 채 나머지 70∼80%의 임금은 납품 대리점에게 부담하게 했다는 것이다.

A씨는 “이러한 부당 착취로 신용불량자가 돼 망하는 대리점이 있으면 그 구역에 새로운 대리점을 개설하여 대리점 개설비 명목으로 200만∼500만원을 요구한다”며 “판매 장려금, 육성 지원비 등의 리베이트 명목으로 10∼30%를 요구하며 임직원 퇴직 위로금까지 요구하는 지경이 됐다”고 털어놨다.

거부시 협박·압력
데이터 조작 의혹

A씨 등은 이를 거부하면 남양유업 측에서 계약 해지, 보복적 밀어내기, 투자비용의 매몰가능성 등을 이용해 협박과 압력을 가한다고 주장했다. 또 증거를 은폐하고 교묘하게 데이터를 조작해 이와 같은 불법 착취 흔적이 남지 않도록 한다고 말했다.

A씨는 “남양유업은 피해자 소송 등 항의를 막기 위해 증거 수집을 어렵게 만들어 놓아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실제적인 증거를 찾기 힘들다”며 “대리점의 전산 발주데이터를 주문관리란 작업을 통해 사라지게 만들고 본사에서 수정한 데이터만 남게 전산프로그램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또 “모든 부당한 금품요구는 오직 현금으로 요구하거나, 그 금액이 클 때는 차명계좌로 송금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홍원식 회장 무개념 주식거래 도마…먹튀?
대국민사과에도 불매운동…사태 ‘안갯속’

이에 남양유업 측은 당초 “이들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대리점을 관리하면 다른 곳들은 왜 반발하지 않겠느냐”며 “불만을 가진 일부 대리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관련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나 ‘욕 음성파일’ 파문으로 남양유업 횡포에 대한 국민 공분이 커지자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일부 시인했다. 

김웅 남양유업 대표는 지난 9일 오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LW컨벤션에서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영업현장에서의 밀어내기 등 잘못된 관행에 대해 이와 같은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원천적으로 차단할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겠다”면서 일부 직원들이 대리점으로부터 떡값을 수수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진상조사를 통해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대국민 사과에도
회장님은 지분매각

여기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연이은 ‘주식 매각’ 배경에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홍 회장은 욕설파문이 일기 전인 지난 4월 18일부터 5월 7일까지 수차례에 걸쳐 주식을 처분해 현금을 취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홍원식 회장은 18일을 시작으로 9일까지 총 14차례에 걸쳐 보유주식 6852주를 장내 매도했다. 매각 규모는 적게는 72주에서 많게는 1383주까지 다양하다. 처분금액은 주당 110만원 수준으로 지분 매각을 통해 75억원을 현금화했다.

홍 회장은 유투브를 통해 남양유업 영업직원의 폭언 녹음파일이 공개된 3일, 남양유업대리점주 항의 집회가 열린 6일, 주가 100만원이 깨지면서 황제주 지위를 내줬던 8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9일에도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 주식 269주를 105만원에 장내 매각했다.

그 사이 보유주식은 18만771주에서 17만3919주로, 지분율은 25.10%에서 24.15%로 줄어들었다. 이번 홍 회장의 지분율 변화는 지난 2009년 6월12일 증여세 물납으로 1만4100주가 줄어든 이후 4년만의 일이다.
이에 대해 김웅 대표는 “개인적인 은행 채무가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증권거래소를 통해 합법적으로 거래한 것으로 안다”며 말했다.

그러나 업계와 증권가 안팎에서는 홍 회장이 남양유업 주가가 급락할 것이라는 거래소 안팎의 정보를 부정한 방법으로 미리 빼내 주식에 대한 손해를 막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주식 배당으로 올해에만 1억8000만원의 현금을 챙긴 대기업의 오너가 은행 채무를 갚기 위해 주식을 또 판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연이어 나오고 있다.

자본시장법에서는 미공개 내부정보에 의해 자기 회사의 주식 등의 매매를 금지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회사 내부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잇따라 매각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폭언 파문 사태’가 결국 임직원들의 대국민 사과로까지 이어졌지만 지역 소비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인터넷상에서는 ‘피해자인 대리점주들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고, 대국민 사과는 쇼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일부 편의점과 슈퍼 등에서는 판매 중단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많은 이들 역시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하고 있어 현재로선 남양유업 사태 향방을 짐작키 힘든 상황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양유업 ‘욕설 파문’후폭풍
공정위 드디어 칼 뽑았다

남양유업 직원의 ‘욕설 파문’으로 불거진 대리점 밀어내기 논란이 여러 업계로 광범위하게 확산될 조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8일 서울우유 등 주요 유제품 업체들로 조사를 확대했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불공정행위 등의 혐의로 이달 말 20여개 업체를 공정위에 신고하겠다고 밝혔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른바 ‘갑을 관계’에서 일어나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공정위는 이날 시장감시국 등에서 3개팀을 구성해 서울우유, 한국야쿠르트, 매일유업 본사에서 현장조사를 벌였다. 본사가 대리점이 주문하지 않은 물량을 강제로 넘기는 밀어내기 행위가 있었는지가 조사의 초점이다. 

공정위는 이들 기업의 대리점 관리 현황과 영업, 마케팅 관련 자료를 가져간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남양유업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1월과 4월 대리점주들의 신고를 받고 불공정거래 의혹을 조사 중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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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