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피에로는 마이크를 빼들고 입으로 가져가 백남봉이나 남보원이 하듯 원맨쇼를 펼치기 시작했다.
긴 휘파람 소리는 대포알이나 미사일이 멀리 날아가는 것을 묘사하는 성싶었다.
이어 폭발하는 소리가 꽤나 요란했으나 앞니가 빠졌기 때문인지 더러 불발탄 같은 싱거운 소음도 섞였다. 그래도 피에로는 열심히 성대모사를 해 나갔다.
성대모사
“드드드드…타타타타타…피융 피융…으윽,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 제군들은 삼천리 금수강산과 한민족을 위해 사즉생의 정신으로 싸워 달라…드르륵 드르륵 콰쾅…… 으흑, 나는 피눈물을 머금고 가네…소련 놈한테 속지 말고, 미국 놈들 믿지 말고…참다운 자주 독립과 해방 세상을 이뤄다오….”
마지막 말은 불분명해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저 피에로 형은 뜬금없이 왜 저런 소릴 지껄이고 있을까, 하고 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무대에서 저런 덜떨어진 헛소릴 왜 하는 거야? 더군다나 대부분의 관객이 미국 군인인 판에 누가 그런 이상스런 소릴 알아먹겠느냐구, 응? 가만 있자, 혹시 미군들이 알아먹지 못하게 일부러 그런 대사를 늘어놓은 건 아닐까? 흠,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건 이 홀에선 아무런 메아리도 없고 의미도 전달되지 못하는 독백에 불과하지 않느냔 말야.’
청운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피에로는 지팡이를 빙빙 돌리며 한국 말로 계속 지껄였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코리아 채플린 쑈가 시작되겠습니다! 자, 박수로 환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박수 소리는 별로 나지 않았다. 그 대신 검푸른 장막을 젖히며 한 아가씨가 무대로 툭 뛰어나왔다. 장막 위쪽에 매달린 별들이 흔들리며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무명 저고리에 검정 치마 차림인 그녀는 한쪽 팔목에 꽃이 가득 담긴 대바구니를 걸고 있었다. 아담하고 가냘파 보이는 몸매였다.
그녀는 한숨을 폭폭 내쉬며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거닌다. 무슨 큰 고민거리라도 있는 모양이다. 급기야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늘 향해 빌며 기도를 드린다.
그때 방랑자 채플린이 지팡이를 빙빙 돌리며 지나간다. 꽃팔이 아가씨는 마치 그가 하느님이라도 되는 양 우러러보며 꽃 한 송이만 팔아 달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한다.
무언극이라 말은 없지만 무수한 말보다 더 애절해 보인다.
채플린은 콧수염을 움찔거리며 고민스런 표정이다. 그러더니 천천히 아가씨를 일으켜 세워 정겨운 미소를 짓는다.
아가씨가 안도의 숨을 쉬자 그는 그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곤 뭔지 한동안 속삭인다. 아가씨는 좀 놀란 눈으로 머뭇거렸으나 채플린의 재촉에 못 이겨 결국 한 발짝 두 발짝 무대 앞쪽으로 걸어 나간다.
그러고는 대바구니에서 조화 같은 장미와 동백꽃을 집어들어 미군들을 향해 공손히 던졌다. 키스를 함께 담아….
반응은 별 신통찮았으나 동전 몇 개가 무대 바닥으로 되돌아오긴 했다.
꽃팔이 아가씨는 몸을 굽혀 그걸 주웠다. 그리고 콧노래를 여리게 흥얼거리며 일어서는 순간 채플린은 갑자기 뒤돌아서며 음흉한 히틀러의 웃음을 흘린다.
어느 새 그의 머리 위엔 낡아 빠진 방랑자의 모자 대신 금빛 별이 달린 대원수의 군모가 얹혀 있다. 히틀러는 독사 같은 눈으로 아가씨를 노려본다.
그녀가 흐느끼며 마지못해 동전을 건네주자 히틀러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레 웃곤 꽃팔이의 야윈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삐딱삐딱 걸어 장막 뒤로 사라진다.
홀의 관객들 속에서는 야유가 흘러 나왔다. 아무래도 히틀러의 사악함을 질타하기보다는 짝퉁 채플린의 연기에 실망한 나머지 내는 소리가 아닌가 싶었다.
