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쿠팡서 연예인까지⋯낙인과 비판의 경계

최근 쿠팡에서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플랫폼 기업의 책임과 정보보호 체계를 다시 점검하게 만든다. 사건의 규모와 파급력을 감안하면, 유출 원인과 사후 대응의 적절성을 엄정하게 따지는 일은 불가피하다.

다만 논의의 방향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정 사건에 대한 비판이 기업 전체와 최고경영자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흐름으로 확장될 때,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는 흐려질 수 있다. 쿠팡 사태는 정보 유출이라는 단일 사안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하나의 잘못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를 되묻게 한다.

사건 및 쟁점은 명확하다

쿠팡에서 약 3700여만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중대한 사안이다. 플랫폼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의 규모와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개인정보 보호 실패는 단순한 관리 소홀을 넘어 공공적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질문도 분명하다. 유출 경로는 무엇이었는지, 보안 체계는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피해자 보호와 사후 조치는 충분했는지다. 이는 기술과 제도, 그리고 기업의 책임을 중심으로 한 검증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 명확한 질문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논의는 곧바로 쿠팡이라는 기업 전체의 성격, 경영자의 도덕성, 플랫폼 기업의 존재 이유를 묻는 방향으로 바꼈다. 개별 사건의 책임을 따지던 문제 제기는 어느새 기업 정체성에 대한 총체적 심판으로 확장됐다. 이 지점에서 비판의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응 비판은 정당, 확장은 경계해야

정보 유출 이후 쿠팡의 대응 방식이 충분했는지는 분명히 따져야 한다. 설명은 명확했는지, 사과는 적절했는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은 구체적이었는지는 비판의 대상이다. 이는 기업 책임의 핵심 영역이다. 이 지점까지의 문제 제기는 사실과 절차, 그리고 책임의 범주 안에 머문다.

그러나 대응이 미흡했다고 해서 기업 전체의 존재 이유나 과거의 모든 판단까지 함께 부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때 비판은 사안 중심에서 존재 중심으로 이동한다. 문제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합리적 점검은 도덕적 단죄로 쉽게 변질된다.

쿠팡의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면, 그 대응만 지적하면 된다. 사과가 부족했다면 사과를 요구하고, 대책이 미흡했다면 대책을 보완하게 하면 된다. 잘못의 범위를 스스로 확장하는 순간, 비판은 교정이 아니라 응징이 된다.

연예인 논란서 반복되는 ‘확장된 낙인’

이 구조는 기업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연예계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배우 조진웅과 방송인 박나래를 둘러싼 최근 논란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각각의 사안은 성격도 다르고, 사실관계 역시 개별적으로 판단돼야 할 문제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특정 논란이 제기되는 순간, 문제의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 그 인물의 과거 발언과 이미지, 방송 태도, 캐릭터 전체가 다시 소환된다. 하나의 사건은 곧 그 사람의 ‘본질’을 증명하는 자료처럼 사용된다.


이때 사안은 사라지고, 인물만 남는다. 해명은 변명으로 해석되고, 침묵은 인정으로 간주된다. 결과적으로 논의는 사실 판단의 영역을 벗어나, 호감과 비호감의 총합으로 이동한다.

‘마녀사냥’ 아닌 낙인의 작동 방식

이 현상은 흔히 ‘마녀사냥’이라 불리지만, 사회학적으로는 ‘낙인 이론(Labeling Theory)’이 더 정확하다.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는 일탈이 행위 그 자체보다 사회의 반응에 의해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무엇이었는가보다 누가 어떻게 지목됐는지가 이후의 판단을 규정한다는 뜻이다.

조진웅·박나래 사례에서도 확인되듯, 한번 ‘문제적 인물’로 규정되면 이후의 모든 정보는 그 규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된다. 사과는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되고, 설명은 책임 회피로 읽힌다.

낙인 찍힌 이후에는 개선의 가능성 자체가 논의 대상에서 사라진다. 남는 것은 퇴출의 정당성뿐이다. 회복과 수정의 경로는 봉쇄되고, 사회는 책임을 묻는 대신 배제의 결론으로 성급히 이동한다. 그 결과 문제를 고칠 기회도 제도를 개선할 계기도 동시에 잃게 된다.

