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속으로> 위탁아 성노리개 삼은 ‘미친 부자’ 풀스토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1.13 10: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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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더듬은 아빠…동생 건드린 오빠

[일요시사=사회팀] 고모부가 처조카 여자친구를, 목사가 여신도를, 친한 이웃으로 있던 옆집 남자가 어린 초등학생을 성폭행하는 인면수심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엔 두 살부터 위탁받아 키워온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부자가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가족과 이웃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할 위탁아동들이 울부짖고 절규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위탁아들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친어머니의 재혼으로 오갈 데가 없어진 여자아이를 위탁받아 키우면서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부자(父子)가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안미영)는 위탁아동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황모(62)씨를 불구속 기소하고 아들(33)을 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부인만 없으면…
인면수심 아버지

위탁자 황씨는 1999년부터 부인과 함께 A(16)양을 돌봐왔다. 처음에는 황씨 부인의 지인이 A양을 잠시 맡겨 키웠지만 2007년 친모가 재혼을 하면서 연락이 끊기자 본격적으로 양육하게 됐다.

이후 A양은 황씨의 수양딸이 됐다. 주민등록등본에 A양이 동거인으로 등재되면서 매달 수 십만원의 정부 지원금도 받았다. 평소 A양은 황씨 부자를 ‘아빠’ ‘오빠’라고 부르며 지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황씨의 부자의 끔찍한 성폭행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검찰에 따르면 아버지 황씨는 부인만 사라지면 돌변했다. 2006년 10세이던 A양에게 목욕을 시켜준다면서 신체부위를 수차례 만지고 2007년 겨울 부인이 외출을 하고 다른 아이들이 거실에서 TV를 보는 틈을 타 A양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여아 위탁받아 키우면서 상습적으로 성폭행
친어머니와 연락 끊기자 10세때부터 몹쓸짓

아들의 비행은 더 심각했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4차례에 걸쳐 “네가 야동을 본 것을 알고 있다”고 겁박해 강제추행하거나 자신이 운행하는 화물차 안에서 A양을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아들은 결혼한 뒤에도 중학생이 된 A양을 불러내 차 안에서 자신의 부인이 입던 옷을 입힌 뒤 여관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A양은 황씨를 병간호한다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또 아들이 A양을 상대로 집에서 범행에 나서던 날 어머니는 위탁 아동들을 돌봐야 한다며 A양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A양은 황씨 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기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부정한 지시나 명령에도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황씨 부자는 A양 말고도 한때 2∼7명까지 오갈 데 없는 아이를 위탁받아 키운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친부모와 연락이 전혀 닿지 않는 A양에 대해서만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황씨 부자의 범행은 지난해 5월 A양이 상담 교사에게 이를 털어놓으면서 비로소 드러났다.

“귀하게 보살피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와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2005년 1월 손녀뻘인 10대 중국동포를 2년여 동안 키워오면서 140여 차례나 강제로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70대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다. 당시 이 노인의 주민등록등본 등에는 또 다른 10대 소녀 2명의 인적 사항이 올라 있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10년 전 부인과 이혼한 편모(당시 71세)씨가 중국동포 B(당시 17세)양을 소개받은 것은 1999년 가을이다. 편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B양의 어머니 C(당시 48세)씨에게 “평생 함께 살면서 도와줄 후계자를 구하는데 아이를 교육시키고 내가 죽으면 충남 당진의 땅을 주겠다”고 양육계약서까지 작성한 뒤 B양을 한국에 데려왔다.

악몽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입양 이튿날부터 편씨가 집에서 B양을 겁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편씨는 27개월 동안 일주일에 잦을 땐 두세 차례에 걸쳐 모두 140여 차례나 B양을 성폭행했다.

2002년 3월 B양을 자신의 딸로 호적에 입적시킨 그 후에도 성폭행은 계속됐다. 함께 살던 편씨의 누나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그의 범행은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B양보다 6개월 앞선 2000년 3월 입국해 따로 거처를 얻어 생계를 이어가던 C씨는 딸이 당하는 수모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마음씨 좋은 노인이 자신의 딸을 귀하게 보살피는 줄로만 알았다. 이후 B양의 어머니는 한국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이 세상을 떠난 2002년 10월 딸이 있는 편씨의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됐고 그 무렵에야 비로소 편씨의 성폭행은 중단됐다.

