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리스트 공화국’의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

‘비리 공화국’ 대한민국에 또다시 대형 ‘리스트’ 두 개가 나돌면서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야구전사들이 기회의 땅 나성에서 작은 공과 방망이로 실의에 빠진 온 국민을 즐겁게 해주었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비리의 땅 한국에서는 ‘술시중과 성(性)상납’을 강요당했다는 한 여자연예인의 죽음과, 정·관계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펼친 한 기업 총수의 전횡이 드러나면서 마치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럽다.

고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가 그것이다. 두 개의 리스트 모두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드는 메가톤급 파괴력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먼저 고 장자연 리스트엔 드라마 제작사를 비롯해 방송사 전·현직 PD, 유력 언론사 간부와 사주, 심지어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대기업 오너와 임원들까지 총 10여명이 올라있다. 이들은 고 장자연이 소속사 대표의 강요에 못 이겨 술접대와 성상납을 한 인사들이란 점에서 경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당초 리스트의 진위 여부를 놓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경찰은 현재 리스트의 실체를 인정하고 거명된 인사들을 상대로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던 차에 터져 나온 또 하나의 리스트는 가히 장자연 리스트를 조족지혈로 만들어버릴 만큼 폭발력이 대단하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금품을 건넨 정·관계 인사 70여명이 망라돼있을 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거명된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다.

이미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이 박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의 칼끝이 서서히 전·현 정권의 심장부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구속된 민주당 이광재 의원을 비롯해 친노 인사 대부분이 수사선상에 올라있고, 종국에는 노 전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태세다.

현 정권 인사들 가운데는 이명박정부의 야심작 ‘한반도 대운하 전도사’역을 자임했던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이 부분이 이번 박연차 리스트 파동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는 누구나 형식적으로라도 받는 영장실질심사도 포기하고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순순히 오라(?)를 받았다. 살짝 다문 그의 입술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현 정권 핵심부로 향하는 칼끝이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자신을 희생양으로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까.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간의 의혹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박 회장의 로비는 “실패한 로비”였고, 그에게서 로비를 받은 이명박정부 사람들의 행위는 “개인비리”였다는 검찰의 설명에 눈꼬리를 치켜올린다. 로비 주체의 됨됨이와 로비 대상의 면면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권력 상층부의 생리에 훤한” 박 회장이 지난해 6월 청와대를 떠난 추 전 비서관이나 이종찬 전 민정수석에게만 매달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비의 목적이 세무조사 무마와 검찰고발 방지였던 점과, 세무조사 시점이 지난해 7월31일이었던 점을 놓고 볼 때 한낱 ‘날개 꺾인 사람’에게 매달릴 사안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 윗선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사실은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보이고도 남는다.

어디 그뿐인가. 검찰은 로비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진술을 해야 할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미국으로 떠나는 걸 멍하니 지켜만 봤다. 지난 15일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 박차를 가하던 그 시점에 한 전 청장이 출국수속을 밟았는데도 검찰은 막지 않았다.


어찌 보면 박 회장보다 더 먼저 불렀어야 할 중요한 용의자를 놓아준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참으로 한심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국민들의 탄식이 하늘을 찌를 정도다. 검찰 진술에서 5000만원을 5000원으로, 1만달러를 1만원으로 칭해 수사관들을 혼란케 한 통큰 회장님의 ‘돈맛’을 보지 못한 정·관계 인사들은 대한민국 정치인도 관료도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서민들의 가슴을 치게 하는 요즘이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자신들이 더 깨끗하다는 듯 서로를 물고 뜯고 삿대질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히려 돈을 먹은 쪽이 더 시끄럽다.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수사가 ‘재보선을 겨냥한 기획수사니 편파수사니’ 외치는 민주당이나, ‘노 전 대통령까지 수사하라’는 한나라당이나, 그 안에서 또 ‘우리를 고사시키려는 술책이다’라고 발뺌하는 친박계나 하나같이 다를 바 없다. 흡사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형국’이니 국민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여기에 또 고 장자연 리스트에 사주가 거명된 모 언론이 박연차 리스트를 띄워 여론을 호도하려 한다는 얘기까지 보태져 ‘똥 묻은 개들의 겨 묻은 개 나무라기’ 혈투는 갈수록 가관으로 치닫고 있다. 가뜩이나 ‘돈가뭄’으로 목마른 서민들은 더러운 견공(犬公)들에게 마른침을 뱉느라 더욱 목이 마른 지경이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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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음성군청-살처분 업체<br> 짬짜미 의혹

