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대담> 박득훈이 보는 지금 국민의 시계

“젊은 세대에 미안하고 죄송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이 뒤집혔다.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행위는 국민의 시계를 40여년 전으로 돌려놨다. 그 시절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기성세대와 아이돌 응원봉을 든 젊은 세대가 거리로 나왔다. 이후 새 정부가 출범했고 8개월이 흘렀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주가는 코스피 5000이라는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았는데, 2030세대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한다. 한쪽에서는 환호성이, 또 다른 쪽에서는 곡소리가 나는 형국이다. 위정자들은 통합과 화합을 외치지만 정작 국민의 마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는 듯하다.

빈부 격차
핵심 뿌리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선포한 비상계엄은 대한민국호의 뱃머리를 삽시간에 반대 방향으로 돌려 버렸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정치적으로 실현된 지 불과 30여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안 의결, 윤 전 대통령의 공식 해제로 사태는 6시간 만에 종결됐지만 한국 사회에 남긴 상흔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극단에 치우친 정치 세력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젊은 세대였다. 일부일지라도 과거였다면 민주화의 깃발을 들고 휘둘렀을 젊은 세대의 ‘우경화’는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진영 논리에 따른 정치 갈등은 성, 세대, 지역 갈등으로 확산했다. 시간이 갈수록 갈등 수위는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고문인 박득훈 목사는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사회와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축적된 자본주의의 모순이 분노로 치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갈등이 정체성의 갈등으로 세분화하는 현상에도 주목했다.


지난 3일 박 목사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답변은 조심스러웠다. 진보 진영에 대해 비판할 때는 ‘내부 총질’로 비칠까 염려했다. 인터뷰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서는 자기 고백에 가까운 말이 이어졌다.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를 향해 “미안하다, 죄송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목사는 현재 사회 상황에 대해 “비상계엄 실패에 따라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고 극우 세력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K-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듯하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도 극우 세력에 휘둘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자부심, 동시에 우리가 피와 눈물로 가꿔온 민주주의가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변화한 보수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조갑제씨나 정규재씨 같은 보수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윤석열정권이나 극우 세력의 정치적 행태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 진정한 민주주의는 어때야 하는가 하는 내용의 발언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이후 사회 변화
2030세대 보수화 우려돼

이어 “현재 60%에 이르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도 세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40%대 전후)보다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그동안 민주당 정권을 격렬하게 반대했던 사람 가운데서도 이재명정부가 지향하는 실용주의적 노선을 긍정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비상계엄 이후 나타난 변화”라고 전했다.

박 목사는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등 대형 정치 이슈를 거치면서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커진 점, 그 극우 세력에 젊은 세대가 일부 합류하고 있는 현상을 우려했다. 실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이후 일부 그의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행위를 한 이른바 ‘서울서부지법 사태’의 가해자는 대부분 20~30대였다.


박 목사는 “전수조사를 해본 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판단할 순 없지만 과거보다 많아진 건 분명하다. 이전부터 젊은 층이 보수화되는 그 흐름이 있었다. 무시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변화”라면서 “젊은 보수가 생각이 없다거나, 어리석다거나, 지나치게 이념적이라고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박 목사는 젊은 세대가 보수화하는 문제의 배경을 진보 진영에서 찾았다.

그는 “진보 진영은 그동안 서민과 중산층 이하의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처럼, 그들의 편인 것처럼 수사적 표현을 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면서 정책적인 면에서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고 서민에게 굉장한 실망감, 배신감을 안겼다”며 “요즘 젊은이들이 보수 진영으로 갔다는 것은 진보에 대한 경종”이라고 꼬집었다.

보수화된 젊은 세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태도를 주의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박 목사는 “(보수화된) 젊은이들을 생각이 없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진보가 어떻게 (그들을) 실망하게 했길래 그들이 다른 길로 갔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동안 인류 역사를 보면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앞장섰다. 그런 젊은 사람들이 어째서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기존 세력을 지지하는 흐름으로 바뀌었는지를 생각해 봤을 때 진보는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수사적 표현
“속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던 극우 세력이 서구 유럽에서는 주류로 치고 올라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세계를 상대로 ‘큰소리’치는 지도자가 늘어난 것도 현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진보 진영의 ‘우아하고 듣기 좋은’ 수사적 표현이 오히려 대중의 불신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순 없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성, 세대, 지역 갈등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빈부격차가 나타난다. 물론 빈부격차를 해결하면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문제의 원인을 빈부격차에서 찾았다.

그는 “자본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용하는 게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여성 노동자를 싸게 고용하면 이윤이 커진다. 여성의 인품, 인격,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게 자본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과 남성의 갈등이 증폭되고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눈여겨볼 대목은 자본이 지닌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노동 계급이 약화했고 그 빈자리에 다양한 갈등이 들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계급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저항의 크기는 약해졌고 그 대신 여성 문제나 성 소수자 문제 등 이른바 정체성 문제라고 불리는 다양한 갈등이 분출했다”고 부연했다.

