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20)욕망 찾아 헤매는 불나비 춤

  • 김영권 작가 nammunsan@naver.com
  • 등록 2026.04.06 02:11:04
  • 호수 15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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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기지촌 거리엔 캐롤송이 울려 나오고 있었다. 그 음습한 골목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곡조가 묘한 효모 발효 작용을 일으켰는지 남녀 행인들의 마음을 부푼 빵처럼 들뜨게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한낮부터 잔칫날처럼 블루문뿐만 아니라 모든 홀과 거리가 흥청대는 느낌이었다. 동두천 전체가 하나의 요상스런 소행성으로 변해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야릇한 미약

미군들보다 오히려 한국인들이 더 흥분한 모습이었다. 홀 여자들은 서양 대목을 맞아 달러깨나 벌어들일 작정으로 그랬다더라도 그 외의 사람들은?

아니, 기지촌 여자들의 마음속에서도 달러뿐만이 아닌 어떤 소망이나 추억과 꿈이 꿈틀거리고 있지 않았을까?

청운은 거렁뱅이 신세로 서울 거리를 떠돌던 시절에 명동이나 퇴계로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은 적이 있었다.

성당과 교회는 그런 날일수록 오히려 평소보다 좀 외로워 보였다. 상점들의 불빛이 화려찬란하게 빛나는 번화가로 들어서면 사람들이 마치 밀물처럼 넘쳐흘렀다.

젊고 아름답고 활기찬 남녀들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 어떤 꿈과 꽃구름이 어디에선가 곧바로 기다리는 것처럼…

천국이 바로 이 땅에 나타난 듯이…

하지만 그건 신을 향해 가는 인고의 행렬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의 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하기야 선남선녀들의 멋지고 예쁘게 꾸민 얼굴도 자세히 보면 화장한 가면일 뿐 그 속엔 욕망에 들뜬 버마재비나 불나방과 하루살이의 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국경일보다 더 휘황스럽지만 실상은 야릇한 미약에 취한 섹스 축제가 아닐까?’

청운은 일전 한푼을 구걸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 군중 속에 슬쩍 끼어들었다가 비껴나기도 하며 생각했다. 고독했기에 그런 어설픈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그들의 발밑에 붙은 먼지보다도 하찮은 인생이란 기분이 얼핏 들었다. 하긴 다음날 주워 읽은 신문에서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향락 추구적인 세태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긴 했다.

성聖탄절이 아닌 성性탄절…콘돔 판매 급증…이브엔 로맨틱해지는 청춘 남녀의 본심은 참된 사랑이 아닌 사이비 욕망이 아닐까?

크리스마스 3개월 이후 낙태수술 급증…사랑을 버리고, 이기적인 장미꽃과 칼을 든 현대의 슬픈 모정…이런 추세라면 올해에 이어 다음해엔 더 많은 불법 낙태수술이 횡행할 듯…징글벨의 복음이 태아 유령의 구슬픈 울음으로 변하기 전에 대책 필요….

그렇게도 찬란하던 이브였건만 성탄절 당일엔 도시가 무슨 역병이라도 지나간 폐허처럼 잠잠했다. 과도한 성축제 후의 일그러진 휴식일까.

교회나 성당은 오히려 평일보다 한산하고 고즈넉한 풍경 속에 놓여 있었다. 청운의 마음속엔 지난밤의 고독감이 아직껏 깊이 남아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마술 같은 향연 속에 참여하지 못한 선망이나 박탈감이랄까.

신도들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간 텅 빈 성당 안으로 청운은 쭈뼛쭈뼛 들어섰다. 그리고 어둠 속에 희뿌옇게 떠오른 마리아 상을 향해 중얼거렸다.

“성모님, 우리 어머니를 찾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죽은 아드님을 안고 슬퍼하시지만, 제 어머니는 살아 있는 어린 자식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닌 어디선가 울고 계실 겁니다. 비록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자식마저 버린 무정한 모정이래도 전 엄마가 그립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왠지 더욱 더….”