도덕적 공황과 미디어의 증폭 장치

여기에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이라는 요소가 더해진다. 스탠리 코헨이 말한 도덕적 공황은 특정 사건이 사회적 불안과 결합하며 과도하게 확대 재생산되는 현상이다. 이때 사실의 크기보다 감정의 속도가 여론을 앞서며 판단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연예인 논란은 이 구조가 가장 빠르게 작동하는 영역이다. 미디어 환경은 즉각적인 판단과 감정적 반응을 부추기고, 논란은 빠르게 ‘사회적 상징’으로 소비된다. 개인의 행위는 맥락을 잃은 채 집단적 분노를 투사하는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의 무게가 아니라, 반응의 속도다. 판단은 서둘러지고, 균형은 사라진다. 확인과 숙고의 시간은 생략된 채, 가장 빠른 분노와 가장 강한 언어가 여론을 주도한다. 그렇게 형성된 평가는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결론으로 굳어진다.

언론과 정부, 프레임의 공모 구조

언론은 사실을 전달하는 동시에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최근의 많은 보도는 사안의 정밀한 구분보다 ‘문제적 인물·기업’이라는 이야기를 강화하는 데 집중한다. 프레임이 먼저 설정되고, 사실은 그 틀에 맞춰 배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예인 논란이든 기업 이슈든, 프레임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원인 분석보다 이미지 평가가 앞서고, 설명보다 규정이 먼저 나온다. 사안은 복잡한 맥락을 잃은 채 선악 구도로 단순화되고, 그 틀 안에서 개인과 조직은 빠르게 재단된다. 한번 굳어진 평가는 추가 설명이나 반론이 개입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정부 역시 논란이 커질수록 강경한 태도를 통해 대중 정서와 보조를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정책과 제도 개선 논의는 뒤로 밀린다. 문제 해결보다 즉각적인 메시지 관리가 우선되는 순간이다.

전면 비판의 비용은 약한 곳으로

이 같은 전면 매도의 비용은 항상 가장 약한 고리로 전가된다. 기업에서는 노동자와 협력업체가, 연예계에서는 스태프와 제작진, 그리고 해당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는다. 비난의 화살은 위를 향하지만, 실제 충격은 아래로 떨어진다.

쿠팡 협력업체와 종사자들이 탄원서를 내는 이유도, 연예계 종사자들이 ‘논란 하나로 프로그램 전체가 사라진다’고 토로하는 이유도 같다. 사건의 책임과 무관한 이들이 가장 먼저 생계와 일터를 위협받기 때문이다. 논란의 파장은 개인이나 기업을 넘어, 그 주변의 조용한 다수에게까지 확산된다.

문제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는 비판의 방식이다. 우리는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점검과 파괴의 경계를 분명히 가르지 못한다. 비판이 교정과 개선을 향하지 못하고 배제와 응징으로 수렴될 때, 공동체의 회복력은 약화된다. 결국 남는 것은 잘잘못의 규명이 아니라,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 사회의 구조다.

하나의 잘못은 하나로만 다뤄져야


정보 유출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할 사안이다. 연예인의 논란 역시 사실관계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비판의 범위는 언제나 사안에 한정돼야 한다. 개별 사건의 책임을 넘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순간, 비판은 점검이 아니라 단죄로 변한다. 그 선을 지키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최소 조건이다.

쿠팡의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면, 그 대응만 지적하면 된다. 조진웅·박나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발언이나 행동이 있다면 그 지점만 따지면 된다. 과거와 인생 전체를 재판대에 올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비판의 정밀함이 사라지는 순간, 사회는 정의를 잃는다. 무차별적 분노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방향을 흐리고, 책임의 기준을 무너뜨린다. 정의는 큰 소리에서 나오지 않으며, 정확한 구분과 절제된 판단 위에서만 유지된다.

비판은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정보 유출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공인의 논란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원인은 규명돼야 하고,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사회가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기준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명확해야 하고, 비판은 잘못한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 책임을 묻는 일은 사실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해야지, 분노가 대상 전체를 삼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정확한 지점을 짚지 못한 비난은 정의를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판단의 기준을 흐리게 만든다.

사회는 분노로 유지되지 않는다. 정의는 전면 부정이 아니라, 정확한 기준 위에서 작동한다. 오늘은 쿠팡이고, 내일은 조진웅과 박나래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이 굳어지면 내일은 또 다른 기업과 개인이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

하나의 잘못은 하나의 잘못으로만 다뤄져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되찾아야 할 최소한의 규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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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