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검은손' 한국문화재단 실체 추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1.01 09: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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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 저리가라…박근혜 판도라 열린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정수장학회는 대선 전 반드시 넘어가야 할 걸림돌이다. 최근엔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 밀실 추진 문제가 논란이 됐다. 그런 와중에 항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박 후보의 또 다른 재단이 의혹으로 떠올랐다. 바로 ‘비선 조직’으로까지 의심받았던 한국문화재단이다. 베일에 가려져있는 미스터리 재단의 실체를 파헤쳐봤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외곽 비밀결사대, 이른바 ‘신사동팀’으로 불렸던 한국문화재단의 실체가 공개됐다. 다음에서 정치 파워블로거로 활동 중인 오주르디가 최근 공개한 포스트 <‘박근혜 재단’ 중 가장 은밀한 곳, 한국문화재단>을 통해 그간 단 한 번도 논의선상에 떠오른 적이 없던 한국문화재단의 역사와 정체를 벗긴 것이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재단이 그간 박 후보의 정치 행보에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해온 실상도 드러났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한국문화재단은 누리집도 없고 인터넷 검색도 쉽지 않다. 건물 안내판에도 간판을 따로 붙이지 않았다. 박 후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재단 4곳(정수장학회·육영재단·영남학원·한국문화재단) 중 가장 베일에 쌓여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미스터리 재단’의 출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7개월 전인 1979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국문화재단의 설립자는 라면회사인 삼양식품 창업자인 전중윤 명예회장. 설립 당시 명칭은 ‘명덕문화재단’이었다.

전 명예회장은 1979년 3월 현금 5억 원 등 총 11억 원을 들여 ‘명덕문화재단’을 창설했고 설립 이듬해인 1980년 7월 전중윤 초대이사장을 포함한 설립 관계자 전원이 사퇴하고 박 후보가 이사장이 됐다.


만 28세에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은 박 후보는 2012년까지 줄곧 이사장을 맡아왔다. 32년 동안 한결같이 ‘이사장 박근혜’ 체제가 유지됐다면 사실상 재단 소유주가 박 후보라는 얘기다. 

간판도 없이 극 비밀리에 운영된 ‘신사동 팀’
삼양라면 전 회장의 재단 기부는 보은 성격?

당시 11억 원의 가치는 같은 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돈이라며 박 후보에게 청와대 금고에서 무상증여한 6억 원과 비교하면 액수를 가늠할 수 있다. 당시 6억 원이면 대치동 은마 아파트 30여 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어마어마한 재단이 박 후보의 손에 넘어간 걸까. 블로거 오주르디는 이어 삼양라면, 그리고 박정희와 JP를 연결고리로 미스터리한 한국문화재단의 실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에 따르면 재단 소유권이 삼양라면에서 박 후보에게 넘어간 배경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이 절절했던 전 명예회장이 보은 차원에서 맏딸인 박 후보에게 자신이 설립한 재단을 맡겼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실상 기부행위라 봐도 무방하다.

삼양식품은 1961년 정부의 금전 도움을 받아 라면 제조기계를 도입했고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 명예회장의 삼양라면 성공스토리는 남대문시장 꿀꿀이죽에서부터 출발했다.

5원짜리 꿀꿀이죽을 사 먹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자신이 일본서 먹어본 라면을 떠올린 전 명예회장은 ‘새로운 식품 사업계획서’를 들고 JP(김종필)를 설득했다.
JP를 통해 라면 샘플을 먹어 본 박 전 대통령은 라면을 좋게 평가했고, 이후 전 명예회장은  정부가 보유했던 미국 잉여농산물 구매대금 중 5만 달러를 조건부로 불하받아 라면기계를 샀다. 삼양라면은 불티나게 팔렸고 1964년부터 라면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다.

재단과 삼양라면
그리고 박정희와 JP


5만 달러를 불하해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전 명예회장은 자신의 딸 셋 모두 박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다닌 배화여고에 보냈다. 배화학원 이사장을 맡아 ‘육영수 여사 기념관’도 건립해 줬다. 이후 설립된 배화여자전문대학 후원 재단으로 명덕문화재단을 설립했다.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급서하자 전 명예회장은 그럴 줄 알고 재단을 넘길 준비라도 한 듯 1년도 안 돼 박 후보에게 명덕문화재단 전체를 양도했다.

명덕문화재단에서 이름이 바뀐 한국문화재단은 2002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 미래연합을 창당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탈당 선언문을 작성한 곳이 박 후보의 의원실이 아니라 한국문화재단이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박 후보의 비공식 조직인 ‘신사동팀’에 관한 설들이 정가에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주르디는 “‘신사동팀’의 거점이 한국문화재단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팀을 이끈 인물은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렸던 고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로 알려졌다”며 “정윤회는 최태민의 다섯째 부인의 딸인 최순실의 남편이다. 박 후보의 비서실장을 지낸 바 있으며, 육영재단에 관여하기도 했다. 항간에는 그가 지난 4·11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공익재단?
쿠데타 전진기지!