[단독] 음성군청-살처분 업체
짬짜미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연못이 흙탕물로 변하기까지 미꾸라지 한 마리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물을 맑게 만드는 대신 더 많은 미꾸라지를 연못에 밀어 넣었다. 이제 연못은 바닥을 볼 수 없는 진흙탕으로 변해 버렸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긴급’이라는 두 글자의 힘은 엄청났다. 촌각을 다투는 일일수록 담당자의 재량권은 커지게 마련이다. 일단 진행하고 추후에 상황을 수습하는 게 용인이 되는 일도 많이 있다. 시간 단위로 수십㎞까지 확산할 수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 문제가 대표적이다. 확산 방지 죽여서 처리 가축전염병 예방법 제20조(살처분 명령)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제1종 가축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역학조사·정밀검사 결과나 임상증상이 있는 가축의 소유자에게 살처분을 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1종 가축전염병은 우역, 우폐역, 구제역, 돼지열병, 아프리카돼지열병,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등이다. 제1종 가축전염병은 치사율이 높고 백신으로도 감염 확산을 막기 어려우며 전파 속도가 빨라서 바이러스 숙주 자체를 죽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또 ‘예방적 살처분’이라고 해서 가축전염병 매개체와 직접 접촉했거나 접촉했다고 의심되는 경우 그 장소를 중심으로 확산하거나 그런 우려가 있는 지역의 가축 소유자에게도 지체없이 살처분을 명할 수 있다. 실제 지자체에 가축전염병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진단부터 살처분까지 길게 잡아도 이틀을 넘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년가량 가축 살처분 일을 해온 업계 관계자는 “산란계(알을 낳는 닭) 6만 마리 정도는 퇴비화 작업까지 하룻밤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살처분한 가축을 땅에 묻는 대신 퇴비로 만들어 농가에 무상으로 나눠준다고 했다. 이어 “최근에는 자루에 동물을 잡아 넣고 탄산가스를 주입해 처리한다. 살처분한 동물로 퇴비를 만드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된다. 살처분에 참여한 업체는 바이러스 확산 문제 때문에 1~2주는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긴급’ 이유로 입찰 없어 최저가 낙찰 안 하고 왜? 문제는 감염된 가축을 살처분하는 일을 맡을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가축전염병이 의심된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지자체 담당 공무원은 업체에 연락을 돌린다. 연락을 받은 업체가 견적서를 제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공무원이 업체를 선정한다. 지자체에서 용역 사업을 진행할 때 거치는 공고, 입찰, 평가, 선정 등의 절차가 전부 생략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5조(수의 계약에 의할 수 있는 경우) 제1항 제2호에 의한 조치다. 시행령에 따르면 ‘입찰에 부칠 여유가 없는 긴급복구가 필요한 재난 등 행정안전부령에 따른 재난 복구 등의 경우’ 수의 계약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돼있다. 더 큰 문제는 절차의 불투명성 외에도 업체를 평가하는 잣대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떤 기준으로 업체를 선정하는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살처분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지자체에서는 업체 상황을 훤히 알고 있다. 기계는 몇 대가 있는지, 인력은 몇 명이나 보유하고 있는지, 과거에 일은 어떻게 했는지…. 일종의 데이터베이스가 갖춰져 있다. 업무 능력이 비슷하다는 전제라면 비교할 건 가격뿐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최저가 낙찰이 어느 정도 지켜졌다. 다른 지역에서 AI나 ASF가 발생해 살처분했다면 그 단가에 맞춰 견적을 넣거나 공무원하고 협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풍토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공무원 손에 다 달렸다 문제가 제기된 곳은 충북 음성군. 음성군청에서 다른 업체와 비교해 1마리당 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곳을 선정한다거나 살처분 업무 경력이 적은 곳을 고르는 등 석연치 않은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잣대나 투명한 절차까지는 아니어도 업계에 통용되는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런 규칙이 다 깨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말부터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음성군청 가축방역팀 관계자는 AI 등이 발생했을 때 살처분 업체를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업체로부터 견적서를 받아 가격이 가장 낮은 곳을 선정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음성군청 관계자의 답변과 달리 지난해 11~12월 음성에서 AI가 발생했을 당시 살처분 업체 최저가 낙찰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7일 한 오리 농장에서 AI가 발생해 살처분이 이뤄졌다. 