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부슬부슬 비 내리던 날 공포의 곤지암 정신병원 가보니…

정신병자에 인체실험…원장도 정신병 앓다 자살?

[일요시사 사회팀] 김지선 기자 = ‘곤지암 정신병원’. 이곳은 약 20여 년 전 이미 문을 닫아버린 폐병원으로, 대한민국 3대 흉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오싹하기 짝이 없는 곤지암 정신병원은 무속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흉가체험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이곳이 최근 CNN에서 꼽은 세계에서 가장 소름 돋는 장소 7곳 중 하나로 소개돼 새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정신병을 앓는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다는 이곳. 곤지암 정신병원을 취재했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신대리(구 새텃말) 161-1번지에 위치한 곤지암 정신병원. 이곳의 원래 명칭은 남양신경병원이다. 약 20년 전 병원장이 이곳을 폐업한 이래로 건물과 잔여물들이 아직까지 그대로 방치돼있는 곤지암 정신병원은 수년 전 한 케이블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탔다. 대한민국 3대 흉가로 꼽힌다는 이유에서였다. 방영 후 많은 이들이 흉가체험을 위해 정신병원을 찾았고, 영가가 많이 보인다는 무속인들의 언급에 일반인들도 하나둘씩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섬뜩한 바람소리
찝찝한 습한 기운

3대 흉가로 유명세를 탄 곤지암 정신병원은 화제의 장소인 만큼 소문도 무성하다. 원장이 정신병을 앓아 자살했고, 그의 두 아들도 잇따라 자살했다, 혹은 형무소처럼 이곳에 사람들을 가둬놓고 끔찍한 고문과 실험, 사형을 집행했다는 소문 등이었다. 더욱이 이곳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다는 근거 없는 설 때문에 사람들은 귀신을 보기위해 곤지암 정신병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소름 돋는 장소 7곳 중 하나로 꼽힌 곤지암 정신병원. 이곳에 따른 괴소문들은 과연 사실일까.

강남역에서 출발했을 때만해도 화창했던 날씨는 신대리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비바람이 세게 몰아치는 날씨로 돌변했다. 기자는 사전에 곤지암 정신병원의 정확한 위치와 가는 방법 등을 수첩에 상세히 적어왔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던 기대와는 달리 곤지암 정신병원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허기를 달래려 잠깐 들른 한 식당의 종업원 아주머니로부터 위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거기 지금 못 들어 갈텐데…. 지금은 정신병원이 위치한 마을로 이어지는 다리를 공사하고 있기 때문에 빙 돌아서 가야해요. 그곳에 사람들 많이 죽었다던데 왜 가려해요?”라며 “기가 약한 사람들은 그곳에 다녀온 후 귀신도 씌어온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조심하세요”라고 당부했다.

우산이 뒤집어질 정도로 거센 비바람을 뚫고 정신병원 근처만 대여섯 바퀴 정도 헤매다 마을에 도착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정신병원이 있다는 마을은 맞은편 마을과는 달리 조용했다. 이상하게 그 마을만 가면 비바람이 거세졌고, 하늘도 어둑어둑해졌다. 오후 2시라는 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문에 다다를 때쯤 두 개의 경고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3대 흉가
세계서 가장 소름 돋는 장소 선정

경고문에는 “이곳은 관리되고 있는 사유지이므로 허락 없이 들어오는 행위는 형법 제319조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입니다.(중략) 적발 시 법적조치 당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라고 명시돼 있었다. 아주머니의 말대로 그곳은 사유지로 지정돼 있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정문 위에는 넝쿨까지 쳐있어 담을 넘을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무조건 내부에 들어 가봐야겠다는 일념하에 모바일 인터넷 검색 결과 뒷산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조금만 뒤로 돌아가니 실제로 병원으로 향하는 뒷동산이 있었고, 무덤 2개를 지나고 나서야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내딛을 수 있었다. 양쪽에 아름답게 물든 단풍나무길을 오르는데 폐병원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건물은 아주 오래되고 낡아보였다.

건물의 분위기는 주위를 감싸는 단풍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과는 확실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지하를 포함해 총 4층으로 지어진 곤지암 정신병원의 분위기는 깨진 창문들과 녹슨 철문, 건물을 통과하는 바람소리 때문인지 더욱 을씨년스럽고 섬뜩했다. 큰 건물 양 옆에는 마치 요양원같이 보이는 별관이 자리해 있었고, 내부에는 4시를 가리키는 괘종시계와 텅 빈 방들이 나란히 이어졌다.

사유지로 지정
모든 입구 닫혀

병원 내부에 들어가기 위해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 입구 앞으로 다다랐다. 그러나 그 역시 철문으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다던 병원 내 모든 입구는 현재 모두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었다. 다행이도 철기둥으로만 돼있어 1층 내부는 대충 짐작이 가능했다. 왼편에는 곧 떨어질 것 같은 총무과 현판이 매달려 있었고, 벽에는 아이들의 낙서와 핏자국처럼 보이는 빨간 페인트 자국, 돌이나 못으로 긁은 자국 등이 어지럽게  있었다. 누군가가 내부로 들어갔던 증거로 보이는 우유 상자가 한 창문 앞에 덩그러니 놓아져 있었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들어서인지 병원 내부에 들어가기 전 수차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건물 안에는 세면실을 동반한 화장실과 보일러실, 여러 개의 방들이 있었다. 방 안에는 몇 개의 침대들이 이불과 함께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누군가 사용했을 것이라는 찝찝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침대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화장실은 예상 외로 깔끔했다. 수도만 연결된다면 당장 사용해도 될 정도였다. 1층 끝자락에는 긴 테이블과 의자들을 보니 식당으로 짐작되는 큰 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병원서 죽어나간 사람 많아 각종 납량특집 소재거리로
녹슨 문짝과 깨진 창문…기록지·침대 등 그대로 보존