6·25전쟁은 미국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륙하는 계기가 되었다. 휴전 이후 한국에 미군이 대규모로 주둔하게 되면서 소위 ‘GI 문화’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미군 주둔 캠프가 있었고 그곳에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이 있었는데 그곳 무대가 미8군 쇼 무대이고 여기에서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이들을 미8군 연예인이라고 불렀다.
미8군 쇼는 노래, 춤, 코미디, 마술 등이 가미된 버라이어티 쇼의 형태를 취했기에 악단, 가수, 무용수, 코미디언이 모두 포함된 쇼단을 구성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6·25 이후 미국 대중문화 상륙
전국 각지 주둔 캠프 클럽 무대
이봉조의 헐리우드 쇼, 김희갑의 에이원 쇼, 베니 김(김영순)의 베니 쇼, 송민영의 토미아리오 쇼, 박성원의 블랙 아이스 쇼, 김동석의 웨스턴 주빌리 쇼 등이 당시 활동한 미8군 쇼단들이었다.
미8군 무대는 1960년대 전반기에 전성기를 누리고 베트남전쟁이 발발하면서 쇠퇴했지만, 한국 대중음악에 깊은 영향을 행사했다.
이들은 분기별로 용산의 USIS라는 곳에서 공개오디션을 거쳐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오디션에서 부여받은 레벨은 음악인의 가치이며 거기에 근거해 실력자들은 충분한 보수를 보장받았다.
미8군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왕도는 없었다. 최신 레퍼토리를 입수해 끊임없이 연습함으로써 실력과 흥행성을 배가하는 길이 유일했다.
악보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미군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고 최신 음반을 입수해 일일이 채보하면서 소속 용역회사 창고에서 지지리 연습했다.
미8군 쇼가 긍정적인 영향만 끼친 건 아니었다. 비록 불모지인 연예계에 물줄기를 불어 넣고 끼 있는 연예인을 발굴하는 역할을 일정 정도 했지만 한국 고유의 정서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미8군 무대에 선 가수나 코미디언들은 독창적인 재능보다는 미국 본토의 인기 연예인을 가능한 만큼 똑같이 모방할 때 훨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패티 킴은 패티 페이지를, 하숙생 최희준은 냇킹 콜을 모창했고, 위키 리는 바비 달린을 모방해 인기를 얻었다.
누구는 봅 호프를, 또 누구는 프랭크 시내트라를, 누군가는 제임스 딘을, 그리고 재기발랄한 김상국조차도 루이 암스트롱을 흉내내야만 계속 무대에 설 수가 있었다.
그들은 예인으로서의 독창성과 자부심보다는 미국 본토에 있는 오리지널의 이미지를 그럴 듯하게 복사(capy)함으로써 가치를 인정받는 신세였다.
그들이 한국에서 유명짜한 밤무대 가수로 뛸 때 미8군 무대에서의 경험과 인기는 실력의 기준이 되었다.
그 자신 유명한 미국 개그맨을 모방하는 밤무대의 사회자가 출연자를 ‘미8군 출신!’이라고 소개하면 현란스러운 홀은 금세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일단 퇴장했던 피에로는 곧 무대 위에 다시 나타나 능글능글한 목청으로 다음에 등장할 여가수를 뻥튀기로 소개하곤 내빼 버렸다.
이국적인 얼굴에 키가 후리후리한 패리 킴이 나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티브이에 자주 출연하는 패티 킴과 비슷한 모습에 똑같은 창법이었으나 참된 기운이 부족한 짝퉁의 모창이었다.
그런 대로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인지 환호성이 일었다.
홀 여기저기서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남녀가 서로 껴안은 채 쪽쪽 빨아대는 소리가 났다.
먼 이국땅에서 온 사내들은 작고 분단된 코리아의 여인들에게서 모정을 느끼는 것일까? 혹은….
모방의 밤무대
청운이 술잔을 비우고 탁자에 놓는데 피에로가 분장을 지운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물이 빠진 골덴 바지 위에 검은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쑈는 끝났어. 이젠 호랑나비와 범나비들끼리 짝을 맞춰 하룻밤 사랑 유희 하는 일만 남았는걸.”
“응, 그렇군.”
“가자.”
“어디로?”
“아무튼 여길 나가서….”
“응.”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