당시 살처분을 맡은 업체는 A사다. 업계 관계자는 “A사는 당시 1마리당 가격을 3500원에 (견적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B사는 담당 공무원에게 구두로 1마리당 2000원에 일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살처분 일을 맡은 건 A사였다. A사와 B사의 1마리당 단가 차이가 1500원에 달했지만 더 비싼 곳이 맡은 것이다. 당시 폐사한 오리 수는 5만7000여마리라고 한다. 전체 가격으로 따지면 8500여만원 차이다. 지난해 12월30일 닭 농장에서 AI가 발생했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재현됐다. 당시 일을 따낸 업체는 C사로, 1마리당 가격으로 2800원을 적어냈다. B사도 1마리당 가격을 1900원 견적으로 내 음성군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1마리당 가격이 900원 비싼 C사가 낙점됐다. 싸게 해도 안 줬다 당시 폐사한 닭 수는 4만3000여 마리로 전체로 보면 3800여만원 차이다. B사 관계자는 “심지어 C사는 원래 인력 업체다. 우리가 살처분 업무할 때 사람이 필요하면 C사에 연락해 공급받았다. 등기부등본에도 C사의 업종은 인력 공급업으로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B사는 살처분한 가축을 퇴비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은 업체다. C사와 비교해 살처분 업무 능력에 있어서 밀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음성군청 가축방역팀 관계자는 “11월7일에 AI가 발생했을 때는 업체 3곳에만 전화했고 그중 A사의 가격이 가장 낮았다”고 해명했다. 12월30일 상황을 묻자 “B사가 견적을 늦게 냈다”고 답했다. B사는 음성군청 관계자의 해명에 반박했다. B사 관계자는 “11월7일 우리가 AI 발생 소식을 알고 담당자에게 먼저 연락해 단가를 말했다. 그런데도 1500원이나 비싼 A사에 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음성군청 공무원이 B사에 연락하진 않았지만 상황을 알자마자 단가를 제시했는데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2월30일 AI가 터졌을 때는 C사 관계자와 군청에 함께 있었다”며 “나란히 서서 이야기하는데 (단가가 더 비싼) C사가 일을 따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1900원보다) 더 싸게 일을 할 수 있다고도 했는데 이미 정해진 업체가 있다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가 입수한 당시 통화 녹음에서 음성군청 관계자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B사 직원을 응대했다. 이미 업체가 정해졌다는 음성군청 관계자의 말에 B사 직원이 “(해당 업체의) 단가가 더 싼가 보죠?”라고 물었을 때도 “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통화 내용대로라면 가격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업체 선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기준도 잣대도 불명확 퇴직 공무원 연결고리? B사 관계자는 “보통 의심 신고가 들어온 뒤 역학조사를 거쳐 실제 살처분에 돌입하는 건 다음 날부터다. 아무리 급해도 업체 간 가격을 비교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살처분 업체들이 퇴직 공무원을 영입하면서부터”라고 주장했다. 지자체에서 동물방역 등을 담당했던 공무원이 퇴직한 후 관련 업체에 취업하면서 이른바 업계에 ‘전관예우’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B사 관계자는 “A사의 경우 충북도청에서 동물방역과장을 지낸 분, 경기도에서 동물방역과장을 지낸 분을 영입한 이후 비싼 단가에도 일을 많이 했다”고 주장했다. 음성군청 관계자도 충북도청에서 2023년까지 동물방역과장을 지낸 D씨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D씨는 와의 통화에서 “A사에 정식으로 소속돼있는 것은 아니다. 영업 일을 하고 있다”면서 “단가 같은 얘기는 다른 사람이 안다. 내가 그분께 말해 전화하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D씨는 경기도에서 동물방역과장을 지낸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다. 적어도 두 사람이 A사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된 것이다. 음성군청 관계자는 살처분 업체를 선정하는 데 학연이나 지연 등 인맥이 영향을 미치는지 묻자 “그런 건 없다”면서도 “견적서만 내는 것보다 (군청에) 찾아와서 일은 어떻게 하겠다, 뒤처리는 이렇게 하겠다 등 설명해주는 업체를 더 선호하긴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최소한의 기준은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체 선정 과정에 공무원의 입김이 개입될 여지가 큰 만큼 일정 정도의 제동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기만? 다른 데는? B사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업계가 망가져 버렸습니다. 이대로 두면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지금껏 누구도 말하지 못했고 기사도 제대로 나지 않은 이유는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밥줄이 끊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겁니다. 그만큼 공무원이 업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하다는 방증입니다.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