비 내리는 날씨 때문인지 내부는 외부보다 더 습하고 공기도 서늘했다. 병원 내 바닥은 물로 흥건했고, 굴러다니는 맥주 캔들, 담배꽁초와 옷가지, 신발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사람들의 방문이 잦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밖에 넘어진 소파들, 바람에 못 이겨 깨져버린 창문 유리 조각과 창문틀 등은 얼마나 이곳을 오랫동안 방치해뒀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물이었다.

흉가체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겁게 발걸음을 떼며 이곳저곳을 탐방하던 중 환자의 성명과 병명, 처방 등이 적힌 오래된 종이차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50∼60년대 출생인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 알코올 중독 또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영안실이 있을 것이라던 지하실 역시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 가보지 못했다. 과거 흉가체험으로 지하실을 방문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곤지암 정신병원 내 지하실이야말로 제대로 된 담력테스트를 체험해볼 최적의 장소라고 한다.

대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은 여느 옥상과 다르지 않고 평범했지만 역시 추운 날씨 때문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곳곳을 배회하다 혹여나 관리인이나 경찰이 올까 성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내려오던 도중 우연히 작업복을 입은 두 남성들을 만나게 됐다. 이 근처 회사에서 일한다는 그들은 “귀신 나온다는 폐병원이 있는 줄은 진작에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가보진 못했다”며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대서 오늘 같이 비오는 날 귀신이라도 보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한번 와봤다”고 말했다.

마을로 다다를 때쯤 한 주민을 만나 정신병원에 대한 괴소문에 대해 물었다. 주민은 “그곳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던데…. 그런데 다 지어낸 이야기지. 그 헛소문 때문에 동네주민들 잠도 못자고 말도 아니야. 정문 막아놔도 샛길로 버젓이 들어가는데 뭐. 애들 와서 술 먹고 담배피우고 떠들고 난리도 아니야. 밤에 경찰이 순찰해봤자 별 도움도 안 되더라고…”라며 혀를 찼다.

괴소문은 단지
헛소문이었을 뿐

또 다른 주민은 “여기 문 닫은 지는 20년도 넘었지. 원장이 지병인가 노환인가로 죽고, 자식들은 외국에 가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상하수도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닫았다던데…. 사람 죽고 그런 얘긴 들어본 적 없어”라며 조금 다른 입장을 보였다.

기자는 곤지암 정신병원의 실체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곤지암읍사무소와 광주시청 등에 문의했다. 몇 차례의 전화연결을 통해 시청 관계자로부터 진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관계자는 일반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던 소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소유주들, 십수년 전 미국으로 이민가고 없어
수도관 누수 문제로 불가피하게 병원 문 닫아

그는 “읍사무소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하다 최근에 시청으로 발령났다. 곤지암 정신병원 원장이 정신병을 앓다 자살했다느니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자연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다는 것도 헛소문일 뿐이다.


지금 소유주는 원장의 두 아들이고, 그 건물은 아마 두 아들들이 반반씩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현재 미국인가 캐나다로 이민 가서 잘 살고 있다고 하던데 어느 나라인지 정확히는 모른다”고 일축했다.

곤지암읍사무소의 한 직원은 “20년 전 병원 소유주인 원장이라는 사람이 지병으로 죽어 자식들이 병원을 물려받았지만 운영 의지가 없었고, 하수처리시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해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겨 보낸 후 폐쇄했다.

괴소문 중 하나로 꼽혔던 정신병원 자리가 형무소였다는 이야기 또한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그는 “예전에는 아무나 들락날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개인 사유지로 지정돼 들어가면 주거침입죄로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며 “원장의 처남 되는 사람이 그 땅과 건물을 대신 관리하고 있고, 주민들의 항의 쇄도에 경찰들이 순찰을 돌고 있어 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곤지암지구대는 약 1년 전부터 이곳을 집중 관리지역으로 정해 하루 30분 단위로 순찰하는 한편 매일 밤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전의경 4명을 주변에 상주하도록 고정 배치하고 있다.  

유명세 좋지만…
주민 배려가 우선

세계의 가장 소름 돋는 혹은 혐오스러운 장소 7곳 중 하나로 꼽힌 곤지암 정신병원의 실체는 헛소문만 무성한 오래된 건물일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더욱이 원장 일가가 자살하거나 피폐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던 설도 완벽하게 와전된 소문이었다.

어쩌면 높은 시청률을 꾀한 매스컴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다. 곤지암 정신병원과 관련된 오싹한 영상 또는 사진과 함께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전파를 타고, 인터넷상에 무분별하게 게재되면서 공포심만 더 커져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동네주민들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았다고 한다.


한 주민은 “병원으로 이어지는 산길도 끊이지 않는 방문자들의 발길과 소음 때문에 곧 폐쇄할 예정”이라며 “체험이든 관광이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한다면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텐데 이래저래 참 씁쓸한 일”이라고 전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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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