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400m 금빛 레이스 서민준·조엘진·이재성·김정윤

한국 계주 영광의 첫 골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국 육상이 세계 종합대회 남자 400m 계주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금빛 질주는 0.3초의 극적인 차이로 이뤄졌고, 한국 육상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달 27일 독일 보훔에서 열린 ‘2025 라인-루르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 남자400m 계주 결승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38초50이라는 기록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38초80)을 제치고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대표팀은 서민준(서천군청), 나마디 조엘진(예천군청), 이재성(광주광역시청), 김정윤(한국체대)으로 구성됐다.

스타터
서민준

이번 경기는 시작 전부터 유리한 싸움은 아니었다. 대표팀은 예선에서 39초14로 전체 7위를 기록하며 결선 막차를 탔다. 하지만 결승전에서의 경기력은 완전히 달랐다. 첫 주자인 서민준 선수가 안정적인 출발을 끊었고, 이어 나마디 조엘진 선수가 예선보다 한층 공격적인 질주로 흐름을 바꿨다.

세 번째 주자 이재성 선수는 격차를 줄였고, 마지막 주자 김정윤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며 극적인 역전승을 완성했다.

0.3초의 차이는 숫자로는 미미해 보이지만, 기적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한국이 국제 종합대회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2019년 나폴리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래, 약 6년 만에 이룬 최고 성적이자, 한국 육상이 단거리 릴레이에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결과였다.


현지 중계진은 경기 직후 “한국이 놀라운 배턴 워크로 전력을 다했다”며 “매 구간마다 균형 잡힌 스피드가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국내외 육상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사상 처음 세계 종합대회에서 계주 정상에 오른 것은 한국 육상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선수들이 입국했던 지난 2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는 많은 취재진이 몰려 이들의 귀환을 환영했다. 현장에서 나마디 조엘진 선수는 “우리가 1위를 차지했을 때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며 “2번 주자는 내 강점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김정윤 선수는 “예선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분석하고 팀 전체가 전술을 다시 맞췄다”며 “결승은 그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경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오후, 자신의 SNS를 통해 대표팀의 우승을 언급하며 “끈끈한 팀워크가 만든 감동의 드라마”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육상이 유니버시아드 등 세계 종합대회 릴레이 종목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으로, 더욱 뜻깊은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없이 흘린 땀과 오랜 인내의 시간이 마침내 빛나는 결실로 이어졌다”며 “9월 도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당당히 도전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 육상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번 400m 계주의 첫 주자는 서민준 선수였다. 서천군청 소속인 그는 계주의 출발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 안정적이면서도 힘 있는 출발로 팀의 흐름을 주도했다. 단 한 순간의 실수가 전체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릴레이 경기 특성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지만, 0.3초 차 승부였던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발판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민준 선수는 실전에서 차분히 제 몫을 해내는 유형의 선수로, 전국 단위 대회에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으며 성장해 왔다. 경기력의 기복이 적고 꾸준히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 온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거리 계주 종목에서 안정적인 주자로 주목 받아왔으며, 성인 무대에서도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는 육상에 대해 “나는 재능형보다는 노력형”이라고 말하곤 했다. 서민준 선수의 성장에는 많은 훈련과 반복, 그리고 경기 경험이 밑바탕으로 깔려 있다. 학교 운동부 시절부터 기본기 훈련에 충실했고, 대학 무대와 실업 무대를 병행하며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성장을 이어왔다.

‘0.3초’ 차이로 역전승
남아공 제치고 결승 통과

특히 주종목인 100m와 200m 개인 종목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팀워크가 중요한 계주에서의 역량이 돋보이면서 대표팀 내 핵심 멤버로 발탁됐다. 결승전 1번 주자로 나선 서민준 선수는 순간 반응 속도에서 밀리지 않고 곧바로 두 번째 주자 조엘진 선수에게 원활한 배턴 패스를 성공시켰다.

경기 직후 서민준 선수는 “우리 팀의 호흡이 이뤄낸 결과”라며 “1번 주자로 부담은 컸지만 나를 믿고 있는 팀원들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고 뛸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향후 목표에 대해 그는 “기록보다 중요한 건 팀의 완성도”라며 “국제대회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팀의 일원으로 뛰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2번 주자로 나선 조엘진 선수의 활약도 눈길을 끌었다. 빠른 속도와 강한 추진력으로 계주의 중심 구간을 맡아 상대를 압박했고, 특히 서민준 선수와의 배턴 패스, 이어 이재성 선수에게 연결되는 흐름 모두 안정적이었다.

조엘진 선수는 한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그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일과 함께 취미생활을 하며 이를 극복했다. 특히 조엘진 선수는 그림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조엘진 선수가 대중에게 처음 얼굴을 알린 건 트랙 위에서가 아니었다. 그는 지난 2016년 KBS2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출연한 아역 배우 출신이다. 극 중 우르크 지역의 한 소년으로 등장해, 의료 봉사 중이던 온유(치훈 역)에게 “이거 말고 염소 사줘, 염소 키우고 싶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당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분쟁과 가난 속에서도 생존을 갈망하던 소년의 대사는 극의 감정을 이끄는 장면 중 하나로 회자됐다. 드라마 출연 당시 그는 짧은 머리에 귀여운 이목구비로 등장했다. 촬영장에서 송혜교와 온유 등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며 잠시나마 연기자로서 활동했다. 그러나 연기를 이어가지 않고, 육상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염소 소년
조엘진

조엘진 선수가 육상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육상 멀리뛰기 선수 출신의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운동 감각과 신체조건이 어릴 때부터 뛰어났고, 특히 하체 근력이 두드러졌다. 어릴 적부터 “체격이 좋아 뭐든 잘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실제로도 빠른 스피드와 좋은 신체조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육상에 뛰어든 이후, 그는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전국체육대회, 전국육상경기대회 등에서 100m, 200m, 400m를 가리지 않고 금메달을 휩쓸었다. 2024년에는 최고 수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홍콩에서 열린 인터시티육상선수권대회 20세 미만 남자 100m 부문에서 10초35를 기록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전국 단위 대회인 제104회 전국체육대회 남자고등부 100m와 2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며 실력을 입증했고, 제105회 대회에서는 18세 이하부 400m 금메달까지 추가해 전 종목 석권을 이뤘다. 전국종별육상경기대회에서도 100m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실상 단거리를 휩쓸었다.


