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검은손' 한국문화재단 실체 추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1.01 09: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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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 저리가라…박근혜 판도라 열린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정수장학회는 대선 전 반드시 넘어가야 할 걸림돌이다. 최근엔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 밀실 추진 문제가 논란이 됐다. 그런 와중에 항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박 후보의 또 다른 재단이 의혹으로 떠올랐다. 바로 ‘비선 조직’으로까지 의심받았던 한국문화재단이다. 베일에 가려져있는 미스터리 재단의 실체를 파헤쳐봤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외곽 비밀결사대, 이른바 ‘신사동팀’으로 불렸던 한국문화재단의 실체가 공개됐다. 다음에서 정치 파워블로거로 활동 중인 오주르디가 최근 공개한 포스트 <‘박근혜 재단’ 중 가장 은밀한 곳, 한국문화재단>을 통해 그간 단 한 번도 논의선상에 떠오른 적이 없던 한국문화재단의 역사와 정체를 벗긴 것이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재단이 그간 박 후보의 정치 행보에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해온 실상도 드러났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한국문화재단은 누리집도 없고 인터넷 검색도 쉽지 않다. 건물 안내판에도 간판을 따로 붙이지 않았다. 박 후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재단 4곳(정수장학회·육영재단·영남학원·한국문화재단) 중 가장 베일에 쌓여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미스터리 재단’의 출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7개월 전인 1979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국문화재단의 설립자는 라면회사인 삼양식품 창업자인 전중윤 명예회장. 설립 당시 명칭은 ‘명덕문화재단’이었다.

전 명예회장은 1979년 3월 현금 5억 원 등 총 11억 원을 들여 ‘명덕문화재단’을 창설했고 설립 이듬해인 1980년 7월 전중윤 초대이사장을 포함한 설립 관계자 전원이 사퇴하고 박 후보가 이사장이 됐다.


만 28세에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은 박 후보는 2012년까지 줄곧 이사장을 맡아왔다. 32년 동안 한결같이 ‘이사장 박근혜’ 체제가 유지됐다면 사실상 재단 소유주가 박 후보라는 얘기다. 

간판도 없이 극 비밀리에 운영된 ‘신사동 팀’
삼양라면 전 회장의 재단 기부는 보은 성격?

당시 11억 원의 가치는 같은 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돈이라며 박 후보에게 청와대 금고에서 무상증여한 6억 원과 비교하면 액수를 가늠할 수 있다. 당시 6억 원이면 대치동 은마 아파트 30여 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어마어마한 재단이 박 후보의 손에 넘어간 걸까. 블로거 오주르디는 이어 삼양라면, 그리고 박정희와 JP를 연결고리로 미스터리한 한국문화재단의 실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에 따르면 재단 소유권이 삼양라면에서 박 후보에게 넘어간 배경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이 절절했던 전 명예회장이 보은 차원에서 맏딸인 박 후보에게 자신이 설립한 재단을 맡겼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실상 기부행위라 봐도 무방하다.

삼양식품은 1961년 정부의 금전 도움을 받아 라면 제조기계를 도입했고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 명예회장의 삼양라면 성공스토리는 남대문시장 꿀꿀이죽에서부터 출발했다.

5원짜리 꿀꿀이죽을 사 먹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자신이 일본서 먹어본 라면을 떠올린 전 명예회장은 ‘새로운 식품 사업계획서’를 들고 JP(김종필)를 설득했다.
JP를 통해 라면 샘플을 먹어 본 박 전 대통령은 라면을 좋게 평가했고, 이후 전 명예회장은  정부가 보유했던 미국 잉여농산물 구매대금 중 5만 달러를 조건부로 불하받아 라면기계를 샀다. 삼양라면은 불티나게 팔렸고 1964년부터 라면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다.

재단과 삼양라면
그리고 박정희와 JP


5만 달러를 불하해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전 명예회장은 자신의 딸 셋 모두 박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다닌 배화여고에 보냈다. 배화학원 이사장을 맡아 ‘육영수 여사 기념관’도 건립해 줬다. 이후 설립된 배화여자전문대학 후원 재단으로 명덕문화재단을 설립했다.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급서하자 전 명예회장은 그럴 줄 알고 재단을 넘길 준비라도 한 듯 1년도 안 돼 박 후보에게 명덕문화재단 전체를 양도했다.

명덕문화재단에서 이름이 바뀐 한국문화재단은 2002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 미래연합을 창당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탈당 선언문을 작성한 곳이 박 후보의 의원실이 아니라 한국문화재단이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박 후보의 비공식 조직인 ‘신사동팀’에 관한 설들이 정가에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주르디는 “‘신사동팀’의 거점이 한국문화재단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팀을 이끈 인물은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렸던 고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로 알려졌다”며 “정윤회는 최태민의 다섯째 부인의 딸인 최순실의 남편이다. 박 후보의 비서실장을 지낸 바 있으며, 육영재단에 관여하기도 했다. 항간에는 그가 지난 4·11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공익재단?
쿠데타 전진기지!

