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닭으로 유명한 하림그룹은 지난달 기준 총 62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는 '한국썸벧판매'와 '한국썸벧'이다. 두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적지 않은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지난해 560억 지원
1999년 설립된 한국썸벧판매는 동물용 의약품 제조업체다. 당초 동진제약에서 2010년 현 상호로 변경됐다.
문제는 자생력이다. 계열사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어려운 형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매출의 80% 정도를 내부거래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수백억원의 고정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국썸벧판매는 지난해 매출 707억원 가운데 560억원(79%)을 계열사들과의 거래로 올렸다. 일거리를 준 곳은 하림(171억원)을 비롯해 팜스코(124억원), 제일사료(118억원), 제일곡산(60억원), 선진(46억원), 천하제일(23억원), 익산(7억원), HBC(6억원) 등이다.
그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림(156억원), 제일사료(149억원), 팜스코(141억원), 제일곡산(79억원), 선진지주(56억원), 천하제일(44억원), 익산(6억원), HBC(5억원), 선진브릿지랩(3억원) 등 계열사들은 2010년 한국썸벧판매의 매출 788억원 중 640억원(81%)에 달하는 일감을 퍼줬다.
2009년의 경우 매출 557억원에서 내부거래로 거둔 금액이 477억원(86%)이었다. 하림(129억원)과 제일사료(99억원), 팜스코(96억원), 제일곡산(60억원), 선진지주(53억원), 천하제일(30억원), 익산(6억원), 선진브릿지랩(3억원) 등과 거래했다.
그전엔 내부거래 내역을 공시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한국썸벧판매는 ▲2002년 148억원 ▲2003년 207억원 ▲2004년 234억원 ▲2005년 251억원 ▲2006년 260억원 ▲2007년 282억원 ▲2008년 35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국썸벧판매는 계열사들을 등에 업고 거둔 안정된 매출을 기반으로 꾸준히 몸집을 키워왔다. 공시를 시작한 2002년 이후 단 해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매년 영업이익은 20억∼70억원, 순이익은 20∼120억원을 올렸다. 총자산의 경우 2002년 106억원에서 지난해 765억원으로 9년 만에 7배 이상 불었다. 같은 기간 22억원이던 총자본은 364억원으로 무려 16배나 늘었다.
한국썸벧도 동물용 의약품 제조업체다. 닭, 돼지 등 동물들의 영양제, 항생제 등을 만든다. 2010년 한국썸벧판매에서 제조부문을 물적분할해 분리하면서 설립됐다.
매출 대부분 계열사서 올려…매년 수백억 거래
김홍국 회장 100% 소유 "사실상 오너 개인회사"
한국썸벧은 설립 첫해 68억원의 매출을 냈다. 그런데 66억원(97%)이 한국썸벧판매(41억원), 제일사료(6억원), 팜스코(6억원), 하림(5억원), 제일곡산(4억원), 선진(2억원), 천하제일(2억원) 등 그룹 계열사에서 나왔다.
지난해엔 더 심했다. 거래 계열사들이 대폭 줄어든 반면 모회사와의 거래액이 급증했다. 한국썸벧은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이 99%에 달했다. 총매출 275억원에서 한국썸벧판매 거래액이 273억원이나 됐다.
한국썸벧판매와 한국썸벧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썸벧판매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지분 100%(20만4000주)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썸벧은 한국썸벧판매가 100%(20만주) 출자한 자회사다. 결국 두 회사 모두 김 회장이 소유한 사실상 오너의 개인회사인 셈이다.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11세 때 외갓집에서 병아리 10마리를 받아 키웠는데, 이게 바로 하림그룹의 시초가 됐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양계사업을 시작한 김 회장은 익산농림고(현 익산대학) 재학 중인 1978년 18세에 자본금 4000만원으로 황등농장을 세웠지만 실패의 쓴잔을 마셨다.
영원사원까지 하며 재기를 노린 김 회장은 1986년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식품을 설립, 지금의 하림그룹을 일궈냈다. 사업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던 김 회장은 1998년 호원대 경영학과를 나와 2000년 전북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하림그룹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가축재해보험 강제 가입, 대출금 이자, 불공정한 상대평가, 사육비 관계, 수입닭고기 유통 등을 두고 전국의 양계 농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 와중에 특혜 의혹까지 불거졌다. 지난달 농림수산식품부에 대한 국감에서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하림은 이제 단순한 닭 가공회사가 아니라 4개 지주회사와 58개 계열사, 매출액 3조1000억원에 영업이익만 2000억원을 상회하는 축산재벌기업이 됐다"며 "그런데도 이런 거대한 기업집단에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 10년간 2016억원을 저리 융자해줘 하림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하림의 19개 농업회사법인 형태 계열사에 법인세 면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고 질타했다.
특혜 의혹 불거져
이 자리에선 김 회장과 한국썸벧판매도 언급됐다. 김 의원은 "김 회장은 자신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자본금 20억원짜리 한국썸벧판매를 통해 복잡한 순환출자 방식으로 많은 계열사들의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김 회장의 보수는 10억원이 넘는다. 이런 회사에 2000억원이 넘는 융자금을 지원하는 게 말이 되냐"고 꼬집었다.
<한국썸벧판매·한국썸벧 기부는?>
받을 땐 '왕창' 나눌 땐 '찔끔'
하림그룹 계열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한국썸벧판매와 한국썸벧은 기부를 얼마나 할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국썸벧판매는 지난해 1120만원을 기부했다. 이는 매출(707억원) 대비 0.0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10년엔 매출(788억원)의 0.06%인 5000만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557억원의 매출을 올린 2009년의 경우 단 한 푼도 기부하지 않았다.
한국썸벧은 지난해 고작 18만원만 기부했다. 매출(275억원) 대비 0.0007%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2010년 기부금은 '0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