한국문화재단의 임원진도 박 후보와 관련 있다. 김경협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달 공개한  이사진 자료에 따르면, 최외출, 변환철, 김달웅, 김덕순 등 친박 인사들이 이사를 맡고 있다.

영남대 부총장이자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장인 최외출 이사는 박 후보의 ‘국민행복캠프’ 기획조정특보이고, 변환철 이사는 친박 교수 모임인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김달웅 이사도 친박 성향 교수 연구모임인 ‘바른사회하나로연구원’의 상임대표를 맡고, 김덕순 이사는 정수장학회 이사도 겸하고 있다.

당시 김 의원은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4개 법인(정수장학회·영남학원·육영재단·한국문화재단)이 설립된 이후 감사 이상을 지낸 임원을 교차분석해보니, 지난 20∼30여 년간 22명이 재벌계열사처럼 순환 임명돼왔다”고 지적했다.

오주르디도 “재벌기업이 계열회사 임원을 순환시키는 것처럼 ‘박근혜 재단’ 4곳도 꼭 그 짝”이라며 “4곳 모두 거친 임원이 3명, 3곳에서 임원을 맡았던 사람이 3명, 2곳 16명 등이며 현재 임원을 맡고 있는 사람도 5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오주르디는 또 한국문화재단이 박 후보의 기부행위나 박 전 대통령 업적 홍보로 재단 비용을 지출해온 사실도 공개했다. 재단은 2004·2005년 문화 활동비 명목으로 박 후보의 미니홈피 접속 수 200만회와 300만회 돌파를 기념해 수 백만원에 상당하는 물품을 영아원과 어린이 시설에 지원했다.

학술연구비 명목으로 ‘박정희 치적 연대표 조사연구’ 등에 1500만원을 지원하는 등 재단의 연구비 지원 5건 중 2건도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것이었다.


32년간 존속해오다 돌연 9월10일 등기 말소
육영수사업회에 증여 “대선 의혹 피하기?”

또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문화재단이 선정한 장학금 수혜자 수는 총 715명인데, 이 중 75%에 달하는 538명이 박 후보의 지역구나 다름없는 대구-달성에 치중해 지원했다. 이를 두고 오주르디는 “자신의 선거구에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박근혜’라고 적힌 장학증서를 집중적으로 뿌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주르디는 “정수장학회가 3만 명의 상청회원을 거느린 사실상 박 후보의 외곽조직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문화재단도 만만치 않다”며 “한국문화재단의 겉모습은 정수장학회보다 못할지언정, 박 후보의 정치적 ‘손발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면 정수장학회를 훨씬 능가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한국문화재단이야말로 박 후보의 비밀 정치의 축이자 드러나지 않은 의혹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란을 의식했는지 한국문화재단은 지난달 10일 갑작스러운 해산 등기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한국문화재단은 지난 6월25일 이사회 결의로 해산했고, 지난 9월10일 해산 등기를 마쳤다.

해산하면서 13억 여원에 달하는 재단의 자산은 박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육영수여사 기념사업회’로 넘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0월 23일 우원식 민주통합당 의원(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문화재단은 지난 6월 법인을 해산하고 기본재산 13억원을 육영수사업회에 증여했다. 이에 따라 육영수 사업회의 기본재산은 24억 원에서 37억 원으로 늘었다.

이에 대해 박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제2의 정수장학회’논란을 피하기 위해 두 재단을 서둘러 통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 의원은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에 이어 한국문화재단도 박정희 시대 재벌 특혜에 따른 상납 의혹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설립 시 한 푼의 재산 기여도 없는 박 후보가 마땅히 사회 환원을 해야 할 재산을 육영수사업회로 넘긴 것은 논란도 피하고 재산도 지키기 위한 매우 부도덕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 역시 “남의 들보는 잘 들추더니 32년간 몰래 지켜온 단체의 너무 큰 들보가 들킬까 겁이나 재빨리 합치셨군요” “안철수재단에 대해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을 적용했는데, 형평성이란 게 있나요?” “까도까도 나오는 양파네요. 어떻게 죄다 남의재산인지” “아버지의 과오만 물려받았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아버지 시절’
또 다른 유산 

한 블로거는 “우리 국민들은 하다못해 안전 띠 하나 착용을 미처 하지 못하고 가다가 걸려도 꼼짝없이 벌금 3만원을 내야하며 그 외에도 국민들은 그 어느 사소한 법으로 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며 “그런데 정수장학회나 그 운영에 문제가 많은 육영재단, 한국 문화재단이라는 곳들이 박 후보를 위해 돌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러면서 ‘국민대통합’이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같잖은 선거운동 및 표 구걸을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씁쓸하다”고 말했다.

32년간 비밀을 지켜온 단체. 사회 환원으로 연결되지 않은 한국문화재단을 통합했다고 해서 특혜에 따른 상납 의혹, 재산 지키기 꼼수 등 들끓는 의혹을 잠재우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학 사업을 하는 한국문화재단과 개인 추모 중심인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의 사업통합목적을 두고도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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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