한국문화재단의 임원진도 박 후보와 관련 있다. 김경협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달 공개한  이사진 자료에 따르면, 최외출, 변환철, 김달웅, 김덕순 등 친박 인사들이 이사를 맡고 있다.

영남대 부총장이자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장인 최외출 이사는 박 후보의 ‘국민행복캠프’ 기획조정특보이고, 변환철 이사는 친박 교수 모임인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김달웅 이사도 친박 성향 교수 연구모임인 ‘바른사회하나로연구원’의 상임대표를 맡고, 김덕순 이사는 정수장학회 이사도 겸하고 있다.

당시 김 의원은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4개 법인(정수장학회·영남학원·육영재단·한국문화재단)이 설립된 이후 감사 이상을 지낸 임원을 교차분석해보니, 지난 20∼30여 년간 22명이 재벌계열사처럼 순환 임명돼왔다”고 지적했다.

오주르디도 “재벌기업이 계열회사 임원을 순환시키는 것처럼 ‘박근혜 재단’ 4곳도 꼭 그 짝”이라며 “4곳 모두 거친 임원이 3명, 3곳에서 임원을 맡았던 사람이 3명, 2곳 16명 등이며 현재 임원을 맡고 있는 사람도 5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오주르디는 또 한국문화재단이 박 후보의 기부행위나 박 전 대통령 업적 홍보로 재단 비용을 지출해온 사실도 공개했다. 재단은 2004·2005년 문화 활동비 명목으로 박 후보의 미니홈피 접속 수 200만회와 300만회 돌파를 기념해 수 백만원에 상당하는 물품을 영아원과 어린이 시설에 지원했다.

학술연구비 명목으로 ‘박정희 치적 연대표 조사연구’ 등에 1500만원을 지원하는 등 재단의 연구비 지원 5건 중 2건도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것이었다.


32년간 존속해오다 돌연 9월10일 등기 말소
육영수사업회에 증여 “대선 의혹 피하기?”

또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문화재단이 선정한 장학금 수혜자 수는 총 715명인데, 이 중 75%에 달하는 538명이 박 후보의 지역구나 다름없는 대구-달성에 치중해 지원했다. 이를 두고 오주르디는 “자신의 선거구에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박근혜’라고 적힌 장학증서를 집중적으로 뿌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주르디는 “정수장학회가 3만 명의 상청회원을 거느린 사실상 박 후보의 외곽조직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문화재단도 만만치 않다”며 “한국문화재단의 겉모습은 정수장학회보다 못할지언정, 박 후보의 정치적 ‘손발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면 정수장학회를 훨씬 능가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한국문화재단이야말로 박 후보의 비밀 정치의 축이자 드러나지 않은 의혹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란을 의식했는지 한국문화재단은 지난달 10일 갑작스러운 해산 등기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한국문화재단은 지난 6월25일 이사회 결의로 해산했고, 지난 9월10일 해산 등기를 마쳤다.

해산하면서 13억 여원에 달하는 재단의 자산은 박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육영수여사 기념사업회’로 넘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0월 23일 우원식 민주통합당 의원(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문화재단은 지난 6월 법인을 해산하고 기본재산 13억원을 육영수사업회에 증여했다. 이에 따라 육영수 사업회의 기본재산은 24억 원에서 37억 원으로 늘었다.

이에 대해 박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제2의 정수장학회’논란을 피하기 위해 두 재단을 서둘러 통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 의원은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에 이어 한국문화재단도 박정희 시대 재벌 특혜에 따른 상납 의혹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설립 시 한 푼의 재산 기여도 없는 박 후보가 마땅히 사회 환원을 해야 할 재산을 육영수사업회로 넘긴 것은 논란도 피하고 재산도 지키기 위한 매우 부도덕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 역시 “남의 들보는 잘 들추더니 32년간 몰래 지켜온 단체의 너무 큰 들보가 들킬까 겁이나 재빨리 합치셨군요” “안철수재단에 대해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을 적용했는데, 형평성이란 게 있나요?” “까도까도 나오는 양파네요. 어떻게 죄다 남의재산인지” “아버지의 과오만 물려받았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아버지 시절’
또 다른 유산 

한 블로거는 “우리 국민들은 하다못해 안전 띠 하나 착용을 미처 하지 못하고 가다가 걸려도 꼼짝없이 벌금 3만원을 내야하며 그 외에도 국민들은 그 어느 사소한 법으로 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며 “그런데 정수장학회나 그 운영에 문제가 많은 육영재단, 한국 문화재단이라는 곳들이 박 후보를 위해 돌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러면서 ‘국민대통합’이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같잖은 선거운동 및 표 구걸을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씁쓸하다”고 말했다.

32년간 비밀을 지켜온 단체. 사회 환원으로 연결되지 않은 한국문화재단을 통합했다고 해서 특혜에 따른 상납 의혹, 재산 지키기 꼼수 등 들끓는 의혹을 잠재우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학 사업을 하는 한국문화재단과 개인 추모 중심인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의 사업통합목적을 두고도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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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