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꺾인’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멘붕 스토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2.18 11: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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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벼락 맞은 쌍용가 부활 히든카드

[일요시사=경제1팀] 쌍용건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김석준 회장의 ‘패자 부활’도 물거품이 될 위기다. 김 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쌍용그룹 해체 이후 쌍용건설 대표이사로 복귀하면서 화려한 재기를 노렸다. 이도 잠시. 쌍용건설은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시장 퇴출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김 회장의 날갯짓이 꺾이게 생겼다.

한때 재계 6위를 기록하던 쌍용그룹은 고 김성곤 창업주가 작고한 이후 김석원-김석준-김석동 3형제가 나누어 경영해왔지만 외환위기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좌초됐다.

주력회사인 쌍용양회는 일본 태평양시멘트로 경영권이 넘어갔고, 쌍용차는 중국에 넘어갔다 다시 인도에 팔려갔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쌍용건설도 한국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주인이고, 쌍용중공업은 STX그룹에, ㈜쌍용은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쌍용이란 이름은 남았지만, 기업의 주인은 모두 바뀐 것이다.

주식매매 정지

2세 경영인 중에는 창업주의 차남인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만이 경영 일선에 남아있다. 그는 1983년부터 30여년의 시간동안 쌍용건설을 대표하고 있는 ‘간판’이다.

김 회장은 불과 29세의 나이에 쌍용건설 사장직에 오르며 경영에 몸을 담았다. 탁월한 경영수완을 발휘해 창립 15년 만에 쌍용건설을 업계 시공순위 7위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성과를 냈지만 ‘탄탄대로’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며 쌍용그룹이 해체됐고, 쌍용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김 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지분 대부분을 채권단에게 내놓은 뒤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의 경영 능력을 필요로 한 직원들의 요청으로 그는 다시 쌍용건설 대표이사로 복귀,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신분을 달았다. 이후 그는 회사 정상화를 위해 절치부심하며 재기에 몸부림쳤다.

국내 주택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해외사업으로 눈을 돌렸고 고부가가치 시장인 고급 건축ㆍ토목에 주력했다. 쌍용건설 회생의 전기가 된 서울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분양 때는 스스로 미국 LA로 건너가 교민들을 상대로 판촉활동을 벌여 200여 가구를 분양하기도 했다.

사업 추진력뿐만 아니라 김 회장은 직원들의 두터운 신임까지 얻었다. 2003년 거듭된 적자로 유상증자가 필요할 때 직원들이 퇴직금을 털어 주식을 사들이자,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채권단 지분 24.7%(736만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직원들에게 넘기며 신뢰에 보답하기도 했다.

워크아웃 졸업 9년 만에 또 다시 자본잠식
그룹 해체후 재기 노리다 하루아침에 추락

이 같은 노력의 결과 쌍용건설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6년여 만인 2004년 10월 워크아웃을 졸업했고 2006년까지 해마다 500억 원, 600억 원대의 흑자를 내는 ‘알짜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2400명이던 직원을 700명으로 4분의 3 감원하고 50%에 달하는 급여삭감, 자산매각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쳐 이뤄낸 작품이었다.

김 회장은 2006년 3월 분식회계로 실형 선고를 받은 뒤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후에도 임직원들의 요구로 회장 직함을 갖고 국내외 수주와 영업 활동을 계속해 왔다. 이듬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사면과 함께 등기이사로 복귀했으며, 2010년엔 다시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 회장에 대한 평가는 ‘부활’ 또는 ‘재기’라는 표현으로 거론됐다. 그룹의 공중분해로 큰 실패를 겪은 기업인이지만 7전8기의 정신으로 화려하게 부상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패자의 부활’은 지속된 부동산 경기 침체까지 넘어서지 못했다. 2011년 1300억원대 적자를 낸데 이어 지난해에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김 회장이 2조원이던 PF 보증채무를 5000억원대로 줄이고 중단 위기에 놓인 해외 공사를 정상화시키는 등 자구노력을 기울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적자만 1500억원에 육박했고, 10월에는 지급보증을 제공한 우이동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상환이 지연되는 등 유동성 위기를 겪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거래소는 지난 8일 코스탁시장에서 쌍용건설의 주식매매 거래를 정지시켰다. 자본잠식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BB+이던 회사채 신용등급도 B-로 5단계 추락했다. 향후 유동성 해소가 원활하지 못할 경우 추가 강등 가능성도 열려 있다. 당장 이달 말 전자어음과 외상매출채권 담보 대출(B2B) 결제 등을 위해 약 800억원 가까이 필요하지만, 사실상 이를 막기 어려워 부도는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패자부활전’이대로 끝?

쌍용건설 위기는 지난 6년에 걸친 회사 매각 작업이 모두 불발 된 게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2002년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이용해 쌍용건설 최대주주가 된 캠코는 2007년부터 M&A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08년 동국제강에 매각하려다 실패하자 지난해부터 또 다시 3차례 매각공고를 냈지만 모두 결렬됐다. 캠코는 주식 매각을 포기하고 지난해 말 외부 투자자에게 유상증자를 통해 경영권을 주는 방식으로 마지막 매각에 나섰지만 성사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는 22일까지 지분을 처리하지 못하면 쌍용건설 주식은 정부의 공적자금 상환기금으로 현물 반환된 후 캠코에 재 위탁될 예정이다.

쌍용건설의 상황에서는 상장폐지를 모면하려면 반드시 유상증자를 성공시켜야 하지만, 매각절차가 지지부진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쌍용건설은 최초의 국영건설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부도 역시 불가피해 국영 건설사 전환과 동시에 시장에서 퇴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가능하다.

‘되찾기’무산

쌍용건설 몰락이 가져올 후폭풍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협력업체들의 연쇄 부도가 우려된다. 시공능력 평가 13위로, 그룹 계열 건설사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인 쌍용건설은 국내외 현장만 130여 곳이 넘고 협력 업체도 1400여개에 달한다.


또 쌍용건설은 현재 19조원 규모의 해외 공사 입찰도 진행하고 있어 대외 신인도 하락은 물론이고 국가적 손실 역시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전문경영인 신분으로 회사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김 회장의 ‘쌍용건설 되찾기’ 꿈은 사실상 무산됐다. 그가 써내려온 부활의 날개도 함께 꺾였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석준 회장은?

 

▲1953년 4월 대구 출생 ▲1971년 2월 서울 대광고 졸업 ▲1971년 3월 고려대 경영학과 입학 ▲1975년 5월 해병대 만기 제대 ▲1977년 5월 ㈜쌍용 기획조정실 ▲1978년 9월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83년 1월 쌍용건설 대표이사 사장 ▲1995년 4월 쌍용그룹 회장 ▲1998년 3월 쌍용건설 대표이사 회장 ▲2006년 3월 쌍용건설 회장 ▲2010년 3월 쌍용건설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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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