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쿠팡서 연예인까지⋯낙인과 비판의 경계

최근 쿠팡에서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플랫폼 기업의 책임과 정보보호 체계를 다시 점검하게 만든다. 사건의 규모와 파급력을 감안하면, 유출 원인과 사후 대응의 적절성을 엄정하게 따지는 일은 불가피하다.

다만 논의의 방향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정 사건에 대한 비판이 기업 전체와 최고경영자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흐름으로 확장될 때,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는 흐려질 수 있다. 쿠팡 사태는 정보 유출이라는 단일 사안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하나의 잘못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를 되묻게 한다.

사건 및 쟁점은 명확하다

쿠팡에서 약 3700여만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중대한 사안이다. 플랫폼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의 규모와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개인정보 보호 실패는 단순한 관리 소홀을 넘어 공공적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질문도 분명하다. 유출 경로는 무엇이었는지, 보안 체계는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피해자 보호와 사후 조치는 충분했는지다. 이는 기술과 제도, 그리고 기업의 책임을 중심으로 한 검증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 명확한 질문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논의는 곧바로 쿠팡이라는 기업 전체의 성격, 경영자의 도덕성, 플랫폼 기업의 존재 이유를 묻는 방향으로 바꼈다. 개별 사건의 책임을 따지던 문제 제기는 어느새 기업 정체성에 대한 총체적 심판으로 확장됐다. 이 지점에서 비판의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응 비판은 정당, 확장은 경계해야

정보 유출 이후 쿠팡의 대응 방식이 충분했는지는 분명히 따져야 한다. 설명은 명확했는지, 사과는 적절했는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은 구체적이었는지는 비판의 대상이다. 이는 기업 책임의 핵심 영역이다. 이 지점까지의 문제 제기는 사실과 절차, 그리고 책임의 범주 안에 머문다.

그러나 대응이 미흡했다고 해서 기업 전체의 존재 이유나 과거의 모든 판단까지 함께 부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때 비판은 사안 중심에서 존재 중심으로 이동한다. 문제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합리적 점검은 도덕적 단죄로 쉽게 변질된다.

쿠팡의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면, 그 대응만 지적하면 된다. 사과가 부족했다면 사과를 요구하고, 대책이 미흡했다면 대책을 보완하게 하면 된다. 잘못의 범위를 스스로 확장하는 순간, 비판은 교정이 아니라 응징이 된다.

연예인 논란서 반복되는 ‘확장된 낙인’

이 구조는 기업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연예계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배우 조진웅과 방송인 박나래를 둘러싼 최근 논란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각각의 사안은 성격도 다르고, 사실관계 역시 개별적으로 판단돼야 할 문제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특정 논란이 제기되는 순간, 문제의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 그 인물의 과거 발언과 이미지, 방송 태도, 캐릭터 전체가 다시 소환된다. 하나의 사건은 곧 그 사람의 ‘본질’을 증명하는 자료처럼 사용된다.


이때 사안은 사라지고, 인물만 남는다. 해명은 변명으로 해석되고, 침묵은 인정으로 간주된다. 결과적으로 논의는 사실 판단의 영역을 벗어나, 호감과 비호감의 총합으로 이동한다.

‘마녀사냥’ 아닌 낙인의 작동 방식

이 현상은 흔히 ‘마녀사냥’이라 불리지만, 사회학적으로는 ‘낙인 이론(Labeling Theory)’이 더 정확하다.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는 일탈이 행위 그 자체보다 사회의 반응에 의해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무엇이었는가보다 누가 어떻게 지목됐는지가 이후의 판단을 규정한다는 뜻이다.

조진웅·박나래 사례에서도 확인되듯, 한번 ‘문제적 인물’로 규정되면 이후의 모든 정보는 그 규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된다. 사과는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되고, 설명은 책임 회피로 읽힌다.

낙인 찍힌 이후에는 개선의 가능성 자체가 논의 대상에서 사라진다. 남는 것은 퇴출의 정당성뿐이다. 회복과 수정의 경로는 봉쇄되고, 사회는 책임을 묻는 대신 배제의 결론으로 성급히 이동한다. 그 결과 문제를 고칠 기회도 제도를 개선할 계기도 동시에 잃게 된다.