B양이 겪은 2년간의 끔찍한 경험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B양이 2003년 초 편씨의 허락을 받아 한 미용학원에 나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B양은 학원과 관계를 맺고 있던 신길동의 한 천주교 복지센터 수녀의 권유로 집을 떠나 센터에서 생활을 시작했고, 지난해 9월 수녀와 면담에서 2년 전의 끔찍한 사연을 털어놓고 강지원 변호사의 도움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편씨는 경찰에서 “B양 모녀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나를 도리어 음해하려 한다”며 혐의사실 일체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B양이 편씨가 직접 쓴 ‘임신하면 (성행위를) 않는다’는 메모를 확보한 점, 편씨의 집에서 해외 포르노비디오테이프와 자위기구 등 성인용품이 무더기로 나온 점으로 미뤄 편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난 2004년 8월 부산에서는 욕조에 위탁아동의 머리를 밀어 넣고, 대변을 먹이는 등 상상하기 힘든 가혹행위를 한 정모씨 부부가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에 따르면 2003년 4월 D(당시31)씨의 딸 E(당시7)양과 아들 F(당시4)군을 월 양육비 100만원에 위탁받은 정씨 부부는 같은 해 5월 초 E양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몽둥이로 엉덩이를 수차례 때린 데 이어 같은 달 중순에는 침대에 소변 본 것을 트집 잡아 남매를 흉기와 나무 막대기로 마구 때려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흉기로 때리고 대변 먹이는 가혹행위도
검증 안거친 위탁부모 462명…제도 허술

정씨는 또 E양이 팬티에 대변을 보자 대변을 핥게 한 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자 마구 때리고, 같은 해 7월에는 코를 골며 잔다는 이유로 밤새 베란다로 내쫓아 잠을 자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정씨는 같은 해 8월에는 친구와 놀고 있는 E양을 집으로 끌고와 욕조에 물을 채운 뒤 E양의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었다가 꺼내기를 반복하는 등 혹독한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경찰조사 결과 정씨 부부는 2003년 12월 이웃 주민들의 신고로 아동학대센터에 불려갔으나 아버지 D씨가 정씨 부부로부터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맡겼고 2004년 1월까지 9개월간 가혹행위가 계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 부부의 학대 행각은 남매의 부모가 아이들을 데려온 뒤 딸의 머리에 폭행 흉터가 있고 자주 헛소리를 하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들통 났다.

정씨는 경찰조사에서 “처음에는 남매가 말을 잘 듣지 않고 거짓말이 심해 버릇을 고치려 했다”고 진술했다. 남매는 폭행당한 충격으로 정신적인 적응장애를 일으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성폭행하고도
매달 지원금 챙겨

이처럼 위탁받은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가정위탁보호제도’의 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정위탁보호제도는 친권자의 질병·가출·이혼·수감·학대·사망 등의 이유로 기르지 못하게 된 아이들을 희망하는 가정 중 건전한 가정을 선정해 양육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2003년부터 실시됐다. 위탁양육자는 친권자가 나타날 때까지 아동에 대한 양육권을 가지며 아동 1인당 월 10만원 이상의 양육보조금 등을 지원받는다.

위탁 부모들은 범죄나 아동학대·약물중독 등의 전력이 없어야 하고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교육도 받아야 하는 등 나름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현재 이 제도를 통해 다른 가정으로 위탁된 아동은 2011년 1만5486명에 이른다.


문제는 제도의 허점이다. 가정위탁보호제도가 생기기 전부터 위탁아동을 길러온 경우는 별도의 교육·심사 없이 제도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보건복지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황씨 부자처럼 정부나 아동보호기관 등 공식 창구를 거치지 않고, 남의 아이를 키우던 위탁 부모는 462명에 달했다. 이 중 부적격 사례도 10건이나 적발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조사 결과 10곳의 위탁 가정이 고령이나 질환, 경제적 이유 등으로 위탁 아동을 보호하기에 적절치 않은 것으로 나타나 해당 아동들을 다른 위탁가정, 시설 등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위탁 부적격 증가
뒷북 대책 ‘그만’

전문가들은 위탁 아동들이 긴급 상황을 당했을 때 이를 호소하고 방안을 문의할 상담 창구부터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제도와 기준만 만들어 놓고 관리체계는 소홀히 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위탁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감시·소통체제가 함께 만들어 져야 한다. 문제 발생 시 아이들이 어디로 연락하고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의 정보도 미리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사랑이 그리웠던 아이들. 그러나 그 속에서 몇몇 아이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울부짖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각지대에 놓인 위탁 아동에 대한 경각심이 새삼 환기됐지만 아직도 꿈나무들의 싹을 자르는 검은 그림자는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책이 아닌 실효성 있는 예방책이 시급한 이유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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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