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하루 일당이 가장 많은 사람은 누굴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아니다. 연봉도 아닌 일당이 3억원에 달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 다만 이는 법원이 선고한 벌금을 노역으로 대신할 경우 환산된 일당이다.
2200억원대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된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 지난 12일 법원이 권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탈세액이 크고 죄질이 불량한데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아 중형이 불가피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법정구속도 그렇지만 그에게 떨어진 벌금 2340억원이 화제다. 재판부가 선고한 벌금 2340억원은 검찰이 구형한 벌금 2284억원보다 56억원이나 많은 액수. 이를 노역금으로 환산하면 '1일 3억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1일 이상 3년 이하의 유치기간을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현행 형법에 따라 벌금 2340억원을 최장 3년으로 나눈 결과다.
1만원 vs 5억원
다시 말해 권 회장이 기존 4년에서 2년2개월만 추가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노역을 하면 벌금 2340억원을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물론 노역장 유치기간이 줄면 일당은 3억원에서 더 많아진다.
노역장 유치는 벌금이나 과태료를 내지 못한 사람에게 일정 기간 수감 상태로 일을 시키는 처분이다. 일반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의 하루 노역금은 보통 5만원선. 벌금형을 선고할 때 피고인의 하루 수입액, 범죄 경중 등을 고려하는 법원은 통상 벌금이 1억원 정도면 하루 10만원, 500만원 이하면 하루 1만원을 노역금으로 선고한다.
권 회장의 하루 노역금이 3억원에 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법조계와 시민단체 안팎에선 관련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형평성 때문이다. 처벌을 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노역장 유치 일일 환산금액은 최저 1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차이가 난다. 노역금에서도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무거운 범죄를 저지를수록 혜택을 보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 변호사는 "형법은 유치기간만 규정하고 금액에 대한 규정은 없다"며 "외국과 같이 벌금에 따라 노역장 유치기간을 늘리는 등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회장의 노역 일당 3억원은 아직 법원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다. 1심 벌금을 계산한 결과일 뿐이다. 2·3심에서 벌금이 줄어들 수도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최고기록을 가진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노역 대가가 '1일 5억원'이었다. 500억원대 법인세 등을 포탈하고 회삿돈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허 전 회장은 2011년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확정받았다. 이와 함께 벌금 254억원을 선고한 원심도 확정됐다. 1심은 벌금 508억원을 선고했으나 2심은 세금을 납부한 점을 참작해 절반인 254억원으로 줄였다.
'선박왕' 권혁 회장 노역 환산액 '1일 3억'
최고기록 허재호 회장 5억…보통 수천만원
당시 법원은 허 전 회장이 벌금 내지 않을 경우 1일 노역 환산 금액을 무려 5억원으로 책정했다. 단 51일만 노역장에 유치될 경우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었다. 같은 시기 일반인들의 다른 판결을 보면 벌금 2000만원이 선고된 강모씨는 노역 1일 환산액이 5만원이었고, 벌금 300만원이 선고된 이모씨는 3만원, 벌금 150만원이 선고된 김모씨는 1만원이었다. 허 전 회장과 이들은 똑같이 노역을 하고도 '몸값'은 각각 1만∼5만배나 차이가 났다.
그때까지 1일 노역금 최고기록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었다. 법원은 2009년 주식 헐값 발행과 탈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함께 벌금 1100억원을 최종 선고했다. 그러면서 이 전 회장이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하루 1억1000만원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했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도 이 회장 못지않다. 2004년 분식회계 및 부당이득 등 혐의로 징역 3년과 함께 벌금 400억원을 선고받고 하루 노역금이 1억원으로 책정됐다. 이밖에 벌금형을 선고받은 총수들 가운데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1500만원 ▲박용오·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1000만원 ▲문병욱 라미드그룹 회장은 400만원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250만원 등으로 노역 일당이 정해진 바 있다. 반면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제공 혐의로 30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하루 노역대가는 10만원으로 책정됐었다.
재계 관계자는 "돈 많은 대기업 회장들이 벌금을 내지 않으려 몸으로 때우겠냐"며 "실제로 재벌 총수들 가운데 노역을 한 사람은 없다. 벌금을 맞으면 곧바로 한꺼번에 낸다"고 전했다.
일반인 중 가장 많은 1일 노역금이 환산된 사례는 밀수범 강모씨다. 강씨는 2011년 시가 550억원어치의 금괴 1.214t을 일본에 밀수출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월과 벌금 548억원, 추징금 537억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강씨가 벌금을 내지 않으면 1억원을 1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유명인 중 노역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만한 인사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1997년 대법원에서 각각 추징금 2205억원, 2628억원이 확정됐다. 이중 전 전 대통령은 1673억원을, 노 전 대통령은 230억원을 미납한 상태다.
하늘과 땅 차이
정치권에선 이들의 강제노역을 추진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9일 두 전직 대통령을 겨냥해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노역장에 강제 유치토록 하는 내용이 골자.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만큼 본회의에서도 무난한 가결이 예상된다. 이 경우 두 전직 대통령은 강제노역될 수도 있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강제노역 추이
벌금 대신 강제노역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법무부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벌금 미납 노역장 유치처분 건수는 2008년 2759건, 2009년 2819건, 2010년 2918건, 2011년 3221건으로 매년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 상반기에만 2503건이나 집행될 정도로 급증했다.
법무부는 "경제상황이 나빠져 벌금을 몸으로 때우는 사람이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라며 "돈이 없어 노역을 택하는 고액 벌금 대상자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