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당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내부거래로 오너의 '금고'를 채워주던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 하지만, 자칫 지배구조가 뒤엉키거나 흔들릴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고민 고민하다 결국 짜낸 방법이 바로 '합병'이다. '밥솥명가' 쿠쿠그룹도 그중 한 곳이다.
오너일가 개인회사
점유율 70% 이상으로 국내 밥솥시장의 선두주자인 쿠쿠전자는 최근 쿠쿠홈시스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합병은 제품 제조를 담당하는 쿠쿠전자가 제품 판매를 맡는 쿠쿠홈시스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방식으로, 통합법인은 오는 12월1일 출범한다.
쿠쿠 측은 “밥솥뿐 아니라 전기 그릴, 식기 건조기, 믹서기, 공기청정기, 비데, 가습기 등을 생산하는 쿠쿠전자는 그동안 밥솥 전문 기업이란 이미지가 강했다”며 “앞으로 종합 생활가전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합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경영효율 제고 및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시너지 부분은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쿠쿠전자와 쿠쿠홈시스 간 거래액이 적지 않기 때문. 두 회사가 합병해도 매출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각에선 쿠쿠전자와 쿠쿠홈시스의 합병을 두고 '내부거래 희석용'이란 시각도 있다.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과세 등 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합병 주체인 쿠쿠전자는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주로 쿠쿠홈시스에 납품하다보니 대부분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매출의 90% 이상을 쿠쿠홈시스에서 채웠다. 이를 통해 매년 수천억원대 고정 매출을 올렸다. 이는 이미 <일요시사>가 일감 몰아주기 연속기획 58회차에서 쿠쿠그룹의 내부거래 실태를 지적한 바 있다.<859호 참조>
쿠쿠전자는 지난해 매출 2727억원 가운데 2435억원(89%)을 쿠쿠홈시스와의 거래로 올렸다. 쿠쿠홈시스는 2010년에도 쿠쿠전자의 매출 2428억원 중 2221억원(91%)에 달하는 일감을 맡겼다.
쿠쿠전자가 쿠쿠홈시스와 거래한 매출 비중은 ▲2001년 83%(총매출 799억원-내부거래 652억원) ▲2002년 86%(1180억원-1009억원) ▲2003년 88%(1328억원-1167억원)였다. 이후 ▲2004년 96%(1309억원-1261억원) ▲2005년 94%(1616억원-1519억원) ▲2006년 93%(1929억원-1796억원) ▲2007년 93%(1965억원-1821억원) ▲2008년 92%(2020억원-1868억원) ▲2009년 92%(2095억원-1934억원)로 올랐다.
매출 90% 이상 계열사에 의존…수천억씩 거래
갑자기 주거래처와 합병 "과세 피하기" 지적
쿠쿠전자는 계열사들이 '힘'을 실어준 결과 안정된 매출을 기반으로 꾸준히 몸집을 불려왔다. 2000년대 들어 적자 없이 매년 100억∼200억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거뒀다. 총자산은 2001년 367억원에서 지난해 1536억원으로 10년 만에 4배 가량 불었다. 같은 기간 265억원이던 총자본도 1226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그동안 경기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쿠쿠전자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쿠쿠전자는 창업주인 구자신 회장이 지분 24.84%(9만1416주)를 소유한 대주주다. 쿠쿠홈시스는 지분 100%를 오너일가가 갖고 있다. 구 회장의 두 아들인 본학·본진씨가 각각 53%(21만2000주), 47%(18만8000주)를 보유 중이다.
쿠쿠일가는 LG그룹 '구씨'집안과 먼 친척뻘이다. 이 인연으로 쿠쿠전자는 1978년 설립부터 1998년 '쿠쿠'란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기 전까지 20년간 LG전자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밥솥을 납품했었다.
구 회장의 장남 본학씨는 현재 쿠쿠전자와 쿠쿠홈시스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그는 이번 합병 이후에도 그대로 통합법인을 이끌기로 했다. 차남 본진씨는 쿠쿠 계열사에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쿠 오너일가는 내부거래로 유지되는 쿠쿠전자에서 매년 두둑한 배당을 챙겼다. 쿠쿠전자는 지난해 55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구 회장은 14억원을 받아갔다.
앞서 쿠쿠전자는 2002년 11억원, 2004년 45억원, 2005년 46억원, 2006년 46억원, 2007년 28억원, 2008년 37억원, 2009년 46억원, 2010년 55억원 등 2003년만 제외하고 해마다 배당금을 지급해왔다. 각각 배당성향이 23∼45%에 달하는 고배당이었다. 물론 총배당금의 25% 정도가 구 회장의 몫이었다.
매년 수십억 고배당
쿠쿠홈시스의 경우 지난해 80억원을 배당했다. 본학씨 42억원, 본진씨 38억원 등 이 돈은 모두 오너형제가 챙겼다. 쿠쿠홈시스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각각 30억∼80억원씩 배당한 바 있다. 본학·본진 형제는 그때마다 수십억원을 주머니에 넣었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쿠쿠전자·홈시스 기부는?>
받을 땐 '왕창' 나눌 땐 '찔끔'
본문/서로 밀어주고 당겨준 쿠쿠전자와 쿠쿠홈시스는 기부를 얼마나 할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쿠쿠전자는 지난해 1100만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이는 매출(2727억원)의 0.004% 뿐인 금액이다. 2010년엔 1600만원을 기부했는데, 이 역시 매출(2428억원)의 0.007%에 불과하다.
쿠쿠홈시스는 2010년과 지난해 각각 2000만원, 2700만원을 기부했다. 마찬가지로 매출(3439억원·3772억원) 대비 0.006∼0.007%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