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령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보뿐만 아니라 헌법, 안보, 외교, 경제에 씻을 수 없는 손해를 입혀 왔다. 이미 계엄령의 여파는 국내 정치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를 지탱하던 모든 기둥에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그렇듯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비극이었다. 역사는 숭고하다. 그렇다. 역사가 숭고한 이유는 ‘비극’ 때문이다. 비극은 정의를 이루르냐다. 발생한 슬픔이 역사에 박힌 상흔이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일제강점기의 저항, 독재에 대한 저항, 민주화 운동 등 새 시대를 열어가려는 정의의 행진 안에서 유난히 슬픈 일이 많이 발생했다.
그 슬픔이 한국 근대사를 비극으로 물들였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숭고하다. 숭고함은 비극의 아름다움이다. 그 숭고함 때문에 우리는 비극을 진리로 받아들이며, 기억하고, 그 길을 따라가려고 발걸음을 뗀다.
윤 대통령이 행한 비상계엄 사태는 바로 이 같은 역사의 숭고함에 중대한 흠집을 낸 것이다. 비극적인 숭고한 역사를 희극적인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다. 역사의 선배들이 쌓아놓은 숭고함을 무너뜨리고, 역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국민이 모아준 권력을 사사롭게 씀으로 인해 정의를 무너뜨렸다. 이것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될 죄악이다.
윤 대통령을 반드시 탄핵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만약 이번에 탄핵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아주 나쁜 최악의 선례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말년에 행한 아들 헌터 바이든을 사면한 일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당에서도 말하는 비판의 목소리는 이것이 ‘나쁜 선례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가진 사면권을 통해 자기의 측근을 사면하고 대통령 자리서 퇴임하는 것은 후임 대통령들에게 아주 나쁜 선례로 남기 마련이다.
육아할 때 부모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일도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부모는 반드시 훈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자기가 방금 행한 일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아이는 ‘이렇게 해도 되는 구나’ 하면서 또다시 그 나쁜 일을 반복하게 된다.
좋게 넘어가는 건 능사가 아니다. 나쁜 선례를 만드는 일은 나중에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지금 국민의힘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고, 기껏해야 임기를 단축하는 헌법 개정을 통해 그의 조기 퇴진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는 듯하다. 그렇게 되면, 윤 대통령은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범죄를 국가와 국민 앞에서 저질러 놓고, 퇴임 후에 대통령이 받게 되는 모든 혜택과 의전을 받게 된다.
이것은 정말 ‘나쁜 선례’를 만드는 일이다.
이후 정치적 궁지에 몰린 대통령이 있다면, 그는 분명 윤 대통령을 참고 삼아 ‘계엄령’을 남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앞서 그렇게 해도, 자기 밥그릇에 아무런 손해가 없었다는 나쁜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반드시 탄핵당해야 한다.
역사의 숭고함에 큰 흠집을 낸 죄를 묻고, 그리고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돼야만 한다.
땀과 피로 세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손쉽게 훼손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사는 가장 장엄한 교훈이다. 후대에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역사의 장엄한 교훈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숭고한 역사를 훼손하는 자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나쁜 선례는 나쁜 통치자를 또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법이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이 역사적 사건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한번 더 고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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