도덕적 공황과 미디어의 증폭 장치

여기에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이라는 요소가 더해진다. 스탠리 코헨이 말한 도덕적 공황은 특정 사건이 사회적 불안과 결합하며 과도하게 확대 재생산되는 현상이다. 이때 사실의 크기보다 감정의 속도가 여론을 앞서며 판단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연예인 논란은 이 구조가 가장 빠르게 작동하는 영역이다. 미디어 환경은 즉각적인 판단과 감정적 반응을 부추기고, 논란은 빠르게 ‘사회적 상징’으로 소비된다. 개인의 행위는 맥락을 잃은 채 집단적 분노를 투사하는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의 무게가 아니라, 반응의 속도다. 판단은 서둘러지고, 균형은 사라진다. 확인과 숙고의 시간은 생략된 채, 가장 빠른 분노와 가장 강한 언어가 여론을 주도한다. 그렇게 형성된 평가는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결론으로 굳어진다.

언론과 정부, 프레임의 공모 구조

언론은 사실을 전달하는 동시에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최근의 많은 보도는 사안의 정밀한 구분보다 ‘문제적 인물·기업’이라는 이야기를 강화하는 데 집중한다. 프레임이 먼저 설정되고, 사실은 그 틀에 맞춰 배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예인 논란이든 기업 이슈든, 프레임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원인 분석보다 이미지 평가가 앞서고, 설명보다 규정이 먼저 나온다. 사안은 복잡한 맥락을 잃은 채 선악 구도로 단순화되고, 그 틀 안에서 개인과 조직은 빠르게 재단된다. 한번 굳어진 평가는 추가 설명이나 반론이 개입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정부 역시 논란이 커질수록 강경한 태도를 통해 대중 정서와 보조를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정책과 제도 개선 논의는 뒤로 밀린다. 문제 해결보다 즉각적인 메시지 관리가 우선되는 순간이다.

전면 비판의 비용은 약한 곳으로

이 같은 전면 매도의 비용은 항상 가장 약한 고리로 전가된다. 기업에서는 노동자와 협력업체가, 연예계에서는 스태프와 제작진, 그리고 해당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는다. 비난의 화살은 위를 향하지만, 실제 충격은 아래로 떨어진다.

쿠팡 협력업체와 종사자들이 탄원서를 내는 이유도, 연예계 종사자들이 ‘논란 하나로 프로그램 전체가 사라진다’고 토로하는 이유도 같다. 사건의 책임과 무관한 이들이 가장 먼저 생계와 일터를 위협받기 때문이다. 논란의 파장은 개인이나 기업을 넘어, 그 주변의 조용한 다수에게까지 확산된다.

문제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는 비판의 방식이다. 우리는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점검과 파괴의 경계를 분명히 가르지 못한다. 비판이 교정과 개선을 향하지 못하고 배제와 응징으로 수렴될 때, 공동체의 회복력은 약화된다. 결국 남는 것은 잘잘못의 규명이 아니라,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 사회의 구조다.

하나의 잘못은 하나로만 다뤄져야


정보 유출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할 사안이다. 연예인의 논란 역시 사실관계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비판의 범위는 언제나 사안에 한정돼야 한다. 개별 사건의 책임을 넘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순간, 비판은 점검이 아니라 단죄로 변한다. 그 선을 지키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최소 조건이다.

쿠팡의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면, 그 대응만 지적하면 된다. 조진웅·박나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발언이나 행동이 있다면 그 지점만 따지면 된다. 과거와 인생 전체를 재판대에 올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비판의 정밀함이 사라지는 순간, 사회는 정의를 잃는다. 무차별적 분노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방향을 흐리고, 책임의 기준을 무너뜨린다. 정의는 큰 소리에서 나오지 않으며, 정확한 구분과 절제된 판단 위에서만 유지된다.

비판은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정보 유출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공인의 논란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원인은 규명돼야 하고,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사회가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기준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명확해야 하고, 비판은 잘못한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 책임을 묻는 일은 사실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해야지, 분노가 대상 전체를 삼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정확한 지점을 짚지 못한 비난은 정의를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판단의 기준을 흐리게 만든다.

사회는 분노로 유지되지 않는다. 정의는 전면 부정이 아니라, 정확한 기준 위에서 작동한다. 오늘은 쿠팡이고, 내일은 조진웅과 박나래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이 굳어지면 내일은 또 다른 기업과 개인이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

하나의 잘못은 하나의 잘못으로만 다뤄져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되찾아야 할 최소한의 규범이다. 

<skkim5961@naver.com>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