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노소영 이혼 뒤집힌 판결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10.23 11:15:27
  • 호수 1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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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에 딱 걸린 ‘노태우 비자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이 1조3800억원 규모 재산분할을 결정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 2심 판결을 다시 심리하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법리를 오해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하면서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지난 16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단의 쟁점은 최 회장의 SK 보유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할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에 유입됐는지 등 여부였다. 논란이 됐던 2심 주식가액 계산이 오류라는 판단을 대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받은 돈?
줬던 돈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 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1조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대법원은 “재산분할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에 환송한다”며 “나머지 상고는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다시 2심 재판을 받게 됐다.

이번 판결은 국내 이혼소송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돼왔다. 2심에서는 재산의 범위와 기여도 등을 다시 판단하게 된다. 2017년 7월 본격적인 법적 절차가 시작된 지 8년3개월 만이다. 지난해 5월 항소심 선고 이후로는 약 1년5개월 만이다.


이번 판결로 1조3808억원으로 확정됐던 재산분할액이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항소심이 대한텔레콤 주식 기초가를 100원에서 1000원으로 뒤늦게 수정한 점이 ‘단순 오기 정정’인지 ‘핵심 평가 오류’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남게 됐다.

‘세기의 이혼소송’으로 불릴 만큼 여론의 관심이 높아 대법관 전원이 판단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나 대법원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선고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 보고 사건’으로 지정해 대법관 전원이 주요 쟁점을 함께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마지막까지 주요 쟁점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며 천문학적인 재산분할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을 이어왔다. 법조계에선 하급심과 달리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고 법리적 쟁점에 관해 판단하는 법률심인 상고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1조3800억원 판결’ 2심 계산 오류 판단
“재산분할 기여로 볼 수 없어” 파기 환송

재판에서 거론된 특유재산·6공 특혜·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등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남아 있어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는 예측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이후 최 회장이 2015년 12월 언론에 혼외자의 존재를 알리면서 이혼 의사를 밝혔다. 두 사람은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하면서 본격적인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조정이 결렬되면서 이듬해 2월 정식 소송에 돌입했다.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도 2019년 12월 입장을 바꿔 반소(맞소송)를 제기하며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가진 SK 주식 1297만5472주의 절반 수준인 648만7736주의 분할을 청구했다. 1심은 2022년 12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 665억원과 함께 위자료 명목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며, 사실상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 지난해 5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위자료 명목으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두 사람의 순 자산 합계를 약 4조원으로 산정하고 재산분할 규모를 최 회장 65%·노 관장 35%로 정했다.
이에 최 회장 측이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노 관장 측은 상고하지 않았다.

이혼소송의 최대 쟁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이 특유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특유재산은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가리킨다. 민법에선 특유재산은 이혼해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정한다.

1심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지분이 최종현 SK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유재산이라고 판단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2심은 부부 공동재산이라고 판단해 1심 대비 20배 많은 재산분할 판단을 내렸다.

6공 검은돈
“환수해야”

2심 판단에 근거가 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도 쟁점이다. 2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모친 김옥숙 여사가 20년 전 남긴 ‘선경 300억’이 적힌 메모와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 약속어음(50억원짜리 6장)을 증거로 인정하고 SK가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을 받아 성장했다고 판단했다.

또 최 선대회장이 노 전 대통령과의 사돈 관계를 ‘보호막’으로 인식하며 경영활동을 했다고 봤다.

SK그룹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성장했고,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에 노 관장의 가사 노동이 기여했다는 점을 들어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인정했다. 최 회장 측은 SK 주식이 1994년 부친에게서 증여받은 2억8000만원으로 취득한 특유재산이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실체가 없으며, 6공 특혜 논란에 대해 오히려 ‘사돈 기업’으로 분류돼 불이익을 봤다고 주장했다.

다만, 2심 재판부의 ‘계산 실수’가 파기환송의 이유다. 2심 재판부는 당초 최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대한텔레콤(SK의 모태) 주식가치를 주당 100원으로 산정했다가 1000원으로 판결문을 바로 잡는 경정(更正) 결정을 했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에게 각각 65 대 35로 산정했던 재산분할 비율은 고치지 않았는데, 최 회장 측은 경정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대법원에 제기한 바 있다.