실업팀 예천군청에 입단한 이후에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줬다. 2024년에는 성인 무대 데뷔전인 아시아육상선수권 대표 선발전 남자 1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구미에서 열린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400m 계주 결선에서도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해 38초49의 역대급 기록을 올리며 대회 최초 금메달을 가져왔다.

특히 그는 2025년 중국 광저우 세계릴레이선수권대회에서도 연일 기록을 경신했다. 예선에서 38초56, 패자부활전에서 38초51을 기록하며 계주팀의 상승세를 이끌었고, 이는 대표팀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예천군청 소속 실업팀에서 훈련을 이어가면서 국가대표 단거리 계주 주자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업계에서는 조엘진 선수에 대해 “신체조건과 기술적 균형이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한다. 특히 단거리에서 드물게 100m, 200m, 400m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탄력성과 지구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도 높은 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중심축
이재성

훈련 태도 역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는 공식 인터뷰에서 “기술보다 멘털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감독님과 함께 훈련하며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밝혔다. 후배들과의 훈련에서도 집중력을 놓치지 않으며,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데 철저한 선수로 알려졌다.

3번 주자는 바통을 이어받은 뒤 코너를 돌아 마지막 주자에게 연결하는 핵심 구간을 책임진다. 속도와 기술, 체력의 균형이 필요한 자리다. 이재성 선수는 이 구간을 안정적으로 책임졌다.


팀의 맏형이자 주장인 광주광역시청 소속 이재성 선수는 오랜 기간 국내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해 온 선수다. 고교 시절부터 전국체전과 전국육상경기대회 등에서 꾸준한 성적을 올렸으며, 성인 무대에서도 100m와 200m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스프린터로 평가받아왔다.

2025 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도 이재성 선수는 400m 계주 멤버로 출전해 한국 신기록 수립에 기여했다. 당시에는 ‘고승환-서민준-조엘진-이재성’으로 구성된 팀이 38초49의 기록으로 아시아선수권 첫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계주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U대회에서는 고승환 대신 김정윤이 마지막 주자로 배치됐고, 이재성은 다시 3번 주자로 팀의 중심축 역할을 해냈다.

한국체육대학교 소속인 김정윤 선수는 대표팀의 막내 주자이자 마지막 주자인 앵커 역할을 맡았다. 가장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승부를 결정짓는 자리다. 그는 이번 결승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지막 주자와 접전을 펼친 끝에 0.3초 차로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김정윤 선수는 대표팀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선수 중 하나다. 대학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이어온 그는 단거리 전 종목에서 고른 기량을 보이며 계주 멤버로 낙점됐다. 앞선 세계육상릴레이선수권에서도 대표팀으로 출전해, 연달아 한국 기록을 경신한 경력도 있다.

세계 대회 뜻깊은 성과
금메달 들고 금의환향

특히 그는 올해 들어 체중과 근육량을 조절하며 후반 스퍼트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대회에서 안정적인 마지막 주자로 활약하며 금메달 획득의 마침표를 찍었다. 김정윤 선수는 인터뷰에서 “결승선 직전까지 승부가 확실치 않았지만, 평소보다 더 집중하며 마지막 힘을 짜냈다”며 “대표팀에서 경쟁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앞으로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경기 종료 직후, 금빛 질주를 마친 선수들의 얼굴에는 땀과 함께 복합적인 감정이 엿보였다. 믿기지 않는 결과 앞에서 벅찬 환희를 느끼는 모습이었다.

2번 주자로 뛰었던 조엘진 선수는 “처음에는 우리가 1위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며 “2번 주자는 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고,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가슴이 벅차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예천군청 소속 선수로서,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번 주자로 안정적인 출발을 이끈 서민준 선수는 “계주는 혼자 뀌는게 아닌 팀 경기다. 흐름을 잘 이어주는 데 집중했다”며 “모두가 자기 역할을 잘해줬고, 앞으로도 국제대회에서 이 팀으로 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3번 주자 주장 이재성 선수는 “예선에서 기록이 좋지 않아 고민이 많았지만, 결승에서는 모두가 하나 되어 뛰자는 생각만으로 임했다”며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따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그걸 해냈다는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다”고 말했다.

피니시를 책임진 마지막 주자 김정윤은 “배턴을 받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절대 뺏기지 말자,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뿐이었다”며 “이렇게 큰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계주팀은 내년 2026 아이·나고야아시안게임, 2027년 세계선수권, 그리고 2028년 LA올림픽까지, 향후 3년간 굵직한 국제 무대를 앞두고 있다. 선수 개인의 기량 향상뿐 아니라, 현재의 팀워크를 유지하며 국제 경쟁력을 갖춘 대표팀을 꾸려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피니셔
김정윤

육상계는 이번 결과를 계기로 “드디어 한국도 계주에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저력을 갖췄다”고 평가하면서도, “지속적인 관리와 장기적 지원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을 아끼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선수 개인의 체력 관리, 부상 방지, 심리적 컨디션 유지 등이 향후 대회를 앞두고 핵심 과제로 꼽힌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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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