박 목사는 이른바 ‘눌리고 있는’ 사람들의 분노가 상대를 상처 입히는 언행으로 나타나고 서로를 배척하는 ‘대혐오의 시대’로 이어진다고 짚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한참 성장하다가 버벅거리기 시작할 때 모순이 극대화된다. 문제는 그 모순을 정당화하는 세력이 정치적 기득권을 가지고 있을 때 나타난다”며 “본인들은 여러 면에서 박탈을 겪고 있는데 기득권은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솔직히 고통당하는 처지에서 기득권의 정치 성향이 진보인지 보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 기득권 세력”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이 정권교체를 택했다는 것은 오랫동안 박탈당해 무기력해진 상황에서 변화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이들이 바꿔주는 척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있으면 국민은 기댈 곳이 없다. 외롭고 고통스럽고 분노가 치민다. 누군가를 두들겨 패주고 싶은 감정적인 아픔이 축적된다”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이 분노를 이용하려는 지도자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런 지도자들은 약자 간의 혐오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개인 아닌
사회 문제

박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 같은 경우엔 너희들이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는 건 불법 체류자 때문이다. ‘저 인종, 저 저차원적인 인종이 와서 당신들(백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 거야’라고 규정해 버린다”고 예시를 들었다.

실제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인데 이를 ‘갈라치기’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왜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위 말하는 진보 지식인이 분노한 대중을 향해 제대로 된 설명을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노골적이고 직선적이며 때론 미치광이처럼 내뱉는 언행이 대중에겐 솔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카리스마를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준다. 대중은 트럼프 대통령이 엘리트 정치인을 혼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혐오 언어를 퍼트리면 기꺼이 공유하고 동의하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다. 그 언어가 우아한 언어를 쓰는 위선에 대한 강력한 도전, 저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진보가 대중의 분노를 불식하고 달래주지 못하는 틈을 트럼프 대통령이나 전광훈 목사 같은 사람이 파고들었다는 뜻이다. 너무 화가 나는데 누구를 때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 즉 누군가에게 분풀이하고 싶지만, 대상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사람의 감정적인 고통을 이들이 포착했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그들(진보 진영)은 진짜로 고통당한 사람들에게 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머리와 언어만 진보적이고 몸은 진보적이지 않다. 좋은 집에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사는데 서민과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겠나. 부동산과 주식을 잔뜩 보유하고 있는데 그에 반하는 정책을 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몸도 마음도 약자와 함께 있지 않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을 위한 논리와 정책을 만들 수 없다. 서민을 위하는 약자의 편이라는 수사적 언어만 사용할 뿐 실질적인 정책에 있어서는 사실상 보수 진영과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박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멋진 말’을 믿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박 목사는 사회 변화의 원인을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빈부격차, 즉 경제 문제에서 대부분 갈등이 야기되는데 그 해결책을 개인의 노력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본주의의 한계가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모순이 갈등의 ‘진짜’ 원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앞선 세대 사람들이 탐욕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자기 욕심만 차려서 잘 먹고 잘 살았던 게 아니다. 또 젊은 세대가 노력하지 않아서 못 먹고 못 사는 게 아니다. 똑같이 열심히 살아왔고 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 않느냐”고 진단했다.

진보 진영에 대한 실망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

그는 “기성세대는 한국 자본주의가 급성장 혹은 꾸준히 성장하는 흐름 속에서 열심히 살았다. 근로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었고 애를 낳아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사회적 상승도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성장이 멈춘 포화 상태”라며 “그러니 젊은 세대로선 아무리 몸부림쳐도 불안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집을 구할 가능성도 안 보이고 애를 많이 낳아 키울 자신도 없다. 미래가 불확실하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가 극대화된 시기에 사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결국 위정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동시에 위정자를 선택하는 국민의 역할도 강조했다.

박 목사는 “위정자가 권한을 많이 갖고 있으니까 책임의 무게는 훨씬 무겁다. 영향력도 크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혼나야 할 사람은 지도자가 맞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이 가만히 있어도 되냐, 하면 그렇지 않다. 민중이 들고일어나 위정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올바른 사람을 선택해야 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공부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깊고 여유로운 토론을 하지 않는 세대가 됐다. 정확히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경쟁에 시달리느라 정서적으로 너무 피곤하다. 너무 피곤하면 자극적인 쾌락, 짧은 즐거움, 웃음, 행복에 매달리게 된다. 길게 뭘 생각하고 누리기엔 현실이 너무 각박한 것이다. 사회가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진보 진영이 대중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박 목사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외국 유학을 하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부채 의식’을 언급했다.

질문에 답변하기에 부담스럽다는 말도 건넸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 시점에서는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 목사는 “요즘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역사의 진보를 위해, 사회 변혁을 위해 자신의 어떤 명예나 정치적 권력, 세력화 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몸을 던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기득권을 취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던지고 간다’는 마음으로 진보 운동에 투신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먼저 그 길을 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진보 진영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재 대중이 보는 시각은 이들이 기득권을 위한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현실이 어떻든 대중이 어떻게 느끼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다.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대중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돌파하지 못하면 대중을 이끌 수 없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답변을 이어가던 박 목사는 젊은 세대를 향한 메시지를 부탁하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처음 나온 말은 “미안하다, 그리고 죄송하다”였다.

내던지는
지도자 필요

그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힘겹게 사는 상황, 삶을 포기하거나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체제를 누가 만들었나, 누가 물려줬나 하면 기성세대다. 누군가는 바꾸려 노력했지만 안 됐고 누군가는 체제 유지를 지지했다. 그 무기력함에 대해, 대세를 뒤집지 못한 데 대한 책임감이 크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성세대가 가진 게 젊은 세대에 비해 많지 않나. 이것을 적극적으로 나눠서 젊은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길을 기성세대가 걸어갔으면 한다. 나도 미력하나마 그 흐름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를 좀 용서해주고 불쌍히 여겨서 서로 마음을 합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