최 회장 측은 판결문 경정 자체가 단순한 오기나 계산 착오 정정이 아닌 판결의 실질적인 내용을 바꿀 수도 있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2심 판결을 확정하면 최 회장은 SK 주식을 노 관장과 나눠야 한다. 재계에선 자칫 SK그룹 지배구조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되면 이를 노 관장이 사실상 상속받는 모양새가 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편법 상속·증여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이 비자금이 수사·환수 대상이라는 고발장도 수사기관에 접수됐다.

다들
아니라는데···

이번 이혼소송의 핵심 쟁점인 ‘노태우 비자금’ 문제도 파기환송심에 다시 소환될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맞는지, 그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전혀 파악되지 않은 점과 비자금이 실재한다면, 범죄 수익을 몰수하지 않고 가족에게 귀속시켜 이혼 재산분할금에 포함시킨 판단이 과연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SK그룹의 6공 특혜 부분에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SK그룹은 1992년 8월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 경쟁에서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정치권에서 특혜 논란이 제기되자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특혜는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가 있었다”는 게 SK그룹 측 주장이다.

또 노 전 대통령 시절 경제수석 등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SK(당시 선경)에서 노태우 측에 통치 자금을 줬다’는 취지의 전언이 나오면서 SK 측 주장에 힘이 실렸다. 이 밖에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손길승 SK 명예회장의 증언 등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정부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 경제수석,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고, 현재도 재단법인 ‘보통사람의시대 노태우센터’의 고문을 맡고 있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과 정혁진 변호사는 지난해 8월 방송된 유튜브 채널 ‘어벤저스 전략회의’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 명의의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의 노후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방송에 따르면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태우 자금 문제를 관리하는 이원조씨가 있는데 사돈 기업에 통치 자금 이야기를 해 (선경에서 노태우 측에) 꾸준히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에도 이게 과연 제대로 줄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확약하는 증표로서 일단 뭘 좀 주라고 해서 어음 자체를 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씨는 5·6공 시절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다.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모아 전달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 어음 발행일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인 1992년 12월로 알려졌다. 선경건설이 당시 발행한 50억원짜리 약속어음 실물 4장은 1995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와 재판에선 드러나지 않았다가 이번 이혼소송 과정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SK가 받았다고? 뜯긴 돈”
“300억은 불법 자금” 결정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은 즉각 반박했다. 그는 진술서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선경건설의 약속어음은 태평양증권 인수와는 무관하고, ‘받았다’는 의미인 차용증은 ‘주겠다’는 의미의 약속어음이라며 노 관장 측 주장에 반박했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의 전언과도 일치된다.

손 명예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해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전달했다”며 “정권 말이 되니 퇴임 후에도 지속 제공하겠다는 증표를 달라고 요구해 어음으로 준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어음 발행일은 지난 1992년 12월,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이다. 노 관장 측의 “300억원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 등으로 쓰여 SK 성장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전면 반박한 것이다.

SK 측은 재판 과정에서 300억원을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받은 적이 없고, 퇴임 후 그에 상당하는 돈을 주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SK가 국내 최초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에 노 전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도 모호해졌다.

앞서 노 관장 측은 SK가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을 이용해 경쟁력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최태원 회장의 무선통신 청와대 시연으로 이동통신사업 논의가 촉발됐고, 이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4대 그룹의 통신사업 수허가권을 제한한 결과 SK그룹이 이동통신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나와 선경(SK)의 관계 때문에 정치 문제로 비화해 결국 선경이 사업권을 반납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다음 정권에 가서 결국 선경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옥중에서 육필로 작성했던 대학 노트 30여권의 메모를 바탕으로 지난 2011년 1112쪽에 이르는 회고록을 출간한 바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뿐만 아니라, 노 관장의 남동생 노재헌 변호사 등 가족들도 출간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 쓰다
발목 잡혔다

최 회장도 대법원 상고 이유로 “‘6공의 후광’ 등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SK 명예가 실추됐다”며 “대법원에서 바로잡아줬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비자금 부분도 결국 이번 파기환송으로 재차 고등법원에서 논의되고 판결 내용이 뒤바뀔 전망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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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