그의 눈에 맺힌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뺨 위로 굴러 툭 떨어졌다. 갑자기 그는 흐흐 하고 허탈하게 웃고 나서 다시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기지촌 거리에도 캐롤송 울려 퍼져
백인 전용과 흑인 전용 업소 구별

“아마 성모님은 이 세상 모든 고아들의 어머니이시겠지요? 그런데 당신 친아들의 생일 날 이 세상은 음주가무와 문란한 성 축제로 요란벅적했다고 합디다. 차라리 당신의 아들 예수가 이 땅에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아니, 저 같은 거렁뱅이는 우리나라의 원래 풍속대로 긴 동짓달 겨울을 견디며 고통 속에서도 모닥불 가에서 순박한 꿈을 지닐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땅에서 이방인 같은 존재가 되지 않고….”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계속 중얼댔다.

“성모 마리아님, 당신의 아드님께서 성스러운 탄생을 하신 날이 과연 오늘이 맞습니까? 사실은 오늘이 아니라 어느 여름날 누구보다도 친히 낳으신 당신께서 잘 아시겠지요. 어떤 허접스런 잡지책에서 보니 크리스마스는 성 니콜라스 그리고 예수님은 지중해에 가까운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자랐으니만큼 황색의 아시아인에 더 가까울 텐데…하얀 피부에 멀쩡한 미국인처럼 그려져 있는 건 어찌된 일인가요?”

“만약 이것이 잡지에 한갓 흥밋거리로 소개된 유언비어가 아니라 ‘예수님의 위조’라면 어머니 된 분으로서 얼마나 가슴 쓰린 노릇입니까. 그래도 세계 각국에 알려진 예수님의 모습은 저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인상을 닮는 법이라는데, 우리 한국 땅에 소개된 예수님은 그저 미국인이 만들어낸 모습과 완전히 판박이입니다. 하하하 혹시 모조된 아드님의 얼굴 때문에 한국 땅의 마리아님은 한결 수심이 깊고 쓸쓸한지도 모르겠습니다만…하하, 이건 농담입니다. 죄송합니다.”

청운은 마치 유령처럼 맥없이 성당을 걸어나와 정처없이 거리를 배회했었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흰 눈이 내린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찬 겨울이 왔다
썰매 타는 어린애들은 해 가는 줄도 모르고
눈길 위에 썰매를 깔고 즐겁게 달린다
긴긴 해가 다 가고 어둠이 오면
오색 빛이 찬란한 거리 거리에 성탄 빛
추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마음껏 즐기자
맑고 흰 눈이 새 봄빛 속에 사라지기 전에….

청운은 황량하고 처량하기만 했던 옛 크리스마스의 추억에서 깨어났다. 오후 다섯 시가 지나자 병영 근무를 마친 미군들이 화려하면서도 편리한 사복으로 갈아입고 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희끗거리던 눈발이 함박눈으로 변했는지 그들은 백설을 뒤집어쓴 채 캐롤송을 휘파람으로 불며 히히덕댔다. 제법 흥청거리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결코 평소보다 소란스런 편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미군들에게 있어 크리스마스는 신성한 날이었다. 평생토록 인간의 고통을 사랑으로 치유해 준 예수라는 분이 이 세상에 온 날인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그분이 베푼 진리와 자비를 가슴속에 새기며 자라나 성탄절이면 감사의 마음을 표하게 된다. 마치 한국의 개천절이나 석탄일 같다고나 할까.

섹스 축제

그런 날 술 한잔 마시며 축제의 기분이 젖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평소보다 사건과 사고가 적었다.

여느 땐 백인과 흑인은 서로 견원지간처럼 미워하며 으르렁거렸다. 서로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비웃었다.

백인은 흑인을 옛 선조들이 그랬듯 짐승처럼 무시했으며, 흑인은 그런 백인들을 살육자의 자식으로 여기고 증오했다. 그렇다 보니 클럽마저도 백인 전용과 흑인 전용 업소로 나뉠 정도였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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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