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차기 대권주자 1위를 굳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중도 보수’ 공을 쏘아 올렸다. 여의도가 발칵 뒤집혔지만 장본인인 이 대표는 태연하기만 하다. 정면돌파를 택한 민주당은 거센 후폭풍에 휘말린 모양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유튜브 채널 ‘새날’에 출연해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 사실 중도 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실제로 갖고 있다. 진보 진영은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이는 여권이 민주당을 겨냥해 ‘오락가락 행보’라고 지적한 것을 뒤집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최근 민주당이 상속세를 비롯해 ‘반도체 특별법 개정’ 추진에 속도를 올리자 국민의힘에서는 조기 대선을 의식한 ‘우클릭’이라고 비판했고, 이 대표가 이를 반박한 것이다.
폭탄 발언
앞서 이 대표는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니겠느냐?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고 말해 실용주의 이미지를 띄우기도 했다.
이날 이 대표는 유튜브서 “우리 보고 우클릭했다는 것은 프레임”이라며 “앞으로 대한민국은 민주당이 중도 보수정권,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을 보라. 헌정 질서 파괴에 동조하고 상식이 없다. 집권당이 돼서 정책을 내지를 않고 야당 발목 잡는 게 일로, 보수 집단이 아니다”라며 “보수는 건전한 질서와 가치를 지키는 집단인데 그 건전한 질서와 가치의 핵인 헌정 질서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오죽하면 범죄 정당이라고 하겠느냐”고도 했다.
보수 타이틀을 뺏긴 국민의힘은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튿날인 지난 19일 “(이 대표는)우클릭하는 척하다가 양대 노총서 반대하면 바로 (발언을)접는다. 우리 당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던 것을 민주당이 반대하는 바람에 논의조차 못했던 것인데 이제 와서 마치 시혜를 베풀듯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행동은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다고 과시하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산타클로스가 된 양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 ‘선물을 주겠다’ 등 행동으로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서지영 원내대변인 역시 “당의 이념과 노선쯤이야 자신의 대권 야욕 앞에선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이재명의 민주당이기 때문”이라고 말을 얹었다.
“민주당 오른쪽 맡아야” 정체성 혼란?
DJ “중도우파” 문 “보수 정당” 소환
진보 잠룡들도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자신의 SNS를 통해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주당의 정체성을 혼자 규정하는 것은 월권이다. 비민주적이고 몰역사적”이라며 “이 엄중한 시기에 왜 진보·보수 논쟁을 끌어들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비명(비 이재명)계 연대 플랫폼인 ‘희망과 대안 포럼’ 이사장인 민주당 양기대 전 의원은 “민주당과 이 대표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총선서 진보개혁을 외치며 표를 얻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정체성을 중도·보수정당으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니 어떤 정치철학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고민정 의원도 “중도개혁 정도까지는 받아들여지는데 우리가 보수라는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굳혔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원래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 보수정당”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국민의힘이 극우 보수 또는 거의 범죄 정당이 돼가고 있다. 진보 정당은 정의당, 민주노동당 이런 쪽이 맡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이던 시절부터 자신을 ‘보수’라고 칭한 인물이다. 그는 2016년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이 진보성을 강화하기보다 제대로 된 보수가 돼 ‘가짜 보수’를 밀어내야 한다” “비박(비 박근혜)계도 성형수술한 가짜 보수일 뿐, 진짜 보수는 나다” “내가 새누리당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가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대중·문재인 전 대통령도 민주당은 중도라고 표현한 사례가 있다. 우리 같은 진보정당이 보기에 민주당은 일부 진보적 정책을 포함하고 있으나 진보정당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해 왔고, 굳이 위치를 말하자면 이 대표가 말한 중도 보수가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보수는 무엇인가. 흔히들 국민의힘이 보수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이미 극우화의 길을 걷고 있다. 친일 독재 부패에 이어 이제는 내란 옹호 정당으로 정체성이 확립됐다”고 지적했다.
“거대 야당, 보수·진보 섞일 수밖에”
우에서 극우로 국민의힘 향한 쓴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 보수 발언 후폭풍은 여전히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당 안팎을 막론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민주당은 진화에 나섰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꼽히는 정성호 의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 대표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얘기한 게 아니라 본인이 생각하는 민주당의 현재 위치가 어떤 것인지, 민주당의 정책과 노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고, 그 입장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중도 정당이라고 칭했다는 설명이다.
정 의원은 “이 대표가 중도 보수를 얘기한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보수정당이라고 자칭해 온 국민의힘이 보수의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 헌정 질서 존중과 정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서 민주당이 합리적인 보수까지 껴안고 국민을 통합하는 데 앞장서 가야 된다는 입장”이라고 언급했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극우로 못 박고 남은 중도 보수 세력을 흡수하려는, 조기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세 번의 집권을 통해 몸집을 부풀렸고 그만큼 스펙트럼도 넓어져 중도 보수부터 진보까지 아우르는 성격을 띠고 있다. 국민의힘이 극우 세력에 끌려다니는 만큼 지금은 오른쪽으로 페달을 밟을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신의 한 수?
신인규 정당바로세우기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민주당은 대중 정당이다. 진보와 보수 색채가 뒤섞여 있는데 과거에 비해 민주당의 보수 색채가 강해졌다”며 “이 대표가 자당의 현실을 반영한 발언을 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보수가 가지는 가장 큰 가치는 법치주의인데 국민의힘은 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 보수는 사라졌다”며 “민주당이 단순 말뿐만이 아니라 중도 보수를 끌어안게 되면, 유의미하고 소구력 있는 메시지로 비춰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hypak28@ilyosisa.co.kr>