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강릉시가 평창 도암댐 물을 한시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강릉시는 지난 10일, 도암댐에서 강릉 남대천 방류구까지 이어진 15.6㎞의 도수관로 안에 있는 물 15만t을 하루 1만t씩 방류하겠다고 밝혔다.
강릉시 황남규 환경과장은 “도수관로 내의 물을 1만t 방류하면 1만t의 물이 도수관로에 채워지는 방식이기 때문에 15만t에 한정된 게 아니다”며 “수질검사에서 문제가 없으면 가뭄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차, 헬기, 해군 함정까지 동원되면서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물 공수 작전을 펼쳤지만, 강릉시는 유일한 식수원인 오봉저수지가 고갈 위기에 처하자, 인근 지역 주민까지 동의를 얻어 도암댐 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하루 1만t은 강릉시 21만명의 하루 평균 사용량 8만t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강릉시는 학계, 시민단체와 함께 수질검증위원회를 구성해 방류수의 수질을 관리하되, 수질검사에서 부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비상 방류를 중단하겠다고 시민들과 약속했다.
도암댐은 평창 대관령 일대의 물을 가둔 뒤 15.6㎞ 관로를 통해 강릉 남대천으로 방류해 강릉수력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발전용 댐으로 1991년 완공됐다. 현재 저수량은 약 3000만t이다.
그러나 댐 상류에서 유입된 가축 분뇨와 농약 등으로 수질오염 논란이 불거지면서 강릉·영월·정선 주민들이 반대하자, 2001년 가동이 중단된 채 지금까지 24년 동안 방치돼왔다.
강릉에서 불과 20㎞ 떨어진 도암댐에 3000만t이라는 엄청난 물이 저장돼있는 데도 왜 강릉시는 이제야 도양댐 물을 사용하겠다고 결정했을까? 지난달 28일부터 실시한 환경부 정밀 검사에서 대부분 항목이 1급수 판정을 받았는데도 왜 그랬을까?
필자가 시 관계자와 통화해보니 ”구조적 한계와 지역 간 이해관계로 인해 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도암댐이 위치한 평창군과 직접 수계가 맞닿아 있는 하류 정선 주민의 ‘수질 불신’에 대한 여론 설득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특히 강릉이 극심한 가뭄으로 위급한 상황이어서 도암댐 도수관 안에 있는 물 15만t을 사용하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만약 발전할 경우 강릉으로 물이 방류돼 송천 수계가 막히게 되고, 그럴 경우 정선과 영월도 물 부족 지역이 될 수 있다는 이유도 결정이 늦어지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강릉의 4만5000세대가 단수 피해가 속출하고 시민의 생존이 위협받자 강릉·영월·정선 주민들도 정부와 지자체가 결정한 도암댐 방류안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강릉은 평년에 연 강수량 1440㎜로 7월~8월에 전체 46% 정도를 기록하는 곳이라 8~9월에 물이 부족한 지역은 아니다. 그리고 이전까진 강릉에 물을 공급하던 오봉저수지가 강릉의 생활 및 공업용수의 86.6%를 공급하는 주요 수자원 공급처였다.
그러나 최근 강릉의 관광산업이 빠르게 발달함에 따라 주민등록인구가 감소함에도 여름철 중심으로 수돗물 사용량이 크게 늘어나 물 사용량을 물 저장 속도가 따라가지 못했다.
또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철 티베트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강릉의 여름 강수량이 줄고 열돔이 걷히는 9월쯤에야 비가 오게 되면서 여름철 오봉저수지의 원수 확보가 갈수록 늦어지는 추세로 강릉의 물 부족을 더욱 심화시켰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북태평양 기단의 이른 확장으로 제주도는 6월 하순에, 남부지방도 7월1일에 장마가 끝나면서 전국적인 가뭄이 올 것으로 예상됐었다. 강릉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강릉시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이번 가뭄은 강릉만이 아니고, 영동지방 전역에 걸쳐 나타났다. 삼척의 경우 초당저수지 외 3개 저수지 저수율이 2~30%대로 내려가 비상급수를 하고 있고, 태백과 정선도 댐 저수율이 40%대로 내려가 비상급수에 들어갔다.
그러나 속초는 가뭄 및 외지인 방문 증가로 물 부족 문제를 심하게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자체장이 물 부족 문제 해결을 1호 공약으로 내세우며 지하댐 건설, 노후 상수도 교체, 암반 개발사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물 부족 사태를 대비할 수 있었고, 이번 가뭄에도 버틸 수 있었다.
동해도 강수량 편차만 따지면 강릉보다 동해가 더 심한데, 달방댐의 저수량을 충분히 확보해 아직까지 이번 가뭄을 잘 극복하고 있다.
이번 가뭄 사태를 보면서 필자는 정부가 우리나라 수자원 관리 체계를 재점검하고 필요한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가뭄 사태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해결하고, 개발 이익에만 눈이 멀어 국민의 물권 보장을 등한시 하면 안 된다.
물은 생존권이자 공공재다. 정부는 물을 ‘개발이익의 도구’가 아닌 ‘국민의 권리’ 차원으로 접근해 새로운 수자원 정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AI 기반의 정밀한 물 수요 예측과 공급 조정 시스템을 도입해, 물 낭비를 줄이고 효율적인 자원 관리를 통해 가뭄 피해를 막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강릉 가뭄은 단순한 날씨 문제로 볼 수 없다. 기후변화, 수자원 관리 한계, 정책 미비, 수요 증가가 겹친 복합적 위기다. 앞으로 지역의 물 관리 체계를 혁신하고, AI 기반 예측과 스마트 관수 시스템 등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반복되는 가뭄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극한의 날씨 탓에 농작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물가가 치솟는 기후인플레이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번 ‘강릉 가뭄 청구서’가 당장 우리 밥상과 과일 바구니를 덮칠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