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2026 여의도 핫이슈

몰아치는 폭풍 속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여의도의 한 해가 저물었다. 다가오는 2026년에도 정치판을 흔들 변수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지금부터는 선택의 연속이다. 여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순간들을 <일요시사>가 모아봤다.

2026년 가장 눈에 띄는 이벤트는 권력구도를 재편할 선거다. 6개월 단위로 크고 작은 선거가 예고된 만큼 의원들은 저마다 수면 아래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양새다. 먼저 1월11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최고위원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유동철·문정복·이건태·이성윤·강득구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고 이 중 세 명만이 민주당 정청래 지도부 2기에 합류한다.

힘겨루기

이번 보궐선거가 주목받는 이유는 정 대표의 중간평가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친명(친 이재명)과 친청(친 정청래)의 주도권 싸움이 예상되는 만큼 누가 당선되는지에 따라 지도부 색채가 바뀌게 된다.

유동철·이건태·강득구 후보는 친명, 문정복·이성윤 후보는 친청으로 분류된다. 친명계로 분류된 인사들은 ‘당정대 원팀’을 내세우며 대통령실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친청계는 원팀을 강조하면서도,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를 띄우며 당원 주권 정당에 방점을 찍었다.

누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지에 따라 당의 주도권은 물론 방향성까지 좌우된다. 두 명의 친청계 후보가 모두 당선되고 1인1표제까지 관철될 경우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은 커진다. 정치인의 정치 생명을 좌우하는 공천권까지 쥔다면 견고한 친명 울타리를 허무는 등 계파 물갈이까지 일어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명청 갈등에 선을 그었지만 잡음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 출신의 한 관계자는 “통상 대통령들을 지켜봤을 때 그들은 후계자를 양성해 정치적 자산을 물려주기보다 믿을만한 사람을 찍은 뒤 몸집을 키울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혀주는 방식”이라며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시계는 잠시 멈췄을 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 지 오래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과연 누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명청 갈등을 프레임이라고 치부하는데 당원들이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을 것 같나. 임계점에 도달하면 개딸이든, 청래당이든 지지자들끼리 싸움이 날 것”이라며 8월 정 대표의 연임 여부를 주목했다.

1월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도 이뤄진다. 1월16일 ‘체포영장 집행 방해’ 사건과 더불어 내란 관련 혐의 종사자들에 대한 법정 판결 역시 머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 판결인 만큼 정치적 파장도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 보선에 지선까지
꼬리에 꼬리 무는 선거전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탄핵되기 전 대통령경호처를 동원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했다는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등)를 받고 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내란 우두머리 사건이 먼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재판부는 두 사건의 쟁점이 다르다며 예정대로 결심공판을 진행할 방침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은 1월 초 변론 종결을 목표로 심리가 이어지고 있다. 예정대로 결심 공판이 이뤄진다면 재판은 내년 2월에 선고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윤 전 대통령의 1심 판결이 나온 시점은 6·3 지방선거가 반년도 남지 않은 때다. 1심 선고 형량에 따라 민주당은 불법 비상계엄과 탄핵 추진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내란 프레임을 재점화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윤 전 대통령과 절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6월 지방선거 전후로 국민의힘이 또다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에 돌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 선고가 유력한 2월 전, 또는 지방선거를 치른 6월 이후가 최대 고비다.

국민의힘 비대위 전환설은 올해 말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외연 확장은커녕, 강경 우파 노선을 고집하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불만을 가진 국민의힘 중진들이 군불을 때기 시작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김문수 전 대선 후보의 ‘러브샷’ 사진이 공개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이 합리적 보수라는 가치를 내세워 보수-중도 결집을 유도했다고 해석했다. 장 대표가 중도 확장에 실패한 점을 파고들어 비대위 전환 시기를 앞당겼다는 것이다.

장 대표 체제에 힘을 싣는 강경 TK(대구·경북) 의원과 내란 프레임을 벗고 지방선거에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맞붙으면서 당이 둘로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다만 한차례 낙인이 찍힌 한 전 대표와 대선에서 패배한 김 전 후보 두 사람이 보수에 새바람을 일으킬지는 미지수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한동훈 전 대표가 돌아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준석 전 대표가 그랬듯 국민의힘에서는 한번 배신자로 찍히면 어떤 명분이 있어도 다시 당권을 쥐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당에서 축출됐을뿐더러 당내 세력도 마땅치 않다.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을 꾸리려면 당내 의원부터 포섭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동혁 책임론’ 쪼개질 위기의 국힘
7월 ‘충청-대전 통합설’ 가능할까?

지방선거는 2028년 총선이 치러지기 전 열리는 마지막 정치 이벤트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여야가 또다시 격돌하는 등 정치권의 시선은 다시 국회와 청와대로 쏠리게 된다. 이 기간에는 출범 1년을 넘긴 이재명정부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안건은 내년 7월 출범을 목표로 한 충청-대전 통합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8일 민주당 소속 대전·충남 지역 국회의원들을 대통령실로 초대해 오찬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간담회서 이 대통령은 대전·충남 지역 여당 의원에게 대전·충남 통합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추진해줄 것을 당부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방정부의 통합이 쉽지 않지만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견인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문제이자 수도권 과밀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통합을 고려해 봐야 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자치단체의 새로운 장을 뽑을 수 있게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행정 조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이 직접 통합론을 띄우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국민의 관심도도 단숨에 높아졌다. 행정안전부는 부처 산하에 대전·충남 행정통합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내년 7월1일 통합을 목표로 각종 절차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통일교 게이트를 덮으려는 이슈 전환용” “대통령의 선거 개입” 등 논평을 쏟아내며 일찌감치 제동을 걸었다. 내년 7월 통합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부터 국민의힘에서는 대통령 책임론을 띄우며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선택과 집중

지방선거를 마친 이후 정치권의 시선은 2028년에 치러질 제23대 총선으로 향한다. 한 번 더 배지를 달기 위해 의원들은 개헌, 연금개혁, 선거제도 등 단골 공약을 관례처럼 띄운다.

2026년 하반기에는 이슈 선점을 위한 여야 간의 입싸움이 불가피해 보인다. 제23대 총선은 정권교체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대규모 선거이자 이정부에 대한 민심 바로미터인 만큼 양측 모두 팽팽한 기싸움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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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